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대륭가의 인물들을 만나다 (3)
"그러지 말고 저를 고용하세요. 그러면 언제든 도와줄 수 있으니까, 대신 보수는 적게 받겠어요. 물론 터무니없이 낮으면 곤란하지만……."
주성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륭가에 돌아가야 하지 않소이까?"
"호호, 난 임무를 달성했으니 평생 그냥 놀 수 있어요. 제 임무가 대륭선천신공을 찾는 것이었으니까."
그때였다. 그녀의 사형제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나도 고용해 주시오."
"저도요. 헤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서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데 혈교에 대한 복수는?"
"그대와 있으면 자연스레 혈교와 싸우게 될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호호."
확실히 머리가 뛰어난 여인이었다.
"뭐 그렇다면 나도 부담이 없소이다. 대신 이건 아주 작은 부탁이지만 영단이나 영초가 있을 만한 지역을 좀 알려주시오. 쓸데가 있어서 그러오."
"호호. 그걸로 장사하려고요?"
"뭐, 그것도 있고 가까운 사람들의 내공을 늘려주고픈 마음도 있소이다."
그녀가 샛별 같은 눈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노안이니 눈은 다행히 탁하지 않고 맑았다.
"혹 제조비법을 아는 건 아닌지… 그래야 대량제조가 가능한데."
"하하. 그건 말하지 않겠소이다."
* ? ? * ? ? *
시간이 흘러 휘주 근교에 다다랐다. 그동안 놀랄만한 일은 중도에 합류한 대륭가 출신 세 명이 모두 젊음을 되찾은 거였다.
무엇보다 일행이 뒤로 넘어갈 일은 배난경이 엄청난 미녀였다는 점이었다.
유부남인 임하응마저 눈길을 수시로 주다가 그의 부인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개중에 그 누구보다 배난경을 쫓아다닌 건 임호풍이었다.
배난경은 대다수 미녀가 그렇듯 쌀쌀맞지도 않고 도도하지도 않았기에 더욱 그녀 주변에는 남자들로 넘쳐났다.
다만 주성진만 거리를 둘 뿐이었다. 공적인 것이 아니라면.
주성진은 잠시 그들과 떨어져야 하기에 그들 모두를 불러들였다.
"음, 내가 없는 동안 자유롭게 행동하시되, 사고는 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요즘 시절이 뒤숭숭하니까 말이죠."
배난경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지금의 무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야 다 알고 있는 것 아니오? 딱히 더 말할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정리 차원에서 다시 논의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혹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변수를 발견 할 수도 있으니까요."
주성진은 그녀뿐 아니라 나머지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눈빛이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음, 다들 원한다면 그렇게 합시다. 자유롭게 말해보시오."
"그럼, 말 나온 김에 제가 먼저 이야기하겠어요. 다들 지금의 무림 상황이 폭풍전야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은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어요. 특히 누구 때문에 더 그런 측면이 있죠. 다만 국지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아 보아요."
육숭이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혈교 놈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그들이 새롭게 등장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전면적으로 나서서 싸움을 일으킨 건 없어요."
"지금까지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요."
그러자 배난경이 주성진을 힐끔 쳐다보다 말을 이어 갔다.
"어떤 사람이 말이죠. 본인은 딱히 그럴 의사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무림에서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말았죠. 특히 사천에서 말이죠."
주성진은 자신을 가리켰다.
"나, 말이요?"
"호호, 그래요. 사도련 잔당들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녹림의 수괴를 저승으로 보냈잖아요. 그 일로 과거로 회귀하려는 세력들이 다시 물밑으로 잠수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건 제 추측이지만 총무련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지금쯤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을 거예요."
"……."
"총무련은 내부를 공고히 하고 외부로 힘을 뻗겠지요. 두고 보세요 총무련에서 모종의 발표를 할 테니까요. 제 생각에는 소속 문파들에 인력 차출을 요구할 거예요. 일종의 전시동원령 같은 거죠."
주성진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 바였고 달리 보면 그녀의 말에 특별히 새로운 건 없었다.
순간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변수를 찾아보자고 했잖아요. 저는 그 변수에 주 상단주님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지난번 저희에게 사천에서 벌어진 일을 말해주었을 때 어느 정도 감을 잡았죠. 이건 보통 변수가 아니라고 말이죠."
"그러니까, 나의 행보가 변수가 된다 그 말이요? 당장은 무림에 개입할 생각이 없는데……."
"이미 무림 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잖아요. 그건 부인하지 못할 거예요. 의도치 않았다고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주 상단주님이 가는 곳마다 많은 일이 발생하고 있어요. 안 그런가요?"
"음, 그렇다 칩시다. 나는 무림에 새로운 변수가 있다면 다른 걸 들고 싶소. 그건 바로 화탄의 등장이요. 화약의 제조법이 널리 퍼져 너도나도 만든다면 이는 과거와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이오."
그녀가 미소 짓는다.
"호호, 맞는 말씀이에요. 그럼 전 여기에 두 가지 변수를 추가하고 싶네요. 그건 바로 상단의 움직임과 황실의 움직임에요.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또 한 번 무림이 출렁이겠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상단과 황실에 무림의 세력들이 손을 뻗고 있다는 말도 되지요."
주성진은 그녀의 안목에 감탄했다. 하지만 곧장 의문이 든다.
'그녀가 저렇게 무림의 정세에 밝을 리 없을 텐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혈교에 복수의 칼을 벼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잖아. 아 그렇군. 그녀가 임호풍, 육승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 그들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흡수한 모양이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도 본격적으로 세력을 불릴 때라고 생각했다.
'대륭가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상부상조한다면…….'
주성진은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내가 대륭가에게 제안을 하고 싶은 게 있소."
"호호, 혈교의 일을 도와줄 테니 대신 저희의 힘을 빌려 달라 그런 뜻이겠죠?"
"역시 바로 알아듣는구려. 그렇소이다."
배난경은 배시시 웃는다.
"실은 그 일을 제안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요. 가문에서도 바라는 눈치고요."
"잘되었소. 난 대륭가가 상단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아 주었으면 하오."
"에이. 그건 당연한 거고, 보다 중책을 주셔야죠."
주성진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음, 표정이 진심인데…….'
"중책이라 하면 뭘 말하는 것이요?"
"정보조직을 가동하고 싶어요. 무림의 동향은 물론이고 상단의 세세한 움직임, 나아가 황궁의 움직임과 세외의 움직임까지고 말이죠."
들을수록 판이 커진다.
"음, 그러려면 인력이 많이 필요할 텐데,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상인이요. 상단을 크게 키우는 걸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이지만 그 정도의 정보는 필요하지 않소이다. 그보다는 상단에 도움을 주는 인맥을 늘리고 싶소이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정보조직은 상단에 도움을 주는 조직으로 꾸미고 싶어요. 해서 말인데 가장 정보를 많이 얻을 방법이 뭔 것 같아요?"
"그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겠지, 혹 그렇다면 찻집이나 객잔 사업을 하자고 하는 거요? 설마 기원을 열자는 건 아니겠고……?"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호호, 물론 아니에요. 그보다는 약방을 차리고 싶어요. 단 약은 돈을 받고 팔지 않고 정보를 받고 파는 거죠."
주성진은 눈을 크게 떴다.
"음, 기발한 생각인 것 같소. 그러려면 사람들이 혹할 만한 약방문이 있어야 할 텐데……."
주성진도 사실 합작으로 약방문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었다.
"저희가 가지고 있어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뭐 나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나에게 요구할 것이 있을 것 같은데."
"단도직입적으로 혈교의 교주를 죽여주세요. 그의 무공은 아무래도 저희가 감당하긴 힘든 것 같아요. 대신 상단주님의 무공을 좀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주성진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내가 목숨을 걸 일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있어야겠지.'
"하하, 이것 참… 좋소. 단 싸우다 불리하면 일보 후퇴하겠소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하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그리고……."
그 순간 육숭이 끼어들었다. 그는 흥분한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 내가 배 소저를 좋게 보았는데 이건 좀 아니지, 말을 들어보니 주 상단주를 전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인데… 어디 가문의 복수를 남의 손을 빌려 달성하려 하오? 스스로 힘으로 해야 떳떳한 것이오!"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저희는 하루속히 복수를 끝내고 새 출발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주 상단주님이 혈교의 교주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만일 제 생각이 틀린다면 자결하겠습니다."
주성진이 육숭을 바라보았다.
"육 선배, 잠깐만요. 제가 마저 말을 끝내도록 할게요."
"음……."
"배 소저, 나도 그대 가문에게 부탁할 것이 있소이다. 천겁윤회진을 파훼할 방법을 연구해주시오. 물론 실패한다 해도 난 개의치 않겠소. 하지만 노력을 해주시오. 그게 나의 마지막 조건이요."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간다.
"방금 천겁윤회진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소. 천겁윤회진이라고 말했소. 나는 그 속에 반드시 들어가야겠소. 아, 내가 생각하는 장소가 있소이다. 물론 거기에 천겁윤회진이 펼쳐져 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저희 가문에서 진법을 꾸준히 연구했어요. 하지만 전설의 천겁윤회진은 아직 파훼할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건 나도 이해하오. 그냥 주어진 정보로 최선을 다해주면 되오. 내가 일전에 천겁윤회진에 얽힌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걸 들려주겠소이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하늘의 신선이 만들었다는 전설은 저희도 알고 있어요. 엄청난 미녀를 그 속에 가두었다죠……."
"하하, 알고 있었구려. 그렇소이다. 난 조만간 그녀를 그림으로 그릴 것이오. 꿈속에서 봤거든."
그녀가 믿기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꿈속에서 봤다고요?? 에이, 사실이 아니겠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천월무녀도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주성진은 시치미를 뗐다.
"그건 잘 모르겠고, 내가 그린 그림과 실제 얼굴을 비교하면 재미가 쏠쏠하지 않겠소. 그러니 천겁윤회진을 파훼할 방책을 연구해주시오."
"음, 알겠어요. 가주님은 곧바로 수락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아시다시피 머리 쓰기를 좋아하니까요. 까짓것 한번 도전해보지요. 그래도 막연히 연구하는 것보다는 목적이 생겼으니 더욱 신명 나게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을 것 같네요."
"하하, 그러면 서로 좋은 것이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열기를 띠고 있을 때 똑같이 열기를 띠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임하응이었다.
'천겁윤회진이라고? 내가 먼저 파훼할 것이다. 전문 도굴꾼의 명예를 걸고 말이지. 그러려면 나도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해야 할 것 같군. 우선 주 상단주에게 전설을 들어봐야지.'
임하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상단주님, 천겁윤회진에 얽힌 전설을 알고 싶습니다. 말해주십시오."
"나도 듣고 싶소. 나도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개방 장로에게 들은 전설을 그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