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새로운 정보
주성진의 눈에서 다급함을 읽은 그는 그들을 곧바로 죽이지 않고 살려 둔 것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그들은 모두 광에다 가두었소, 아마 그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며칠 내로 그들을 죽였을지도 모르오."
"왜 살려 준 거지?"
"이혁거라는 자가 재물이 있는 곳을 안다고 했소이다. 수적들이 숨겨 놓은……."
주성진은 이혁거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고 보자.'
한편으로는 왕천유와 그의 수하가 살아 있다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여기에서 뭘 획책하려고 한 거지?"
"크게 두 가지요, 하나는 휘주상단을 망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남궁세가를 쳐서 무너뜨리는 일이오."
"그러니까 휘주성을 흑룡가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말이군, 한데 휘주상단을 망하게 하려는 건 의외인데… 무림과 상계는 불가침 관계가 아닌가?"
임윤발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을 믿으시오? 중원 오 대 상가 중에 무림과 연관이 없는 상가가 있을 것 같소이까?"
중원 오 대 상가는 사천상단, 휘주상단, 대륙상단, 신광상단 그리고 금호상단이었다.
주성진은 임윤발을 형형히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주성진으로서도 완전히 알지 못한 사실이라 좀 더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뭐라, 중원 오 대 상가가 모두 관계가 있다고!'
"근거가 있는 소리인가? 상계와 무림의 상호 불가침은 나라에서 정한 일이거늘……."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분명 연관이 있다고 들었소.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신광상단이 흑룡가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오."
"혹 언제부터 연관이 있는지도 아느냐?"
임윤발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근래, 그러니까 30년 이내라고 들었소이다."
주성진은 그의 말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느꼈다.
왜냐면 전생에서 그의 부친이 휘주 상가의 상단주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외세와의 결탁이나 개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턱을 괬다.
'대륙상단과 금호상단은 누구와 결탁하고 있는 걸까? 이거 반드시 알아봐야겠군, 순순하게 상술로 그들을 눌러 버리려고 했는데 외부와 손을 잡고 있다면 이건 또 다른 문제라고.'
그 순간 임윤발의 말이 이어졌다.
"흑룡가를 절대 만만히 보지 마시오, 그곳엔 엄청난 고수가 있소이다."
"엄청난 고수? 누구?"
"반로환동한 고수외다. 물론 그가 시시콜콜 전면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흑룡가가 위기에 처하면 반드시 나타날 것이오."
주성진은 한 인물을 떠올렸다.
'설마 그는 아니겠지?'
애써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을 지워 버린 주성진은 재차 입을 열었다.
"흑룡가에 금강마문체가 몇이 있나?"
"내가 알기론 다섯이오, 아 하나가 좀 전 주화입마로 죽었으니 넷이겠군."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화입마로 죽었다고?"
"그대는 그대가 죽였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오. 마공의 운용을 잘못해 실수했을 것이오, 평소에 그자는 성질이 급하고 충동적인 기질이 다분했소이다."
주성진은 사실을 말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굳이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지. 이 자가 소문을 퍼트린다면 흑룡가에서 날 크게 주시할 거야, 그러다 혹시 반로환동의 고수가 날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하하, 그러면 내가 운이 좋은 것이로군."
주성진은 거짓으로 그에게 말했다.
"내 생각도 그렇소이다. 그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요, 또 다른 운이 있었으니까, 아! 그렇다고 그대의 무위가 범상치 않다는 건 아니오, 절대 오해하지 마시길!"
"또 다른 운?"
"그건 바로 그대의 내공심법이 열화공이라는 점이오, 만일 열화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마린화에 무사하지 않았을 거니까."
주성진은 그가 착각하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열화공을 익혔다고 하지 뭐, 따지고 보면 저자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어쨌든 내가 내공의 성질을 변형한 건 사실이잖아.'
"마린화는 상당히 성가신 암기인 것 같소만."
"특급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암기요, 다만 마린화 또한 만들기가 까다롭소이다. 그리 흔한 암기는 아니오."
주성진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소이다."
이후 주성진은 그에게 한동안 묻기를 계속했다.
'음,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그러면 왕천유를 구해 볼까. 숨겨진 재물도 알아볼 겸……."
잠시 후 주성진은 광에서 왕천유와 그의 수하 그리고 수적 이혁거를 데리고 나왔다.
왕천유는 자신을 옥죄든 신체 구속이 모두 해소되자 돌연 이혁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새끼, 죽을 줄 알아라."
주성진은 급히 그들 사이를 떼 놓으며 왕천유를 바라보았다.
"쯧쯧, 내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지… 그리고 주변을 좀 바라보시오."
왕천유는 죽은 자들을 바라보며 급히 주성진에게 머리를 숙였다.
"아, 미안하오. 내가 그럴 사람은 아닌데 저놈을 보니 순간적으로 화가 솟구쳐서."
"하하. 농담이었소."
"한데 어떻게 된 것이오?"
주성진은 대략의 상황을 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것이오."
주성진은 이야기를 마치고 겁에 떨고 있는 이혁거를 바라보았다.
그전에 왕천유와 이혁거의 신병에 관해 의논을 마친 후였다.
"살고 싶나?"
"네,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재물이 있는 곳을 말해라, 그러면 살려줄 것이다."
이혁거는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정말 살려 주시는 겁니까?"
"그럼, 평생 옥에 갇히겠지만……."
이혁거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자식! 그래서 불만이라는 거냐? 살려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인데……."
"아. 아닙니다. 재물이 있는 곳을 말하겠습니다. 다만 아주 위험한 곳이라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재물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위험한 곳에 숨겨 놓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 안 그래?"
이혁거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위험한 곳이어야 재물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리는 자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지요."
"노리는 자들이 누구, 누구지?"
"그야 가까이는 내부에 있고 멀리는 다른 수채 놈들이지요."
주성진은 그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
"자, 그럼 위치를 알려 주시지?"
"재물은 바로 독사굴에 있습니다. 참고로 이 섬에는 독사들이 엄청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면 득실득실합니다."
"……."
* ? ? * ? ? *
쾅!
"도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와 그에 항의하는 듯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리자 주성진은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장한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한 장사꾼의 수레를 발로 차서 부서뜨린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왕천유가 주성진의 옷깃을 잡는다.
"주 형! 북경이 코앞이요, 웬만하면 조용히 지나갑시다."
"아니, 저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자는 말이오, 더구나 나와 같은 상인이 핍박을 받고 있는데……."
"그럼 내가 나서겠소. 주 형은 가만히 있으시오."
그 순간 사뭇 위협적인 말투가 들려온다.
"이 새끼.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바가지를 씌워! 이런 음식을 팔면서 동전 두 냥을 내놓으라고?"
그러면서 말하는 자가 자신의 검을 툭툭 치고 있었다.
주성진은 인상을 그렸다.
'음, 무공을 익혔군.'
언뜻 보면 흑도의 인물이 음식을 먹고 음식값 때문에 행패를 부리고 있는 듯했다.
장사꾼은 그들의 살기 띤 음성에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왕천유와 그 일행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힘을 얻은 듯 큰소리로 반박한다.
"맛있게 드셔놓고 이러시면 안 되지요. 게다가 음식값은 지역마다 다릅니다. 여긴 대도 북경 근처라 다른 곳보다 물가가 비싸다고요."
"뭐야? 이자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아예 다 부숴 줄까?"
그 순간, 왕천유가 뒷걸음쳤고 장사꾼의 얼굴은 샛노래졌다.
왕천유의 행동에 실망한 주성진이 성큼 앞으로 나왔다,
'저놈들이 뒷배가 있는 모양이군, 왕천유가 엮이려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래도 좀 보기 안 좋군, 뒷배까지 있는 놈들이 노점상을 핍박하다니, 그깟 동전 두 냥을 가지고 말이야.'
"으음, 다 부수는 것은 두 분의 자유지만, 부순 후에 손해는 배상해야 할 겁니다."
"넌 또 뭐야?"
뒤를 돌아본 두 장한은 가까이 다가온 주성진을 보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의 눈엔 앳된 모습의 주성진이 비친 것이다.
이제 갓 성년이 된 듯한.
"무공을 배운 분들이 선량한 상인에게 이런 행패를 부리면 되겠습니까?"
"하하! 이놈 봐라?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말씀을 안 하시는데 두 분이 누군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두 분이 누구냐가 아니라, 두 분이 지금 벌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한의 두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 순간 왕천유가 급히 전음을 펼친다.
?저것들은 동창의 개들이오. 그러니 웬만하면 물러나시오. 하나 곡해 마시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니까…….
?동창에서 고용한 자들이란 말이오?
?그렇소이다. 장기 계약한 자들이지. 원래는 낭인들인데 동창에서 끌어드린 것이오. 한데 하는 일은 지저분한 일들이 대부분이오.
그 순간 왼쪽 장한이 입을 열었다.
"책임? 감히 그런 누구한테 그런 망발을 지껄이는 거냐?"
"두 분이야말로 참교육을 못 받으신 것 같습니다."
"뭐야? 보자보자 하니까? 죽고 싶냐?
순간 검에 손을 대던 자의 얼굴이 확 변했다.
자신의 허리에 있어야 할 검이 사라진 것이다.
"이걸 찾으십니까?"
그들에게 내미는 주성진의 손에는 어느새 그의 검이 들려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말하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검이 자신의 목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들이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수레를 부순 값과 먹은 음식을 갚겠습니까?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 슬쩍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상황 파악이 된 듯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갚겠소."
그는 급히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더니 동전 10냥을 꺼냈다.
"쯧쯧!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시는군요? 부서진 것만 받는다면 그게 벌이 되겠습니까? 저분이 두 분 때문에 느낀 공포심과 분노에 대해서도 배상을 해야지요."
"그, 그건……."
그는 그럼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져 보려고 했다.
하나, 자신의 돈주머니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주성진의 손에 가 있는 것을 보자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동전 스무 냥을 주겠소."
주성진은 웃으며 돈주머니를 그에게 건넸다.
"배상은 됐고 다음부터 마음을 곧게 쓰시오, 얼른 가시오."
주성진을 힐끔 쳐다본 장한은 동료와 함께 급히 종적을 감추었다.
주성진은 그들이 사라지자 장사꾼을 바라보았다.
"내가 저놈들을 대신해 배상하겠소. 아 참고로 나도 상인이오."
"아니……."
장사꾼이 머뭇거리자 주성진은 은자 한 냥을 그에게 쥐어주었다.
"점쟁이가 그러는데 좋은 일을 해야 장사가 잘된다고 했소이다.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받으시오."
"그래도 이건 좀 많은 것 같은데."
"괜찮소이다, 얼른 받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