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북경으로 가는 길 (3)
주성진은 곧장 강을 헤엄쳐 갔다.
그렇게 안개가 짙은 곳에 들어가자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뭐야. 섬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여기가 수적들의 본거지 인가?'
주성진은 수채가 안개에 둘러싸인 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대단하군. 이런 곳에 수채가 있을 줄이야.'
다시금 생각하니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틈이 없다고.'
잠시 후 주성진은 조심스럽게 뭍으로 올라왔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룻배가 저기에 있었군. 그러고 보니 여기가 포구인 것 같은데…….'
주성진이 보기에 제법 큰 배도 접안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한데 이상한 건 너무 조용하다는 거였다.
'이상하군… 수적 놈들이 하늘로 솟았나, 아니면 땅으로 꺼졌나.'
주성진은 순간 이마를 쳤다.
'그래. 대다수가 질을 나간 게로군. 포구에 나룻배 몇 척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니.'
주성진은 그렇게 단정하고 섬의 중앙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다지 큰 섬은 아니라서 그런지 얼마 가지 않아 가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끊겼던 수적들의 흔적을 재차 발견할 수 있었다.?
'저 건물로 이어졌어.'
주성진은 주변 가옥과 달리 건물 모양이 특이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은 단층이지만 규모가 상당히 컸다.
'음, 저 양식은 신강에서나 볼 수 있는 건데. 사막 근처의 집들이 대개 저러했다고.'
주성진은 왜 저런 건물이 여기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곧바로 생각을 지웠다.
왕천유의 일행들을 구출하는 게 급선무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건물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휙휙!
주성진은 자신의 은신술이 탄로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길 은신술을 제대로 익혔어야 했는데.'
아쉬움에 언제까지 멍하니 가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섬뜩한 소리에 빠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날카로운 뭔가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땅바닥에 박힌 걸 보니, 불꽃 모양을 한 암기였다.
주성진은 생각했다.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데.'
주성진은 암기를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 마린화!'
마린화는 고대 마교의 암기였다.
한데 그런 암기가 버젓이 중원에 나타났다?
이는 쉽게 볼 성질이 아니었다,
주성진은 그 와중에 쏟아지는 암기 세례를 계속 피하고 있었다.
그 순간 거대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주성진은 기운의 위치를 노려보았다,
알 수 없는 불쾌감과 스산함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주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도 피하는군. 다람쥐 새끼처럼……."
음성이 음산하고 스산했다.?
주성진은 주눅 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미지의 적에게 입을 벌렸다.
"나에 대한 환영식치고는 좀 치졸한 것 같은데, 안 그런가?"
"환영식이 아니고 장례식이겠지, 흐흐."
"글쎄 누구의 장례식이 될까?"
주성진은 지지 않고 응수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성진은 걱정했다.
'생각보다 일이 꼬일 것 같은데…….'
오늘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자 주성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음 마기군.'
처음부터 다짜고짜 마기를 발산한다는 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문제였다.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겠지. 느껴지는 대로라면 내기를 갈무리할 수준은 이미 넘어섰어, 그런데도 굳이 기파를 있는 대로 개방하는 건 자신 있다는 소리고, 날 죽이는 데 있어서…….'
수적 중에 마기를 쓰는 자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닥칠 여파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상대는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점점 그의 윤곽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용모가 특이했다.
사내는 상체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위로 검은색의 문신이 가득했다.
키는 주성진 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코는 우뚝하고 머리 색깔이 붉은빛이 감돌았다.
'서역의 피가 흐르는 자로구나.'
그 순간 누군가 집안에서 소리쳤다.
"염화경, 빨리 처리해!"
주성진은 상대의 이름이 염화경임을 알았다.
그가 뒤로 휙 고개를 돌리더니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내 일에 상관하지 마라."
"노닥거릴 거면 우리에게 맡겨라!"
"이 새끼 자꾸 나불대면 저놈보다 널 먼저 죽여 버리겠다."
주성진은 자신을 죽은 목숨으로 취급하는 자들을 보며 가만 있을 수 없다.
"잘들 노는군. 내가 그리 만만한 줄 아느냐?"
주성진은 검집을 토닥거리며 염화경을 바라보았다.
"이봐 네놈들의 정체가 뭐지. 수적인가. 아님 마졸?"
염화경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가뜩이나 동료의 말에 발끈한 상태였는데 가소롭게 생각한 주성진이 자신의 말을 되받아치고 있었다.
"저승으로 보내 주마."
"미리 말해. 정정당당히 붙을 건지, 아닌지……."
주성진은 일부로 그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수적으로 많은 그들이 암기를 퍼부으며 떼로 공격하면 주성진으로서도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이 자식! 날 뭐로 보고! 그런 일은 없다."
"알았어, 그전에 나도 해 줄 말이 있군. 진짜 저승길을 가는 게 누구인지를."
"네 이놈!"
화가 난 염화경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고 다시 나타났을 때는 거대한 도를 들고 주성진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주성진은 차분히 검을 뻗었다.
깡!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다.
염화경은 미간을 찌푸렸고 주성진은 그를 보며 히죽 웃었다.
"가소롭군.
덩칫값이니 좀 하지……."
"뭐야? 이 새끼가!"
"그깟 실력으로 웃기시네……."
주성진은 그와 부딪친 순간의 상대를 파악했다.
내심 상대가 뿜어내는 마기가 본인에게 부담스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나의 공력이 높아서 그런 것일 거야. 그렇다면 꺼릴게 더욱 없지.'
주성진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전신으로 엄청난 기파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쏴아악!
주성진에게 터져 나온 기파는 상대의 거친 마기를 단숨에 밀어내며 집안에 은신해 있는 마교도들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염화경은 너무나 놀라 몸서리쳤다.
그뿐 아니라 은신한 자들의 잿빛 눈동자도 모진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마교의 전통은 뭐니 뭐니 해도 강자 존이었다.
무림 역시 강자 존이라 하지만 마교의 전통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들로서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위압이었다.
기파만으로 엄청난 압박을 준 인물을 그들은 경험하지 못했다.
염화경은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당신은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나는 나지……."
그 순간 그의 눈에 경악이 어린다.
"어!"
주성진의 검 끝에서 파란빛의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반장 길이의 형태로 뭉쳤다, 한데 그 형태가 영락없는 검의 모습이다.
염화경은 비틀거리며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자신도 마음만 먹는다면 도기 정도는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엄연히 도강은 다르다.
간신히 상대와 격돌할 순간 잠깐 펼쳐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전 공력을 쥐어짜도 그 정도인데 주성진는 당연한 듯 가볍게 검강을 뽑아냈다?
사실 주성진은 그를 주눅 들게 할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확실히 그를 제압하기 위해 검강을 펼쳐 든 거였다.
상대의 몸이 강철처럼 단단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무래도 저자의 문신이 수상해. 그냥 단순한 문신 같지 않단 말이야. 꼭 부적의 글씨 같단 말이지. 혹 주술이 가미된 건 아닐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또다시 다급히 소리친다.
"뭐해. 그거 펼쳐야지."
"이씨……."
염화경은 으르렁거렸으나 아까처럼 동료를 윽박지르지는 못했다.
'제길. 그걸 쓸 수밖에 없군… 매번 펼칠 때마다 수명이 단축되는데 말이야.'
그는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전신을 도배한 문신이 뱀 때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검은색 문신이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진홍빛을 띠기 시작했다.
주성진은 그 모습에 잠시 입을 벌렸다.
'저건 뭐지. 혹 전설의 금강마문체인가?'
마교의 금강마문체는 흔히들 금강불괴를 일컫는 말이었다,
주성진은 알 수 없는 문신의 작용으로 그가 그 어떤 병기로도 상처 낼 수 없는 마문체가 된 것으로 생각했다.
'뭐 고민할 것 있나. 부딪쳐 보면 알겠지.'
주성진은 곧장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한데 상대가 갑자기 지내고 있던 도를 땅에 떨구더니 육탄으로 달려든다.
누가 보면 어이가 없는 광경이지만 주성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저놈 수비를 도외시하는구나, 그만큼 몸뚱어리에 자신 있다는 소리겠지.'
상대는 주성진에게 일 검을 허용하는 일이 있더라고 주성진을 붙잡아 죽일 생각이었다.
주성진의 검이 횡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가 앞으로 내뻗은 팔뚝이 깊숙이 갈라졌다.
"어!"
"이건 피!"
염화경은 경악했다.
자신의 금강마문체에 생채기가 난 것이었다.
한편 주성진도 놀라고 있었다.
부딪친 충격에 팔목이 찌르르 한 것이었다.
'저놈. 진짜구나.'
실체를 알게 된 주성진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렇단 말이지. 하나 나는 보검을 가지고 있지.'
한편 염화경은 급격히 자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애초 자신의 동료를 제치고 괜히 나섰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하나 지금은 발등의 떨어진 불이었다.
어떡하든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했다.
'아아, 내 도!'
도를 땅에 버린 게 천추의 한이었다.
그렇다고 좀 전처럼 육탄으로 돌격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주성진은 엉거주춤한 염화경을 보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저자를 빨리 처리하자. 혹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르니 그전에.'
아니나 다를까 염화경은 자존심을 굽히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의 눈에 파란 빛이 너무나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아, 너무 빨라!'
스걱!
"크아악!"
비명과 동시에 염화경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주성진은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금강마문체가 얼마나 대단한 무공인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공력의 8할이 투입되었어. 거기에다 보검까지 가세했다고!'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금강마문체가 저자 한 명이 아니라 많이 존재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주성진은 자랑은 아니지만, 자신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겨우 죽일 수 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거였다.
죽은 자를 생각하니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도대체 여기 수채에 마교도들이 왜 있는 거야? 날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한 걸 보면 분명 총무련 소속의 마교도들은 아닐 테고… 반역의 무리들인가?'
주성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적들이 숨어 있는 가옥을 바라보았다.
한데 너무 조용했다.
'저놈들이 동료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군.'
주성진은 전의를 다졌다.
'할 수 없지. 좀 위험해도 밀고 들어가자. 저들이 유리한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하러 나올 것 같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