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마풍과 대결을 펼치다 (2)
마풍은 주먹을 와락 움켜잡았다.
'저 녀석도 호신보갑을 입은 것인가?'
주성진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 공격을 이어 나갔다.
마풍의 장풍은 신출귀몰했다.
정면으로 친다 싶으면 옆구리를 노리고, 옆구리를 노린다 싶으면 등을 가격했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변화무쌍!
도저히 투로를 짐작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주성진은 요리조리 피하며 기회를 노렸다.
'지금!'
순간 틈이 보였다.
"얍!"
버럭 소리친 주성진은 몸 전체에서 파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뭔가를 잡은 것은 같은 모습을 취한 주성진은 양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고리 모양의 기운들이 앞으로 쭉쭉 밀려 나간다.
'후후, 강환이다.'
미풍은 대경 질색했다.
그렇다고 피하긴 늦었다.
그저 있는 힘을 다해 대응할 수밖에…….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
그 위력의 여파만으로 관전하던 3인은 뒤로 빠르게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삽시간에 주변 3장이 넘는 공간이 모두 초토화되어 버렸기에…….
"카아악!"
마풍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했다.
주성진은 그를 따라잡으려고 발검을 떼었다.
한데 마풍의 신형이 허공에서 알알이 부서지더니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허!"
주성진은 혀를 찼다.
'내가 네놈을 놓칠소냐!'
주성진은 오기가 생겼다.
빠르게 내공을 끌어 모으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곤 허공을 향해 검을 휘젓기 시작한다.
도저히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빠르기였다.
길게 뻗은 검기가 마치 기다란 채찍을 연상케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니까?'
주성진의 공격은 효과가 있었다.
난데없이 땅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진다.
주성진은 이에 고무되어 피가 떨어지는 곳으로 검을 날렸다.
"아아악!"
커다란 비명과 함께 살아 있는 듯, 팔딱거리는 팔이 한 짝, 땅에 떨어져 있었다.
주성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독한 놈이다. 팔 한 짝을 희생하고 도망치다니, 제길…….'
주성진은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떤 주술이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는 걸까…….'
바로 이때 뒤에서 강을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풍 그놈, 임자를 만났군……."
"그래도 놓쳤습니다."
"아니오, 오른팔이 날아갔으니 앞으로 예전처럼 악명을 떨치지는 못할 것이오."
주성진은 천천히 몸을 틀었다.
"주술로 은신한 자를 상대하려면 어떤 방법이 효과적입니까?"
"그보다 먼저 그대는 어떻게 할 작정이었소? 내가 전음으로 알려 주지 않았소이까? 그가 은신술을 펼친다고."
"처음엔 공간을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소가 여의치 않아서 포기했지요."
강을동은 멍하니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 괴물이군, 도대체 공력이 얼마나 되기에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수가 있소?"
"뭐 여러 가지 기연이 겹쳐서 공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반로환동한 고수 같은데 아니라고 하니… 뭐 그건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음 그대의 물음에 답하겠소."
주성진은 정신을 집중했다.
"주술은 주술로 상대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오. 하지만 당신 같은 고수에게 걸리면 아무리 높은 주술로 무장했다고 해도 무용지물일 것 같소이다."
"아닙니다. 저라고 해서 공력이 무한정한 것은 아니니까요, 저. 그래서 말인데 주술을 배워야겠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 없는 것 아니오, 그대 덕에 황궁에서 잃어버린 호신보갑을 눈으로 목격했으니까… 정확한 명칭은 천신보갑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그게 무슨 말씀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마풍이 입고 있는 천신보갑은 오 년 전만 해도 황궁 모처에 있었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감쪽같이 없어졌지… 한 달 동안 수색했지만, 범인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소. 하지만 그대 덕에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혹 그쪽인가요? 차마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군요."
"그렇소. 동창이오. 그놈들이 빼돌린 게 분명하오. 황궁에 천신보갑이 세 개가 더 있기에 조사는 빠르게 종료되었소, 유야무야 된 거지."
"한데 그것과 주술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강을동은 하얀 이를 드러냈다.
"황궁 서고에 보관된 주술에 관련된 책을 동창에서 지키고 있소이다. 그러니 그들이 눈감아주면 하루 정도는 주술에 관련된 책을 볼 수 있을 것이오."
"아, 그러니까 호신보갑을 보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넌지시 말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소,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그들이 먼저 눈감아 달라고 부탁할 것이오. 그러면 그때 요구 조건을 말하는 것이오. 하루만 주술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주성진은 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윗선에 보고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주성진이 뜻하는 위선은 황제였다.
"하하. 무슨 뜻인지 알겠소. 하지만 황궁에서 동창의 힘을 무시 못 하지. 그러니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수가 있단 말이외다."
"그건 알겠는데 저는 외지인인데 어찌 황궁 서고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지, 지금처럼 육선문의 무공 교두라고 하면 충분히 자격이 있는 것이오. 그리고 내가 같이 동석할 때니 하루라는 기간이 짧다고 생각하지는 마시오."
그래도 의문이 든다.
"주술관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원칙적으로 육선문 문주님의 인장이 있으면 가능하오. 단 황제 폐하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진 밖으로 서적을 가져나갈 수는 없소. 한데 요즘 동창 놈들이 건방지게 동창 제독의 인장이 있어야 입장을 허락한다고 횡포를 부리고 있다오."
주성진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책을 본다고 하루아침에 주술이 익혀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그전에 진법 관련 서적을 좀 보시오. 그러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외다, 다행히 진법 관련 서적은 우리가 담당하니까 쉽게 볼 수 있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다만 저에게 과분한 혜택인 것 같은데요."
강을동은 손을 흔들었다.
"아니오, 내가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직감에 그대가 육선문이나 공주님께 크나큰 도움을 주었을 게 분명하오. 그러니 충분히 자격이 있는 셈이지. 안 그렇소?"
주성진이 말없이 웃음을 내비치는 순간 왕천유가 끼어들었다.
"그럼요, 주 상단주는 충분히 자격이 넘치지요. 그건 그렇고 영 개운치 않군요. 동창과 마풍이 연관이 있다는 게……."
강을동은 뭔가를 숙고하는 듯 말없이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동창에서 하는 일이 지저분한 일이 많다, 그래서 그런 것이야, 그리고 정의라는 것도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게 정의가 아니야. 황궁에서 옳다고 믿는 것이 바로 정의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주성진은 그 누구보다 강을동의 말을 잘 이해했다.
'황제가 하는 일이 법이고 정의이지, 그러니 설사 나쁜 일이라고 황제가 시키면 해야 하는 것이 정의이고, 그 일을 진행하려면 때로는 더러운 칼도 필요한 법이지.'
왕천유가 꿀 먹은 벙어리 양 가만히 있자 강을동이 재차 말문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동창 녀석들이 무엄하게 천신보갑을 빼돌린 것도 나중에 들통이 나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허허."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강을동은 시선을 주성진에게 옮겼다.
"난 맨 처음 그대가 쓴 장법이 무당의 면장인 줄 알았소. 부드럽게 태극을 그리면서 상대의 공격을 와해시키는 무공은 십중팔구 무당 면장밖에 없거든."
"저도 면장을 생각하면서 펼친 것입니다. 요즘 제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입니다. 뭐라 할까요? 제가 너무 웃자란 것 같아서 속을 단단히 채우는 중이라고 표현하면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빨리 성장했다는 그 말 아니오? 부럽소이다. 하하. 그런데 효과는 좀 있소이까?"
주성진은 요즘 새롭게 정립해 가는 무공 관점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줄곧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기어검을 완성하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봤지요. 이기어검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을 한정해야지 남용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물론 순간적인 공력 손실도 만만치 않고요."
"……."
"그래서 나름의 상황에 맞게 무공을 펼치자고 다짐했습니다. 가능하면 멋있는 무공으로……."
그러자 왕천유가 입을 삐쭉거린다.
"주 형, 그거 상대방을 가지고 논다는 말 아니오?"
"뭐, 그리 보일 수도 있지만 난 그게 최선이오, 아니면 모든 게 허무해질 테니까."
왕천유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난데없이 허무? 그게 무슨 말이오?"
그 순간, 강을동이 왕천유의 어깨를 짚었다.
"녀석, 예전에는 영민하더니 쯧쯧, 내가 대신 말하지. 만일 오늘 주 상단주가 여기서 이기어검을 펼쳤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우리도 적이라는 가정 하에."
"그럼 모두 죽었겠지요, 허허."
"그래, 마풍이나 우리나 여기서 제대로 무공도 펼치지 못하고 죽었겠지. 한데 말이야 죽은 자를 바라보는 주 상단주의 마음을 상상해 보라고! 어떨 거 같아? 과연 기쁘기만 할까……."
왕천유가 고개를 끄떡였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야, 고독이 밀려오면서 허무해질 거라고!"
이야기를 듣던 주성진은 버릇처럼 주변을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어서 더는 이야기를 할 분위가 아니었다.
"자자.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할까요?"
강을동이 눈을 빛냈다.
"안 그래도 내가 제안할까 했는데, 역시 그대는 나와 통하는 게 많은 것 같소."
"그런가요, 어디 좋은 곳이 있겠습니까?"
"내가 순회사자 아니오? 당연히 조사할 데가 있소이다. 물론 명을 받은 건 아니지만."
주성진은 강을동의 말에 싱긋 웃는다.
'저 사람은 돌려 말하는 걸 참 좋아하는군.'
"조사도 할 겸, 술도 마실 겸 그런 곳을 가자는 말이군요."
"주 상단주 덕에 덜 귀찮을 것 같으니 이참에 가자는 거지… 주 상단주만 있으면 독주를 마실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말씀은 독한 술이 아니라 진짜 독이 든 술을 말하는 것이겠죠?"
강을동은 주성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허허… 어찌 저리 말이 잘 통하는지…….'
"그렇소, 가고자 하는 곳은 봉황루요."
"에이, 봉황루가 무슨 위험한 곳입니까? 비싸서 엄두를 못 내는 곳이지."
왕천유의 말에 강을동이 피식 웃는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우리는 조사하러 가는 것이니까, 위험할 수도 있지."
"술맛 떨어지게 난데없이 웬 조사 타령입니까?"
"녀석,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봉황루가 수상하더라고, 미인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주성진도 봉황루의 명성은 들어봤다.
북경 이대 기원 중 하나로 고관대작이나 부호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왕천유는 점점 바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미인들이 많다는 게 왜 수상한 겁니까. 아 그전에 가 보신 적이 있는 모양이군요."
"예전에 당연히 가 봤지… 6개월 치 녹봉을 털어서 말이야, 하하. 음, 그건 그렇고 미인이 많은 게 왜 수상한지 정말 모르겠어?"
잠시 생각하다가 왕천유가 입을 열었다.
"혹시 납치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건가요?"
"아니야, 그런 것… 난 봉황루가 요마루의 변신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단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제발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보십시오. 스승님!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은 그만하시고요."
주성진은 요마루가 뭔지 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요마는 들어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