177화 황궁무림대회 (3)
그 둘은 공적이 아닌 사적으로 백 년 묵은 고량주를 가로채려 했다.
그래서 관주에게 위협을 가한 거였고.
“…그래도 저는 계속 조사해 보렵니다. 만일 백 년 묵은 고량주가 이미 시중에 유통되었다면 손 쓸 방도가 없겠지만, 주성진 그놈이 어딘가 숨겨 두었다면…….”
“이봐, 포기할 건 깨끗이 포기해. 설령 주성진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인제 와서 어떡할 거냐고. 게다가 그놈이 도자기의 일을 공주에게 고해바친다면…….”
“네. 네, 알겠습니다. 뭐 할 수 없죠, 대신 그놈을 어떻게 죽이면 좋을지 밤낮으로 생각해 보렵니다. 아주 잔인하고 완벽하게…….”
그러자 주장홍이 이마를 쳤다.
“맞다. 만일 제독 태감의 명으로 그놈을 죽였다고 치자. 그럼 그의 재산은?”
“그야. 관례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유족에게 돌아가거나 아니면 유언장에 따라서 집행되겠지요. 가만, 아…….”
“이봐, 그 전에 우리가 좀 챙겨야 하지 않겠어. 가능하면 이번에 놓친 것보다 더 크게 말이야.”
강현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선배, 좋은 방법이 있나 본데요?”
“제독 태감을 포함한 동창의 눈이 모두 그의 죽음에 쏠릴 때 우리는 사천 상단을 터는 거지.”
“음,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우리 둘 다 사천에 갈 거잖아요. 일 때문에…….”
주장홍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우리는 단지 파견 날짜를 비슷하게 하면 된다고. 단 제독이 눈치 못 치게.”
“알겠습니다. 아무리 그가 날고 긴다 해도 동창의 살인 명부에 올랐으니 반드시 죽을 겁니다.”
“아무렴, 그자들이라면 반드시…….”
강현수가 코를 벌렁거렸다.
“형님. 그자들이 누구입니까?”
“이봐, 그런 게 있어, 나는 제독이 내려준 숙제를 끝냈으니, 너나 열심히 머리를 싸매 보라고. 하하.”
“흥, 좋습니다. 누구의 계획이 채택되는지 보자고요.”
주장홍이 손을 흔들었다.
“이봐. 아직도 제독 태감을 모르느냐? 그는 복수의 대안을 채택할 수도 있어, 당연히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해서…….”
“아하, 그렇군요.”
이들은 주성진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했다.
어둠이 점점 짙어질 무렵 주성진은 계태사에 당도했다.
때마침 동벽태가 사찰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주성진의 눈에 띄었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내 얼굴이 어디를 봐서 어르신이야?”
“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동벽태가 싱긋이 웃는다.
“좋았어, 후배. 자 가자고. 내가 아는 곳이 있으니…….”
“절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요?”
“아니야. 후배가 내가 가는 곳을 찾지 못할까 봐, 겸사겸사 예서 만나자고 한 거야.”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어쩐지 야밤에 절에서 이야기하자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한데 어디로 가는 거지……?’
“아, 알겠습니다. 하면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일부 부자만 아는 단골집이 있어. 겉으로 봤을 때는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어 찾기 힘들지.”
주성진은 음식 값이 비쌀 거로 직감했다.
동벽태의 의도가 훤히 보였지만 그저 귀여운 앙탈처럼 느껴졌다.
‘뭐 비싸 봤자 얼마나 비싸겠어, 그래도 일단 슬쩍 돌려서 물어볼까?’
“선배님 그리 외진 곳에 있으면 수지 타산이 맞을까요? 장사는 이윤을 남겨야 하는 법인데…….”
“하하, 누가 상인 아니라고 할까 봐…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그 집은 망하지 않고 수 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으니까.”
주성진을 동벽태를 골려 주기로 했다.
“저, 어쩌죠,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데…….”
“얼마나 있나?”
“은자 5냥밖에 없습니다.”
동벽태가 갖은 인상을 다 썼다.
“정말인가? 전표 같은 건 없고…….”
“외상은 안 될까요?”
“그 집은 현금 박치기야. 외상을 주지도, 받지도 않아, 그래서 납품 업자들이 좋아한다고.”
주성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납품업자들이 좋아한다고… 음, 손님이 그런 세세한 것까지 알지는 못할 텐데, 혹 그 집 주인이랑 친한가?’
“할 수 없군요. 거래 대금 일부를 빼서 음식 값으로 전용해야겠군요. 한데 음식 값은 얼마인가요?”
“그게 좀 비싸, 그래도 음식 값을 내줄 거지?”
“그럼요, 대신 그 가게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세요.”
동벽태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네, 고마워… 음 그러니까 말일세. 음식 값은 인당 은자 이십 냥일세.”
“네? 인당 은자 이십 냥이라고요?”
“그렇다네, 식단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자네 혹 약식동원이라는 말 들어 봤나?”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 뭐 그런 말 아닙니까?”
“하하, 잘 알고 있군. 바로 그 집이 이를 잘 실천하는 집이라네. 그 집 식단이 음식인 동시에 약이거든. 그래서 가격이 비싼 거고…….”
주성진은 동벽태가 약식동원이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기론 좋은 음식이 곧 보약이다. 뭐 그런 뜻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좋은 음식이 반드시 비쌀 필요는 없는 거지…….’
주성진은 이 문제로 그와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아아, 그렇군요.”
“실은 나도 납품업자 중에 하나야. 산에서 괜찮은 버섯이나 도라지를 발견하면 후에 말렸다가 음식점에 가져가지. 이게 왜 좋은가 하면 여행할 때 무료하지가 않아. 무작정 산을 타는 게 아니라 수시로 주변을 둘러보니까 말이야.”
“하하, 여행도 하면서 돈도 번다는 말씀이군요.”
동벽태가 싱긋 웃었다.
“그렇지.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럼요. 좋은 재료 거리가 사람 눈에 쉽게 띄지는 않겠죠. 그런 측면에서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찾기에 유리하겠군요.”
“맞아. 다만 보통의 무림인이 그런 일은 잘 하지 않지. 찢어지게 가난하다면 모를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겠네요, 하하.”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음식점 앞에 도착했다.
동벽태의 말처럼 보통 집처럼 꾸며져 있는데 마당이 엄청나게 넓었다.
별도의 마구간도 갖추어져 있었고.
향긋한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던 주성진이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마당에서 다투는 소리가 그의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뭐지?’
다투는 사람 중 한 사람은 말끔한 차림이었고 또 한 사람은 봉두난발에 얼굴엔 수염이 가득했다.
“이관중! 제발 가라, 장사 좀 방해하지 말고!”
“총관, 돈 안 주면 절대 못 가!”
“이 자식아, 두들겨 패서 쫓아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어디 독버섯을 가지고 와서는…….”
“독버섯이라니… 이게 왜 독버섯이냐고?!”
이관중은 말하는 도중에 자신의 망태기에서 버섯을 꺼내 쥐고 흔들었다.
총관은 불같이 화를 내려다 급히 거두어들였다.
주성진과 동벽태를 본 탓이다.
“음,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약포상에 기서 확인해 봐라. 알겠냐?”
“친구, 나더러 약포상을 가라고?”
“억울하면 가 보라는 뜻이다. 단 여기서는 그 버섯을 받지 않는다. 설사 그게 독버섯이 아니라 고 할지라도…….”
이관중이 쌍심지를 켜며 삿대질했다.
“이 새끼, 날 우롱하나?”
“내가 왜 너를 우롱하겠냐? 만약에 그게 독버섯이 아니라면 내가 사과하겠다. 하지만 독버섯이 아니라고 해서 그걸 받을 순 없다. 몸에 좋다는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으니까…….”
“야 이 자식아, 너 말 다 했어!”
이관중이 대들려고 하자, 총관이 뒤로 물러나며 급히 입을 열었다.
“제발 좀 가라. 손님이 오셨잖아.”
“아니, 못 가!”
톡 쏘듯이 말을 내뱉은 이관중이 갑자기 주성진과 동벽태에게 달려왔다.
‘장사 못 하게 재나 뿌려야겠다.’
그의 속마음을 알 길 없는 총관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휴, 저 자식이… 친구가 아니라 원수야!’
총관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이관중이 입을 열었다.
“실례하오. 이게 독버섯인지, 아닌지 감별해 주시오.”
주성진이 대표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먹어 보면 알 거 아니요?”
주성진은 기가 찬 듯 그를 노려보았다.
‘미친놈이군.’
“그걸 내가 왜 먹습니까? 자 그만 길을 비켜 주십시오.”
“당신도 날 총관처럼 무시하는 거요?”
“이봐요.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말하는 게 경우에 맞지 않아서 그럽니다. 독버섯으로 의심되는 걸 저더러 먹어 보라는 게 말이 됩니까? 더구나 우리는 초면이지 않습니까?”
관중이 주성진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몸에 좋은 버섯을 먹어 보라고 권하는데, 말을 그따위로 하다니…….”
주성진은 그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폈다.
‘뭐야. 정말 화가 난 것 같은데… 그럼 저 버섯이 정말 독버섯이 아니란 말인가? 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길을 막고 저러는 건 아니지…….’
“비켜 주십시오, 저희는 갈 길 가야겠습니다.”
“못 간다. 내게 미안하다고 싹싹 빌기 전까진…….”
주성진은 화가 나서 손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뭐야,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뭐라고요?”
이관중이 불쑥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 말 틀렸어? 여기 온 걸 보니 돈 좀 있나 본데. 그 돈이 어디서 났겠어? 그 알량한 얼굴로 여자들을 후렸겠지. 안 그래?”
주성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바로 그 순간 동벽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한데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어려 있었다.
“자자, 두 사람, 무릇 힘센 사람이 장땡 아니오? 그러니 입씨름하지 말고 시원하게 붙어 보시오. 아, 그게 좋겠군. 두 사람 시원하게 내기 한번 하시오. 후배가 지면 독버섯을 먹는 것이고, 댁이 지면 후배에게 사죄하는 것이고…….”
주성진은 동벽태의 말에 어이가 없다.
‘뭐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하하, 난 좋소. 기생오라비의 엉덩짝을 발갛게 만들어 버리고 말겠소.”
이관중은 동벽태의 등장으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생각했지만, 그것만큼은 확신했다.
자신이 주성진에게 질 리가 없다는 것을…….
바로 이때 총관이 동벽태에게 전음를 보낸다.
―당신, 뭐 하는 거요? 싸움을 부추기다니… 더는 당신과 거래하지 않을 것이오.
총관은 동벽태가 반로환동한 걸 모르고 있었다.
―총관님 화를 풀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자고로 구경 중에 최고는 불구경과 싸움 구경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안에 든 손님들에게 두 사람의 대결은 좋은 눈요기가 될 것입니다.
동벽태는 이곳에 오늘따라 손님이 유난히 많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총관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음, 저자의 말이 일리가 있긴 한데, 어차피 일이 이 지경으로 벌어진 바에는… 음, 다시는 정에 흔들리지 말아야지. 관중 그놈이 납품을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통에 수락했더니. 쯧쯧…….’
그래도 걱정이 앞선다.
자신의 어릴 적 친구인 이관중은 무림의 숨은 고수였다.
‘관중 그놈은 나와 필적하는 고수인데 어찌…….’
―그러다 혹 젊은 친구가 다치면?
―후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도 고수입니다. 제가 보증하는…….
―음, 당신이 무공을 익혔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말 그 말을 믿어도 되겠소?
동벽태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요. 대신 나의 동행자가 내기에 이기면 부탁 하나 들어주십시오.
―말씀하시오.
―특급 단골에게만 제공한다는 자라탕 두 그릇을 만들어 주십시오. 아, 돈은 당연히 내겠습니다.
총관이 고개를 끄떡였고 그렇게 그들의 전음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