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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68화 (168/250)

168화 천뇌옥에 들어가다 (4)

주성진은 다시금 생각하니 소녀가 걸어 다니는 무공 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산오객이 가까이 다가왔다.

“감찰관! 초홍이를 어떻게 할 셈이냐?”

주성진은 입을 연 검산오객의 맏형을 바라보았다.

“풀어놓지 말라고 해도 풀어드리겠습니다. 단 저를 높은 지위에 있는 분에게 안내해 주십시오.”

정보승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좋다! 따라와라.”

주성진은 느긋하게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이미 소녀는 검산오객에게 인계한 후였다.

주성진은 그들을 따라가며 움푹 들어간 수많은 동굴 벽을 바라보았다.

‘음. 좀 전에 경황이 없어 자세히 살피지 못했는데, 저기가 거처인가 본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거처는 인위적이라는 거였다.

누군가 동굴 벽을 파서 거처로 삼은 거였다.

다만 누군가가 중요했다.

애초 뇌옥을 만든 자들이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동굴의 죄수들이 만든 것인지, 만일 후자라면 뇌옥의 간수들이 묵인하지 않고는 거처를 만들 수는 없었다.

다른 석굴보다 웅장한 석굴에 3인의 인물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운데 인물은 너무 늙어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노인으로 희로애락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흰머리와 흰 수염이 잡초처럼 어지럽게 자라 있었으며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 뒤덮여 있었다.

피부는 검고 푸석했으며 눈빛 또한 흐릿한 채 탁하기만 했다.

주성진은 그를 바라보며 나름 그를 판별했다.

‘아니야. 저 모습은 본래 모습이 아닐 거야.’

왼쪽의 노인은 뚱뚱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비대한 체격이었는데, 목과 얼굴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살이 쪄 있었다.

‘허허, 변변하게 먹을 것도 없는 곳에서 뚱뚱한 사람이라… 하여간 여기 뇌옥은 비밀이 많군.’

둥근 코에 살집에 덮여 가늘게 실처럼 그어진 눈,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안면에는 실실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반면 오른쪽 인물은 그와는 반대로 대나무처럼 말랐다.

안색은 백랍처럼 창백했으며 눈은 음산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음, 이자는 삐쩍 말랐네. 이거 혹 무공 때문인가, 저 뚱뚱보도 그렇고?’

그들 삼 인은 각자 개성이 뚜렷하여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주성진은 그들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는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감찰관 주성진이라 합니다.”

가운데 노인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로 우리를 만나자고 했소?”

그의 음성은 억양의 변화를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음성이 흐릿하여 힘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야 아무래도 높은 분을 만나야, 여기 사정을 좀 더 알지 않을까 해서요. 말씀드렸다시피 제 직분이 감찰관이지 않습니까?”

“후후, 감찰관이 아니라 감시관이나 아닐까 싶은데……?”

노인은 주성진 본인이 애초 생각한 바와 똑같이 말했다.

사실 감시는 주의 깊게 행동을 지켜보는 행위인 데 반해, 감찰이란 단체를 감독하여 살피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감찰관과 피 감찰인은 같은 소속이어야 했다.

그러니 죄수를 감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는 않았다.

“예리하시군요. 그러고 보니 저의 역할은 감시관이 더 적합하겠네요. 하하.”

“음… 그럼, 뭘 감시하러 몸소 이 위험한 곳으로 들어왔소?”

주성진은 그가 위험한 곳이라 말할 때 내부에서 살짝 전율이 일었다.

‘음, 위험한 곳이란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솔직히 답해 주시겠습니까?”

순간 비쩍 마른 노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끼어들었다.

“크크크, 재미있는 친구네, 내가 말을 놓아도 되겠지?”

“아. 네 그렇습니다. 전 계급장 떼고 대화하는 걸 좋아합니다.”

“곧 죽어도 본인이 위라는 말이군. 하긴 우리는 죄수고 당신은 감시자이니까…….”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아,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 뭐 그런 뜻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자고? 허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군. 만일 내가 허심탄회하게 말한다면 자네는 날 놓아줄 수 있나?”

“그거야 안 되는 말씀이죠. 한데 심사가 단단히 꼬이신 모양입니다. 그러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자 뚱보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자자, 됐고… 막내가 오랜만에 신기한 동물을 봐서 그런 거니 감찰관이 이해하시오.”

“신기한 동물이라고? 제가요?”

“어, 미안하오, 신기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데 말이 헛 나왔소. 뭐 그래도 따지고 보면 인간도 동물이지 않나? 하하하.”

주성진은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노련한 상인답게 금세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갔다.

‘뭐, 일단은 살벌한 상황이 아닌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한데 그 순간, 주성진이 몸이 급격히 앞으로 쏠렸다.

주성진은 가운데 노인을 노려보았다.

‘뭐야. 무형 진기로 나를…….’

갑자기 전신으로 엄청난 압력이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주성진은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대항했다.

한데도 자신의 몸은 점점 더 기울어져 급기야는 엉덩이가 떨어질 판이었다.

주성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내공은 이미 자신도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데 거리를 격한 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음, 엄청난 내공이다! 내가 비록 창졸간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하나…….’

여전히 가운데 노인은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잔잔한 미소를 그려 내고 있었다.

‘진기 수발은 나보다 한 수 위야. 저렇게 자연스럽다니…….’

그래도 상대의 허공섭물에 끌려가 그의 가슴에 안기는 건 치욕이었다.

‘힘을 내자…….’

주성진이 집중해서 힘차게 내공을 사지 백배로 돌리자, 그제야 힘의 균형추가 이루어졌다.

어느새 주성진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아 있었다.

그런데도 주성진은 계속 놀라고 있었다.

‘도대체 저 노인이 누구길래…….’

사실 가운데 노인도 내심 경악하고 있었다.

‘저 친구는 누구길래, 엄청난 공력을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영약을 밥 먹듯이 먹고 격체전력으로 내공을 전이 받아도 저 정도 수준이 아닐 것 같은데…….’

노인은 주성진이 어리다고 생각해서, 그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순간 가운데 노인이 두 손을 모으고 도호를 외운다.

“무량수불……!”

주성진은 자신을 옥죄든 힘이 사라졌음을 알고 재빨리 자신도 내공을 풀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노인의 얼굴에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자글자글한 주름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무량수불이라. 그럼 도인인가?’

바로 이때 노인의 말이 귀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아까 주성진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빈도는 무오자이오…….”

‘무오자…….’

주성진은 내심 그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무량자였어. 무당파의 장문이었던… 몇 번째 장문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혹시 무당파 출신입니까? 제가 무량자라는 분은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만…….”

“하하. 그대는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모양이오? 나의 출신과 자라난 배경까지… 모름지기 그런 화술은 닳고 닳은 상인들이 잘 쓰는 방법인데…….”

주성진은 그의 말에 빙그레 웃었다.

“제가 사실 직업이 상인입니다. 어쩌다 감찰관이란 감투를 쓰게 되었지만…….”

“하하. 그대는 재미난 이력을 가진 모양이오. 나도 소싯적에 장사에 관심이 많았지…….”

무오자는 잠시 위를 쳐다보더니 다시 주성진은 바라보았다.

“그대의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내 얘기를 하겠소, 무량자는 나의 사형이오.”

주성진은 자신의 예상이 맞자 해연이 놀랐다.

‘무량자가 사형이라고? 그럼 도대체 언제 여기에 온 걸까?’

주성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오자는 알 것 같았다.

“하하, 나는 알고 있소. 지금은 원이 북방으로 쫓겨가고 명이 들어섰음을…….”

“그럼 원나라 시절에…….”

“그렇소. 강호를 주유하다 잡혔지. 정확하게는 상인과 물건 값을 흥정하다가…….”

주성진은 그의 나이가 못 잡아도, 대략 백오십은 되었을 것 같았다.

“혹 반로환동 하신 겁니까?”

“그렇지는 않소. 여긴 척박한 곳이라 마음을 여유롭게 유지할 수 없었소. 항시 긴장해야 했기에…….”

그의 말은 척박한 환경만 아니었다면 반로환동의 벽을 충분히 깰 수 있다는 말이었다.

“혹 반로환동의 고수를 본 적이 있소?”

“짐작되는 인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시실 그 당시에는 몰랐고요. 제가 개방의 인물에게 듣기로는 3명 정도 현시대에 생존해 있다고…….”

“허허. 내가 여길 나가면 새로운 친구가 3명 생기는 셈이군… 아, 참 농담이오.”

주성진은 그의 미소를 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여기 들어온 목적은 폭동이 일어날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허허. 폭동이라… 이상한 말이군. 여긴 나조차 탈출할 수 없는 곳이거늘.”

“그 말씀은 천뇌옥을 비밀을 안다고 제가 이해해도 될까요?”

“몽골이 망하고 간수들이 없어졌을 때, 나를 포함한 몇몇 무인들이 간수들이 사는 거처까지 탈출한 적이 있소. 그러다 남겨진 책자를 보았지. 그곳엔 천뇌옥의 구조와 각종 기관 및 진법들이 적혀 있었소. 하나 그것뿐이었소.”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뿐이라뇨?”

“그러니까, 뭐 이런 게 있다고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거요. 진법이나 기관이 설치된 위치와 파훼법은 애당초에 없었던 거지. 내 생각에 그 책자는 후임이 오면 참고하라고 알려 주는 일종의 교육서가 아닐까 싶소이다.”

“…….”

“그리고 기관과 진법은 이미 발동된 상태였소. 몽골 놈들이 여기를 떠나면서 이곳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던 모양이오. 한데 어느 날, 그러니까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새로운 자들이 나타났소. 그들은 새로운 간수들과 수감자들이었지…….”

“…….”

“우리는 새로운 수감자들을 다그쳐서 대강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소. 나라가 바뀌었고 몽골이 숨기려 했던 천뇌옥의 비밀을 명나라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소…….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새로운 수감자들을 장악하기 시작했소.”

주성진은 우리라는 말에 주목했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무오자 옆의 좌우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파벌이 셋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음, 오래오래 산 사람이 여럿 있는 것 같은데,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저, 무오자 선배님. 지금 몇 분이 생존해 계신 건가요? 제 말씀은 원나라 시절부터랍니다, 헤헤.”

“나를 포함해 9명이오. 시체를 뜯어먹었더니 장수한 것 같소이다. 허허.”

주성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상 예상은 했지만 적나라한 사실에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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