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165화 (165/250)

165화 천뇌옥에 들어가다 (1)

주성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군. 돈을 처 발랐구나.’

그때 경비 조장의 말이 이어진다.

“그 기관들은 제아무리 진법과 기관에 능한 자라 해도 쉽게 파괴하지 못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한두 군데의 기관이나 진법을 풀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워낙에 촘촘히 얽혀 있기에 전체를 모두 푼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요.”

“…….”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모든 진식과 기관들을 통과한다고 해도 철문으로 막아 버리면 더는 힘을 쓸 수 없을 겁니다.”

경비 조장이 침방울을 튀겨가며 말하지 않아도 주성진은 이곳의 위험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대단한 안배입니다. 이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약소하지만, 답례토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하하. 순수한 제 마음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상인이라면 장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잘 사귀는 게 더 중요하답니다.”

경비 조장은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저를 잘 봐주셔서.”

“아니에요. 제가 잘 본 게 아니라 경비 조장님이 원래 훌륭하신 겁니다. 하하.”

“…….”

잠시 후, 경비 조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 감찰관님. 이곳에 오신 목적이 어찌 되는지요?”

“하하, 감찰 아니겠습니까. 엇참 그러면 오해하시겠네요. 여러분이나 고생하는 간수분들을 감찰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수들을 감찰한다는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감찰관보다는 감시관이라는 직책이 더 어울릴 것 같군요.”

그러자 경비 조장이 놀란다.

“저… 그 말씀은 설마하니 천뇌옥 안으로 직접 들어가시겠단 말입니까? 저는 간수장과 간수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할 줄만 알았습니다. 왜냐면 정기 방문하는 감찰관들이 그렇게 하고 갔다는 말을 후에 들었거든요.”

“아, 그래요? 한데 안으로 들어가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물론 죄인들이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그 정도쯤은…….”

“그게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습니다만… 아무튼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정말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감찰관님!”

경비 조장이 세 번이나 조심하라고 하자, 돌연 주성진의 속마음도 답답해졌다.

‘제길… 쉬운 일이었으면 공주가 날 시키지 않았을 테지. 그러고 보니 공주 주변에 그녀를 따르는 사람은 많은 듯한데, 정작 고수는 별로 없는 듯하구나. 그렇다는 건 황궁 내 밝혀지지 않는 초고수들이 중립을 지키고 있거나 아니면 공주가 아닌 다른 세력과 연합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잠시 후 주성진은 뇌옥의 실질적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간수들의 숙소에 가까이 도착했다.

주성진은 어둠 속에서 본인을 안내해 준 경비 조장과 조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 후, 혼자서 숙소로 향했다.

간수들의 숙소는 동굴 벽을 파내 만든 몇 개의 석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빛이 전혀 없는 곳이기에 단 하루만 있어도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계십니까?”

“들어오십시오.”

1년 내내 호롱불을 밝혀야만 하는 음침한 석옥에서 주성진은 차명우라는 인물을 만났다.

차명우는 천뇌옥을 지키는 50여 명의 간수 중 총 책임자였다.

나이는 사십이 넘어 보였는데, 얼굴은 마치 회를 바른 듯 창백했다.

그러다 보니 음산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주성진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후 그를 바라보았다.

“수고가 많으시군요. 한데 솔직히 인간적으로 대화했으면 합니다. 저는 뒤탈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명우의 얼굴이 조금씩 혈색이 도는 모습이었다.

왜냐면 주성진은 그가 겪은 수많은 인물 중 특이한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첫인상부터 나쁘지 않았다.

“하하, 뭐… 다른 곳보다 녹봉이 두둑합니다. 거기에 인력에 여유가 있는 편이라, 한 달에 이틀은 외출할 수 있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간수 분들은 모두 무공과 내공을 익혔겠네요?”

차명우는 고개를 끄떡였다.

“네. 하지만 9할이 이류 무사 수준이고 나머지 1할만이 일류 무사 수준입니다.”

“에이. 그런데 1명을 빠트렸었군요. 제가 보니 그분은 절정 고수로 보입니다만…….”

“하하. 제가 주 상단주님 아니, 감찰관님의 눈을 벗어나지는 못하는군요.”

주성진이 그를 바라본 첫인상은 마치 박제 인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여 도무지 피가 흐르는 인간 같지가 않아서 역설적으로 간수장으로 딱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자 그게 아니었다.

‘인간적인 모습이네, 저 모습은…….’

그 순간 차명우가 입을 열었다.

“감찰관님, 제가 곧 이곳 사정을 설명해 드리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오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에서 냉막함이나 무료함이 감돌 뿐, 팽팽한 긴장의 모습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음… 좀 전 외곽 경비 무사들도 그렇고 여기 간수들도 그렇고 그렇게 긴장한 모습들은 아니야. 그렇다면 공주가 내게 한 한 말의 진위는 뭘까…….’

공주는 폭동이 우려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주성진의 뇌리 한구석에서 부쩍 자라나기 시작했다.

“폭동이 우려된다고 하니 상황을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혹 간수장님이 그런 보고를 한 적이 없습니까?”

“아, 그전에 제가 무례하게 물어본 것에 대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보고를 하길, 내부에 언제든 싸움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적었습니다.”

“아, 그래요? 말의 의미가 좀 다르군요. 한데 왜 저에게 무슨 일 때문에 왔냐고 물어보셨나요?”

차명우는 곧바로 대답했다.

“보통 1년에 한 번꼴로 감찰관이 파견됩니다. 하지만 사전에 방문 목적을 상세히 알려왔기에 감찰을 준비하는 저로서는 아무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습니다. 고작 서신에 있는 내용은 감찰관이 오는데, 단독으로 뇌옥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뿐이었습니다.”

“…….”

“그래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감찰관님이 먼저 마음을 열고 말씀하시니, 긴장이 눈 녹듯이 풀렸습니다. 거기에 더해 감찰관님이 그 유명한 검호상인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주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이거, 너무 치켜세우지 마십시오. 하하.”

“사실 감찰관님이 오시기 전, 제가 제일 걱정스러워 한 부분이 감찰관님의 안위였습니다. 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불상사가 나지 않도록 사전 공작을 해 두는데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뇌옥 안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도 그건 간수장님의 책임은 아니지요.”

차명우가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결국은 저의 책임으로 돌아옵니다. 평소에 죄수들을 잘 관리했으면 그런 일이 생기겠냐. 뭐, 그런 추궁이 백발백중 들어올 게 분명합니다.”

“아. 그럴 수가 있겠네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말 나온 김에 천뇌옥에 대해 상세히 듣고 싶습니다.”

차명우의 입이 빠르게 열렸다.

“음. 그러니까 천뇌옥에 갇혀 있는 자들은 총 사백여 명입니다. 정확히 알 수 없는 건 간혹가다 아기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어서 입니다… 뭐 대부분 일찍 죽지만요.”

“…….”

이후 주성진은 그에게서 죄수들이 최하 일류 고수이고 몇몇끼리 뭉쳐 파벌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비록 갇혀 있기는 하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과 그들 또한 건드리지만 않으면 먼저 덤벼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추가로 들었다.

특기할 만한 일은 이십 년 전 큰 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으며, 그때 탈출 사건이 동시에 터져 그로 인해 경계가 대폭 강화되었다고 말을 들었다.

물론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아무런 사고도 없었고.

차명우의 긴 설명이 끝나자 주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다만 노파심에 다시 한번 강조 드리겠습니다만, 내부로 들어가 그들과 대화하시더라도 절대로 그들을 건드리거나 자극하시면 안됩니다. 혹, 욕이나 안 좋은 말을 들어도 흥분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전 지식이 좀 없었나 봅니다. 저는 그들이 무공이 있더라도 점혈이 되어있거나 아니면 무슨 제약에 걸려있는 줄 알았습니다. 한데 그게 아니었군요.”

차명우는 갑자기 주성진이 측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무공을 못 믿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허허. 여기 들어오지 않을 사람인데, 어쩌다가… 게다가 사전 정보까지도 부실하다니, 도대체 누가 보낸 거란 말인가… 아까도 물어봤지만, 그것만큼은 대답하지 않았어.’

“감찰관님. 폭동이 발생할까 봐 오셨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어찌하실 겁니까?”

“하하,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그냥 어슬렁어슬렁 내부를 걸어 다녀 보죠. 누군가 제게 접근하는 자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순간 차명우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실은 전임 간수장이 내부 죄수들과 결탁한 죄로 목이 달아났습니다. 그들에게 외부 정보를 알려다 주기도 하고 내부 소식을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퍼 날라 주기도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죄수들이 무척 바깥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하면 내부 파벌은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죄수들은 철저하게 각 파벌의 수장이 지시하는 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원나라 때 감금되었던 죄수 중에 생존자는 없겠지요?”

“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하지만 대명 초기에는 살아남은 자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죄수들이 굶어 죽었을 것이라 말하지만 저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원이 패망하면서 여기 관리가 느슨해졌다는 말입니까?”

차명우는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식량 배급이 중단되었지요. 간수들이 사라졌으니 음식 배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몇 년은 살 방도들은 있었을 겁니다. 가령 동료 죄수를 잡아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벌레들을 잡아먹었을 수도 있겠지요.”

“…….”

“거기에 내부에 작은 우물이 있습니다. 해서 물 공급은 바로 중단되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 아마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성진은 묵묵히 청취하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 지금 이곳의 식량 배급은 어떻게 합니까?”

“사실 그들에게 넉넉히 식량을 제공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숨을 쉴 만큼만 보급하고 있어요. 다만 그들이 무공을 토설한다든가 하면 그에 상응한 특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원나라 시절 간수였던 자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글쎄 놀랄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죄수들을 생강시로 만들려고 했다더군요. 만일 원나라가 패망하여 북으로 도망가지 않았다면, 원나라는 분명 생강시를 제조했을 겁니다. 그것도 많이.”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