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대륭가의 인물들을 만나다 (2)
한편 주성진을 천참만륙해도 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적의 대장은 노인 셋이 달려오자 살광을 번뜩였다.
'고맙다. 죽을 자리를 일부러 찾아 들어와서.'
그리곤 그가 손을 들었다.
"모두 처치해!"
"네, 대장님!"
그의 부하들이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비록 몸속의 잠력을 격발하긴 했지만, 공력이 증강된 그들의 위용은 결코 만만히 볼 수준이었다.
"지금이다. 던져!"
작은 나무상자가 공중에 떴다. 그것들은 모두 노인들의 품속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휘익!
적의 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독 모래인가…….'
"모두 피해!"
바로 그 순간 나무상자가 공중에서 터졌다.
펑!
주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화탄인가?'
한데 화탄으로 보기엔 위력이 너무 약하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이, 뭐지… 위협용인가? 소리는 제법 크긴 했는데…….'
피하려던 적들도 순간 움찔했을 뿐 아내 평정을 되찾아 가는 것처럼 보였다.
적도 하나가 가슴을 움켜잡기 전에는…….
"크으윽!"
비명을 지른 자가 주저앉으며 검붉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도화선이 되었다.
"크으윽! 크으윽……!"
연이어 적들이 쓰러지자 주성진은 순간 독을 살포했나 생각했다.
'어. 아니네.'
주성진은 죽어가는 자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저건 잠력이 고갈되어 죽어가는 모습인데…….'
순식간에 적들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 들고 있었다.
결국에는 살가죽만 간신히 뼈에 붙은 상태로 하나둘씩 명을 달리했다.
적의 대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원독에 찬 모습으로 주성진을 바라보곤 숨을 거두었다.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모습을 상상하던 일행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누구 아는 사람?"
주성진은 침묵을 지켰다. 곧 알게 될 것 같아서였다.
노인들이 돌아오자 참다못한 육숭이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육승이라 합니다. 방금 어떻게 된 건지, 제 안계를 넓혀줄 수 있겠습니까?"
육숭은 공손하게 돌려서 묻고 있었다.
그러자 노인들 중 홍일점인 여인이 픽 웃는다.
"그렇게 공대할 필요 없어요. 사형을 포함한 저희 모두는 아직 서른을 넘지 않았다고요. 이십 대라고요."
"네?"
육승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다.
"제 나이는 이제 스물다섯이에요. 사제는 스물셋이고요. 그리고 사형은 스물일곱이에요. 그러니 말을 낮추셔도 무방해요."
육승은 그들이 빨리 늙는 병에 걸렸나 싶었다.
'조로증인가…….'
본인이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주성진도 생각에 잠겼다.
'혹 대륭가의 후예들인가? 상황이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데.'
바로 이때 여인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리 그녀가 젊었다고 생각해도 목소리가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아니니 일행들이 적응하긴 쉽지 않았다.
"우리가 던진 건 독이 아니라 화타마비산이에요. 화타마비산이 저들의 혈천잠력공을 마비시킨 거라고요. 조금만 흡입해도 치명적이죠."
"음… 소저, 마비산은 알겠는데 화타마비산은 뭐요?"
"그야. 화타가 만든 마비산이죠. 화타 그분은 원래 저희 가문 출신이에요. 평생을 저희가 가진 천형을 풀기 위해 애썼지만 성공하진 못했죠. 하지만 그분 덕에 중원의 의술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주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쳤다.
"아, 화타가 대륭가 출신이라니, 몰랐소이다."
"잠깐만요. 방금 대륭가라고 했나요? 저희가 대륭가 출신인 걸 어찌 안 거죠? 말한 적이 없는데?"
"아,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는데 역시 그대는 대륭가 출신이었소. 하하. 나도 얼마 전까진 몰랐소이다. 여기 내 일행이 말하기 전까진."
주성진은 그녀에게 임호풍을 소개했다.
"음, 안녕하시오. 나는 개방 제자 임호풍이라 하오. 대륭가와 관련된 기록이 우리에게 남아 있소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알고 여기에 온 것인가요?"
"아니요. 그건… 내가 과거를 아는 것뿐이지 현재를 아는 건 아니오, 그리고 여기 도관이 과거 대륭하원이었다는 건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소."
그녀가 깜짝 놀랐다.
"그러면 여기가 대륭하원이란 말인가요? 우리는 그저 혈교 놈들을 미행하고 있었어요. 그들이 찾는 게 우리가 찾는 것이라서요."
"말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우선은 통성명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그대와 다른 두 분께 궁금한 게 많으니 대답해 주면 고맙겠소이다."
주성진은 임호풍이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임호풍 저 친구,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데? 그건 그렇고, 보자…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저 세 사람은 내가 지닌 대륭선천신공에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해. 왜 그런지는 알아봐야겠지만…….'
"그러면 여기를 정리하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해요."
주성진은 그녀의 말에서 확신했다.
'여기에 불상이 있는 것도, 그 안에 대륭선천신공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만약 알고 있었다면 당장 불상에 달려가지,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지 않았겠지…….'
* ? ? * ? ? *
다시 객잔에 돌아온 그들은 별실을 통째로 빌렸다.
상견례가 끝나고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노인의 얼굴을 한 세 사람은 나이순으로 배정호, 배난경, 배원혁이었다. 그들은 같은 사부를 두고 있어 사형제라 칭하지만, 촌수로 따지면 먼 친척관계였다.
"배 소저, 먼저 궁금한 걸 물어보시오."
"아니에요. 먼저 물어보세요.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내가 대륭선청신공을 가지고 있소이다."
그녀와 그녀의 사형제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요? 뭐라고……."
주성진은 그들의 반응을 짐작한 듯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 자.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자초지종을 말할 테니……."
그들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여러분 이상입니다."
배난경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 대대로 그렇게 찾으려고 애쓴 건데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운명의 장난 같아요. 허탈하기도 하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소. 세분이 찾으려고 애쓰니까 하늘이 도움을 준거라 생각하시오."
"그 말은 대륭선청신공을 건넬 의사가 있다는 말인가요?"
주성진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뭐 완전히 준다는 건 아니고, 베끼겠다고 하면 허락하겠소이다. 주인 손을 떠난 보물은 더는 임자가 없는 법이니까……."
그녀가 입을 삐죽거렸다.
"조금 괘씸하네요. 뭐 할 수 없죠. 받아들이겠어요. 다만 대륭선천신공이 혈교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니 이점은 꼭 유념해 주세요."
"대강 짐작은 하는데 그대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듣고 싶소이다."
드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혈교의 마공은 마교에서 갈라 나온 거지만 지닌 내공이 마공보다 더 불완전해요. 속성으로 익히긴 오히려 마공보다 쉽지만, 내공이 올라갈수록 파탄이 일어나죠. 항시 주화입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요."
"……."
"그래서 그들은 오랫동안 해법을 찾으려고 애썼죠.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대륭선천신공이에요. 그들은 그것이야말로 주화입마를 벗어나게 해줄 보조 내공심법이라 확신했어요. 사실 그들의 생각은 맞아요. 선천진기를 늘리면 주화입마의 위험이 확연하게 줄어들어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 과거 그것을 노리고 대륭가를 습격한 것이구려."
"네, 맞아요. 많은 이들이 대륭가가 멸문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극소수 생존자가 있었고 우리는 그분들의 후손이죠. 다만 대륭선천신공을 알지 못했기에 천형에서 벗어날 순 없었어요."
"……."
"저희는 조상 대대로 대륭선천신공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동시에 혈교에 복수하려고 칼을 갈았죠. 그러던 차 혈교 주변을 감시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저들이 대륭선천신공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
"그래서 역으로 저들을 감시하면 대륭선천신공도 찾고 아울러 저들에게 복수도 안겨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한데 어느 날 혈교가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그 계획이 수포가 될 뻔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어요."
"……."
"혈교놈들이 그냥 사라질 종자는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다 얼마 전에 그들이 대거 움직이는 걸 포착했죠. 한데 누구와 싸우려는 게 아니라 뭘 찾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뒤를 밟게 된 것이에요. 아 그리고 화탄마비산은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연구하다 우연히 알아낸 거예요. 그런 효용이 있을 줄 몰랐지요. 호호."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잘 들었소. 마비산 폭탄이라… 나도 참고 해야겠소이다."
"저 한데, 화탄제조비법을 알고 있나요?"
"음… 뭐 비밀도 아니고……."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비밀은 아니지만, 그 유래도 거슬러 올라가면 대륭가와 연관이 있어요."
"그러니까 화탄도 대륭가에서 발명을 했단 말이요?"
"정확히는 합작품이에요. 단독으로 발명한 건 아니고."
주성진는 과연 그들이 대단한 천재라는 걸 다시 한번 절감했다.
'굉장하군. 그래서 하늘이 시기해서 천형을 내린 건가… 그리고 그런데도 대륭선천신공을 만들어 냈고. 다시 하늘은 혈교를 내세워 그들을 멸문시키고…….'
주성진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졌다.
'아, 그만…….'
주성진은 잡생각을 떨쳐내며 입을 열었다.
"대륭선천신공을 익히고도 무공을 늘릴 방법은 없소이까?"
"호호. 왜 없어요. 영단만 있으면 가능하죠. 다만 너무 귀하니까 문제죠."
"그 말인즉 구할 수 있다고 들리는데……."
그녀가 주성진을 살짝 째려봤다.
"눈치가 장난이 아니군요. 맞아요. 조상님들은 오랫동안 영단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수시로 영초나 영물을 구하러 다녔죠. 물론 주목적은 천형을 이겨내기 위함이지, 무공을 늘리려는 방편은 아니었어요."
"……."
"어쨌든 그런 결실로 오늘날 영단 삼십 개를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감히 소림의 대환단에 비견할 수 있다고 자부해요."
주성진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자, 이렇게 합시다. 대륭선천신공을 완전히 넘기겠소. 다만 대신 조건이 있소이다."
"조건으로 영단 한 알은 어때요? 필요하면 그걸 쪼개서 사용해도 되요. 물론 약효는 떨어지겠지만……."
그녀가 거침없이 말하자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논하지 않고 단독으로 결정해도 되는 거요?"
"대륭선천신공보다 중요한 건 없죠.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저도 묻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정말로 대륭선천신공을 보지 않았나요?"
"하늘에 맹세할 수 있소. 아, 그리고 영단은 필요 없소이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단이 필요 없다고요? 그러면 도대체 조건이 뭐죠?"
"조건은 딱 하나요. 필요할 때 우리를 한 번만 도와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