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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34화 (134/250)

134화 휘주에서 새로운 일에 휘말리다 (2)

하인이 주성진의 눈치를 본다.

"저, 죄송하지만 입구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성진은 두껍게 깔아 놀은 마른풀을 치웠다. 그러자 바닥에 고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 고리를 잡아당기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을 곳 같소."

"아, 알겠습니다. 제가 고리를 당겨보겠습니다."

하인이 고리를 당기자 컴컴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자님, 소인 칠중입니다."

"칠중이 이 사람, 그대가 웬일인가?"

"다름이 아니고 안찰사 대인이 보내신 세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분들의 신분은 확실합니다. 육선문의 포쾌님들입니다."

하인은 주성진도 육선문의 포쾌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성진의 귀가 쫑긋거렸다.

'뭐지?'

사각사각!

희미했지만 분명 풀 옆을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였다.

'음, 한두 명이 아닌데, 빨리 이야기 해야겠구나…….'

주성진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공력이 딸린 왕천유와 역산도는 비록 듣지 못했지만, 주성진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 한구석 씁쓸한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실력 차에 대한.

"내가 위에 남아 있을 터이니 두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 보는 게 좋겠소."

"알았소. 그러리다."

왕찬유와 역산도는 토를 달지 않았다.

세 사람이 지하로 사라지고 주성진은 다가오는 자들을 기다렸다. 누군지는 모르나 확신하는 건 사냥꾼은 절대 아니라는 거였다.

'발걸음 소리부터 틀려…….'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해가 떨어지자마자 어둠의 장막이 하늘을 뒤덮었고, 주성진은 얼른 근처의 땔감용 나무를 주어와 화덕에 불을 지폈다.

잔잔한 불빛이 목옥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며 밝게 타오른다.

한데 산속의 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흔한 짐승의 울음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군. 짐승이 씨가 말랐나…….'

바로 그때였다.

휘이잉!

자그마한 나무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자 화덕의 불이 꺼질 듯이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그 순간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주성진의 눈까풀이 파르르 떨린다.

곧이어 가느다랗게 뜨여진 그의 눈에서 한줄기 신광이 번뜩이더니, 옆에 놓인 검이 그의 손안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왔다.

'드디어 왔군. 하나, 둘, 셋… 일곱. 아니, 열이다. 셋은 더욱 은밀하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

주성진은 창문을 통해 밖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창밖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별도 달도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불청객들만 아니었다면 정말 고즈넉한 밤이 되었으리라.

주성진은 살짝 고개를 흔들며 다가오는 자들에게 소리쳤다.

"누구시오? 신분을 밝히시오."

기척을 감추고 접근하던 자들이 크게 움찔한다. 눈만 내놓고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그들의 눈동자가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온 곧장 신형을 움직인다.

갑자기 끈끈한 살기가 조여오자 주성진은 벌떡 일어니 그대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쇄애액!

어둠 속에서 암기가 쏘아져 온다.

"흥!"

차갑게 웃은 주성진 신형이 그 자리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암기를 날린 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주성진이 여러 명으로 겹쳐 보인 것이다.

'음 절세의 보법이다. 혹 이형환위인가…….'

그가 주성진의 신법에 짧게 감탄한 사이 정작 그가 날린 암기들은 주성진을 맞추지 못하고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번쩍!

갑자기 캄캄한 밤하늘에 파란 검기가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어둠에 신형을 감추고 있던 자들이 썰물처럼 물러났다.

'어라!'

주성진은 최소 몇은 자신의 검기에 적중되리라 믿었다.

주성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상당히 빠른 자들이군. 비록 가볍게 떨친 검이지만 그래도…….'

주성진은 전신의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평상시의 느낌으로는 그들 모두를 잡아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하나하나가 고수급. 게다가 어둠에 동화되어 움직인다. 그렇다면 극한의 훈련을 받은 자들이 틀림없어……."

주성진은 그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이라 단정 지었다.

'음 그렇다면 시간을 질질 끌면 피곤하다. 속전속결로 가자!'

사실 주성진이 속전속결을 결심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아까부터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어,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 분명한 건 살수들과 한패는 아니야. 도대체 누구지? 내 감각에 혼란을 줄 정도라면 대단한 자들인데…….'

짧게 생각을 끝낸 주성진의 눈이 점점 차갑게 식어 갔다. 어둠 속 살수들을 주시하면서…….

'난 검환을 펼칠 것이다.'

그리곤 우렁차게 어둠 속 살수들에게 외쳤다.

"나에게 자비를 바라지 마라!"

그의 외침은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살수들은 주성진의 외침에 더욱 긴장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주성진이 검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한데 그냥 일직선으로 뻗은 검기가 아니었다. 검기는 둥근 구처럼 뭉쳐서 계속 생성되고 있었다.

살수의 우두머리는 그 모습에 경악했다.

아들 뻘 같은 상대로부터 놀라운 절기가 연이어 펼쳐진 것이다.

'제길… 저건 검환이다.'

"모두 피해!"

살수들의 마음은 혼란 그 자체였다.

허공에서 퍼져나간 파란 꽃봉오리가 동시다발로 정확히 자신들을 향해 쏘아져 온 것이다.

마치 개개의 꽃봉오리가 눈이 달린 것처럼.

휘익!

어둠 속 공간이 급격히 출렁인다.

스스스!

살수들이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들의 움직임은 은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빨리 파란 꽃봉오리가 그들에게 닥쳐들고 있었다.

어둠을 유영하던 살수 하나가 눈을 치켜떴다.

'아아. 어찌 저리 빠를 수가!'

쉐애액!

급히 암기를 던져보지만, 암기는 공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한데 그 순간 파란 꽃봉오리가 자신의 맞은편으로 날아드는 것이 눈에 잡혔다.

펑!

그리곤 비릿한 냄새와 더불어 붉은 피가 솟구쳤다.

순간, 자신의 운명도 그럴 것 같았다.

'안 돼!'

펑!

살수의 몸이 그대로 터져나간다. 그리고 계속되는 폭음에 비명은 없었다.

펑, 펑, 펑, 펑, 펑!

정확히 일곱 차례 폭음과 피보라가 어둠속에 뿌려졌다. 하나 주성진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제길, 상위 고수 셋은 피했나 보군.'

그 순간 등 뒤에서 다가오는 희미한 기세.

극한까지 올린 감각 덕에 겨우 잡힌 살기였다.

빙글 몸을 돌린 주성진의 눈에 일장 앞에 접근한 두 명의 살수가 어른거렸다.

그들은 검기를 내뻗어 주성진을 찌르고 있었다.

츠읏!

주성진의 검이 빠르게 움직인다. 하나 그들의 눈엔 희열이 넘쳐났다.

'우리가 먼저야. 이겼다.'

그들의 뇌리에는 가슴과 목이 뚫린 주성진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텅!

하나, 뭔가 벽에 막힌 느낌, 살수들의 차가운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 찰나.

스걱!

허공에 두 줄기 피를 뿌리며 수급이 잘린 살수들이 땅에 나뒹굴었다.

주성진의 검에서 핏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검기가 아닌 진검을 휘두른 탓이었다.

바로 이때, 마지막 살수의 분노에 찬 외침이 이름 없는 산에 울려 퍼졌다.

"이놈!"

모두 죽고 본인만 남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 그래도 방금 자신의 동료 둘이 죽기 전까진 마지막 희망을 품었었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아아, 우리는 신마단이야. 중원 최고의 살수들이라고!'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새파랗게 젊은 자에게 난자당하고 말았다.

파르르 떨리는 마지막 살수의 눈에서 강렬한 불길이 피어오른다.

'놈! 죽일 테다. 어차피 도망쳐도 내 위치는 나락이야… 죽을지도 모르고.'

손에 들린 협봉검이 피를 갈구하며 요동을 치자 살수의 입이 꿈틀거렸다.

"지옥에 같이 가자!"

그 자신도 많은 사람을 죽인 죄를 아는 듯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 살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살수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성진의 눈이 더욱더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어둠이 출렁이는가 싶더니 주성진의 정수리를 향해 송곳 같은 살기가 떨어져 내린다.

위이잉!

주성진의 검면이 빙글 돌며 휘돌자 대기가 요동치고, 정수리를 향했던 살기가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아아. 저놈은 공간을 장악하는 자였구나…….'

그가 죽음을 예상하고 눈을 감았다.

"잠깐!"

주성진은 동작을 멈추었다.

거의 동시에 허공 속에서 두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그중 한 명이 허공을 격해 살수를 점혈해 버렸다.

그리곤 그것도 모자라 강제로 살수의 입을 벌려 독단을 제거해 버린다.

일련의 전개는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후, 살수를 꼼짝 못 하게 한 사내가 다소 겸연쩍은 모습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하하. 안녕하시오. 나는 강국영이라 하오. 그대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소."

"일단 얼굴을 가린 시커먼 두건을 벗고 이야기하시죠."

"하하, 깜빡했소… 아, 오해는 마시오. 은신을 위해 그런 것이지 얼굴을 가리려고 한 것은 아니니까."

그러면서 그가 두건을 벗자 30대의 인상 좋은 얼굴이 나타났다. 미남이라 하기는 그렇지만 호남형으로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이었다.

연이어 다른 이가 두건을 벗었다. 한데 놀랍게도 여인이었다. 그녀는 통통한 얼굴에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뭐야. 20대야. 30대야…….'

강국영은 주성진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낭인회 소속이오. 우연히 길을 가다 살수들의 행적을 발견하고 살수들을 뒤따라왔소이다. 살수들이 살인을 못 하게 방해하려는 게 주목적이고, 운 좋게 살수들을 붙잡을 수 있다면 현상금을 타보려는 생각도 갖고 있었소이다. 총무련에서 내건 상금이 제법 두둑하니까."

"그렇습니까? 한데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뭐가 말이오?"

그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살수를 붙잡은 게 전적으로 그대의 공이 아니지 않습니까? 소리만 치지 않았으면 그는 내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

"허허 참, 이거, 내 눈이 삐었나… 난 그대가 통 크게 양보하리라 생각했소. 그대와 같은 부자가 몇 푼 안 되는 현상금에 연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소. 뭐 할 수 없지. 권리를 주장한다면 양보할 수밖에."

주성진은 그를 보며 히죽 웃었다.

"몇 푼 안 된다고요? 좀 전에는 두둑하다고 말한 것 같은데……."

"그거야 상대적인 것이지. 그대에겐 몇 푼 안 되는 거고 우리에게는 큰돈이라는 말씀."

주성진은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저들 남녀는 단순한 낭인이 아니었다.

'살수들도 대단한 자들이었어. 처음에 내 검기를 피할 정도면 보통 살수들이 아니라고. 한데 저들은 살수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미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여차하면 살수들과 싸우려 했다고.'

"저를 잘 아는 것 같은데요……."

"검호상인 주성진 아니오? 구주상단도 모자라 사천상단까지 거머쥔 기린아. 그러니 그대가 부자가 아니면 세상 누가 부자이겠소? 하하."

"음, 나에 대해 세세히 알고 있군요. 대부분 검호상인만 알지 검호상인이 저인지는 모르던데……."

강국영이 혀를 찼다.

"쯧쯧, 우리 낭인회와 하오문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모르고 있었나 보오. 비유하자면 우리와 하오문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외다. 하하."

"그러니까 뭡니까. 하오문이 입수한 정보들이 고스란히 낭인회로 흘러 들어간다는 말인 거죠?"

"그렇소. 다달이 하오문으로부터 정보백서를 받고 있소이다. 그것도 세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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