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새 식구를 영입하다
임하응은 한 박자 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도굴은 아니지만, 저는 과거 무인들이 싸운 현장을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제 무공도 그렇게 해서 익힌 것이랍니다. 운이 좋으면 비급뿐만 아니라 영약이나 영단도 건질 수 있고요. 물론 제게 필요 없는 건 당연히 팔아야지요."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본인이 서 있는 곳이 무덤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면 여기가 혹 무덤이오?"
"네. 그렇습니다. 저의 눈에는 딱 들어왔지요."
"음, 여긴 비문도 없고 재단도 없는데 어찌 무덤이라는 걸 아는 것이오?"
그의 얼굴에 열기가 더해졌다. 전문분야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여기가 풍수지리상 무덤이 들어서기 딱 좋은 곳이라서요. 그리고 풍화되어 그저 커다란 돌 같이 보이는 것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십이지신상 같은 게 그려져 있습니다. 무덤의 수호신인 그 십이지신상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무언가를 찾아내었소?"
"네, 귀한 골동품과 금은 세공품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여긴 과거 옛 제후의 무덤 같아 보입니다."
주성진은 자신이 서 있는 이름 없는 야산의 능선이 고대 무덤이었다고 생각하니 얼떨떨하고 신기했다.
"내가 알기론 과거 아주 유명한 도굴꾼들은 기관술과 진법에도 능하다고 들었는데 맞소이까?"
"그렇습니다, 대인. 무덤 속에 함정이 설치된 경우가 종종 있기에 기관술과 진법에 해박해야 합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독도 있을 수가 있으므로 해독지식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구려, 그럼 물건을 팔 때 주로 골동품을 취급하겠소이다?"
그가 고개를 흔든다.
"그게 다는 아니고요. 그 외 돈 되는 건 모두 취급합니다. 그렇지만 대놓고 장사하는 건 아니고 소개, 소개를 통해 은밀하게 거래하지요."
"음, 잘 알겠소."
주성진은 고개를 돌려 그의 부인을 바라보았다.
"전에 몸담았던 곳에서 쫓겨 다닌다고 하는데 그건 왜 그렇소? 굳이 배신한 자들을 끝까지 쫓는 이유라도 있소이까?"
"그거야, 그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야 살수들이 배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아무리 세뇌되었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할수록 회의를 느끼기 마련이죠. 자신이 그저 소모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주성진은 이들 부부가 가진 능력이 탐이 났다.
'음, 저들을 내 식구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뭐 없을까? 느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걸 좋아 할 것 같긴 하지만… 거기에다 기술까지 있으니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은 없을 것이고.'
"내가 그대들에게 제안할 것이 있소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천상단의 상단주와 구주상단의 상단주를 겸하고 있소이다."
그들 부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생 상단인 구주상단은 모를지라도 중원 5대 상단인 사천상단을 그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임하응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 정말입니까?"
"그렇소이다. 내가 그런 걸 가지고 한가하게 사기를 치겠소이까?"
"사천상단이란 말이죠? 음, 정말 대단하시군요."
주성진은 슬쩍 어깨를 으쓱하곤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대들을 재주를 높이 사고 싶소이다. 내 휘하로 들어오지 않겠소? 대우는 섭섭하지 않게 해 주겠소이다."
그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데 남편은 고개를 끄떡이고 부인은 주저하고 있었다.
잠시 후.
강설민이 입을 열었다. 얼굴에 굳은 결의가 엿보인다.
"대인! 저에게 소원이 있습니다. 그걸 들어주신다면 목숨 바쳐 대인을 모시겠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그녀의 표정이 너무 비장해서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 설마 검은구월단을…….'
"말해보시오?"
"검을구월단을 없애 주십시오. 살수로 길러진 여인들은 어릴 적 멋모르고 잡혀 온 불쌍하고 가여운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2, 제3의 불쌍한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을 겁니다. 게다가 혹독한 훈련으로 살수가 되기 전 이미 그들 중 7할은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런 그들이 불쌍하지 않으신가요?"
주성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음성에 마음이 격동하기 시작했다.
'음, 살수 전체를 없앤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텐데. 설령 없앤다 해도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야. 음, 어쩐다…….'
"본거지를 알고 있소? 그리고 하나 더, 살수들은 어찌하면 좋겠소?"
"솔직히 본거지를 자주 옮겨 다니기에 제가 아는 본거지가 아닐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저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살수들이 저를 죽이려고 나타나면 그들을 잡아서 문초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살수들을 붙잡아서 본거지를 알아내자 그 말이오?"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좀 전 말씀 드렸다시피 그건 최후의 수단입니다."
"음, 내가 그 일만 쫓아다닐 수는 없는데… 바쁜 몸이라서 말이오."
"모든 건 제가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단지 대인은 마지막에만 나타나시면 됩니다. 그리고 살수들을 어떻게 처리하냐고 물으셨는데 그건 간단합니다. 항복하면 살려주고 저항하면 저승으로 보내면 됩니다."
"……."
"그들 인생이 불쌍하지만 그렇다고 세뇌된 살수들을 살려둘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살아 있는 흉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말은 단호했다.
"음, 알겠소. 하면 그것만 하면 되오? 혹 다른 것이라도?"
그러자 임하응이 끼어들었다.
"대인, 정력에 좋은 걸 좀 구해주십시오. 대인이라면 손쉽게 제조할 수 있을 듯합니다만."
"정력에 좋은 거야 그대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소? 굳이 나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주성진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가 말한, 제조할 수 있다는 말에는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반드시 대인이어야만 합니다. 왜냐면 비싸고 가짜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직접 만드는 게 좋습니다."
주성진은 어이가 없었다.
"나더러 직접 만들라는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공력이 높다면 부탁할 일도 아닌데 공력이 그 정도가 아니라서 요. 헤헤."
주성진은 그 뒤에 이어질 말이 궁금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돈벌이 꽤 될 것 같기도 한데…….'
"제가 재료와 그 배합법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주 높은 온도를 요구하기에 공력이 낮으면 소용없습니다."
"음, 그것참 특이한 방법이오. 그러니까 고열을 이겨내려면 높은 공력이 필요하다 그 말이오?"
"그렇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의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부끄러워 벌겋게 변해 있었다.
'뭐, 자연의 섭리이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좋소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곤란하오."
"그러고 보니 행장이 단출하군요. 어디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가는 중인가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이다. 휘주를 거쳐서 북경으로 가는 길이외다."
"하면 일에 지장이 없다면 저희가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시오. 그럼 난 두 분이 내 제안을 수용했다고 믿겠소이다. 하하."
임하응이 미소지었다.
"그럼요. 거절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습니까. 무조건 수용이지요. 다만 저희 재주를 어디에 쓰려는 지 궁금하군요."
"그건 무궁무진하오이다. 그대도 그렇고 그대 부인도 그렇고. 다만 도굴이니 살수의 일은 맡기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강설민이 끼어들었다.
"저는 무슨 일이든 할 의사가 있어요. 누굴 죽이는 일일지라도 말입니다. 다만 그 일이 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하하, 여부가 있겠소.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심려하지 마시오."
그렇게 일사천리로 두 사람의 영입이 확정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육숭은 혀를 내둘렀다.
'허허. 주성진 저 사람, 무공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사람 부리는 재주도 탁월하구나. 이제야 그의 능력을 제대로 본 것 같아. 하긴 지금껏 그의 장사 수완을 본 적이 있어야지.'
그렇게 일행이 추가되었고 그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그들은 모닥불 앞에 동그랗게 모여든다.
술이 절실했는데 때마침 부부가 준비한 술이 있어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그 덕분에 모처럼 야간 산의 정취를 양껏 즐길 수 있었다.
"하하하, 호호호……."
그 와중에 천상일의 눈이 샛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낮에 죽을 뻔했던 일은 이미 벌써 그의 머릿속엔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강설민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여인 살수단 중에 미인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죠?"
"그래요. 그리고 여인 살수단이 아니고 검은구월단이라고요."
"뭐, 그게 그거죠. 한데 미인이 많은 이유가 뭡니까?"
강설민이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다.
'음, 그다지… 얼굴은 그저 그런데. 나이도 좀 있고… 하긴 그게 다는 아니니까. 다른 조건만 좋다면야.'
"미인계로 유혹해서 살인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미모가 뛰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음, 혹시 관계도 맺나요?"
"살수에게 청백지신은 사치에요. 왜, 실망하셨어요?"
"아, 아닙니다. 강 여협!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하루속히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강설민은 고개를 끄떡였다.
'호호, 나보고 강 여협이라고 하네, 어지간히 장가가 가고 싶은 모양이군.'
"음, 한데 다른 여인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살수 출신을……."
"뭐, 저희 같은 무인이 평범한 여인과 맺어지긴 쉽지 않죠. 금분 세수하고 완전히 무림을 떠나지 않는 한……."
"하긴 그건 그렇네요. 그래도 다른 곳을 우선 알아보세요."
천상일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저를 잘 압니다. 누가 엮어주지 않으면 여인을 사귀기 쉽지 않습니다."
"호호,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한편 육숭과 주성진이 지난 일로 대화하고 있었다.
"주 상단주, 배에서 마음고생 많았을 것 같은데……."
"뭐,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말 한번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라서 말이죠."
"하긴 내가 봐도 그분은 보통내기가 아니었소. 게다가 원래부터 고귀한 신분이니 아랫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 것 같기도 하고."
주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속마음은 따뜻한 것 같았어요. 다만 그분이 처한 환경이 그러하니까……."
이야기를 듣던 임하응이 끼어들었다.
"한데 죄송하지만, 그분이 누구입니까?"
육숭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이자 그가 입을 열었다.
"그분은 대명의 공주요. 다만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은 편이 좋은데."
임하응은 깜짝 놀라며 육숭을 바라보았다. 몹시 궁금한 표정이었다.
"제가 입 하나는 무겁습니다. 절대로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퍼트리지 않겠습니다."
"사실 그대와 그대 부인을 거기서 만난 것도 이 일과 연관이 있소이다. 예정대로였다면 우리가 거기를 지나갔다고 가정할 때 하루 정도는 빨리 지나갔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