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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49화 (149/250)

149화 북경으로 가는 길 (2)

마치 이런 상황이 올 줄을 알았던 것처럼 널빤지와 버팀목을 준비해 두었다는 말에 주성진은 어리둥절했다.

"저,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배가 위험에 빠질 줄 알았다는 것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충분히 저희가 대처할 수 있습니다."

주성진은 굳은 얼굴로 선장을 바라보았다.

내심 잔뜩 화가 났다.

'뻔뻔하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습니까?"

주성진의 말에 여기저기 동조의 목소리가 들린다.

"옳소, 옳소……."

선장을 빠르게 입을 놀렸다.

"실은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수적들이 공격할 거리고요. 해서 저희는 배를 급히 교체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이 배가 수적들을 따돌릴 만큼 배의 속도가 빠르긴 한데, 오늘과 같이 급격히 방향을 틀려고 하면 배에 무리가 가는 약점이 있지요."

"수적이 공격한다는 첩보가 있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주성진은 순간 까무잡잡한 중년인의 말이 떠올랐다.

"혹 이 배는 미곡을 싣지 않았습니까?"

"미곡을 싣는 배가 별도로 있습니다. 저희는 그 대신 다른 화물을 싣지요, 물론 이 배는 아니고 바닥이 평평한 배지만요."

주성진은 순간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런 그런 걸 까먹고 있었다니, 가만 잘난 척하던 그자는 어디 갔지?'

주성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살고 싶으면 동작 그만, 하하."

귀에 익은 목소리다.

주성진은 지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바로 그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까무잡잡한 중년인이었다.

그는 조금 전 선원들이 배를 수리하고 나온 통로에 서 있었다.

통로는 선실 아래, 그러니까 배의 아랫부분과 연결된 곳이었다.

"선장, 배와 선객들을 구하고 싶지?"

선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의 책무가 무사 항행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불길함이 느껴진다.

"당연한 것 아니요? 한데 그걸 왜 묻소?"

"그럼, 말을 바꾸어서 다시 말하지, 소수를 희생해서 다수를 살리고 싶냐? 아니면 소수 때문에 모두 뒤지고 싶냐?"

"그런 말이 어디 있소? 모두 살려야지……."

"하하하!"

까무잡잡한 중년인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선장! 내 부하들이 너희들이 수리한 구역을 장악하고 있다. 여차하면 너희들이 수리한 곳을 구멍 내려고 말이야."

선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 그곳을 장악하고 있다고. 그럼 그곳에 있던 영덕이는? 혹 붙잡혔나?'

영덕이는 선장의 부하였다.

초임자가 일을 못 해, 좀 더 경험 있는 자를 보낸 것이었다.

"요구 조건이 무엇이오?"

"바라는 건, 세 명을 넘겨 달라는 거지, 그러면 배와 나머지 선객들은 무사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고개를 돌려 왕천유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왕천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저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

"왕천유! 날 알아보겠느냐? 내가 날 감옥에 처넣었잖아!"

그제야 왕천유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 그때 밀염꾼, 바로 그놈이군, 이미 종결된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던 거였어.'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한데 네놈이 여기에 왜?"

"흐흐, 나! 이혁거가 감옥에서 썩을 인물이더냐? 당연히 감옥을 탈출해서 황하방으로 돌아갔지… 하하."

황하방은 황하 수채 중 한 곳이다.

"뭐라, 수적이 되었다고?"

"후후, 네놈이 잘 모르는가 본데, 원래 난 황하방 출신이었다. 밀염은 황화방의 주 수입원의 하나이고. 네놈이 그걸 몰랐던 것이지."

왕천유는 옆의 부하에게 눈을 돌렸다.

자신이 직접 심문한 것이 아니라 부대장이 이혁거를 조사한 거였다.

부대장은 겸연쩍은 얼굴로 왕천유를 바라보았다.

밀염꾼은 죄의 경중에 따라 죽음을 면할 수는 있었으나 수적은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대부분 효수형에 처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래, 요구 조건이 뭐냐?"

"너와 네놈의 부하 둘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것!"

원래 왕천유와 같이 배를 탄 사람은 다섯이었다.

주성진과 역산도 그리고 왕천유와 바로 그의 직속 부하들이었다.

왕천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놈이 당시 작전에 참전한 우리 셋에게 복수하려는구나.'

항복한다는 건 거의 목숨을 내놓는 거나 진배없었다.

조금 전 그가 선장에게 수작을 건 게 일목요연하게 이해가 되었다.

"언제 날 알아보았지?"

"후후, 포구에서 널 알아보고 부하들과 뒤따라 왔지, 당시 우린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네놈들을 본 거야……."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말이구나."

이혁거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선장에게 돌렸다.

"선장, 선장이 저 셋을 포박하시오, 그런 다음 배를 강변에 붙이시오."

선장은 그의 일방적인 요구에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아아, 어찌한단 말인가! 배와 선객들을 살리려면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데.'

배에는 대략 이백여 명의 인원이 타고 있는 상태였다.

한편 주성진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나와 저 수적 놈과의 거리는 대략 5장, 하나 그사이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배가 침몰한다는 소식에 선실 여기저기에 쉬고 있던 선객들이 한꺼번에 갑판 출입구 쪽으로 몰려와 있었던 거였다.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제길, 방법이 없군, 이거 보기 좋게 인질극에 당한 셈이네.'

주성진의 말처럼, 배의 선객들이 모두 인질인 셈이었다.

주성진은 쓴웃음을 지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괴로운 표정의 선장이 눈에 들어오고 연이어 선객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눈엔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휴, 이게 세상 인심이지. 저들은 차마 말을 못 하지만 세 사람이 포박당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 거라고.'

왕천유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겁에 질린 선객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을 윽박지르는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에게 더욱 환멸을 느낄 것 같았다.

'주성진과 역산도를 믿자, 그들이라면 우리를 구해줄 수 있을 것이야.'

왕천유는 자신의 부하에 눈짓을 보내고는 고개를 돌려 이혁거를 바라보았다.

"네놈의 요구를 들어주겠다."

"하하. 자진해서 붙잡히겠다고? 언제 목이 뎅강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이혁거는 왕천유의 약을 바짝 올린다.

"네놈 마음대로 해라, 단 우리가 죽는다면 육선문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육선문은 지옥 끝까지 너를 추적할 테니까."

왕천유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 육선문의 보복은 세상에 정평이 나 있었다.

"웃기고 있네, 이봐! 난 그딴 것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원이 얼마나 넓은데 숨을 곳이 없으려고, 아! 그렇지 바다 건너 왜도 있구나, 하하."

"그래 평생 숨어서 두더지처럼 살아라."

"난 네놈을 정말 그러고 싶은데, 내 권한 밖이라 그게 문제군, 윗선에서 너 같은 놈을 필요로 하거든."

왕천유는 그의 말을 듣고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날 필요로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몰라, 새끼야,"

이혁거는 선장에게 눈을 돌렸다.

"선장, 아까 내 말! 잊지 않았겠지? 강변에 우리를 내려다 두고 곧바로 떠나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내가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세 놈을 모두 죽여 버릴 테니까. 알겠나!"

그의 말투가 아까와 달라졌으나 선장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떡일 뿐이다.

그의 머릿속은 착잡하고 복잡했다.

잠시 후 결국 사지가 결박되고 점혈까지 당한 상태에서 왕천유와 그의 직속 부하들이 그들에게 넘어갔다.

주성진이 놀란 건 수적 패거리 중에 무공을 제대로 익힌 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손쉽게 점혈을 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배는 강변에 닿았고 수적들은 왕천유와 그의 부하들을 데리고 유유히 떠나갔다.

지켜보던 역산도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주 상단주, 도저히 나로서는 거리가 멀어서……."

"내가 표식을 남길 테니 천천히 나를 따라오시오."

"그럼, 잘 부탁하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곧장 강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친다.

"저 사람! 미쳤어……."

"아아, 어떡해……."

그들이 보기엔 그럴만했다.

물살도 세고 배는 이미 강변을 멀찍이 벗어나 강의 한가운데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곧이어 사람들은 너무 놀라 눈을 까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주성진이 유유히 강을 건너간 것이다.

마치 육지를 걷는 것처럼…….

"까아악, 저건 사람이 아니야!"

"무식하긴, 저건 등평도수라고 하는 거야……."

"아니야, 귀신이 틀림없어……."

강변에 닿은 주성진은 육감을 모두 동원했다.

'음, 놈들이 저쪽으로 향했군.'

곧바로 주성진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놈들이 보인다면 거리는 금방 좁혀질 것이다.

하지만 일일이 수적들의 흔적을 쫓아가야 했기에 그만큼 행보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범인들에 비해선 굉장한 빠른 속도이었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앞서간 자와 추적자가 세배 정도는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어느새, 산봉우리를 두 개나 타 넘은 주성진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음, 도대체 왜 산을 넘는 것이지? 수적들이 아니라 산적들인가?"

주성진은 초조해졌다.

한 시진만 지나면 날이 어두워질 것이고 그리고 그러면 추적은 더욱 힘들어질 게 자명했다.

열심히 추적에만 몰두하다 보니 주성진은 주변 경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물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뭐야. 이건 단순히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아닌데. 황하의 지류인가…….'

흔적은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이어졌다.

흔적을 따라간 주성진은 숲을 벗어나 강의 모래톱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역시 예상대로 황하의 지류였다.

그렇지만 말이 지류이지, 거대한 강이나 다름없었다.

"어, 어디로 간 거지……."

주성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했다.

'침착하자, 서두르지 말고…….'

초조한 마음을 달랜 주성진이 모래톱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곳곳에 발견되었다.

발자국은 특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고 그제야 주성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 거였어.'

모래톱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아닌 굵은 자국이 일자로 길게 강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것도 여러 개가……."

'나룻배가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강을 건너갔다는 것인데……."

주성진은 안개가 자욱이 퍼져 있는 강 중심 쪽을 바라보았다.

'음, 강에 안개라, 혹 저 안개 속에 뭔가 있지 않을까?'

막연한 추측을 해 본 주성진은 강을 어떻게 건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물 위를 건너는 건 공력 소모가 극심한데. 그렇다고 자맥질을 하자니, 온몸이 젖을 것이고…….'

주성진은 후자를 선택했다.

'이제부터라도 공력을 아껴야겠어, 수적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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