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천뇌옥에 들어가다 (2)
주성진은 이게 무슨 우연인가 싶었다.
바로 얼마 전 생강시와 싸운 그였다.
‘음, 원나라가 생강시 제조법을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혹 그거 배교 놈들이 가르쳐 준 것은 아닐까… 아니지 자발적으로 가르쳐 줄 리가 없어. 어떤 멍청한 배교 놈이 붙잡혀서 생강시 제조법을 토설했는지도 몰라.’
“허허, 생강시라?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했군요. 그건 그렇고 여기에 언제부터 근무하셨습니까?”
“횟수로 5년째입니다. 이제는 이곳의 삶에 익숙해져 마치 이 동굴의 한 부분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주성진은 그가 말한 동굴의 한 부분이 된 느낌이라는 말을 찬찬히 음미했다.
상대는 그냥 깊은 생각 없이 본인의 느낌을 피력한 것일 수도 있으나, 주성진에게는 이곳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음, 부정적으로 표현한 말은 아니야. 이곳에 익숙해졌다 혹은 잘 적응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거야. 어찌 되었든 긍정적인 의미라고! 음, 그가 이곳 생활에 불만이 없다는 뜻은 죄수들의 동태 또한 별문제가 없다는 뜻이 분명해. 죄수들이 하루가 멀다고 야단법석을 치고 난동을 부린다면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하고 피폐했었겠지. 아, 그러고 보니 그의 첫인상은 순전히 이곳에 근무하면 나타나는 직업병 같은 것일 거야. 만일 내가 그처럼 어둠에 동화되다 보면 나도 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지도 몰라…….’
“아아 그래요. 그런데 죄수들이 기거하는 동굴은 어떤 형태인가요?”
차명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장의 지도 비슷한 것을 가져왔다.
접힌 종이를 펼쳐 놓으니 탁자 전체를 덮을 만큼 컸다.
“이게 죄수들이 기거하는 동굴 광장의 내부 구조입니다.”
주성진은 광장 구조를 보면서 매우 놀라고 있었다.
어떻게 산속에 이런 거대한 공간이 생겨났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광장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어 가로가 100장, 세로가 120장, 그리고 높이가 20장 크기였고 특이하게 산 정상에서 동굴 광장 아래로 뚫린 구멍이 20개가 있었다.
“죄수들에 대한 배려로 구멍을 뚫어 놓았군요. 한데 구멍으로 탈출할 수는 없겠지요?”
“네, 구멍이 좁아서 탈출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 머리둘레보다 작거든요. 그래도 혹시나 몰라, 산 정상에서 경비 무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덮개로 구멍을 막으려고요. 아, 그 용도 외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도 구멍을 봉쇄합니다.”
“그렇군요. 음, 안에 화장실은 있습니까?”
차명우는 주성진이 참 호기심이 많은 인물이라 생각했다.
지엽적인 것까지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한 거였다.
“왜 없겠습니까.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건데. 사실 오물을 치우는 날이 가장 긴장된 날이기도 합니다. 똥지게를 나르는 죄수들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하거든요. 자칫 탈출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최소한의 안전책으로 발에 쇠고랑을 차게 하지만요.”
바로 그때였다.
간수 하나가 처소의 문을 열고 빠르게 다가왔다.
“간수장님 식량 배급 시간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알았어. 바로 나갈 테니 밖에서 대기하도록…….”
“네, 간수장님.”
우렁차게 대답한 간수가 나가자 차명우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같이 가시지요. 죄수들을 볼 기회입니다.”
“아, 그래요. 하면 어떻게 식량을 배급하십니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야 철망 밖에서 개개인에게 하루에 한 번, 식량을 전달합니다. 아, 참 참고로 식량은 미숫가루입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니까 철망이 설치되어 있었군요. 그래서 죄수들을 볼 수 있다고 한 거였군요.”
“식량 배급이 중요한 건 죄수들의 상태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들과 말도 섞을 수 있고요. 제 생각에 감찰관님도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마시고 철망 밖에서 그들을 살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주성진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음, 그러시다면 할 수 없군요. 다만 쇠붙이는 그게 무엇이든 안으로 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게 규칙이거든요.”
주성진이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자칫 빼앗기기라도 하면 역으로 탈출의 도구로 쓰일 수 있으니까.
“할 수 없죠. 검 대신 목검을 하나 준비해야겠군요. 설마 목검까지 안 되는 건 아니죠?”
차명우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목검은… 목검은 저희가 준비해드릴 테니, 기왕에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니 나중에 내부 사정을 저에게도 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이지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실은 안에 들어가는 게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보다는 전임 간수장의 일로 제가 안으로 들어가는 게 꺼림칙합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간수장인 제가 내부 상황을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지요.”
주성진은 전임 간수장의 일이 궁금했다.
“전임 간수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그가 안에 들어가서 죄수들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전해주었다는 죄명으로 직위가 박탈되었습니다. 소문에는 중형에 처해 졌다는 말이 돌더라고요. 그 일로 상부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상부에서도 그 일로 많은 시달림을 받은 모양이더라고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잘 알겠습니다. 한데, 매번 식사 배급을 감독하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사흘에 한 번, 제가 합니다. 그러니까 뭐냐, 부 간수장 둘과 돌아가면서 감독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주성진이 질문한 이유는 간수장이 모든 상황을 직접 통제하는지 여부였다.
물론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건 맞지만, 그가 식사 배급 시 직접 참관하지 않고 보고만 받는 게 3회에 2번이었다.
‘음, 완벽한 통제는 아니군. 그렇다는 건 구멍이 있다는 말인데…….’
주성진이 의심하는 건 공주가 자신을 여기에 보낸 이유였다.
내부 폭동이 우려스럽다고는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공주를 만났을 때는 얼떨떨해서 상황 파악이 안 되었지만, 경비 조장과 간수장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은 건 자신이 모르는 흑막이 있다는 거였다.
‘공주가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부탁한 것도 수상해. 측근에 고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아. 궁궐 내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모르는 꿍꿍이가 있는지도 몰라.’
천뇌옥 내부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다섯 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실 내부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밝은 달밤 수준이냐고 할까…….
그들은 햇빛이 비치는 양지쪽에 쭈그리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어깨를 덮는 장발에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기척을 느끼고 주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움푹 꺼진 눈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안광이 이따금 발산되고 있었다.
주성진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풀었다,
‘뭐야, 기분 나쁜 눈빛인데… 아니야.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자연스레 형성된 눈빛일 거야. 한데 어제 식사 배급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이잖아.’
주성진은 어제 식사를 타러 온 죄수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폈었다.
늘 있는 일이라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결원 율이 1할이나 되었다.
열에 한 명은 식사를 타러 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곳 상황을 살피러 온 감찰관입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대기를 가르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쐐애액!
주성진은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이건 암기다. 내부에 무기가 있었단 말인가?’
주성진은 급히 손을 들어 조그마한 암기를 낚아챘다.
그러곤 움켜쥔 암기를 지그시 눌러 가루로 만들었다.
알고 보니 암기는 뼈로 만든 거였다.
사람의 뼈인지, 짐승의 뼈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거 환영 인사치고는 요란하군요.”
주성진의 얼굴은 웃는 모습이지만 눈빛만은 서늘했다.
“클클, 오랜만에 들어온 외부 인사가 보통이 아니군.”
얼굴에 주름살이 자글자글하고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 노인이 주성진을 바라보며 누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성진은 좀전의 상황을 잠시 잊고 그의 모습에서 묘한 측은지심을 느꼈다.
“하하, 죽으려고 온 건 아니니까요.”
“그런가? 한데 어쩌나? 그 귀한 암기를 가루로 내어 버렸으니…….”
그 순간이었다.
휘이익!
주성진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웬 소녀가 나타났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이 허리춤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이는 대략 16에서 17세 정도 되어 보였다.
기이한 것은 소녀의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매끈한 팔과 늘씬한 다리를 모두 노출하고 있었다.
소녀는 나타나자마자 허리에 양손을 올려놓으며 야멸차게 외쳤다.
“혼내 주세요, 정 할아버지!”
주성진은 소녀의 외침을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여기서 태어난 모양이군. 어제 배급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녀석아, 그는 감찰관이다. 외부인이란 말이다.”
“알게 뭐에요, 제 암기를 가루로 만들었으니 혼이 나야 한다고요.”
기가 찬 주성진이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먼저 공격했잖아?”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랬어요, 왜요?”
“수상한 사람이라고? 내가? 그렇다고 해도 다짜고짜 공격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소녀가 혀를 쑥 내밀었다.
“흥, 당신이 뭔데 날 가르쳐?”
주성진은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말이 통하지 않네, 여기서 자란 환경 탓인가…….’
주성진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좀 전 말을 나누었던 노인이 다시 말을 걸었다,
“감찰관 선생! 우리 초홍이가 화가 났으니 한번 붙어 봅시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애들도 아니고…….”
“그냥 손속을 나누어 보자니깐, 그리고 본모습을 드러내시오. 역용한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주성진은 자신의 역용이 탄로 나자 깜짝 놀랐다.
“어찌 아셨습니까?”
“여기서 오래 살려면 눈이 좋아야 하니까. 안 그러면 생존할 수 없지. 크크.”
“눈이 독수리만큼 좋으신 모양입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다마다. 우린 시력을 돋구는 무공을 연구해서 익혔거든…….”
“공동으로 연구를 했다고요?”
“그럼. 그만큼 절박하니까. 일단 그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우리 손속을 나누어 보자고!”
그 순간 소녀가 끼어들었다,
“정 할아버지, 봐주시는 건 아니죠?”
“봐주긴, 척 봐도 강자인데… 오히려 우리 다섯이 합공해야 할 것 같은데…….”
“호호, 그래요?”
주성진은 순간 가만 있을 순 없었다.
“잠깐만요. 합공을 하신다고요?”
“죽는 소리 하지 말고 얼굴 역용이나 먼저 푸시지? 우린 눈이 매섭다고!”
“음, 알겠습니다. 그전에 통성명이나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