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악인은 지옥으로
주성진이 점점 다가오자 그들은 고기 굽는 것을 멈추고 주성진을 향해 일자로 도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소리친다.
"막내야. 저 애송이! 네가 처치해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힘을 합해 주성진에게 덤빌 필요성을 못 느낀 듯했다.
백번 양보해서 주성진 정도면 자신 중 두세 명만 나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주성진은 다짜고짜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보고 그들의 악한 심성을 읽어 냈다.
'한 놈만 남겨 놓고 모두 저승으로 보내야겠어.'
막내로 보이는 자가 자신들의 동료들을 믿고 거들먹거리며 나서는 순간, 주성진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나방처럼 몸을 날리는 주성진을 보며 주성진의 무모함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번쩍!
하지만 그건 그들의 오판이었다.
눈부신 검광이 폭죽처럼 피어오르며 그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마치 느닷없는 검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뜻밖의 사태에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전력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다.
파바바박!
삽시간에 세찬 경기와 구름 같은 검풍이 산 위 능선을 휩쓸어버렸다.
막내라 불리던 자가 그들 중 제일 먼저 주성진의 공격권에 들었다.
그는 손에 쥔 협봉검을 절반도 휘두르기 전에 가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크아악!"
그는 가슴이 쩍 갈라진 채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다가 곧바로 숨이 끊어졌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달은 듯하다.
나머지 6인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주성진의 공격은 쉼이 없었다.
주성진이 점찍은 자는 동료의 죽음에 놀라 뒤로 물러난 덕에 잠시 주성진의 검풍을 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미처 몸을 가누기 전에 뒤이어 연이어 날아오는 두 번째 검풍이 그의 목을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크윽!"
짧은 단말마를 터트린 그가 목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단숨에 둘을 베어 넘기고도 검풍은 여전히 다른 다섯 명을 향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나머지 다섯은 얼굴이 샛노랗게 변한 채 가진 재주를 모두 동원했으나 분노의 검풍을 그들로서는 대항할 수 없었다.
'아! 무서운 검법이다.'
주성진에게 제일 먼저 소리친 자가 속삭이며 검을 휘두르며 안간힘을 썼다.
하나 그의 방어는 무위로 돌아가고 주성진의 검풍이 그의 몸을 대각선으로 긁고 지나가 버렸다.
"크아악!"
그리고 계속해서 들리는 처절한 비명들…….
"아아악……!"
애초 위풍당당이 서 있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주성진의 연환 공격에 모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한데 그 순간, 주성진의 눈썹이 마구 흔들렸다.
'세 놈이 더 있었군. 경신법이 제법이구나. 죽은 놈들보다 좀 더 고수인가 본데…….'
주성진이 생각을 가다듬을 때, 그들이 화난 얼굴로 성큼성큼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주성진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기가 가득해 보였다. 다들 쓰러진 자들보다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주성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이 필요 하지 않겠지.'
주성진은 그들이 공격하기 전, 주저 없이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심문할 자 한 명만 제외하곤 모두 명을 끊어 놓을 생각이었기에 하등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들 중 가운데에 있는 자가 언제 뽑아 들었는지 손가락 사이에 표창을 끼고 있었다.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3개씩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불안한 모습이다.
'제길, 큰일 났다!'
주성진의 위맹한 공세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 오고 있었다.
그는 본인 앞으로 구름처럼 자욱하게 펼쳐지는 검의 그림자를 보며 콧잔등을 세게 찡그리고 있었다.
'으음 대단한 위세다. 도대체 무슨 검법이기에 이토록 가공스럽단 말이야.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지…….'
그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양손을 세차게 뿌렸다.
쐐애액!
섬뜩한 파공성과 더불어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여섯 개의 표창이 주성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게 신호탄인지 표창을 던진 자의 왼쪽에 있던 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풍차처럼 마구 휘둘렀다.
쉬쉬쉭!
어느새 그의 주먹에는 권강이 어리고 권강은 주먹의 세배나 되는 크기로 확대되어 마구 주변 공간을 찢어놓고 있었다.
걸리기만 하면 모든 걸 가루라도 낼 기세였다.
두 사람의 대응에 주성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각자 개별적으로 공격 겸 방어를 취한 듯 보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교묘한 연수합격이었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그렇다면 힘으로 압도 해야겠어…….'
사실 상식적으로 표창이 제일 먼저 자신의 검세에 닿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매섭게 날아오던 표창은 속도를 늦추고 있었고, 주먹으로 펼친 권강이 자신의 검세에 먼저 부딪치려 하고 있었다.
이는 주성진이 펼친 검세와 권강이 부딪친 직후 그 틈으로 표창을 날려 보내려는 시도가 틀림없었다.
스가각!
충격음이 터지라는 예상과 달리 상대의 권강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어!"
상대의 당황한 소리가 주성진의 귓속까지 들려왔다.
그 사이 표창들이 주성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짓쳐 왔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자가 갑자기 커다란 도를 들고 표창의 뒤로 바짝 날아들었다.
'한 놈이 더 가세했군! 내 그럴 줄 알았다.'
주성진의 손에 들린 명검이 크게 흔들렸다.
따따땅!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가공할 속도로 날아들던 여섯 개의 표창들이 모두 박살이 난 채 사방으로 튕겨 버렸다.
그리고 그 부서진 파편 중 일부는 도를 휘두른 자에게 쇄도하도 있었다.
'이런, 제길…….'
어쩔 수 없이 그는 뒤로 물러나며 파편들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성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힘차게 검을 횡으로 그어버렸다.
쫘악!
마치 공간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뒤로 물러섰던 자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도를 휘둘렀으나 그만 도와 함께 그대로 몸이 두 쪽이 나버렸다.
"으아악!"
커다란 비명과 함께 질펀한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주성진이 펼친 것은 그저 평범한 삼재검법의 가로 베기였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초식이었으나, 주성진의 공력과 어우러진 초식은 어느새 무시무시한 검초가 되어 있었다.
순간, 죽은 자의 비명이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주성진의 신형이 공간을 가로질러 나머지 두 사람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아아, 이럴 어째!'
둘은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채 도망치려 했다.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제대로 살계를 연 주성진이 그들을 도망치게 놔둘 리가 없다.
질풍처럼 강력한 검세가 그들을 휘감아 갔다.
주성진의 검세는 그들이 물러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랐다.
다급해진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으아악!"
"크아악!"
세찬 검세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가자, 도망치려던 자들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권강으로 달려들었던 자는 목과 몸이 분리되어 버렸고, 표창을 던진 자는 몸이 세로로 두 조각이 나버렸다.
'휴, 이제 다 끝난 건가…….'
시산혈해의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지만 주성진은 무덤덤했다.
어느덧 피가 난무하는 무림에 적응해 버린 것이다.
'그럼 내가 살려둔 자를 심문해볼까…….'
주성진은 방금 저승으로 보낸 세 명이 오기 전 일곱 명을 상대할 때 한 명은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다.
주성진은 죽은 듯이 누워있는 자에게 다가갔다가 돌연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로 숨이 끊어져 있었던 거였다.
'이런, 자결했구나…….'
검푸른 피가 그의 입술 주위에 묻어 있었다.
그의 입을 벌리자 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혀를 깨물어 자해한 건 아니구나. 그렇다면 독단을 삼킨 모양인데… 제길 어떡하나. 이놈들의 정체를 알아보려 했는데 공염불이 되어버렸어.'
잠시 후 주성진은 시신들을 묻으면서 그들의 소지품을 조사해봤지만 이렇다 할 만 한 소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특히 밤이라 더 그런 측면이 있었다.
'일단 여기 능선을 내려가자. 어딘가 불빛이라고 보이면 좋을 텐데.'
* ? ? * ? ? *
한편 사냥꾼이 임시 거처하는 목옥으로 돌아온 일행들은 목옥에 있지 못하고 주변의 높은 지대에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꽐꽐꽐!
목옥 주변의 땅은 마치 폭우가 내린 듯 물기가 흥건했다. 이는 그들이 판 굴을 통해 지하 광장의 물이 쏟아진 탓이었다.
이때, 육선문의 왕천유와 역산도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 상단주는 무사하겠지?"
역산도의 물음에 왕천유가 하늘을 잠시 쳐다본다.
"하늘이 무심하지는 않겠지……."
둘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들로서는 주성진이 생사를 확신할 수 없었다.
"아아.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나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역산도가 자괴감을 토로했다.
그 둘은 지하 광장을 빠져나오기 전부터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호기롭게 목옥의 지하에 들어갔다가 꼼짝없이 점혈을 당해 버렸던 거였다.
"야, 너무 자책하지 마라. 내 기분도 지금 최악이거든……."
왕천유가 역산도를 째려보더니 돌연 그도 전염이 된 듯 깊은 한숨을 내쉰다.
"휴. 제길, 내가 안찰사에게 안부 인사를 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안찰사의 아들은 죽었겠지. 물에 빠져서."
"뭐 그런 함정이 다 있나. 난 함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물 폭탄이 떨어질 줄 꿈에도 몰랐다."
역산도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게. 난 이제 겁이 나서 동굴 같은 곳은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 어딘가에서 갑자기 물이 쏟아지면 어떡하겠어."
"자맥질도 소용없으니 말 다한 거지. 내가 물이 쏟아질 때 무슨 생각한 지 알아?"
역산도가 턱으로 그의 말을 재촉한다.
"그물에 잡혀 온 물고기가 생각나더라고. 숨을 헐떡이면서 결국은 죽어가잖아."
"좋은 비유이긴 한데 넌 앞으로 물고기는 못 먹겠네."
"야, 그건 아니지.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 건데 물고기를 못 먹으면 굶어 죽잖아."
역산도가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너, 정말로 먹기 위해 사는 거냐?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고? 난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네. 왕천유가 먹기 위해 산다는 걸. 하하."
"이 자식이, 말꼬리를 잡기는! 넌 이 와중에 그런 썰렁한 농담이 나오냐? 주 상단주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데 말이야."
한데 그때였다. 검은 그림자가 불쑥 그들 앞에 나타났다.
"나 안 죽었소이다."
그러자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단 그 둘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벌떡 일어나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주 상단주, 정말 다행이오. 살아 있어서."
왕천유의 말에 주성진이 빙그레 웃는다.
"뭐, 죽다가 살아난 셈이요. 다들 낙오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죽을 둥 살 둥 굴을 빠져나왔소이다. 뒤에서 물이 밀려오는 소리가 들으니 쭈뼛쭈뼛하더이다."
"우리가 판 동굴이 자그만 해서 제대로 경공을 쓰지는 못했을 텐데."
왕천유가 빙긋 웃는다.
"든든한 네다리가 있잖소. 주 상단주도 아는지 모르지만, 무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무공이 있소이다."
"그게 뭐요?"
"바로 견질보라는 것이오. 개와 거미리의 걸음걸이란 뜻이지. 과거 절세신마가 창안한 보법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다들 혹해서 익힌다오. 모양이 사납지만 의외로 괜찮은 보법이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