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휘주상단 (2)
때마침 전음을 끝내자마자 접객 당주가 시비들을 대동하고 접객실에 나타났다.
"하하, 정성 들여 달인 차입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용정차는 많이 있으니까."
"귀한 용정차를 대접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래 요즘 상단 사정은 어떻습니까?"
왕천유의 물음에 접객 당주가 좌중을 돌아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주성진은 속에서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
'뭐야, 저자! 무공을 익혔잖아.'
딴에는 완벽히 기세를 감춘다고 했지만, 주성진은 보통고수가 아니었다.
'음, 그냥 척 보기에는 영락없이 닳고 닳은 상인으로 보이는데, 상당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
주성진은 접객당주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간 사이 급히 왕천유에게 전음을 펼쳤다.
?주의하시오, 저자는 무공을 익혔소이다.
?정말이오?
?그렇소, 내가 보기에 그의 무공 수준이 상당하오, 아마도 최소 절정급…….
?아니, 뭐요. 초일류도 아니고 절정이란 말이오?
?그것도 낮추어서 잡은 것이오, 그 이상일 수도 있소이다.
?확인해 보겠소이다. 순순히 시인하는지 아니면 잡아떼는지…….
그들은 더는 전음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왕천유를 향했기 때문이었다.
"차 맛이 어떠합니까?"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상단에는 무공을 익히 상인이 더러 있겠지요?"
접객 당주는 내심 움찔했다.
'무공을 익힌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뭐, 그야 익히면 좋겠지만 다들 바빠서……."
"바빠서 익힐 틈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하긴 무공은 어릴 적부터 익혀야 하는 거니까."
접객 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왕 대장님은 몇 살 때부터 무공을 익혔습니까?"
"다섯 살부터죠, 하면 당주님은요?"
"네……?"
접객 당주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왕천유는 빙그레 웃었다.
"아이 참, 제 주변에 무인들만 득실대다 보니 착각했습니다. 헤헤."
"아, 난 또… 깜짝 놀랐습니다."
"왜, 무공을 익히면 안 되는 겁니까? 깜짝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수세에 몰린 접객 당주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이코, 그런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 순간 주성진의 어의전성이 왕천유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나요, 불문의 헤광심어같은 것이오. 다름이 아니고 그에게 무림세가와 가까이하지 말라고 말해 주시오. 이유는 황실에서 무림세가와 결탁한 상단을 싫어하고 그래서 조사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말미에 아직은 소문 수준이라도 덧붙이면 좋겠소이다.
왕천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주성진의 느닷없는 어의전성에 심장이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하하, 그렇군요. 제가 당주님을 놀라게 한 죄로 중요한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소문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조사를 벌일지 모릅니다.
당주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중요한 정보라는 게 무엇인가요? 그리고 조사라는 게……?"
"아직은 미정이지만 조만간 저희에게 명이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특정 상단이 무림세력과 결탁했는지를 조사하라고 말이죠. 아시다시피 가뜩이나 나라에서는 무림세력을 경원시하는데 상단들이 그들과 손을 잡고 있으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
"생각해 보십시오. 특정 상단들이 무림세력을 등에 업고 폭력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상행위를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힘없는 상단들은 망할 것이고 백성들의 삶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물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말이에요."
당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아, 그렇군요. 한데 조사는 확실히 할 것 같은가요?"
"뭐, 소문이 돈다는 건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겠죠. 아무튼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휘주상단도 조심하라는 겁니다. 괜히 거대 무림세력과 결탁해서 입방아에 오르지 말고요."
"아, 네……."
그 순간 주성진의 어의전성이 이어졌다.
?왕 대장! 언변이 탁월하외다. 이참에 직업을 바꿔도 될 것 같소이다. 하하. 저기 미안하지만, 추가로 사천상단의 이야기를 저자에게 해 주시오. 사천상단이 사도련의 잔당들과 결탁해서 큰 문제가 되었다고 말이오.
"음, 최근에 사천상단의 상단주가 바뀐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만……."
"그게 바로 무림세력과 결탁해서 그렇게 된 것이랍니다. 정확히는 사도련의 잔당들이지만……."
접객 당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도련의 잔당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나라에서 볼 때는 사도련의 잔당이든 정파 세력이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상단이 무림세력과 결탁한 게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 아마도 사천상단의 일이 기회가 되어 나라에서 여타 상단을 조사하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대답과 달리 그의 속마음은 어떤 기대에 부풀었다.
"형님을 만나야겠다. 잘하면 모용세가를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상단주 패거리 도같이…….'
주성진은 휘주상단을 혼란에 빠트릴 의도였지만 내부에 깊은 알력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지만.
* ? ? * ? ? *
주성진과 일행들의 접객을 마친 접객 당주는 창고 책임자에게 업무를 양도하고, 자신의 급한 용무를 처리한 후에 바삐 어디론 가로 향했다.
때마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주성진이 접객 당주를 보자 호기심이 생겼다.
'제발 이쪽으로 와라. 일각 정도는 시간이 있으니까.'
주성진은 상인 숙소에서 나와 들키지 않으려고 건물 지붕과 지붕을 건너뛰어 일행들에게 돌아가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자신이 잠시 머문 건물 쪽으로 접객 당주가 걸어온 것이었다.
'어, 정말 이쪽으로 들어오는군, 그렇다면 잠시 대화를 엿들어 볼까, 보아 하니 누군가를 만나려는 모양이니.'
똑똑!
"부 상단주님, 악일군입니다."
"악 당주가 이 시간에 웬일이요? 무슨 일이 있소이까?"
"자세한 건 들어가서 말씀드리지요. 긴한 일로 상의 드리려 합니다."
악일군은 부 상단주의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푹신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상당히 버릇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 상단주는 개의치 않는다.
"이봐 동생, 무슨 일이야? 육선문 아이들은 어쩌고 여기에 온 거야."
"당연히 제가 잘 접객을 했지요, 이따가 그들을 위한 연회만 마무리 지으면 됩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표정이 들떠 보이는데,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나 금상일의 눈을 절대 속일 수 없지……."
악일군은 엄지를 들어 보였다.
"역시, 형님은 눈치 하나는 대단하십니다. 제가 무공을 익혀 평범한 사람과는 좀 다른데도 잘도 알아내시는군요."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게 필요하지… 그게 이 자리까지 올라간 비결이고."
"실은 오늘 육선문의 책임자에게 긴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잘하면 저희에게 큰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일군은 자초지종을 금상일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상입니다."
묵묵히 들은 금상일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음, 어딘가 좀 이상하군,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잘 들었어, 어찌 보면 우리에겐 둘도 없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구먼, 그런데 말이야 왕천유라는 자의 말한 의도가 좀 걸리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포쾌라고, 그런 자가 생면부지인 동생에게 순순히 이야기를 흘렸을 것 같진 않아."
악일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금상일의 이야기를 들으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음, 형님의 말을 들으니 좀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아직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감이 잡히진 않습니다."
"그러면 말이야, 그들을 처음 대면한 순간부터 내게 이야기를 해 보게. 혹시 아나? 단서가 잡힐지……."
악일군은 금상일에게 곧장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야기를 듣는 금상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됐어, 감이 잡혔어."
"뭐가요? 형님?"
"내 생각에 동생의 무공이 익힌 게 탄로 난 것 같아. 아마 그는 동생을 모용세가에서 보낸 인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
악일군의 입술이 앞으로 삐쭉 나왔다.
"형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젊은 친구보다 무공이 높은데……."
"그건 모르지, 나이가 어리다고 무공을 낮추어 보는 건 동생의 고정관념일지 몰라, 그리고 그 자리에 왕천유라는 자만 있었던 건 아니지 않은가, 그와 배석한 자 중에 무공고수가 있을지 누가 알겠어."
"음,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면 그들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금상일이 식은 차를 한 잔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그야, 모용세가가 휘주상단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한 거지, 알아서 물러나라고 암시를 준 거야. 비록 육선문의 문도들이 나라의 녹을 먹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무림에 한쪽 발을 담근 자들 아닌가, 그러니 팔을 안으로 굽는다고 모용세가를 봐준 거라 이 말씀이야……."
주성진과 왕천유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금상일을 그렇게 믿었다.
"이거 형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군요, 여하튼 우리는 이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야겠습니다."
"그렇지, 동생은 오늘 이야기를 남김없이 감찰관에게 다 말하게나. 난 이 사실은 상단주에게 알릴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하면 이간책을 쓰실 생각인가요?"
"후후, 잘 알고 있군, 상단주나 총국주도 이 기회에 모용세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겠지… 그걸 우리는 부추기면 되는 것이고. 동생은 감찰관에 보고할 때 좀 더 과장되게 보고하게,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보여 주라고……."
악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한데 형님, 모용세가는 어떻게 나올까요?"
"우선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들겠지,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야, 사실이든 아니든 계속 불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들에겐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지. 해서 그들은 휘주상단의 부를 빼돌리려고 시도할 거야."
"휘주상단을 통째로 팔아넘긴다는 말입니까?"
놀라는 악일군을 보며 금상일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에 그런 방법은 쓰지 않을 것 같군, 조용히 휘주상단이 모아 놓은 재산을 모용세가로 옮기려고 할 거야. 우리는 그걸 반드시 막아야 하고……."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자네가 어제 내게 건네준 정보가 있지 않은가? 사천상단의 상단주을 끌어드리는 거지, 그가 검호상인이 틀림없다면 무력으로도 모용세가에 꿀리지 않을 거야."
여전히 악일군은 알쏭달쏭한 얼굴이었다.
금상일의 입이 재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휘주상단의 상단주를 제안할 거야, 단 휘주상단의 재산은 공동재산이니 사적으로 유용하면 안 된다고 해야겠지……."
"그가 그걸 받아들이겠습니까?"
"이봐, 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생각해 봐, 휘주상단까지 거머쥔 자면 그는 단숨에 중원 최대의 상단을 거느린 상단주가 되는 거리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동생도 잘 알 거야, 안 그래?"
악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 부흥맹이 바빠지겠군요."
"그렇지, 그나저나 사천상단의 상단주를 끌어 들어야 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모르겠군. 내가 만나고 싶지만 내가 움직이는 건 너무 표가 나서 안 될 것 같은데."
"그건 저의 딸에게 맡겨 주십시오. 잘 해낼 것입니다."
"그래 미란이라면 영특하고 무공도 뛰어나지, 더구나 여자라서 관심도 덜 받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