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천뇌옥에 들어가다 (6)
등청우는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주성진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4장이라는 거리는 그의 진격과 함께 의미를 잃어버렸다.
‘녀석 빠르군…….’
우르릉……!
순간 주위가 밝아졌고 그의 단검에서 은은한 우렛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성진의 눈이 번뜩였다.
‘뭐야, 저건…….’
그 순간 그의 뇌리가 윙윙거렸다.
무오자의 어의전성이었다.
―저건 뇌정검일세. 당황하지 말고 살살 해주시게나.
―뇌정검이러고요?
주성진이 똑같이 어의전성을 펼치지 무오자는 깜짝 놀란다.
―어의전성을 터득했나?
―네,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서 애를 좀 먹었습니다.
―허허. 그렇군, 하여간 나는 가르쳐 주었네. 조심해 주게나…….
주성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나 이거야 원, 가르쳐 주긴 뭘 가르쳐 줘, 고작 명칭만 이야기해 놓고선… 이끄, 온다.’
주성진은 더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쐐애액!
뇌정검이 공간 속으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광활한 벌판에 수십 줄기의 벼락이 일제히 떨어지는 듯한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등청우가 수련한 뇌정검법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변화를 자랑하는 초식이었다.
‘질 수 없지…….’
주성진의 서늘한 두 눈 속으로 한 줄기 기광이 어린가 싶더니, 곧이어 목검을 타고 푸른빛이 검봉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생각과 동시에 기운이 움직이는 건 가히 입신지경에 오른 절정 검수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신기였다,
주성진이 허공에 원을 그리자, 검봉에 맺힌 푸른 기운들이 마치 꽃봉오리를 터트리듯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곤 퍼져 나간 검기들이 햇살처럼 번지며 뇌정검에서 쏘아 올린 기운들에 부닥쳐 갔다.
퍼버펑!
공간을 빽빽이 채우고 밀려들던 뇌정검의 환영들이 안개처럼 스러졌다.
주성진의 일수는 마치 유영하는 물고기를 가두어 버리는 성긴 그물과 같았다.
‘이이씨…….’
등청우는 이를 박박 갈았다.
‘뇌정검이 막히다니…….’
하나 지금 상황이 단순히 화를 낸다고 될 상황은 아니었다.
주성진의 공세는 계속되었고,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패배를 의미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등청우는 좌반신을 쓸어 오는 검기를 향해 왼쪽 팔꿈치를 들이대며 서슴없이 마주쳐 갔다.
순간 잘 발달한 근육과 복잡한 뼈들로 구성된 팔꿈치가 한꺼번에 잘리는 느낌이 섬뜩하게 그의 뇌리로 파고들었다.
‘아니야, 잘리지 않아! 그냥 피부가 조금 찢겨 질뿐이라고!’
등청우는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기합을 내질렀다.
“야아합!”
순간 폭발적인 기합과 함께 뇌정검이 재차 발출되었다.
그것은 왼팔의 희생이 만들어 낸 미세한 간극 속으로 쾌속하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등청우의 눈에는 주성진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몹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승리의 쾌감이 봄날 꽃봉오리처럼 등청우의 머릿속에서 발아했다.
‘하하, 이겼다. 까짓것 살이 갈라지는 상처쯤이야, 시간이 가면 아물 것이야. 음, 한데 왜 아프지 않는 거지, 피도 튀지 않고…….’
등청우는 몰랐다. 왜 주성진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지…….
좀 전, 단 일수로 승리를 포획하려는 주성진은 오른손을 엉거주춤 앞으로 내민 채 넋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뭐야 왼 팔꿈치로 막겠다고?! 혹, 저 녀석이 내가 저를 상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주성진은 순간 무오자를 의심했다.
‘혹, 그가 알려준 것인가? 제길 성가시게 되었네…….’
사실 주성진이 여세를 몰아 소년의 왼 팔꿈치를 자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소년이 왼 팔꿈에 진기를 겹겹이 두른다고 한들 주성진의 천의무봉한 공력을 당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소년의 한 수에 주성진은 급히 진기를 거두어 들였다.
‘아이고 무리했어.’
원래 공격하려다 갑자기 멈추는 게 배로 힘든 일이었다.
한데 그 순간 또다시 은은한 우렛소리가 울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주성진의 눈에 흔들렸고 그의 눈 속으로 미소 짓는 등청우의 얼굴이 빨려 들어왔다.
‘제길, 저 녀석이… 시간이 없어.’
지금의 상황은 좀 전 막 비무를 할 때와 사뭇 달랐다.
그때는 자신이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고 준비하던 상황이었고, 지금은 공력을 회수하느라 미처 상대의 반격을 머릿속에 그려 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수밖에 없구나, 상대의 빠름을 제압하려면…….’
스르륵!
주성진의 목검이 손에서 벗어나 공중에서 펄떡이며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억울하다.
‘제길. 이기어검을 고작 방어용으로 쓰다니…….’
주성진이 투덜거린 건, 마음만 먹으면 상대의 수급을 벨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과 동시에 빠르게 전개되는 검이 이기어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주성진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검 없이도 상대를 살상하는 심즉검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게 분명했다.
이기어검은 심즉검의 전초 단계였기에…….
꽈꽈꽝!
소년의 뇌정검이 이기어검에 부닥쳐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아아!’
소년은 승리를 확신하다가 경악했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고 이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탁!
주성진의 목검이 소년을 기절시킨 것이었다.
‘쳇, 내가 소녀와 소년을 상대로 고급 무공을 사용하게 될 줄이야…….’
잠시 적막이 흐르고 주성진은 무오자를 바라보았다.
눈으로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주성진은 느낄 수가 있었다.
무오자와 견줄만한 여덟 줄기의 시선을…….
순간 눈빛이 벼락을 닮은 이가 나타났다.
장신에 영락없는 중년인처럼 보였지만, 주성진은 그의 기도가 무오자에 버금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난 뇌종우하고 하지. 참고로 저 아이가 펼친 검이 나의 뇌정검일세.”
“안녕하십니까, 주성진입니다.”
“허허. 참, 우리 9인은 여태 우물 안 개구리였어. 우리를 당할 자가 과연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하고 자신만만했었거든… 한데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자네와 같은 이를 보게 될 줄이야. 더구나 자네는 젊어도 너무 젊어.”
“…….”
“하여간, 고마워. 요즘 꽤 무기력했는데, 자네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구먼.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야…….”
주성진은 손을 내저었다.
“과찬이십니다. 한데 제가 질문하나 드려도 될까요?”
“뭐든 말하게…….”
“혹시 황궁에 사람을 보내라고 요구한 것도 혹여나 모를 고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은 아닐는지요?”
뇌종우가 고개를 끄떡였다.
“겸사겸사… 현존 고수들의 실력을 감찰관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지. 그건 그렇고 만일 무공이 약하면 우리가 가르친 아이들을 이기기도 불가능했을 거야. 그러면 계약은 성립이 되지 않았겠지…….”
“만일 세 번의 기회가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습니까?”
주성진은 황궁의 각 파에서 보낸 감찰관들이 아이들에게 질 경우를 상정해 질문한 거였다.
“하하. 자네는 우리가 여길 나가기를 갈망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꿈이니까요.”
“글쎄, 나중에 수감된 자들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9인은 그런 생각이 없었어. 나가면 뭐하겠나?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여기를 벗어나면 노화로 죽는다고.”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뇌종우가 손을 흔들었다.
“아니야. 자네도 오래 살면 느끼게 돼. 아, 한데 자네를 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긴 하는 군. 이건 나만 생각하는 건지, 친우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겠어.”
뇌종우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성진은 안다.
그가 어의전성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잠시 후, 뇌종우가 주성진을 재차 쳐다보았다.
순간 머릿속이 윙윙거린다.
그가 어의전성으로 주성진에게 말을 건 거였다.
―하하, 친우들도 모두 똑같이 생각하는데, 진실을 말해 주게, 우리끼리만 알 테니까…….
주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뭘 말입니까?
―이건 우리에게 무척 고무적인 사건이란 말일세, 그러니 진실을 말해 주게…….”
―그러니까 뭘 말하라는 것인지?
그제야 뇌종우는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숨을 크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그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으음, 혹시 환생했는가? 일단은 말을 놓겠네만, 만약에 내가 그대보다 나이가 적다면 그 즉시 높임말을 쓰겠네.
주성진은 순간 머리가 띵했다.
‘저들이 나의 환생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어떻게…….’
―그전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말이야. 반로환동을 하게 되면 환생한 사람들이 느껴진다고 하더군. 그래서 기뻐한 것이야. 사실 우리가 큰 욕심은 없지만 반로환동은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어. 한데 이놈의 장소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지…….
그제야 주성진은 뇌종우가 기뻐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경지를 반로환동의 초입쯤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말을 계속 놓아도 됩니다. 제가 환생하였지만, 고작 나이가 환갑 정도입니다.
그러자 그가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고작, 육십 대라고… 에이 좋다가 말았잖아. 난 반로환동의 문지방은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아니, 그건 왜 그렇습니까?
―전생과 환생의 차이가 50년을 넘지 못하면 반로환동 같은 거 안 해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자네를 알아본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무공의 경지가 높은 사람이면 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확신한다는 것이 아니고 짐작한다는 거야. 두말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라고!
―아, 네. 한데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신 겁니까?
그가 미소지었다.
―뭐, 알려 주지. 자네가 묻지 않았다면 넘어갔겠지마는…….
―감사합니다.
―원나라 때 세상에서 가장 박식하다는 천뇌자가 여기로 잡혀 들어왔어. 그리곤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하고 돌아다녔어. 그는 심심했으니까… 또한 그는 무공을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일가견이 있었어. 정작 자신은 무골이 아니라서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지만…….
―혹, 그럼 그분이 새로운 무공을 만드셨습니까?
뇌종우가 고개를 끄떡였다.
―맞아. 시간이 흐르자 수감인 중에 천뇌자에게 무공을 알려 주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급기야는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어. 당연히 그들은 천뇌자를 통해 자신의 무공을 끌어올리기를 원했지만 천뇌자의 재능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어.
“…….”
―그는 여러 무공을 철저히 분석하고 장단점을 파악했지. 그러곤 장점만 모아 새로운 무공을 창안했어…….
주성진은 깜짝 놀랐다.
―그럼 그분의 창안하신 무공을 익히신 겁니까?
―아쉽게도 얼마 되지 않아. 8할이 미완성이었거든…….
주성진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아깝다.’
―원한다면 미완성인 걸 자네에게 알려줄 수 있는데…….
―저에게요? 고마운 일이긴 한데…….
―딴 이유가 있는 건 아냐. 그냥 그분이 하늘에서 원할 것 같기도 하고, 느낌에 자네라면 완성하지 않을까 싶어. 그전에 동료에게 동의를 받아야겠지만, 뭐 별일 없을 거야.
주성진의 눈이 샛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이거, 노다지가 아닌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