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148화 (148/250)

148화 북경으로 가는 길 (1)

곽천일과 이야기를 마무리한 주성진은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따로 네 사람을 불러 모았다.

네 사람은 양일동과 염옥매 그리고 강국영과 양은지였다.

"난 곧 북경을 가야 하니까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강국영이 대표로 나섰다.

"하하. 강 단주님 덕분에 은자 9천 냥이라는 거금을 손에 넣었는데 천길 낭떠러지면 어떻고, 뜨거운 불속이면 어떻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지시하십시오.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전에 대략 이야기를 했지만, 다시 한번 계획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기로 하지요. 의견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염옥매가 손을 번쩍 들었다.

"회의에 앞서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해 줄 수 있는지요?"

"몇 가지씩이나 궁금하게 있나요? 뭐, 일단 이야기해 보시죠."

주성진은 엉뚱한 염옥매가 뭘 물어볼지 슬그머니 긴장되었다.

'제삼자가 본다면 나의 행보에 많은 의문이 있을 거야. 묻고 싶은 게 많을 거라는 이야기지. 보통은 내가 눈치 보여서 직접 물어보지 못하지만, 염옥매는 다르지…….'

"이번 휘주상단의 일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인지? 아니면 시류에 맞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 생각엔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주성진은 담담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속마음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적당히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전생의 이야기만 빼고. 뭐 전생의 일은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해도 제대로 믿을 사람이 없을 테지만.'

"하하.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느닷없이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그전에 여러분을 만난 것도 하늘이 절 도운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위기도 있었지만……."

"아하.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거군요. 하긴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더라고요. 거대한 휘주상단을 손에 넣기 일보 직전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주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기분은 좋지요. 하지만 조심스럽습니다. 언제 돌발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렇군요. 두 번째 궁금증은 제 느낌에 주 상단주님이 모용세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한데 저는 그들과 어떻게 악연으로 엮인 것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딱히 마주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

"주지하다시피 모용세가는 본거지가 멀리 요동에 있잖아요. 주 상단주님은 주로 남쪽에서 활동하셨고요."

"굳이 인연을 말한다면 사천에서 그들과 마주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니고, 전 원래부터 모용세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휘주상단을 암중 지배하고 있는 것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여인의 집안과 원수지간인 것도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주성진의 입에서 애인 이야기가 나오자 염옥매의 눈이 반짝거린다.

"호호. 주 상단주님도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군요. 뭐,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저만하더라도 어디에 꿀린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별로 놀라지 않더라고요. 또한, 이번에 붙잡은 여인도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미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더라고요. 빈말이더라도 한 번쯤은 이야기할 텐데 말이죠."

주성진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라고 미인을 보면 동요하지 않겠어. 조물주가 그리 만든 것인데…….'

"뭐, 그 이야긴 차차 말하기로 하고 오늘은 넘어가죠, 또 궁금한 건?"

"아뇨, 더는 궁금한 게 없습니다. 저는 주 상단님이 휘주 상단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아마 선대의 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군, 전생에서 내가 아버님의 뒤를 이어 휘주상단의 상단주가 될 뻔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두죠, 자 그럼 본격적으로 회의에 들어가시죠. 여러분이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접객당주와 유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에요,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강국영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 점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외부에 있다 보니, 휘주상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즉각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점이 몹시 신경 쓰이는 부분이지요."

"저는 접객당주 그분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러니 그 부분까지는 여러분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접객당주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가서 도움을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한동안 회의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회의 막바지에 회의 주제와 관계없이 가잘 골치 아픈 문제가 남았는데 이 부분은 염옥매가 당분간 자신이 돌보겠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었다.

말이 돌보는 것이지 감시하는 거나 다름없지만.

주성진은 그녀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냥 물어보기 뭐해서 전음으로 물었다.

?붙잡은 여자 살수를 데리고 다니면 귀찮을 텐데요.

?제 남자 친구에게 앙갚음 하는 거예요, 아마 미칠 것이에요.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려면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번 일로 남자 친구가 다시는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리지 않겠다고 맹세했거든요. 말도 안 되는 맹세라 오히려 제가 놀랐지만요.

?하하, 그럼 확인 차? 참 짓궂네요, 하하.

?호호, 한동안 괴롭힘을 주는 거죠, 저번에 저에게 장난쳤으니까, 이번엔 거꾸로 당해 봐라, 뭐 그런 것이죠. 물론 저도 알아요. 예쁜 여자에게 눈 돌아가는 가는 게 남자들의 천성이란 걸… 해서 다 이해합니다. 주 상단주님! 저, 그리 속 좁은 여인이 아니라고요.

?하하. 그런가요, 개인적으로 저도 걱정이 많습니다만.

?호호, 앞으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겠는데요. 하루속히 주 상단주님의 애인을 보고 싶어요.

* ? ? * ? ? *

주성진은 배의 난관을 꽉 붙잡고 황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얼굴은 잔뜩 찌푸린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배가 많이 흔들려서 배 멀미가 나려고 했다.

'제길, 육로로 가자고 했는데, 쪽수에 밀려서…….'

주성진은 북경으로 가면서 세상 곳곳을 살피려 했다.

그 지역 특산물은 물론이고 상권의 현황 그리고 세상의 인심까지 널리 알아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물길을 선호하는 육선문도 들의 주장을 꺾을 수 없어 돛단배를 타고 말았다.

운하를 항해할 때는 물결이 잔잔했고 날씨도 쾌청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데 운하가 황하와 연결된 곳으로 향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상류에 비가 퍼부은 관계로 물이 불어났고 물살도 엄청 빨랐다.

순간, 돛단배가 기우뚱거렸다.

끼기잉!

배가 황하의 물길에 따라 급격히 방향을 꺾은 것이었다.

그 순간.

뚜두퉁!

"엇, 뭐야!"

주성진은 느낌이 안 좋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데 자신처럼 배의 갑판에 나온 사람들은 으레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었다.

하나 주성진은 '뚜두퉁'하는 소리에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거, 배가 어찌 된 것 아냐……?'

이번에 주성진은 배의 갑판에 나와 있는 선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오랜 경험을 가지 선원들의 눈엔 살짝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탕!

갑판 아래의 선실로 향하는 문이 벌컥 열리더니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선원 하나가 헐레벌떡 갑판 밖으로 나왔다.

이어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외친다.

"큰일 났습니다. 배 밑창에 구멍이 났습니다!"

"정말이냐?"

선장실에 있던 배의 선장이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배가 방향을 바꿀 때 갑자기 용골과 연결된 널빤지가 '텅!' 하고 떨어져 나가더니 그곳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일단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눌러서 막아 보려고 했는데 다른 쪽의 널빤지가 계속해서 터지는 바람에 급히 올라왔습니다."

선장은 보고한 선원에게 꿀밤을 먹였다.

"이 녀석아! 그렇다고 자리를 벗어나면 어떡해! 너는 어떡하든 그 자리에서 수습하고 있어야지……."

"죄송합니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비상종을 울리는 걸 까먹었습니다. 다만 구멍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주성진은 당황하는 자가 풋내기인 것 같았다.

"자, 가지고!"

선장이 움직이기도 전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곱 명의 선원들이 총총히 선실로 내려갔다.

주성진도 신속히 선장 뒤를 따라 선실로 내려갔다.

왜냐면 강변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자칫 침몰하면 큰 인명피해가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주성진은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살짝 들기는 했다.

애초에 부하가 배에 구멍이 났다고 하는데도 선장의 얼굴에서 다급한 빛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세는 잘 모르겠지만 물이 들어찬다고 해도 배가 갑자기 가라앉지는 않을 거야.'

한편, 그 상황에서 갑자기 배에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말에 선객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갑판 위에 있던 선객들은 물론이고 선실에 남아 있는 선객들까지 가세해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보시오. 뭐가 어떻게 돼 가는 것이오?"

"흑흑, 정말로 배가 침몰하는 것입니까?"

"뭐라고 말을 좀 해 주세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댔다.

주성진은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안심하세요. 선원들이 달려갔으니 배가 침몰할 일은 없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 만일 일이 잘못되더라도 탈출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선객 중 누군가가 소리친다.

"정말인가요?"

"그럼요,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세요."

그 순간 얼굴이 가무잡잡한 중년인이 주성진을 바라본다.

입가에 미세하게 번지는 조소를 주성진은 놓치지 않았다.

'뭐야, 저 사람…….'

"그대는 아직 어려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배는 본시 수천 개의 목재를 짜 맞춘 것으로 떠다니는 건축물과도 같소."

"그래서요?"

"지금처럼 돛을 모두 올린 상태에서 역류를 거슬러 오르며 급하게 방향까지 꺾을 때는 선체에 가해지는 힘이 상상을 초월하오. 특히 속도를 내기 위해 선폭을 좁히고 용골을 날카롭게 세운 배들은 바닥이 평평한 배에 비해 구조적으로 훨씬 더 취약하오."

"……."

"아마도 배에 미곡을 잔뜩 싫었다면 이 몹쓸 배는 침몰했을 것이오, 다행히 이 배는 미곡이 실려 있지 않아서 물이 좀 들어와도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오. 선원들이 고칠 시간을 준 셈이지."

주성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어쩌고저쩌고 해도 결국은 배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거잖아, 그럼 내 말과 다른 게 뭐야, 이상한 놈이네…….'

얼마 후 선장이 돌아와 큰 소리로 보고했다.

"여러분! 불편함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준비해둔 널빤지들로 충분히 보강하고 버팀목을 받쳤습니다. 물이 들이치는 곳들은 전부 잡았고, 새로 문제가 생긴다 해도 충분히 대응 가능한 상황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