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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57화 (157/250)

157화 봉황루에 가다 (2)

주성진은 강을동이 궤변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흥, 조사는 뒷전이고 그냥 즐기자는 심산인데… 도대체 뭘 나중에 분석한다는 말이야. 솔직히 술 마시고 나서, 제대로 기억이나 하겠냔 말이야.'

"저, 나중에 자세히 분석한다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적당히 술을 마시겠소. 그리고 말이요. 황궁에는 분석 전문가가 다수 포진해 있소이다. 소위 그들을 정보 분석관이라고 하는데 그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면 되오."

주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정보 분석관이 황궁에 있다고?!'

"그게 가능할까요? 정보 분석관에 협조를 요청하는 게?"

"물론 공식적으로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소? 그들에게 대가를 지급하면 되오이다……."

"대가라고요, 그럼 돈을……."

강을동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내가 그들의 비리를 좀 알고 있소. 슬쩍 말을 띄우면서 그들을 위협하는 거지……."

결국, 대가를 지급한다는 게 그들의 비위를 눈감아 준다는 말이었다.

"음, 그렇단 말이지요, 한데 그들의 능력이 그토록 대단한가요?"

"대단하고말고… 평생을 그걸로 먹고 산 사람들인데, 그들은 평범한 말이나 글 속에 감춰진 진의를 족집게처럼 알아채는 사람들이오. 물론 하루아침에 알아낸다는 건 아니고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들은 그 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오. 잘못 분석하면 본인의 목숨이 간당간당하기 때문에……."

주성진은 반신반의했지만 강을동과 더는 이 일로 왈가왈부하기 싫었다.

'그래, 해 달라는 대로 해주고 차라리 그에게 빚을 지우는 게 낫겠다. 짐승도 은혜를 알아보는데 하물며 사람이면…….'

"알겠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전 어디가 입구인지 모르겠지만 선배님은 유경험자시니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만."

"잠깐만 기다리시오. 안내할 사람들이 나타날 때니까."

"아, 그런가요? 그럼 어딘가에서 우릴 보고 있다는 말이네요."

강을동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이다. 분명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거요,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전에도?"

"그렇소, 나도 그 당시 여기 오기 전에 사전에 이야길 듣긴 했지만, 반신반의 했었소. 한데 정말이었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주변에 진법이 설치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공력을 좀 더 끌어올리면 알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한번 해 볼까?'

주성진은 자신의 기운을 외부로 발산해서 찾아보려 했다.

기운이 뻗어 나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날 것이고, 그 순간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질 거였다.

이는 공간을 장악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지만, 힘은 덜 들었다.

하지만 이도 상대적인 것으로 주성진처럼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야 겨우 시도해 볼까 말까 하는 비기였다.

그때였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여러분!"

목소리가 너무 고혹적이다.

순간 주성진은 끌어올린 공력을 풀어 버렸다.

자신이 진의 설치 여부를 알아보기 전에 지하에서 아리따운 여인이 올라와 먼저 인사했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건 그녀가 햇빛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양산을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데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계속 주성진을 주시하고 있었다,

주성진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음,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주성진 상단주님.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하느라 결례를 범했습니다."

"허허, 제 용모파기를 본 모양이군요. 하면 제 일행들도 아십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떡인다.

"네, 그럼요. 육선문을 지탱하는 주역 분들인데 저희가 모르면 되겠습니까? 호호, 어머,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유소군이라 합니다."

그 순간 강을동이 유소군을 바라보았다.

"4대 가인께서 직접 우리를 영접하다니 이거 삼생의 영광이오."

"어머, 저의 이름을 들어보신 모양이군요. 아는 분이 별로 없을 텐데요."

강을동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주성진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또 하나 밝혀진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입을 통해…….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야. 4대 가인의 이름을 알고 있었네, 좀 전에 15년 전 일이라 지금쯤 새 얼굴로 바뀌었을 거라고 해 놓고서는…….'

"다 아는 수가 있소. 한데 이거, 소문보다 더 대단한 미인이구려, 하하."

유소군이 방긋방긋 웃는다.

보일락 말락 하는 보조개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강을동은 유소군의 웃는 모습에 그만 심장이 벌렁거리고 말았다.

'아, 정신 차리자, 남들이 주책이라 그러겠어.'

이때 그녀의 음성이 그의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호호호."

지금 그녀를 눈앞에 두고 멀쩡한 사람은 주성진뿐이었다.

왕천유와 역산도도 그녀를 보자마자 이미 그녀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단지 강을동 때문에 발작하지 못할 뿐…….

주성진은 일행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저런데 조사는 무슨… 뭐 하여간 대단한 미인인 건 틀림없군. 피부가 너무 하얀 게 옥에 티라면 티지만… 아니야,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사람들은 백옥 같은 피부를 좋아한단 말이지…….'

주성진은 잠시 침묵이 흐르는 틈을 타서 재차 말문을 열었다.

"유 소저라고 부르겠습니다."

"어머, 저를 그리 부르시다니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별 것 아닙니다."

"그래도……."

사실 그로서는 마땅히 부를 말이 없어서 그런 거였다.

"저 좀 전에 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었지요?"

"네. 그렇습니다. 주 상단주님."

"그럼 어딘가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단 말인데, 맞습니까?"

그녀가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어떤 손님이 오실지 미리 확인 차 그랬습니다. 뭐 그게 전부예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혹 그럼 외부에 보이지 않도록 진법을 설치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진 안에는 망루가 있는데 세 사람이 거주할 수 있답니다."

주성진은 의외로 그녀가 막힘없이 대답하자 도리어 얼떨떨했다.

'이거 너무 싱거운데…….'

"망루의 감시자들은 매의 눈을 가졌겠지요?"

"매의 눈은 아니지만, 시력이 아주 뛰어나지요. 호호."

"너무 솔직한 것 아닙니까? 봉황루의 비밀을 술술 말해 주다니……."

그녀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그건 어차피 알게 되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린 겁니다."

"미리 말을 했다고요?"

그 순간 주성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가만, 나한테 용무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순순히 밝힌 것이고.'

현재까지 그녀가 밝힌 것만 해도 놀라운 사실이 두 가지나 있었다.

그 두 가지는 무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들이었다.

첫째는 진법의 존재였고, 두 번째는 시원스럽게 무공을 익혔다고 시인한 거였다.

결국, 그렇다는 건 봉황루가 일반적인 기원이 아니라는 걸 만천하에 고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주성진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재차 말을 이어 갔다.

"다들 무공을 익혔단 말이지요?"

"네, 하지만 손님을 상대할 때는 일시적으로 내공을 봉쇄합니다."

"혈도를 봉쇄하는 것입니까?"

그녀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점혈과 유사한 원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단 시전자의 의지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봉쇄된 내공을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님을 접대할 때는 목이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풀지 않습니다.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음, 그렇군요. 자, 그럼 보따리를 풀어보시지요, 제게 무슨 용무가 있는지?"

"짐작하고 계셨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순간 그녀의 눈이 잠시 감겼다.

좀 전의 상황이 생각난 것이다.

그녀는 대외적으로 봉황루의 4대 가인으로 알려졌지만, 내부에서의 직책은 정보단의 단주였다.

그녀가 봉황루의 루주와 각단의 단주들과 회의를 하고 있을 무렵, 그녀의 부하로부터 쪽지가 전해져 왔다.

당시 유소군은 봉황루의 루주인 진옥기 그리고 본인과 같이 봉황루 4대 가인으로 알려진 총무단의 송조아, 타격단의 심월, 수호단의 국정의와 함께 암흑상인 측에서 제안한 안건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 중이었다.

루주인 진옥기기 입을 열었다.

"음, 이제 기한이 열흘 밖에 채 남지 않았어. 암상이 제안한 합병 안에 동의하든지, 아니면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든지… 달리 의견이 없으면 본 루주는 암상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야. 이제 요마루는 영원히 사라지고 우리는 암상의 한 지부가 될 거야……."

타격단의 심월이 심난한 얼굴로 진옥기를 바라본다.

"정말로 저희의 정체가 탄로 났을까요? 암상이 알려 준 정보를 믿을 수 있나요?"

"흑룡가가 우리의 정체를 알아낸 건 사실이다. 암상의 첩보에 의하면 흑룡가가 우리에게 수정 지팡이를 요구한다고 하더라. 난 누가 뭐라 해도 암상, 상단주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어,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암상은 일찌감치 우리의 정체를 알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는 걸 명심하라고!"

"암상이 고의로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잖아요?"

루주 진옥기는 슬픈 눈으로 심월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따지면 끝도 없지… 그러면 애당초 암상에게 우리의 정체가 탄로 났을 때 우린 사업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어."

"그래도 암상의 일개 지부가 된다는 건 너무 굴욕적입니다. 저희 요마루도 암상과 동등한 마교 12 가문 중 하나인데……."

마교 12 가문은 현 총무련에 가입한 9대 가문과 그들과 척을 진 흑룡가 그리고 진작 마교에서 떨어져 나온 암상과 요마루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개중에 유독 유마루만 세력이 미미했다.

루주 진옥기는 침울한 표정으로 그녀의 직속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모두 찬성하면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택할 수도 있다. 가서 평생 지하세계에서 생활하자꾸나. 우리 선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건 또 싫은 것이다.

잠시 후 수호단의 국정의가 입을 열었다.

"루주님, 흑룡가에게 수정 지팡이를 넘겨주면 되지 않나요?"

"우리에게 쓸모없는 수정 지팡이를 넘겨주는 건 상관없다. 하나 과연 그들이 순순히 그것만 받고 물러날까. 아마 암상처럼 자신들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우리의 정체를 만천하에 공개한다고 위협하겠지……."

"……."

"만일 우리의 정체가 공개되면 황제는 가차 없이 우리를 버릴 것이다. 미안하다. 내가 못난 것을, 천형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능력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국정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루주님, 어찌 그게 루주님의 잘못입니까? 천 년 이상을 풀지 못한 난제인데. 다만 아쉽습니다. 저희가 돈을 좀 더 벌 수 있었다면 천형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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