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천뇌옥에 들어가다 (5)
순간 말이 떨려 왔다.
“저, 정말로 시체를 먹었다고요?”
“후후, 그렇게 되었소. 후일 벌레들과 이끼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그렇다 한들 우리는 결국 굶어 죽었을 것이요.”
“그럼 벌레와 이끼를 먹고 장수한 것인가요?”
무오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이다. 실험과 연구를 해 본 것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소이다.”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왜, 여기서 나가지도 못한 채 장수하고 싶소?”
주성진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그건…….”
“음, 사실, 벌레는 그럭저럭 확보되는데, 이끼의 양이 한정되어 있소, 유감스럽게 새로 들어온 수감자들에게는 이끼를 주고 싶어도 양이 적어서 주지 못하는 형편이오. 그리고 처음에 말한 것처럼 그 둘의 조합으로 장수할 수 있는 거지, 벌레만 먹는다고 효과가 있는 것 아니오.”
주성진은 그의 말에서 묘한 위화감과 씁쓸함을 느꼈다.
‘약육강식인가? 새로 들어온 죄수들도 장수하고 싶겠지… 하나 무공이 딸리니 그러지 못하는 것뿐이야.’
그 순간 무오자의 말이 이어졌다.
“아 참, 내가 순순히 과거의 일을 털어놓는 건 그대를 믿기 때문이오. 이 나이가 되어서 사람을 잘못 본다면 헛나이 먹은 게지, 허허.”
“저를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 그저 폭동이 일어날지 모르니 알아보라는 것이었고, 뇌옥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요령껏 현장에 가서 알아보라고 들은 게 다였습니다.”
주성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오자는 자신의 양옆의 인물과 아주 잠깐 눈을 맞추었다.
무언가를 상의한 듯 보였는데 주성진조차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 현장에 가서 알아보라는 게 말이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주성진은 자신의 무릎을 쳤다.
무언가가 떠오른 거였다.
‘옳거니…….’
그의 말을 듣기 전에는 공주가 말한 진의를 깨닫지 못했다.
단순히 이곳의 외곽 경비나 간수들에게 현황을 알아보라는 거로 여겼다.
한데 무오자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거라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너무 좁게 생각했어. 한데 공주는 왜 내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을까?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한 걸까… 알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어쨌든 혼자 상상한다고 결론을 내지는 못할 것 같고, 나중에 공주에게 직접 물어봐야겠지…….’
주성진은 생각을 정리하고 급히 입을 열었다.
“아, 그게요. 아주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황궁에서 천뇌옥에 관심을 보이는 부류는 세 갈래요. 하나는 동창이고 또 하나는 고관대작 그리고 마지막은 공주 쪽이지… 물론 겉으론 세 부류라 하지만 또 그 속을 파고들면 더 복잡할 것이오.”
“…….”
“황제의 인척, 외척이나 그리고 황비들. 나아가 환관이나 금의위, 기타 장군들이 줄줄이 엮여있을 것이오. 아마도 그들은 세상의 여느 곳처럼 이합집산이나 합종연횡이 수시로 일어나겠지… 음, 그래서 말인데 그대는 누가 보내서 왔소? 대략 감은 오지만…….”
주성진은 무오자가 자신을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제가 어느 쪽에서 보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대의 무위는 뛰어나오. 하지만 외부인이지… 그러면 답은 딱 하나 공주 쪽일 것이오. 그쪽이 가장 고수가 적을 테니까…….”
주성진은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하면 그전부터 세 부류로부터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말이군요.”
“후후, 그 부분은 나중에 그대가 직접 알아보시오. 다만 그대가 처음이라는 것만 알아 두시오.”
“아. 알겠습니다. 하면 저는 일어나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성진이 정말로 일어나려 하자 무오자의 안색이 삽시간에 변했다.
“왜 그냥 가는 것이오? 좀 더 이야기하지 않고…….”
“그게, 제가 알아봐야 할 것은 다 알아본 것 같습니다. 먹구름 같은 의문이야 잔뜩 있지만 그건 밖에 나가서 알아봐도 될 것 같고…….”
사실 주성진이 그냥 나가려고 한 것의 반은 본심이었다.
그건 바로 공주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도 안다.
뇌옥 안의 죄수들과 황궁 내의 세력 간에 이미 묵계가 있었다는 것을…….
‘필시 뇌옥의 죄수들이 먼저 황궁의 주요 세력들에게 사람을 보내라고 요구하였을 거야.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데 발 빠르게 가장 먼저 행동을 취한 건 공주일 것이고… 물론 내가 적당한 시기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동창이나 다른 세력에게 기회를 빼앗겼겠지… 가만…….”
주성진의 뇌리에 누군가가 떠 오른 순간, 무오자의 말이 이어졌다.
“후후, 이곳에 들어오는 건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오. 한번 해보겠소?”
주성진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일대 이면 모를까 세분을 제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다만 탈출하는 건,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만… 아 그리고요. 저에게 말을 놓으십시오. 저로서는 그게 편합니다. 헤헤.”
주성진의 말은 교묘하기 짝이 없었다.
세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면 이기기는 쉽지 않지만, 도망가는 건 자신 있다고 말한 거였다.
“역시 상인이라 그런지 그대는 참 영악한 사람이군.”
“좋아. 그대가 다른 파벌들을 방문하려는 걸 알고 있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네. 단, 우리 요청을 수락한다면…….”
“요청이라고요?”
무오자는 고개를 끄떡였다.
“요청은 두 가지일세. 하나는 쉬워. 바로 청우와 비무를 하는 것이야. 두 번째는 청우와 초옥이를 자네가 거두어 달라는 것이고. 만약에 이를 수용한다면 우리는 공주에게 견마지로를 다하겠네. 단, 우리 9인은 번갈아 가며 나갈 것이야. 여기 인원들을 지휘할 사람은 한 사람이면 족하니까.”
따지고 보면 요청은 세 가지였다.
문제는 자신이 청우라는 친구와 초옥이를 떠안아야 한다는 거였다.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미래의 일이었기에…….”
‘일단은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물어보자고!’
“번갈아 가며 나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요?”
“우린 여기서 벌레와 이끼를 먹지 못하면 더는 살지 못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벌레와 이끼로 환을 만들었는데 고작 이 개월을 버티지 못하더라고. 아마도 그들 속성이 빨리 부패하는 것 같아.”
주성진은 9인의 초극강 고수의 치명적 단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여길 벗어나면 살지 못하는 거구나.’
“잘 알겠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 사안에 관해서도 마저 이야기해 주십시오.”
“청우는 초옥이처럼 여기서 태어난 아이지. 초옥이는 자네가 꺾었으니 비무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청우와 비무만 하면 돼. 두 녀석이 약속했지. 자신들을 꺾어야 9인의 공동 사부로 부터 떠나겠다고.”
주성진은 그의 말을 빌어 내부적으로는 이야기가 상당히 진척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음, 결국 이들은 황궁에서 파견된 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첫 주인공이 된 셈이야. 하면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은 걸까? 간수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데. 아, 그렇군. 부 간수장이 있었지…….’
“아,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군요.”
“자네가 두 녀석을 거두어 자네처럼 되게 해 주게, 부탁이네.”
무오자가 머리를 숙인다.
“아, 잠깐만요. 두 아이를 거두어 달라는 게 그런 뜻입니까? 상인이 되게 해달라는 것?”
“그렇다네. 무공을 익힌 상인! 바로 자네가 표본이지. 그 아이들은 여기서만 자랐기 때문에 세상을 몰라. 선과 악의 구분도 희미하다고… 그러니 자네가 잘 인도해서 사람을 만들어 주게, 기왕에 장사꾼이 된다면 굶어 죽을 염려도 없고 얼마나 좋은가 말이야.”
“왜 무림인으로 키우시지?”
무오자는 고개를 저었다.
“유언일세. 죽은 아이들의 어미가 남긴… 아마도 그녀가 무림에 염증이 난 모양이야. 사실 그녀의 유언에는 무림에 발을 들여놓지 말을 했는데, 자네를 보니 상인이 좋겠다고 생각한 거야, 하하.”
“아, 그렇군요. 저, 혹시 두 아이는 형제입니까?”
“연년생이고, 이복형제가 맞아. 아버지가 다른 셈이지, 허허.”
주성진은 그제야 전모를 알았다.
‘그렇군. 공주가 말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어. 내가 거절할까 봐… 하지만 난 공주가 사실을 말했더라고 수용했을 거야. 왜냐면 내가 부릴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왜 사양하겠어. 잠깐의 귀찮음이야 감수하면 되는 것이고…….’
“저. 그런데 외람되지만, 세분이 아홉 분 모두를 대표하는 건가요?”
“조금 전 어의전성으로 내가 여섯 친구에게 이야기했네. 그들도 흔쾌히 수용했어. 아, 그리고 말이야. 여기 수감된 자들은 우리 9인과 심령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러므로 절대 배신하지 못하지.”
“혹 심령금제를 말하는 건가요?”
무오자가 고개를 끄떡여다.
“그렇지. 그래야 말을 들을 게 아닌가? 열 길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기 수감된 자들을 어떻게 믿겠어. 그들이 자유로운 몸이 된다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지.”
“아. 네… 그렇군요, 그러면 계약 기간이 어떻게 되시죠?”
무오자가 돌연 주성진을 보며 엄지를 세웠다.
“역시 자네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군, 계약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하하.”
“20년이야. 그 정도면 변방에서 봉사하기 충분한 시간 아닌가?”
“변방에 간다고요?”
무오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몽골의 무인들을 상대하는 것 외는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건 나중에 자네가 알아보게, 하하.”
“공주 편에 선다면 나머지 황궁 세력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알 게 뭐야. 우리는 그저 변방에서 몽골의 무인들을 상대하면 되는 것이야.”
주성진은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까부터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황제가 지시한 일이구나. 그러니까 뭐야, 세 부류에 경쟁을 시킨 것이네. 황제가 영민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상 그게 아닌 게야. 황제는 무서운 사람이다. 자신의 피붙이인 공주까지도 철저히 이용하는…….’
시간이 흐르고 주성진은 청우와 대결하게 되었다.
“성이 뭐야?”
“등청우다, 잔말 말고 빨리 붙자.”
십 대 후반의 앳된 소년이 단검을 꼬나 들고 주성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녀석 버르장머리하고는… 여기서는 공경한 말투를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야…….’
말본새가 그의 동생인 소녀보다 더하다.
주성진은 혼쭐을 내주리라 다짐했다.
‘저 녀석을 데리고 있으려면 초장부터 기를 죽여 놔야겠어. 에이그 모르겠다. 골칫덩어리들을 왜 내가 데리고 있겠다고 했는지…….’
곧바로 주성진의 눈빛이 서늘해지며, 곧게 뻗어 낸 검봉에서 푸른 기운이 찬연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등청우는 이에 질세라 공력을 최고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반드시 주성진을 꺾겠다는 굳은 결의가 엿보인다.
주성진은 자신의 도발적인 기운을 보면 소년의 투지가 조금은 사그라질 줄 알았다.
한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도리어 소년의 투기를 키운 셈이었다.
‘음, 아직 어려서 그런 건가? 아니면 타고난 무골이라 그런 건가?’
그렇다고 나이도 어린 친구에게 먼저 선공할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주성진은 손을 까딱거렸다.
“들어와라, 어린 친구!”
“나 어린애 아니다! 당신과 몇 살 차이나지 않아!”
“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