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휘주에서 새로운 일에 휘말리다 (3)
주성진은 여러 번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게 있었군…….'
"음, 몰랐습니다. 그럼 낭인회에서도 하오문에 뭔가를 해주어야 할 텐데……."
"그들과 같이 작전을 펼치기도 하고, 그들의 호위 역을 자임하는 때도 있소이다. 아 그리고 우리 낭인회가 입수한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하기도 하오."
"그렇군요. 한데 직책이 어떻게 되십니까? 보통 분들이 아니신 것 같은데."
"하하, 어찌 그대와 비교하겠소. 그리고 말이요. 낭인회 소속의 낭인에겐 직책이 없소이다. 서열이 있을 뿐이지."
"아, 서열…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하하."
그가 자신 옆의 여인을 잠시 보더니 입을 열었다.
"누님이 서열 21위, 그리고 내가 서열22외다. 서열 50위권 내는 모두 절정 급의 고수로 보면 되오."
주성진은 통통한 얼굴의 여인이 강국영보다 나이가 많고 서열이 앞선다는 것에 조금은 놀랐다.
"하하, 웬만한 문파는 저리 가라는 거군요."
"뭐 그래도 고수의 숫자는 소림이나 마교의 흑룡가보다 못하오."
"흑룡가라면 요즘 총무련에 반기를 드는 그 세력이군요. 한때는 해체되었다고 알려졌는데."
강국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해체된 게 아니었소. 마교 연합세력에 밀려 중원 밖으로 쫓겨난 게지……."
마교 연합세력은 총무련의 근간을 이루는 3대 축 중 하나였다.
그 순간 여인이 주성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양은지에요. 목옥에서 누군가 나오니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해요."
주성진은 그들과 긴히 논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모호하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야기 하시지요."
"시간을 만드셔야 할거예요. 중요한 이야기를 드릴 거니까."
"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죠."
끼이익!
누군가 목옥의 바깥문을 열었다. 목만 살짝 밖으로 내밀었는데도 그 모습이 참 고혹적이었다.
'참 매력적인 여자로군.'
주성진은 아리따운 여인의 외모를 생각하다 돌연 심각해졌다.
'가만, 저 여인이 누구지? 왕천유와 역산도는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지?'
목옥 지하로 들어간 왕천유, 역산도는 어디 가고, 돌연 예쁜 여인이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다.
'음, 저 여인… 긴장한 모습이 전혀 아니야. 생긋생긋 웃고 있다고!'
주성진이 새로이 나타난 여인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양은지가 깜짝 놀라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 염옥매! 당신이 여기에 왜?"
"호호. 양은지 동생이네. 그간 잘 있었어? 못 본 지 한 2년은 된 것 같은데……."
"흥, 누가 들으면 이모뻘인 당신과 내가 친구 사이인 줄 알겠어요."
염옥매는 양은지의 말에 배시시 웃는다.
"동생,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라고. 아무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 내가 어디를 봐서 이모로 보이는지. 오히려 동생보다 어려 보인다고 할 거야. 안 그래?"
양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염옥매가 고개를 돌려 주성진을 바라본다.
"안 그래요? 주 상단주?"
주성진은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자 의문에 휩싸였다.
'어떻게 알았지? 생각해보면 크게 세 가지인데…….'
주성진이 생각하는 세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
둘째는 본인과 강국영의 대화를 엿 들어서 알게 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왕천유와 역산도에게서 들을 수도 있었다.
"저를 어떻게 알고 있으시지요?"
"뭐 그야 다 아는 수가 있죠. 호호."
그녀가 대답을 회피한다.
주성진은 그녀가 만만한 여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깥은 살수들이 죽어 뒹굴고 있었기에 보기에도 퍽 좋은 풍경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실실 웃고 있었다.
'호락호락한 여인이 아니군. 젊음을 유지하는 거야 공력이 상승하면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지. 특히 주안술을 익히고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솔직히 좀 전에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댁을 저 또래로 생각했을 겁니다. 제가 질문의 답은 해 드린 것 같고, 그 안에 제 동료가 두 사람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운우지락을 방해해서 꼼짝 못하게 해두었어요."
주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네? 뭐라고요?"
"호호, 농담이에요. 그래도 우리 사랑을 조금 방해한 건 사실이에요. 나와 그이와의."
그녀가 말한 그이는 분명 안찰사의 아들이 분명했다.
"그 두 사람은 안찰사의 아드님을 보호하려고 들어간 거랍니다.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다니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무공도 별로 뛰어나지 않던데 보호는 무슨. 오히려 내 정인의 짐이 아니면 다행이죠."
육선문의 두 사람은 그 나이치고는 무공이 꽤 높은 편이었다. 주성진은 그들과 대련을 해봤기에 이 점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정정당당히 붙었다면 그 두 사람을 쉽사리 제압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봐요. 내가 그러면 부정한 방법이라 썼다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그들을 안심하게 한 후에 기습했겠지요."
그녀가 고개를 흔든다.
"쯧쯧, 꽉 막힌 사람이네요. 이래서 선입견이 무섭다는 거죠. 내가 여자라서 우습게보고 있는 것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난, 댁이 여자라고 우습게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합리적인 추론을 했을 뿐입니다. 그들 두 사람은 무공이 상당히 강한 편이거든요."
"내가 정확히 그때 상황을 말해주지요. 그들은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내가 은신술을 풀고 그들 앞에 나타나니까 놀라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말했죠. 피해 보라고. 한데 그들은 피할 생각을 전혀 못 하더라고요. 발이 땅에 붙었는지."
"……."
"그래서 간단히 그들을 제압했어요. 그들은 전혀 내 공격을 대비하지 못하더군요."
그제야 주성진은 그녀가 여전히 무공실력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한참 위의 고수인가 본데…….'
"뭐로 제압했습니까?"
"그야 허공 점혈법이죠. 애인 앞에서 외간 남자의 몸을 만질 수는 없잖아요. 호호호."
"알겠습니다. 일단 그들을 풀어주시죠.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할 테니."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와 같은 조력자가 생겼는데 그럴 수는 없어요. 나와 그이가 하는 일을 좀 도와주어야겠어요."
"뭘 도와달라는 말입니까?"
"땅을 파고 있는데 힘을 좀 보태 달라는 이야기에요."
주성진은 상황이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땅은 판다고? 왜 무엇 때문에…….'
그 순간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그렇군. 여기에 나타난 살수들이 보통 살수들이 아니었지, 그들이 안찰사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닐 수도 있어…….'
"음, 무엇 때문에 땅을 파고 있는 거죠?"
"호호, 개인적인 복수도 하고 노후 생활 자금 마련을 위해서. 겸사겸사."
주성진이 눈을 껌뻑이는 순간 양은지가 끼어들었다.
"혹, 지금 옛 사령문이 숨겨둔 금괴를 찾고 있는 건가요?"
"난 너와 네 동료를 보는 순간 알아차렸는데, 넌 좀 둔하구나?"
그녀가 잠시 말이 없었다.
이때 주성진은 돌연 무릎을 쳤다.
'이런… 낭인회 저것들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로군. 살수들을 우연히 만나 미행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미행한 거로군. 그리고 아까 양은지가 내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 것 도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해.'
생각을 마친 주성진은 강국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강 무사님, 아까 제게 했던 말이 거짓말이죠?"
"아, 미안하오. 우리도 사실 사령문의 금괴를 쫓고 있었소. 그래서 살수들을 추격한 거고."
강국영은 순순히 사실대로 말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양 소저가 제게 할 말이 있다는 것도 이 일과 연관이 있는 것이죠?"
양은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네, 맞아요. 이미 강호에 소문이 퍼졌기에 우리 힘으로는 금괴를 찾는 게 벅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합작을 제안하려고 한 거죠. 아 참, 강호에 소문이 퍼졌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여요."
"사령문이 숨긴 금괴가 도대체 얼마나 많기에……."
"사령문을 아시나요?"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모릅니다."
"호호, 그러니 그런 말이 나오죠. 사령문은 과거 살수 단체의 대부 격인 단체에요. 모든 살수의 무공이 사령문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고 사령문은 따지고 보면 마교의 한 갈래랍니다."
"그럼 좀 전에 공격했던 살수들은 정체가 뭡니까? 그러니까 소속 말입니다."
양은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 그래서 한 명을 생포한 거랍니다. 그들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군요.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들을 미행할 수 있었지요?"
"그건 제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추적하면 사령문의 금괴를 찾을 수 있다는 제보였죠. 친절하게 그들이 있는 위치까지 알려주었어요. 다만 살수들의 정체는 알려주지 않았답니다."
그 순간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염옥매가 입을 열었다.
"여기 죽은 자들의 소속은 신마단이에요. 우리 가문의 원수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그들이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그들을 급습해 지도를 가로챘어요. 그때부터 그놈들의 추적이 시작되었죠. 다만 솔직히 그놈들이 내 흔적을 쫓아서 여기 모옥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혹시 낭인회에 제보를 하셨나요?"
주성진의 물음에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내가 왜 제보를 하죠? 그런 일 없어요."
"음, 그렇다면 누가 낭인회에 제보를 했을까요? 혹 누군가가 고의로 퍼트린 건 아닌지 모르겠는데요."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다들 생각에 잠긴다.
"누군가가 음모를 꾸몄다면 일이 복잡해지겠네요. 한데 모옥 지하에서 땅굴을 판 이유가 뭔가요?"
주성진의 질문에 염옥매가 숙인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거야 지도에 나와 있으니 그리 한 거죠. 아 그전에 내 정인을 만난 것부터 이야기 해야겠네요. 사실 내가 탈취한 지도는 암문으로 되어 있었기에 해독하기 어려웠어요. 난 암문 전문가를 수소문하다 지금의 그이를 만나게 되었죠."
"……."
"그는 안찰사의 아들이지만 서자였기에 정계에는 진출할 수 없는 신분이었죠. 그래서 그는 잡학에 관심을 두었고, 특히 금석학과 암문에 관심을 두었죠."
금석학은 금석 등에 새겨진 다양한 문자를 해독하고 연구하는 학문이고 암문은 암호문의 약자였다.
주성진은 그녀의 이야길 듣고서 대강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안찰사의 아들이 여기에 오게 된 것은 사냥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도의 비밀을 풀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참 일이 복잡하게 되었네, 그려.'
주성진은 뜻하지 않게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음을 자각했다.
"제가 이제부터 염 선배라 부르겠습니다. 괜찮죠?"
"그냥, 소저라고 부르면 좋은데, 뭐 그냥 알아서 하세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염 선배님, 제 동료는 안 풀어 줄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