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혈교도와 조우하다 (2)
혈천일위의 살기가 하늘까지 닿으려는 듯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주성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주성진에게 청동금불상을 뺏으려고만 했지 여태 정체를 모르고 있었던 거였다.
'음, 저놈이 누구지? 주눅 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위가 대단할 것 같은데.'
혈천일위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주성진이 히죽 웃었다.
"그만 떠들고 덤벼라!"
곧바로 혈천일위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혈천육행진을 펼친다! 모두 대형으로!"
뒤로 물러나 있던 강설민, 임하응 부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인다.
큰소리치는 주성진이 미덥지가 않은 거였다.
이미 적들은 주성진을 여섯 방위에서 포위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할 것 같은데요. 여보."
그러자 부부의 말을 듣고 있던 육숭이 입을 열었다. 작은 목소리로.
"괜히 방해만 되니 우리는 좀 더 물러납시다. 그리고 우리의 역할은 따로 있소. 기회를 봐서 나머지 잔당들을 모조리 저승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소?"
강설민이 눈을 껌뻑이며 육숭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거죠?"
"그렇소이다. 믿어도 좋소."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면 제 몫을 남겨두세요. 저 여인 말입니다."
육숭이 되묻는다.
"가능하겠소? 무공이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선배님, 제가 전직 살수라는 건 잊지 않으셨죠? 문제없습니다."
"알겠소. 그럼 그렇게 하시오."
한편 주성진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전신을 따끔거릴 만큼 뒤덮은 혈천육위의 살기와 숨이 막힐 듯한 혈천육행진의 진세에도 주성진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뭐 이 정도 쯤이야.'
주성진은 천천히 자신의 주위를 돌고 있는 혈천육위에게 말을 걸었다.
"돌고만 있다고 승부가 나지는 않을 텐데."
혈천일위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린다. 자신들은 그저 돌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놈이 저 와중에도 말을 하다니, 분명 뼈가 으스러지는 압력을 느끼고 있어야 하건만…….'
일말의 두려움이 물려오자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이길 수 있어!'
"흥! 그렇다면 받아봐라!"
쐐액!
혈천일위가 공격하자 나머지 오인도 똑같이 보조를 맞춘다.
삽시간에 여섯 방위에서 뻗어오는 장력을 보면서도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뭐하는 거야. 나를 두고 장난하는 건가? 죽을힘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일시적으로 합벽진을 풀고 각자 주성진을 향해 공격하고 있었다.
주성진은 쓴맛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놈들, 쯧쯧.'
주성진이 그 자리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순간 그의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돌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휘이잉!
혈천일위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갔다.
'어어. 장풍이 밀려난다.'
비단 그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혈천육위는 위기를 느끼고 동시에 재차 장력을 뿜어냈다.
내리 연거푸 3장을…….
퍼퍼펑!
그런데도 오히려 그들이 충격에 휘청거린다.
"혈천벽 개진!"
순간 여섯 방향에서 형성된 강기가 합쳐지더니 거대한 막을 형성했다.
주성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좋아, 이제야 제대로 된 합벽진이구나, 그렇다면 해 볼까, 누가 이기는지.'
번쩍!
주성진의 손에서 검이 날아올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너무 빨라 마치 주성진의 몸 밖에 거대한 고리가 생긴 듯 보였다. 한데 그 고리가 파동을 일으키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찌지지직!
혈천벽이 점점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둑이 터지듯 한시에 혈천벽이 무너져 내렸다.
"크아악, 크아악……!"
주성진은 적들을 베고 돌아온 검을 움켜잡았다.
'변형 이기어검이라, 좋군. 한데 이건 너무 보기 안 좋은데.'
주성진의 주위에는 허리가 두 동강 난 6구의 시체가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그 순간 육숭이 소리쳤다.
"우리도 공격!"
"사형! 누가 많이 해치우는지 내기합시다."
"아서라, 아직 넌 멀었다."
육숭은 천상일을 흘낏 보더니 쏜살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천상일과 임호풍 그리고 임하응도 달려 나간다.
한데 그러고 보니 강설민의 신형이 사라지고 없었다.
제일 먼저 육숭의 검이 피를 뿌렸다. 한꺼번에 두 명을 베어내고도 주춤거림이 없었다.
아아악, 아아악!
챙챙챙!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일방적이다. 내공과 무위의 차이는 적이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주성진은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곧 끝날 것 같군. 엇!'
주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줄기 빛줄기를 본 것이다. 한데 그 빛줄기가 향한 곳은 기예지의 등 쪽이다.
"아아악!"
기예지의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말에서 떨어졌다.
'은신술로 가까이 접근해서 단검을 날린 것이군. 이거 무시무시한데… 만일 저런 살수가 내 근처에서 나를 노린다면…….'
약간의 엄살이 들어가 있지만. 특급살수의 존재는 주성진에게도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 ? ? * ? ? *
시간이 흘러 주성진과 일행들은 마을을 떠나 좀 더 큰 규모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곧장 금륭객잔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좀 전의 마을에서 혈교의 남아 있는 잔당을 모두 저승으로 보내고 감금되어 있던 마을 주민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금륭객잔에서 식사를 마친 주성진은 객실로 들어가자 일행들이 따라 들어온다.
"각자 방으로 가시지, 왜 내 방에 들어오려 합니까?"
육숭이 씩 웃으며 대표로 나선다.
"다들 궁금해 미치고 있는데 그걸 모른단 말이오?"
주성진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나중에 이야기하려는 참이었습니다. 참 다들 급하시네요. 누가 무림인 아니라 할까 봐……."
"아, 그렇소이까? 미안하지만 지금 이야기해 주시오. 궁금하니까."
"뭐, 그러지요."
주성진은 자신의 봇짐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청동금불상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육숭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녹을 제거 했구려? 하긴, 그대의 놀라운 공력이라면……."
"네, 손으로 부드럽게 비벼서 제거했습니다. 고물상 주인의 말처럼 진기를 활용하니까 묵은 때가 벗겨지더라고요."
말을 하면서 문득 고물상의 생사가 걱정되었다.
'설마, 놈들이 어떻게 했으려고…….'
주성진은 고물상이 살아 있기를 기원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청동금불상의 밑 부분의 녹을 제거하니까 대륭하원이라는 문구가 나오더군요. 보통은 하원이라는 말 대신에 사를 붙여 대륭사라고 부를 텐데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숭은 대륭하원이든 대륭사든 관심이 없었다. 청동금불상에 비밀이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청동금불상에서 무슨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소이까? 내부에 공간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아뇨, 그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육숭의 얼굴에 실망한 빛이 스쳐 지나간다. 따지고 보면 자기 것도 아닌데도.
임하응이 손을 들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눈치다.
주성진은 그에게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저, 그러니까 말이죠. 중원이 워낙 넓어서 그 대륭하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대륭하원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여기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요. 한데 특이한 건 지금은 절이 아니라 도관입니다."
"……."
"중들이 모두 떠나고 대신 도관이 들어 선 거죠. 건물은 크게 고치지 않고 그냥 쓰고 있더라고요. 아마 불상들은 어디 창고 같은 곳으로 치웠을 겁니다. 누군가 사는 사람이 나타나면 팔려고 말입니다."
"……."
"음 각설하고 제가 청동금불상을 좀 만져 봐도 될까요? 뭔가 집히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성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얼굴에 묻어났다.
"뭐가 집힌다는 말이오?"
"그건 제가 확인해보고 말씀드리지요."
주성진은 곧바로 임하응에게 청동금불상을 건넸다.
잠시 후 청동금불상을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하하. 제가 조금 전 언뜻 보기에 금불상이 유선형이 아니고 각 져있다고 느꼈습니다. 부처님의 얼굴도 둥글둥글하지 않고 좀 날카롭고요. 해서 전 이 금불상이 하나의 열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가 지적한 건 아주 미세한 부분이었다.
주성진이 신음성을 발했다.
"음, 조금 특이한 금불상이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열쇠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소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니 열쇠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소. 밋밋한 열쇠는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전형적인 고전 수법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거대불상의 배꼽 부위에 청동금불상을 밀어 넣으면 거대불상의 배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왕왕 있거든요. 절에서 뭔가를 감출 때 말이죠."
그가 설명한 거대불상의 크기는 보통 절의 대웅전에 있는 불상의 크기를 말하는 거였다.
주성진은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영원히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거라는 알고는 웃음을 지었다.
'운이 좋았어. 그를 만난 게… 앞으로도 자주 그의 재능이 필요할 것 같군.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겠어.'
"하하, 그러면 이제 대륭하원이라는 곳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구려. 만일 일이 술술 잘 풀리면 이는 전적으로 그대의 공이니 내가 반드시 사례하겠소이다."
그가 미소 짓는다.
"아직 섣부른 감은 있지만 만일 그리된다면 저에게 진기 운영법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제가 독학으로 배운 것이라 서툴러서 말이죠. 사실 전에 아내에게 가르침을 요청했지만, 아내의 내공심법은 마교 계열이라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주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하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알려주겠소. 대신 그대의 내공심법을 알려주는 게 좋소이다.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소. 다만 내가 그대의 내공심법을 파악한다면 더 많은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소."
"그럼요. 그게 무슨 대수라고 비밀로 하겠습니까. 저도 그저 얻은 것인데요. 헤헤. 아무튼, 감사합니다. 주 상단주님,"
"아니 외다. 그럼 출발합시다. 아, 쉬고 싶은 사람은 여기에 남아 있어도 무방 하오이다."
주성진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 일의 결과가 궁금한 거였다.
시간이 흘러 일행들은 마을에서 가까운 대륭하원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금륭도관이었다. 도관은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낡고 수수했다.
그렇지만 의외로 찾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참배객으로 많이 붐비는구나. 관주의 수완이 좋은 모양이야.'
주성진은 쉽게 도관의 관주를 만날 수 있었다.
도관의 관주는 돈을 밝히는 자였고, 불상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대가로 비싸게 부적을 사야 했다.
도관의 관주가 알려준 불상은 으슥한 곳의 낡은 창고 안에 있었다.
문을 열고 창고 안에 들어간 일행은 먼지가 잔뜩 낀 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지와 거미줄을 제거하자 불상은 도금칠이 벗겨져 다소 낡은 듯했으나, 그래도 왠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불상이 제법 컸기 때문에 당연, 불상의 배꼽도 사람의 배꼽보다 컸다.
'그래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