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휘주상단 (1)
주성진은 호기심이 생겼다.
'음, 견질보라, 익혀 두면 나중에 써먹을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왕 형, 그거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소? 아, 그리고 절세신마가 누구요? 처음 들어본 인물인데……."
"절세신마는 오백 년 전의 인물로 마교의 이단아였소. 그는 마교의 방침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녔지. 하지만 무공이 마교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인물이라 마교에서도 그를 마땅히 제재하지 못했소."
"……."
"게다가 그는 어릴 적 신동이라 불린 만큼 머리가 아주 뛰어났소이다."
"그렇군……."
"그는 정파나, 사파나 가릴 것 없이 두루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그 외 잡학과 진법 그리고 기관술에도 일가견이 있었소. 단점은 워낙 술을 좋아하는데 술버릇이 좀 고약했다고 하오, 어느 날 만취한 상태에서 병사들과 시비가 붙어 감옥에 투옥된 적이 있었소이다."
"……."
"나중에 술이 깬 후에 그는 전혀 기억을 못 했고, 견질보를 벽에 남기고 유유히 감옥을 빠져나갔다고 하오, 견질보는 일종의 그가 탈옥한 것에 대한 보상인 셈이었소… 이게 견질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이요, 결국 그가 마신 술 때문에 견질보가 세상에 알려진 셈이요, 하하."
주성진는 미소를 지었다.
'많고 많은 무공 중에 하필 그런 무공을 남기다니, 하여튼 특이한 인물이야.'
"잘 들었소이다. 재미있는 일화였소."
"아, 참. 견질보는 틈틈이 알려 주겠소이다."
"고맙소."
왕천유가 고개를 저었다.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고맙소이다. 내 목숨을 살려 주었지 않소이까?"
그러자 주변의 인물들이 동시에 소리친다.
"감사하오, 고마워요……."
주성진은 그들에게 손을 저었다.
"하하, 마땅히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에게 아주 고마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염옥매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어요. 하여간 큰 은혜를 입었어요. 뭐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호호."
"갚을 필요 없습니다. 대신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요."
"호호,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저…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들려주면 안 되겠어요? 몹시 궁금한데……."
주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드리지요."
주성진은 그녀에게 자신이 빠져나온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주성진이 어떻게 탈출했는지는 비단 그녀만 궁금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다 마치자 염옥매가 재차 말문을 열었다.
"고마워요. 들려주어서."
"아닙니다."
"솔직히 가문의 원수인 신마단의 자객들이 전멸해서 기쁘긴 한데 사령문의 금괴를 못 찾아서 아쉽긴 하군요. 이래서 사람 마음이 간사한가 봐요. 죽다 살아난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한 일인데."
주성진은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뭐 사람의 본성이 다 그런 것 아니겠소, 하하."
"주 상단주께서는 사령문의 금괴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금괴에 대한 미련은 없었지만 주성매의 질문을 받으니 다시금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음,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잘하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금괴가 있다면 사령문의 절기들도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상대한 자들이 무공이 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물이 빠지면 수색을 해 보면 어떨까요?"
주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 쉽게 찾을 것 같으면 죽은 자들이 벌써 찾았을 겁니다. 나중에 시간 날 때 다시 찾아보면 모를까, 지금은 형편이 여의치 않군요. 해야 할 일도 있고……."
염옥매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 풀었다.
"음, 그렇군요. 뭐 나중을 기약하죠. 한데 무슨 할 일이 있는 건가요?"
"그건… 뭐 그런 일이 있습니다."
"어머, 죄송해요, 괜한 걸 물어본 모양이네요."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자, 그럼… 여기서 헤어질까요. 밤도 깊고 하니……."
"잠깐만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무슨 할 이야기가?"
염옥매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결심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 혹시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큰 상단을 꾸리려면 여러 부류의 인재가 골고루 분포되어야 하지 않나요?"
주성진은 그녀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그로서는 널리 인재를 모으는 상황이라 제 발로 상단에 들어온다면 이는 쌍수로 환영할 일이었다.
"사람은 언제든 필요합니다. 한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뭔가요?"
"그야 우리 이이와 가정을 꾸밀 텐데 그러려면 안정된 직업이 필요한 것 같아서 말이죠."
주성진은 내심 양일동의 친부인 안찰사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냐. 뭐 그것까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러고 보니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군.'
"이거 두 분께 미리 축하부터 드려야겠군요. 하하, 음… 그건 그렇고 저와 같이 지내려면 제가 좀 인적사항을 알아야 할 것 같은데요."
"호호. 당연하죠, 저는 신녀문 소속이에요, 아마 잘 알지 못할 거예요. 지금은 별 볼 일 없으니까……."
주성진은 기억을 더듬어 봐도 신녀문을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 모르겠군요."
"아니에요, 신녀문은 여인으로만 이루어진 문파예요. 한데 백여 년 전에 자객들의 공격을 받고 거의 멸문할 뻔했죠. 하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았어요. 제가 바로 그 증거랍니다."
"아, 생존자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그녀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당시 출타 중인 문도들이 있었어요, 그 덕에 화를 모면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면 지금 신녀문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겠네요?"
"그게 뿔뿔이 흩어져서 말이죠. 지금은 연락처조차 모른답니다. 다만 어딘가에서 저처럼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거예요. 십중팔구……."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회를 노린다는 게 무슨?"
"그거야, 원수를 갚는 거죠, 저는 사부에게 들었고, 사부는 태사부에게 들었지요……."
"그러니까, 당시 신녀문을 공격한 범인들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네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마단이 범인인 걸 알고 있었어요. 아 그게… 실은 신녀문의 주 수입원이 정보를 파는 것이랍니다. 개중엔 신마단에 관한 것도 들어 있었지요. 저희가 흘린 정보 때문에 신마단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이에 앙심을 품은 그들이 신녀문의 문도들이 일 년에 한 번 회동하는 날 기습한 거죠."
"아,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군요."
주성진은 대답하면서도 신녀문이 그다지 광명정대한 문파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보를 판다면 하오문과 비슷하겠지…….'
대략 일이 마무리될 무렵, 양은지가 할 말이 있는지 입을 오물거린다.
"저, 주 상단주님, 저희 낭인회에 의뢰할 일이 없나요? 계약 기간은 주 상단주님이 원하면 언제든 엿가락처럼 늘릴 수가 있답니다. 호호."
"의뢰할 일이라…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말인즉 저희를 고용할 생각이 있다는 거죠? 그럼 당분간 상단주님을 따라다녀도 되겠네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다만 따라오는 것이지, 제가 볼일이 끝나기 전까진 가까이 다가오면 안 됩니다. 그건 염 선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알겠어요, 대신 후일 계약이 체결되면 그때는 저희가 쓴 비용을 고려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제가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은신술의 원리를 좀 알려 주세요, 그 정도는 문제없겠죠?"
"뭐 원리 정도야……."
* ? ? * ? ? *
휘주상단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육선문의 일행들에 섞여 휘주상단에 들어온 주성진은 남모를 감회에 휩싸였다.
좀 달라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생에서 본 것 그대로였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주인만 바뀐 셈인가…….'
그간 알아본 결과로는 휘주상단의 가주였던 자신의 부친은 병사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중을 기약하고 머리 한쪽에 집어넣었던 여러 의문이 휘주상단에 들어오자마자 한꺼번에 머리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 예로 어떻게 모용세가가 휘주상단을 장악했느냐는 점이었다.
이는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수수께끼였다.
'남궁세가가 지척인데 어째서 멀리 요동의 모용세가가 휘주상단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남궁세가는 안휘성 합비에 있었기에 거리상 휘주와 가깝다면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오늘 일이 마무리되면 주변을 탐문해 봐야겠어. 혹 휘주상단을 그만두고 은퇴한 상인이 있다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주성진이 생각하고 있는 사이, 보기에도 간부급으로 보이는 휘주상단의 상인이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오시는데 불편함은 없었는지요, 저는 접객당주 악일군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왕천유가 나섰다.
"반갑습니다. 육선문의 왕천유입니다. 이번 조사의 책임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조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저희야 그저 장부에 적힌 목록과 창고에 보관 중인 게 같은지, 다른지만 보면 되는데……."
접객당주 악일군이 왕천유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희가 안내를 철저히 해야지요, 창고가 한두 개도 아니고……."
"안내를 철저히 하면 저희도 조사를 철저히 해야겠군요. 그냥 규정대로만 하려고 했는데……."
노회한 악일군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풀어졌다.
'저놈 무슨 의도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걸 보니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악일군은 왕천유가 뇌물을 바란다고 판단했다.
"아이, 농담도 차지게 하시고… 저희가 연회를 마련했으니 빨리 조사를 마무리 지으시지요."
"그야 별 이상이 없으면 빨리 마무리되겠죠. 한데 접객 당주님이 모든 걸 담당하지는 않을 것 같고, 창고마다 담당자가 있겠지요?"
"그럼요, 대기 중입니다. 우선은 접객실에서 저와 차 한 잔하시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침 목이 출출한데 잘 되었습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접객 당주가 차를 주문하러 간 사이, 주성진은 왕천유에게 전음을 펼쳤다.
?접객 당주에게 이야기해서 상인들 숙소에 가까운 창고부터 점검하자고 말해 주시오.
왕천유는 주성진이 말하는 의도를 바로 알아들었다,
?하하, 그러겠소, 음, 세상일이라는 게 처음에는 꼼꼼히 하다가 나중에는 설렁설렁하는 법이지… 그래서 용두사미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고, 하여 저들도 우리가 첫 번째 창고에서 시간을 좀 끌어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오.
?맞소이다. 그 점을 노리고 난 창고에서 빠져나가겠소. 기대하시오. 내가 숙소를 뒤져서 영약을 찾아올 테니.
?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사실 영약은 거짓말이고 전생에 그의 부친에게 받았던 형산파의 비급을 찾는 게 목적이었다.
왕천유, 역산도를 위한 영약은 따로 준비해 둔 상태였고.
?그러면 휘주상단의 인물들이 창고 안에 못 들어오게 해야겠소.
?당연하오, 들어오려고 하면 겁을 줘서라도 쫓아내야 하오.
?하면 어디로 빠져나가려고? 혹 천장으로?
?그렇소, 천장 기와를 뜯어내고 빠져나갔다가 돌아오겠소.
?음, 잘할 거라고 믿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조심하시오. 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지 않소이까?
?그 점 유념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