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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25화 (125/250)

125화 무한에 도착하다

공주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호호, 뭐 그리 말할 것까지는 없어요. 그나저나 이번 일을 잘 마무리 짓지 못하면 제2, 제3의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걱정이에요. 누가 단심맹에다 이번 일을 사주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에요."

그간 잠자코 있던 이한동이 입을 열었다.

"공주님, 솔직히 의심 가는 자나 세력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저희 내부에도 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그 점은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소상히 아는 자가 정보를 누설한 게 틀림없어요. 그렇다는 건 금의위 위사나 아니면 저를 호위하는 궁녀 중에 간자가 있다는 말인데 도대체 누가……."

주성진은 순간 무릎을 쳤다.

'내부 간자도 희생양이 된 거야. 저들이 배를 폭파하려고 했으니까.'

주성진은 내부에 간자가 있다고 확신했다.

"저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공주가 고개를 끄떡인다.

"제 생각에 잘하면 내부 간자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전제는 모든 걸 덮고 용서해준다고 해야겠지요. 아마도 간자도 지금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본인까지 죽이려 했다는 걸 깨달을 테니까."

"음, 그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요. 나중에 모든 이들을 조사할 생각이지만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한동도 맞장구쳤다.

"그렇군요. 그걸 왜 생각 못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주님."

"차분히 생각하면 되는 건데 우리 둘 다 경황이 없어서 그랬을 거예요."

주성진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나를 떠올리니 또 다른 생각이 연이어 떠오른 것이다.

"공주님, 마교나 사파에는 심령을 제압하는 술법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꼭두각시로 만드는 방법인 거죠. 사실 저는 그 방법을 모르지만, 제가 알고 있다고 한다면 간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엔 믿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

"왜냐면 제가 고수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술법을 쓰기 전에 미리 토설해라, 살길을 보장하겠다.' 고한다면 간자는 십중팔구 토설할 것 같습니다만."

공주는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기겠어요. 한번 해보세요."

"저는 간자가 사실대로 말하면 곧바로 풀어줄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주성진은 다시 한 번 공주의 확답을 요구했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질질 끌 필요 없이 바로 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밤새 작업 후 주성진은 허탈감에 빠져 들었다.

'이거야 원, 간자가 세 명이라니… 도대체 누가 사주한 것이야?'

세 명의 간자가 토설한 배후는 승상과 동창 그리고 황후였다. 지금의 황후는 전 황후였던 공주의 어머니가 죽고 난 뒤 뒤를 이어 황후가 된 여인이었다.

이한동은 공주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 불찰입니다. 금의위에서 간자가 둘씩이나 나오다니……."

"그렇게 따지면 나는 뭐가 되는 거예요? 내 호위가 간자일 줄 꿈에도 몰랐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그들 셋은 후에 회유나 위협 때문에 간자가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간자였다.

주성진은 다시금 궁궐 내의 암투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저… 공주님, 배후는 어떻게 처리하실 요량입니까?"

이한동의 물음에 공주가 힘없이 대답한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죠. 배후가 하나라면 모를까, 아버지께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야기한들 아버지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말이죠. 셋을 한꺼번에 쳐내기 어디 쉽나요. 게다가 물증도 없으니까요."

주성진은 공주의 말을 듣고 작금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음, 황제의 권위가 예전만 못한 모양이구나. 아니면 정사를 돌보지 않고 사치나 향락에 빠져 있거나…….'

주성진은 묻고 싶은 말을 많았지만, 말을 아꼈다. 나라의 일에 나서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 ? ? * ? ? *

시간이 흘러 무한에 다다랐다.

주성진은 공주와 이한동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공주님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부디 무탈하게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지만, 그대들은 일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네요."

"공주님, 당분간 선원들은 데리고 간다고 하셨죠?"

공주가 고개를 끄떡였다.

"원래 목적지에 내려 줄 생각이에요."

"내심 그들이 걱정되긴 했는데, 공주님 덕에 걱정을 들었습니다. 여기 무한은 안심할 수 없어서 말이죠. 저들 세력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래요? 뭔가 잡히는 게 있나요?"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감시하는 눈초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아무튼 그대들도 조심하세요. 그리고 그대의 공은 잊지 않겠어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 공주님."

공주가 눈을 흘겼다.

"그 마음에도 없는 말 자꾸 하지 마세요. 누가 상인 아니라고 할까 봐……."

"하하. 진심입니다. 공주님."

"일단 알겠고, 그럼 다음에 볼 수 있겠죠? 나와 약속한 것도 있으니."

공주는 지금 자신의 내공을 올려주는 일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음, 그건 공주님이 결정하시면 됩니다. 언제든 달려갈 테니까요."

"알겠어요. 일간 곧 연락하죠."

주성진은 공주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저… 실은 조만간 공주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주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정말인가요. 무슨 일로?"

"제가 황궁무공대회에 참석할 것 같습니다. 육선문의 무공지도 사부로 말입니다."

"사부라니, 그게 어떻게 된 일이죠?"

주성진은 육선문과의 인연을 공주에게 말했다.

"호호, 참 그대는 양파같은 인간이에요. 까도 까도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말씀드렸다시피 원래 그러려고 한 건 아닙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죠."

"어쨌든 그대가 나랏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군요. 육선문의 일도 참작하겠어요."

그러면서 공주가 이한동을 바라보았다.

"금의위는 긴장해야겠네요. 육선문을 말이죠."

"저희의 경쟁상대는 동창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변수가 생겼습니다. 하하, 돌아가면 망신당하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전 금의위 편이니까요. 호호."

한편, 그 시각. 무한의 모처에 여러 인물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자가 몹시 화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작전이 실패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이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마 우리의 정체도 곧 드러날지 모른다. 게다가 우린 의뢰인에게 엄청난 위약금을 물게 되었다고!"

그러자 세모꼴의 얼굴을 한자가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맹주님, 저희가 잘못했다기보다는 그 배에 엄청난 고수가 타고 있었다는 게 변수였습니다. 그것까지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엄청난 고수가 누구인가?"

"죄송합니다.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만 조사하고 있으니 곧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단단한 탁자를 내리쳤다.

꽝!

"흥, 나는 귀가 없고 눈이 없는 줄 아느냐? 애당초 그자가 누군지 알긴 글렀어. 목격자의 진술이 중구난방이니."

그들은 여객선의 생존자들에게 접근해 조사를 펼쳤었다.

"부맹주님, 저들이 탈취한 배가 곧 무한에 당도할 겁니다. 거기서 하선하는 자들을 조사하면 필시 우리의 작전을 망친 놈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선한다는 보장은 있고? 그냥 지나쳐 가면……."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공주는 무한에 정박 중인 군선으로 갈아 탈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는 군선으로 갈아타지 않은 자들을 조사하면 됩니다."

그가 조사하려는 자들은 여객선의 선원이었다. 해적선을 몰기 위해 차출된.

부맹주의 얼굴이 조금은 퍼졌다.

"음,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해. 우리 작전을 망친 놈의 정체라도 밝혀내야 맹주님의 진노를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니까."

그 순간 상인 차림의 사내가 걱정스러운 투로 입을 열었다.

"저희 단심맹의 정체가 발각되진 않았을까요?"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저들은 해왕교가 벌인 일이라고 굳게 믿을 것이야."

"그러면 좋겠지만 신강쌍마와 천월랑이 배에 타고 있어서……."

단심맹의 부맹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정체를 알기 힘들 것이다. 만일 우리의 정체가 발각되었다면 우린 그날로 죽은 목숨이야."

그 순간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는 세모꼴을 한 자를 바라본다. 그의 수하인 것 같았다.

"해왕교의 배가 포구에 나타났다는 전갈입니다."

"알았다. 전원 대기하고 있거라. 내가 갈 테니까."

세모꼴을 한 자가 부맹주를 바라본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간다. 반드시 작전을 망친 놈을 찾아내야 해."

그 시각. 주성진은 일행들은 부지런히 고물상으로 향했다.

임호풍이 입을 열었다.

"상단주님, 우리를 미행하는 자들을 어떡할까요? 필시 단심맹의 끄나풀 같은데……."

"나보다는 육숭 선배가 대답해야 할 것 같소만."

육숭은 인상을 찡그렸다. 천뇌불진을 빨리 회수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미행하는 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저놈들을 유인해서 빨리 처리합시다.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가서 속도를 빨리하면 저들이 당황해서 정체를 드러낼 것이오."

잠시 후.

주성진과 일행들이 골목길에서 종적을 감추자 당황하는 자들이 여럿 나타났다.

그들의 눈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살아 있는 얼굴은 거기까지였다.

갑자기 뭔가가 번쩍하는 순간 그들 모두가 쓰러졌다.

천상일이 암기로 그들을 제거한 것이었다.

"가시지요. 빨리."

빠르게 이동한 그들은 드디어 고물상에 다다랐다. 한데 모습이 연 딴판이다. 모두 변장을 한 것이다. 주성진은 변장도 모자라 역용까지 했다.

고물상의 주인은 손님이 들어오자 졸던 눈을 번쩍 떴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분들, 뭘 찾으러 오셨습니까?"

그는 변장한 임호풍을 알아보지 못했다.

임호풍이 입을 열었다.

"불진을 보려 합니다."

"아, 그래요. 마침 얼마 전에 들어온 게 있는데 그것을 보시렵니까.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것을 추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네. 일단 한번 보지요."

임호풍은 주인을 따라나섰다. 주성진과 일행들도 그들을 따라나섰고.

다행히 그가 판 불진이 팔리지 않고 걸려 있었다.

'휴 다행이다.'

고물상 주인은 천뇌불진을 집어 들었다.

"이거 아주 괜찮아요. 은자 10냥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뭐라고요. 은자 10냥을……."

자신이 판 게 은자 1냥이었다.

'저런 바가지가 있나, 나중에 나도 나이가 들면 고물상이나 할까 보다.'

임호풍은 혹시나 팔지 않는다고 할까 봐 얼른 불진을 집어 들었다.

"음, 꽤 비싸지만 사겠습니다."

"손님, 절대 비싼 게 아닙니다. 천뇌불진 아닙니까, 물론 진품은 아니겠지만……."

임호풍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 알겠소. 계산하리다."

하지만 그가 큰돈이 있을 리 없다.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주성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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