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천뇌옥에 들어가다 (3)
주성진은 그들과 통성명하고 얼굴을 풀자, 누구보다 소녀가 깜짝 놀란다.
그녀의 방심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호호. 꿈속에서 그리던 모습이야. 나랑 몇 살 차이 날 것 같지도 않은데…….’
한편 그 순간 주성진은 다섯 노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이 강호에서 검산오객으로 불렸단 말이지. 잘 모르겠군, 저들이 누군지…….’
주성진과 말을 섞은 노인은 검산오객의 맏형 격인 정보승이었다.
정보승이 앞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호기심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혼재해 있었다.
“젊은 친구였네. 어찌 그 나이에 무공이 상승 경지에 들어섰을까……?”
“하하, 상승 경지라뇨. 그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겁 없이 이곳에 혼자 들어온 걸 보니 무공에 자신이 있었겠지. 안 그런가?”
그 순간 오인 중 가장 키가 작은 노인이 소리쳤다.
그는 곽여도라는 인물이었다.
“형님, 뭘 꼬치꼬치 물어보십니까. 직접 부딪쳐 보면 되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습니까?”
“클클. 하긴, 길고 짧은 건 직접 재 봐야 하는 거지…….”
주성진은 그들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졌다.
“저, 정 어르신. 꼭 손속을 나누어야 하겠습니까?”
“여기선 말이야, 초홍이의 부탁은 무조건 들어주어야 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대결을 멈추면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할 거야, 겁쟁이라고 하면서…….”
그러고 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오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겠지. 한데 소녀의 말은 무조건 들어 주어야 한다고? 음, 저들이 소녀를 너무 귀여워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무슨 다른 곡절이 있는 건가?’
“할 수 없군요. 그럼 손속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를 말인가? 그건 우리가 할 소리이네.”
잠시 후 주성진을 검산오객이 둘러싸고 있었다.
“하하! 어디 한번 놀아 볼까?”
“간만에 몸 좀 풀어 볼까나?”
”…….”
검산오객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일제히 신형을 날려 주성진을 공격해 왔다.
휘리릭!
검산오객은 제멋대로 공격하는 것 같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확히 오행의 방위를 차지한 채, 오랜 세월을 통해 다져진 합격술로 일제히 공격해 왔다.
그들의 공세가 들이닥치자, 주성진은 상대의 장력이 닿기도 전에 전신이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주성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으음, 초장부터 세게 나오네…….’
주성진은 급히 쌍장을 뿌렸다.
쏴아아!
그의 쌍장에서는 푸른빛의 장력이 무섭게 회오리치며 뻗어 나가고 있었다.
꽈꽈꽝!
폭음이 주변을 진동시킨다.
장력이 부딪친 순간 검삼오객과 주성진은 뒤로 세 걸음씩 물러났다.
언뜻 동수로 보이지만 일대 오의 싸움임을 고려하면 주성진의 우위였다.
이때 정보승이 눈살을 찌푸리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그거 귀원장법이 맞느냐?”
주성진은 자신의 무공을 알아보는 이가 있어 깜짝 놀랐다.
‘내 무공을 알아보네, 살짝 변형하긴 했지만, 원류는 귀원장법이 맞지… 한데 저 표정과 변한 말투는?’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배웠느냐?”
“왜 그러시죠?”
정보승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유검천의 후예가 아니더냐?”
“후예는 아니지만, 그분의 무공을 익히긴 했습니다만…….”
“역시 너는 사기꾼 유검천의 무공을 익혔군…….”
주성진은 100년 전 강호제일 낭인 유검천이 사기꾼이라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사기꾼이라고요? 그 말 제대로 소명해야 할 것입니다.”
주성진이 정색한 건 유검천이 사부는 아니어도 그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비급을 통해서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었다.
“흥,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네놈이 그 짝이구나. 유검천은 태조문에 사기를 쳐서 거액의 돈을 갈취해 갔다. 나중에 돈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자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그로 인해 태조문은 5년 동안 경제난에 시달렸고 말이다.”
주성진은 태조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모른다는 건 이름 없는 문파이거나 사라진 문파가 틀림없었다.
“혹 태조문 출신입니까? 검산오객이라 하셨는데…….”
“그렇다. 우리 다섯은 태조문의 마지막 문도들이다. 우리가 억울하게 붙잡히는 바람에 태조문이 강제로 해산되었거든. 그리고 검산은 태조문에 위치한 산의 이름이다.”
“아. 그렇군요. 한데 정말 억울하게 붙잡혔나요?”
정보승은 강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다.”
“음, 그렇군요, 방금 말씀하신 말은 유념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유검천, 그분은 100년 전 인물인데 어찌 그분의 무공을 알고 계시는지요?”
“태조문에 그자의 무공 특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당시 문주님께서는 후대에 유검천의 후예를 만나거든 앙갚음을 하라는 뜻으로 적어 놓은 게 아닐까 싶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에이. 그럴 리가요.”
“그러면 왜 원수나 다름없는 자의 무공을 상세히 기록에 남겼겠느냐.”
“그야 모르죠, 한데 그래서 저에게 앙갚음하려는 건가요?”
정보승은 담담하게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사실 조금 전 흥분하긴 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당사자도 아닌 주성진에 화를 내는 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니다.”
말을 끝낸 정보승이 그의 사제들에게 눈짓했다.
검산오객은 주성진과의 첫 합에 밀렸다고 생각하기에 자존심이 좀 상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거세게 공세를 취해 왔다.
오행의 방위를 어지럽게 교차하며 웅후한 장력을 연속적으로 날렸다.
쐐애액!
주성진은 그들의 공격을 한동안 빠른 보법으로 피해 다니다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휴, 운명의 장난이란… 이게 환생의 업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파란이 일어나고 있던 거였다.
‘제길. 천뇌옥에 들어오자마자 일이 꼬이네…….’
한편 주성진이 별로 힘들이지 않은 채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 내자 검산오객은 더욱더
내공을 끌어올리며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주성진은 눈빛을 번뜩였다.
‘안 되겠다. 이대로 계속 피해 다닐 수만은 없어.’
돌연 주성진의 자세가 달라졌다.
쌍수를 움직여 가슴 앞에서 원을 그리는가 하더니, 벼락같이 뻗으며 장력을 뻗어 냈다.
쩌쩌정!
푸른빛 장세가 대기를 찢어발겨 놓고선 폭풍처럼 검산오객을 뒤덮었다.
주성진이 펼친 건 귀원장법의 제3초 귀원만천 이었다.
이론상 장심에서 뻗어 나간 장력이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기에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유용한 장법이지만, 내공이 뒤받쳐 주지 않으면 펼치나 마나 한 장법이었다.
“크윽!”
“큭!”
“…….”
검산오객은 추풍낙엽처럼 날아가 지면에 나뒹굴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크, 너무 심했나. 12성의 경지가 너무 쉽게 펼쳐졌어.’
비급 속의 최후 경지를 펼친 것이지만, 작금 주성진의 무공 경지는 이미 비급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주성진이 살짝 자책하는 사이 그 광경을 본 소녀는 만면에 분노를 일으켰다.
챙!
그녀는 품속에 꽁꽁 감추어두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주성진은 그녀가 단검을 야무지게 뽑아 들자 깜짝 놀랐다.
‘이런, 저 소녀가 무기를 가지고 있잖아. 어떡하게 된 것일까?’
소녀는 단검을 수직으로 곤두세웠다.
그 순간 햇살이 검극에서 반사되며 찬란한 검광이 사위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주성진은 쏘는 듯한 광채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뭐야, 저 소녀의 정체는……?’
그러다 가슴이 철렁했다.
소녀가 곧추세운 검극에서 뿜어지던 광채가 점점 더 강렬해지더니, 급기야는 소녀의 모습을 삼켜 버리고 오직 거대한 검의 형상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음, 이건…….’
주성진은 이마가 쪼개지는 듯한 기분을 느낌과 동시에 소녀의 무위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신검합일의 경지! 대체 누가! 저 소녀에게 검을 가르쳐 주었단 말인가?!’
쓰쓰쓰!
검광은 더욱더 주변을 압도하듯 널리 퍼져 나갔다.
‘내가 저 소녀의 나이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저 소녀의 놀랄만한 신위는 엄청난 공략과 재능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일 거야.’
“안 돼! 봉인을 풀면!”
넘어졌던 정보승의 다급한 목소리다.
소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주성진은 호승심을 느끼며 목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신형이 희미해졌다.
슈욱!
‘오는 군!’
소녀의 몸은 그대로 한 자루의 검으로 화해 주성진을 향해 무섭게 쏘아져 왔다.
‘음, 저 경지는 어검술의 시작 단계. 대체 저 소녀의 능력이란…….’
주성진은 경악하며 빠르게 검을 그어 올렸다.
이미 무초식을 이룬 그였기에 그저 상황에 맞게 검을 펼칠 뿐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힘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검에서는 무시무시한 기파가 일렁이고 있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기운을 분출하고 있는 소녀에게 대응도 못 하고 죽을 것이었다.
필시 소녀의 단검이 몸에 닿기도 전에 그의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게 분명했다.
검과 한 덩어리가 된 소녀의 신위는 검기나 검강을 내뻗는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경지였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지금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다.
무의식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만 무의식이 깨져 버렸다,
‘아아!’
거대란 무형의 벽이 그녀를 가로막더니 점차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엄마! 너무 아파!”
주성진은 그 소리에 급히 공력을 풀었다.
‘이크, 하마터면 소녀를 죽일 뻔했군…….’
주성진은 급히 축 늘어진 소녀를 한 덩이 구름인 양 가볍게 날아서 안았다.
“어어!”
“초홍이가 납치되었다…….”
검산오객은 기겁을 하며 외치는 사이, 주성진은 품 안에 축 늘어진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상처를 입진 않았다. 다만 무형벽으로 인해 내장이 진동해 잠시 혼절한
것뿐이다.’
주성진은 안심하며 빙긋이 웃었다.
‘뭐라? 내가 소녀를 납치했다고! 잘됐다. 이 소녀를 이용해 볼까.’
“으음…….”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소녀가 깨어나지 주성진은 그녀의 맥문을 짚었다.
‘하여간 대단한 소녀다.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을까? 혹 여기 죄수들의 공동전인은 아닐까? 음, 그렇다 해도 죄수들이 심심풀이로 가르쳐 준 무공이 이 정도일 리는 없어. 분명 내공전이의 방법으로 엄청난 내공을 전해 받았을 것이고, 그에 더해 상승 무공의 무리를 깨우친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내부에 소녀가 상승 무공에 눈을 뜨도록 가르친 초고수가 있다는 소리인데…….’
주성진은 초고수가 각 파벌의 수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상식적으로 무공이 타인들에 비해 뛰어나야 하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하여간 이 소녀는 상승 무공을 포함해서 잡다한 무공을 익힌 게 틀림없어. 검산오객과도 친한 걸 보니, 그들에게도 무공을 배웠을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나를 공격한 암기술도 그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