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대륭가의 인물들을 만나다 (1)
주성진은 손에 쥔 청동금불상을 머리부터 배꼽 속으로 들이밀었다.
철컥!
"어……!"
거짓말같이 청동금불상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하, 정말 쑥 들어가네.'
지켜보던 일행들은 매우 놀라는 눈치다.
"아, 아……."
주성진은 좀 더 청동금불상을 안으로 들이밀었다.
철컥철컥!
그러자 가벼운 쇳소리와 함께 불상의 배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정교하기 짝이 없는 기관 장치였다.
'대단하군. 와!'
기관장치가 모두 열리자 주성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불상 안에 비단 보자기로 감싼 두툼한 뭉치가 보인 거였다.
비단 보자기는 밀폐된 곳이 있어서 그런지 삭지 않고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성진을 보자기를 집어 들고 입을 열었다.
"자. 객잔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보는 눈이 있을 수 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주성진과 그 일행은 객잔에 돌아와 다시 주성진의 객실에 모였다.
그리고 주성진은 일행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단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풀기 시작한다.
'비급인가, 아니면 보물인가…….'
그건 주성진의 예상대로 비급이었다. 대륭선천신공이라는.
책은 입문편, 기본편, 초급편, 중급편, 상급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뭐 아는 사람 있으시오? 내공심법 같은데."
개방의 제자답게 임호풍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과거 대륭가의 내공심법에 대륭선천신공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아마 오늘 발견한 게 바로 그것 같습니다."
"음, 그렇소이까? 이름이 특이해서 다른 류의 내공심법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소."
주성진이 임호풍의 말에 동의하자, 그 순간 임호풍의 말이 이어졌다.
"대륭선천신공은 특이하게 선천지기를 강화하는 내공심법인데 내공을 늘리는 것보다는 수명을 늘리는데 주안점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대략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 대륭가의 사람들이 일찍 죽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들의 수명이 마흔을 넘기지 못했다고 해요. 그 대신 영특하고 자질이 뛰어나 만일 똑같은 내공을 익힌다면 보통 사람보다 세배는 빨랐을 거라고 하더군요."
"……."
"하지만 대륭가의 사람 대다수는 내공보다는 수명 연장을 택했고, 그러다 보니 그들의 내공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지 못했어요. 초고수의 숫자가 적으니 아무리 초식이 뛰어나도 무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었지요. 결국 혈교의 공격에 멸문하고 말았어요."
"……."
"다만 그 당시 혈교도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대륭가의 수호신과 싸우면서 그리된 것이죠. 아 대륭가의 수호신은 수명 연장보다 일반 내공을 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륭선천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이야기이죠."
주성진은 잠시 생각했다.
'그 수호신이라는 사람들이 대단하군. 뭐 그래도 오래 살 궁리는 했을 것이야. 가만 그러고 보니 대륭가와 대륭하원이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잠시 생각을 끝낸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혹, 혈교가 공격한 이유를 아시오?"
"모릅니다. 다만 추측건대 혈교가 대륭선천신공을 노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그들 내공단점을 보완하거나 아니면 기이란 술법에 이용하려고 그리 한 것은 아닌지……."
"뭐, 타당한 추측이요. 한데 그럴 것이면 대륭가 출신 하나를 납치해서 알아내도 될 텐데……."
임호풍이 손을 내저었다.
"그게 그들이 대외 활동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해요. 은둔의 가문인 거죠."
"아 참, 대륭가의 존재와 위치는 강호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요?"
"음, 제가 옛 기록을 뒤져서 알아낸 것이라 저희 개방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주성진은 달리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 개방에서 아는 사실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알 수도 있을 거야.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거든.'
순간, 주성진의 귀가 쫑긋거렸다.
'가만 이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인 것 같은데…….'
공력을 돋우어 집중하니 더욱 또렷이 들려온다.
챙챙챙…….
'이크, 도관 방향이다. 빨리 가봐야겠다. 혹 사람들이 다칠 줄 모르니.'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마무리 짓지요."
주성진이 일어나자 일행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그들의 공력으론 싸움이 일어난 지 알 수가 없었지만, 주성진이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주성진과 일행들은 도관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한 순간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는데,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개중에는 참배객들도 다수 보였다.
주성진은 민간인의 죽음에 분노했다.
'이런 쳐 죽일 놈들…….'
참배객 외에 죽은 자들은 모두 전에 마을에서 만났던 혈교의 무리와 동일한 복식을 하고 있었다.
주성진은 혈교도들과 대치하고 있는 인물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모두 세 명인데 홍일점인 여자가 한 명 있었다.
'노인들이구나, 정체가 뭐지?'
그들은 주성진과 일행들이 다가오자 적인지 아군인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략 혈교의 무리는 어림잡아도 이십은 되어 보인다.
주성진은 본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내 얼굴은 못 알아보겠지, 원래 얼굴이니까.'
한편 노인으로 보이는 인물 셋도 주성진과 일행들이 누군지 몹시 궁금한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째야. 저들은 우리 편이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중립만 지켜줘도 좋을 텐데…….
―네 오빠, 십중팔구는 그렇게 보여요. 싸움을 보고도 거리낌 없이 다가온 거로 보아 무공에 자신이 있나 본데요. 특히 제 느낌에 가장 젊어 보이는 자가 제일 고수 같아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보는 거냐?
―보세요. 그가 가장 앞서 있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뒷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요. 그리고요, 아직 좋아하기 일러요. 저들이 혹 우리가 노리는 걸 탐낼지도 몰라요. 비급엔 누구나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니까요.
―음, 그건 네 말이 맞지만, 지금은 이 고비를 넘기는 게 중요하다.
―혈교 놈들이 불리함을 알면 분명 그 수법을 쓸 거예요. 기다려 보자고요.
―그러면 좋겠는데…….
한편 혈교도들은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중에 대장 격인 자가 부하에게 전음을 펼쳤다.
―새로 나타난 놈들 때문에 일이 쉽지 않겠어…….
―고지가 바로 눈앞인데 안타깝습니다. 대장님.
―할 수 없다. 내공을 늘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일단 여기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게 급선무니까.
―네, 한동안 기력을 못 찾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주화입마 걱정 없이 마음껏 내공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행입니다. 제 수하들 모두 혈천잠력공을 알고 있어서요.
―그건 그래, 하여간 얼마나 오매불망 찾아다닌 것이냐, 여기가 대륭하원이었다니…….
―저, 대장님. 혹 열쇠를 못 찾으면 어떡하죠?
―못 찾으면 부숴버리면 되지, 물론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음… 대장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강제로 열려다 기관 장치라고 작동되면 비급이 파손될 수도 있습니다.
―이봐,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야. 교내에 전문가가 많으니 그들이 해야겠지, 뭐 그건 최후의 수단이고, 곧 청동금불상을 찾을 수 있을 게야. 도처에 우리 인원들이 쭉 깔렸으니까.
노인 셋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자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일반 참배객 대다수는 우리가 대피시켰소이다. 하마터면 저 무도한 놈들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죽을 뻔했소이다."
주성진은 그가 말한 사실과 그 이면에 깔린 의도를 동시에 알아들었다.
'우리더러 저들 편에 서달라는 말이군.'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혹 무슨 일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건가요?"
주성진의 물음에 노인의 입이 좀체 열리지 않는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리 오면 말해주겠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주성진과 일행이 노인 셋이 있는 진영에 합류하자 혈교도 중에 누군가가 주성진을 잔뜩 노려보았다. 주성진도 그의 얼굴을 보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자는 죽은 기예지와 많이 닮았구나, 혹 그녀의 아버지인가…….'
"네놈이 왜 묵각혈린망을 허리에 차고 있는 거지?"
주성진은 중년인의 물음에 순간 아차 싶었다. 여태 묵각혈린망을 허리에 감고 있었던 거였다.
'뭐 할 수 없지.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어떤 여자가 날 죽이려고 하더이다. 그래서 홧김에 빼앗았소."
"뭐라, 빼앗았다고? 그러면 내 딸은 어찌 되었느냐?"
주성진은 얼굴이 닮은 이유를 알았다.
"음, 뭐… 이 세상 사람은 아니오만."
그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다.
"이 새끼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자 주성진과 말을 섞었던 노인이 비아냥거렸다.
"나쁜 놈이 자기 딸이 죽었다고 난리군. 네 놈의 눈엔 죄 없이 죽어간 참배객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지? 모두 네놈들이 벌인 짓이라고!"
"시끄럽다. 모두 죽여 버리겠다!"
그는 검을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의 얼굴이 점점 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혈신을 위하여!"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존명!"
눈과 귀로 적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주성진이 별안간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이 '혈신을 위하여!'라고 말 하는 게 의미심장하게 들렸던 거였다.
'음, 저번 그놈이 썼던 수법을 쓰려는 모양인데, 내공을 증폭하는 그것…….'
주성진이 언급한 자는 주성진과 싸우다 죽은 자로 적포문으로 위장한 혈교도였다.
'뭐, 지금이야 큰 걱정은 되지 않지만, 그 당시는 상당히 힘들었지…….'
하지만 만약 저들이 그리한다면 본인 외의 일행들이 걱정스럽다. 노인 셋도 포함해서.
주성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이듯 말한다.
"모두 조심 하십시오. 저놈들이 내공을 늘리는 것 같습니다."
"그대들은 빠지시오. 우리 셋이 요리할 테니까."
주성진은 방금 말한 노인을 보며 되물었다.
"어르신? 가능하겠습니까?"
"음, 어르신이란 말은 좀 듣기 거북하오이다. 뭐 어쨌든 우리는 놈들이 저리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소. 그래야 쉽게 이기니까."
"적들의 수법을 아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혈천잠력공이요. 잠력을 모두 끌어올리는 수법이지."
"한데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후후, 보면 알게 되오, 잠시 뒤로 물러나 주시겠소. 좋은 구경거리가 될 거외다."
주성진은 잔뜩 의문을 품은 채 뒤로 물러났다.
'일단은 관망하자. 여차하면 내가 나서고…….
잠시 후, 혈교도들의 입에서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혈천잠력공을 시전한 거였다.
"크크, 흐흐흐……."
그러자 노인이 당당히 소리친다.
"사제들 가자!"
"네."
곧바로 노인 셋은 적진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주성진의 눈에 비친 그들은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다.
'음… 지켜보자.'
마음 같아선 자신도 달려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