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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33화 (133/250)

133화 휘주에서 새로운 일에 휘말리다 (1)

화려한 전각의 3층 대회실이 시끌시끌하다.

그들은 모두 휘주 상단의 간부급 인물로 상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상인들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기 전이라 서로의 안부 등을 물으면서 잡담하고 있었다.

긴 탁자의 맨 끝 상석에는 아름다운 문양의 의자가 3개 놓여 있었는데, 혈색 좋은 세 명의 노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순간 정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이 오른쪽의 인물을 바라보며 조용히 소곤거린다.

"서욱 총국주님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남몰래 잡수시는 게 있습니까?"

"아이코! 곽천일 상단주님, 좋은 게 있으면 상단주님께 먼저 상납했겠지요. 그저 평소와 같이 늘 몸을 단련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좀 민망합니다. 공식적인 자리이니 말을 놓으십시오. 하하."

"아직 회의에 들어가기 전이니 괜찮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모용일천 감사관님."

중앙 상석 왼쪽에 자리 잡고 있던 자가 고개를 끄떡인다.

"하하, 우리 셋은 한 몸인데 격식을 차리는 게 어색하지요. 그래도 회의에 들어가면 대장은 당신입니다."

"아휴, 남들이 들으면 내가 진짜 대장으로 알겠습니다. 난 그저 허수아비 상단주일뿐인데……."

모용일천이 두 눈을 치켜떴다.

"그거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야 그저 모용세가를 대표할 뿐이고, 상단운영은 전적으로 당신이 하지 않습니까?"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 사람들이 저보다 감찰관님의 눈치를 더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실질적인 권력 서열을 모를 리가 없지요. 모두 장사에는 도가 턴 인물들인데……."

"……."

"만일 저들이 그 정도 눈치가 없었다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불가능했겠죠. 벌써 도태되고 말았을 테니까요."

그러자 모용일천이 입을 삐죽거렸다.

"아이, 오늘 아침 식사라도 거르셨나요? 오늘따라 왜 그러십니까? 항상 있던 일인데… 그리고 불만 있으면 저희 가주님에게 따지십시오. 저에게 화풀이하지 마시고요. 저도 가주님이 지시하는 데로 움직이는 충직한 충견일 뿐이올시다."

"에이 흥분하시긴… 그저 해본 소리입니다. 이따가 회의가 끝나면 좋은 곳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요. 요즘 새로 문을 연 곳이 있는데 그곳 기녀들이 미색이 아주 곱다고 하더군요. 하하."

"그건 두고 보자고요. 이번 달 실적이 좋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곽천일이 빙긋 웃는다.

"제가 미리 알아본 결과는 뭐 딱히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급하게 안건이 추가된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뭡니까? 혹 육선문이 방문하는 것 때문에……?"

"알고 계시네요. 네, 그렇습니다. 별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꼬투리를 잡히면 안 되니까, 다시 한번 간부들에게 주의를 시켜야지요."

말을 끝낸 곽천일은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자자, 여러분! 회의 시작합시다."

웅성거리던 회의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곽천일은 눈빛이 날카로운 초로의 인물을 쳐다보았다.

"음, 우선 부상단주께서 사업별 실적을 종합적으로 발표해주세요."

부상단주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럼 바로 발표 올리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지난달보다는 매출이 2할 올랐고,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서는 3할 정도 올랐습니다. 사업별로는 표국업과 요식업, 미곡 사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비단사업은 약보합세를 그리고 무역업과 차와 소금 전매 사업은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모용일천이 부상단주에게 물었다.

"전체적으로 매출이 올라 다행이긴 한데 무역업이 위축된 건 무슨 이유인가요?"

"그게 요즘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고 있고, 조선에서 개인 간 무역거래를 금지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해서 이번에 조선으로 가는 사신단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음, 조선 사신단이라,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해적들은 나라에서 제압을 해주어야 하는데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혹 무슨 복안 같은 게 있으신가요?"

부상단주는 속으로 그를 비웃으면서도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다 늙은 주제에 허구한 날 기원에서 술이나 처먹는 놈이… 네놈이 직접 장사해봐라, 무식한 무인 놈아…….'

그는 모용일천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속마음이고, 이를 대놓고 따지기에는 그의 무공과 뒷배인 모용세가가 무서웠다.

'어쩌다 휘주 상단이 모용세가에 휘둘리게 되었을꼬…….'

부상단주는 치솟아 오르는 불만을 간신히 잠재우며 입을 열었다.

"다가올 5대 상단의 회합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고자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각 상단에서 돈을 갹출해서 용병을 구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서역의 코쟁이들이 싸움도 잘하고 배도 잘 몬다고 하더군요."

"아,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들의 배가 크고 튼튼하다 들었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만약 진행한다면 용병 계약에 그들의 배까지 포함해서 계약해야겠지요. 비용은 좀 비싸겠지만……."

모용일천은 고개를 끄떡이다 돌연 뭔가가 생각났다.

"아. 그러고 보니 신임 사천상단의 상단주가 우리 비단사업을 훼방 놓은 놈이라면서요?"

"훼방을 놓았다기보다는 저희가 한발 늦은 셈이죠. 정당하게 계약을 따냈기에 뭐라 할 순 없을 것 같고… 다만 그의 놀라운 수완으로 봤을 때 앞으로 계속 예의주시해야 할 인물이라고 봅니다. 특히나 무공도 뛰어난 자라."

모용일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요. 무공이 뛰어난 자라고요?"

부상단주는 다시금 속으로 그를 욕한다.

'저 자식이, 남들 다 아는 걸 모르고 있네.'

"네, 그렇습니다. 제가 무공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하오문에서 떠벌리는 검호상인이 바로 그자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음… 그의 이름이 뭡니까? 내가 세가를 통해서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모용일천은 검호상인에 대한 소문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한편 부상단주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에겐 남모르는 고충이 하나 있는데 그건 사람 이름을 잘 외지 못한다는 거였다.

"아, 주성진이라고 합니다."

"성이 주씨라면 혹 황실과 연관이 있는 자입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차후에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 ? ? * ? ? *

한편 그 시각 주성진은 육선문의 왕천유와 역산도를 만나고 있었다.

주성진이 역산도를 바라보았다.

"하하, 그대는 황실 무공대회에서나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휘주에 나타났구려……."

"내가 나타나서 불만이오?"

주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소. 반가워서 한 소리외다."

"뭐, 사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소이다. 하하."

"그건 그렇고, 휘주 상단은 언제 가는 거요?"

그러자 역산도 대신 왕천유가 입을 열었다.

"사흘 후에 가면 된다오. 그나저나 그대를 만나 회포도 풀고 좀 쉬려 했는데, 이거 그렇지 못하게 되었소이다."

"아니 그건 왜 그렇소?"

"여기 제형안찰사사에 문제가 생겼소이다. 수상한 자들이 안찰사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모양이오."

제형안찰사사는 1개 성의 형, 옥을 총괄하는 사법기관이었다. 정3품 안찰사가 제형안찰사사의 수장으로 성의 사법, 감찰을 총괄하고 있었다.

"인사하러 관에 들렀다가 안찰사가 부탁하는 바람에 코가 꿰어 버렸소. 거절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분은 부친과 잘 아는 사이라서……."

"무슨 부탁이오?"

"전에 어떤 자가 감옥에서 괴질로 죽었는데 그 일로 복수하겠다고 협박장을 받은 모양이오. 뭐 단순 협박일 수도 있지만, 안찰사께서 대뜸 나를 보자마자 단 며칠만이라도 신경 써달라고 하더이다. 본인은 두렵지 않으나 아들의 안위가 걱정된다고."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병을 동원하면 될 터인데……."

"아, 아들이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오. 관사에 있지 않고……."

"음, 그러니까 아들을 돌봐달라는 말이구려. 그래도 협박범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데 마냥 지키기는 곤란하지 않소."

왕천유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틀 후에 호위무사들이 당도하는 모양이오. 그때까지만 봐 달라는 거지."

"내가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니지만, 아들을 관사로 불러들이면 될 터인데."

"나도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일부러 묻지 않았소. 남의 가정사라."

주성진은 어찌할까 잠시 생각했다.

'음, 나도 비록 임시지만 이제부터는 육선문 소속으로 봐야 하는데, 그리고 세상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뭐, 그럼 나도 육선문 일원으로 그대와 함께하겠소."

"에이 그러지 않아도 되오. 개인적인 일이라 내 부하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대가 죽으면 안 되니 따라가겠다고 하는 거요. 내 일에 지장이 생기니까. 하하."

왕천유가 미간을 찌푸린 순간 역산도가 히죽 웃는다.

"나도 너의 시체를 치우기 싫으니까 따라가야겠어."

"뭐야. 이 자식아?"

* ? ? * ? ? *

구불구불 산자락을 두어 번 돌아가자, 석양이 서산에 반쯤 걸쳐진 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구름도, 나무도, 바위도,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며 마지막 정염을 불태운다.

"저깁니다, 나리! 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하인이 가리킨 곳에는 굵은 나무를 덧대어, 제법 운치 있게 지어진 한 채의 목옥이 서 있었다. 사냥꾼들이 임시로 묵는다는 통나무집인데,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예정에 없던 산속으로 들어간 건 이유가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주성진과 왕천유, 역산도는 안찰사의 아들이 있는 곳에 당도했었다.

한데 하인만 남겨두고 정작 주인은 집에 없었다.

곧바로 하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하인은 안찰사의 아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고, 그게 바로 산 속의 목옥이었다.

하인의 말로는 안찰사의 아들이 자주 사냥을 위해 집을 비운다고 했는데, 분명 조심하라고 안찰사로부터 전달을 받았을 터인데 사냥을 나갔다는 게 괴이하고 미심쩍었다.

목옥에 들어선 하인이 당황했다.

"밤에 사냥하러 다니지 않았을 터인데, 이상합니다."

따라 들어온 주성진은 하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내를 훑어보았다.

목옥 안은 사람들이 기거했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부드러운 마른 풀을 두껍게 깔아 놓은 침상이며, 엷은 먼지가 쌓여 있는 투박한 탁자. 그리고 구석의 화덕에는 피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검은 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주성진은 하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가 분명하오?"

"그럼요. 틀림없습니다. 제가 여기에 몇 번 와봤거든요. 도대체 어디 가신 건지……?"

하인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염려하지 마시오. 안찰사의 아들 분은 여기에 있소."

"네, 여기에 있다고요?"

그는 두리번거려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안 계시는데……."

"하하. 그는 지하에 있소이다. 그리고 늦었으니 당신도 여기 머물렀다가 내일 내려가는 게 좋겠소."

"그야. 저도 그리 할 생각이었습니다. 한데 정말 지하실이 있습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지하실이 분명히 있소. 하니 그대가 안찰사의 아드님을 불러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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