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봉황루에 가다 (1)
강을동의 말이 이어졌다.
"녀석,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그럼 다른 걸로 하나, 예시로 들지, 넌 감히 황제 폐하가 머무르는 북경에서 궁녀보다 예쁜 기녀들이 수두룩하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황제께서 기분 좋아하실 것 같나?"
"당연히 불쾌하게 생각하시겠지요. 아, 그러니까 스승님 말은 그런데도 여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그 말씀이군요."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하니 좀 조사해 봐야 하지 않겠나, 이 말이다."
주성진은 환각이나 착시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에이, 내가 너무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흥미가 당기는데…….'
한편으로는 우려스럽기도 했다.
'음 지난번 암상의 암흑루에 갔을 때도 그렇고, 싫든 좋든 가면 꼭 무슨 일이 생기던데 말이야. 이번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순간 강을동이 주성진을 바라본다.
"뭘 생각하는 것이오? 설마 요마루를 모르지는 않을 테고……."
주성진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생각해 보았다.
'요마루? 상당히 특이한 이름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혹 요마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일단 그렇게 이야기해 보자. 뭐 아니면 말고.'
"제 생각에 고대 천마의 부인이었던 요마와 연관이 있는 곳 같습니다만."
강을동은 주성진이 자신 없이 이야기하자 혀를 끌끌 찼다.
'쯧쯧, 무공은 고수인데 관련 지식은 너무 얕아. 무림이라는 곳이 무공만 잘한다고 대접받는 곳이 아닌데 말이야, 무릇 무공의 초고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전방위적으로 지식이 충만하여야 한다고! 뭐 하긴 그를 탓할 수는 없지, 그에게 무공을 가르친 그 누군가의 안목을 탓해야 쓰겠지…….'
"허허, 그대는 무림사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소. 여태 요마루를 모르고 있다니."
주성진은 강을동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저자는 너무 잘난 척이 심하군… 모를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보니 상황 판단이 안 되는 모양이야, 내가 물주인데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하하.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술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 서점에 들러 무림사 관련 책이 있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강을동은 마음이 급해졌다.
'저자가 내 말에 감정이 상한 모양인데. 안 돼!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내가 무림사를 정리한 책을 나중에 빌려줄 테니 어서 그곳으로 갑시다."
"그러면 화대 값은 각자 내는 것으로 하시죠, 너무 비쌀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강을동이 고개를 숙인다.
"주 상단주, 미안하오. 내가 말을 함부로 한 것 같소이다."
"아닙니다. 그냥 다음에 가시죠."
"에이, 그러지 말고… 차차 은혜는 갚을 테니까."
순간 강을동이 눈치를 주자 왕천유와 역산도가 주성진의 양팔을 붙잡았다.
"주 형, 내가 죽기 전에 꼭 가 보고 싶은 곳이요. 부탁하오."
"나도 부탁하오."
주성진은 웃음을 머금으며 역산도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중인데 파계하고 싶은 것이오?"
"에이 무슨 말을… 다만 아직 속세의 연이 끊이지 않았소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육선문의 포쾌다, 그 말인 거요?"
역산도는 소림사 출신이었다.
"그렇소, 그러니 내 직분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하하."
주성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내가 돈 많은 상인이라는 게 자랑스럽군, 무공이 높으면 뭐해. 돈이 없으면 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하소연하기 일쑤일 것 같은데, 저들처럼 말이야, 하하.'
"뭐 그렇다면 그럽시다, 하하하."
역산도가 못 미더운지 다시 확인한다.
"정말 같이 가는 것이오? 진정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만약에 내가 안 간다고 하면 왕 대장이 상당히 불쾌해할 것 같아서 마음을 바꿨소이다."
주성진은 강을동에 앙금이 남아 있어 왕천유를 들먹인 거였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왕 대장에게 물어보시오."
역산도가 왕천유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강을동도 넌지시 왕천유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주 상단주가 얼마 전에 횡재했거든, 아마 그래서 한턱내려고 하는 걸 거야."
"친구…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그게, 얼마 전 나를 구하면서 어부지리로 수적들이 숨겨 놓은 재물을 챙겼거든, 나에게도 일부 떼어 준다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벼룩이 낯짝이 있지 어찌 재물을 달라고 하겠냐고. 나를 구해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데."
역산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에이, 그래도 나 같으면 흔쾌히 받아들였을 텐데."
"땡중이 욕심도 많네, 아서라……."
"이봐, 날 몰라? 난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 거라고."
왕천유가 빙그레 웃는다.
"어이구, 스님, 대단하십니다, 하하… 음, 한데 말이야, 주 상단주가 이미 재물의 반을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고 내놓았어."
"어, 그래? 이거 몰랐군."
* ? ? * ? ? *
한참을 달려 일행은 봉황루에 당도했다.
주성진을 제외한 세 사람은 얼굴에 활짝 꽃이 피었으나, 유독 주성진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가 봉황루라고? 건물은 없고 그저 아름다운 정원만 펼쳐져 있는데, 게다가 조용하기까지 하고.'
주성진의 당황스러움을 간파한 왕천유가 웃는 표장으로 말문을 열었다.
"하하,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봉황루는 지하에 있소이다."
주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하니 북경의 유명한 기원이 땅 밑에 있을 줄은 몰랐다.
"뭐요. 지하에 기원이 있다는 말이오? 어째서……?"
"그건 잘 모르겠소, 다만 지하가 이점이 많지 않겠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니 말이오, 거기에다 소음이 차단되니 주변에 민폐 끼칠 일도 없고, 다른 곳과 차별화되어 좋기도 하고……."
주성진은 고작 그런 이유로 지하에 기원을 만들었다고 보진 않았다.
'지하에 기원을 지으려면 돈이 몇 배는 덜 것이야…….'
이때, 강을동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원래부터 여기 지하에 동굴이 많았다고 하더이다."
"음, 여긴 산도 아니고 평지인데, 동굴이……."
"자세히 지형을 살펴보시오, 평지처럼 보이지만 지대가 주변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소이다."
주성진은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강을동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산하면 으레 숲이 무성하다고 생각한 내 고정관념이 문제였군…….'
"그렇군요. 여기가 과거에는 산일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동굴을 활용해 봉황루를 만들었다는 거군요."
"그렇소, 그러니 건축비가 생각보다 적게 들었을 수도 있소이다."
"음,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한데요. 제 생각에는 그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강을동은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해 봤는데 딱히 합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소, 그저 타 기원과 차별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뭐 그 정도……."
강을동은 자신이 언제가 들은 적이 있는 소문은 차마 밝히지 못했다.
황궁과 연결된 비밀 통로가 있다는…….
확실한 것도 아니거니와 설령 사실이라도 주성진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대외기밀 사항이라서…….
"어쨌든 지하에 봉황루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조사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다. 여러 가지로 수상쩍은 곳이오, 여기가……."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강을동을 바라보았다.
"한데 어찌 조사하려 합니까?"
"그야, 뭐 일단은 기녀들의 입을 통해 알아봐야 하지 않겠소……."
"그게 가능할까요?"
강을동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높은 사람을 만나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소. 음… 그래서 말인데 봉황루 4대 가인을 소환합시다, 물론 화대 값이 아주 비싸겠지만……."
"봉황루 4대 가인이 봉황루의 실질적인 주인입니까?"
"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하지만 예전에 방문했을 당시 4대 가인이 상당히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소이다. 보자, 내가 여길 방문한 게 15년 전이니까 아마 4대 가인도 지금쯤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오."
주성진은 자신을 주시하는 3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의 얼굴에는 예외 없이 잔뜩 기대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들의 심정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봉황루의 일반 기녀만 해도 인세에 드문 미인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4대 가인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주성진은 완벽한 미인을 본 적이 있었다.
비록 실물은 아니고 그림이지만, 천월무녀도에 그려진 미인은 십전십미였다.
너무 완전무결해서 어디 한구석 나무랄 데가 없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미인이었다.
'말해서 뭐해, 하늘의 신선이 반할 미인인데…….'
그리 생각하니 자신이 4대 가인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굳이 봉황루에 가서, 안 그래도 화대 값이 비싼데,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출할 이유가 있을까, 설사 봉황루의 정체가 밝혀진다고 한들, 내게 돌아올 건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면 그들이 자신을 좀생이로 볼 것 같았다.
"저, 한데. 4대 가인이 그리 유명하다면 저희가 소환할 수 있을까요? 예약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찔러 보자는 것이오."
강을동은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많이 찔렸다.
실상 4대 가인 중 한 사람만 부른다 해도 자신의 녹봉 5년 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녀들을 꼭 보고 싶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음, 이 사실을 안다면 주성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부를 리 없겠지. 게다가 그녀들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물론 여기 기녀들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잠자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4대 가인은 아예 시도조차 못 하는 여인들이란 말이야…….'
주성진은 강을동의 대답을 듣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기껏 4대 가인을 만나자고 했으면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운에 맡기자는 식이다.
"밑져야 본전이라고요? 저는 무슨 계획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아.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음, 다 좋습니다. 그녀들을 소환한다고 치자고요. 하지만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그녀들을 조사한다는 게… 생각해 보십시오. 상식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조사하는 게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속한 조직에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을 텐데……."
강을동은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다.
'제길, 주성진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지만, 내가 뱉은 말도 있고, 후배들이 날 보고 있잖아…….'
"아니요. 그녀들이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어렵더라도 그녀들을 조사하는 게 훨씬 이득일 것이오."
"음, 그럼 방법이 있습니까?"
"자연스럽게 그녀들과 대화를 해보고 다음에 그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오. 절대로 조사한다는 느낌을 그녀들에게 주면 안 되오! 자칫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물론 주 상단주가 있으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