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강상 혈투 (1)
한편 주성진은 대결을 지켜보며 턱을 괴고 있었다.
'임호풍 저 자식은 내기에 이겼다고는 하나 불진을 돌려줄 것이지, 왜 고물상에 팔아서… 한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임호풍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그래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주고 싶었다.
'방법이 하나 떠오르긴 했는데…….'
한데 시간이 없었다. 자신들은 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순간 선원으로 보이는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승객 여러분! 배가 일각 후에 출발할 테니 빨리 배에 타시기 바랍니다."
웅성웅성!
포구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기 바쁘다. 그들은 떠나는 자들과 배웅 나온 사람들이었다.
"잘가요……."
"잘 있어요……."
주성진은 임호풍에게 다가가 소곤거렸다. 임호풍은 아직도 배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엄살 그만 부리고, 빨리 고물상의 위치를 알려주시오. 배에 타야 할 시간이니까."
"천천히 말해줘도 됩니다. 어차피 저자들도 배를 탈 테니까요."
주성진은 순간 임호풍의 이동 경로를 생각해 봤다.
'그렇군, 개방 본단에서 날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면 호북성을 지나쳤겠군, 저리 자신 있게 말하는 거로 보아 날 만나기 위해 배를 탄 모양이네.'
개방 본단은 하남성 개봉에 있었기에 호남성 장사로 이동하려면 그 중간의 호북성을 지나쳐야 했다.
"고물상의 위치는 어디요?"
"이 배의 다음 기착지인 무한에 있습니다. 만일 저들이 저를 고물상까지 동행을 요구한다 해도 상단주님의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겁니다. 배가 하루 쉬어가기 때문이지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음, 알겠소만 저들이 배를 탈 수 있겠소, 언뜻 만석이라는 소릴 들었는데……."
임호풍은 자신 있게 고개를 흔든다.
"탈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요. 배의 선원들이 미리 매점한 표가 있거든요. 그들에겐 일종의 부업인 셈이죠."
"그러니까 선원들이 예약을 걸어두었다는 말이오?"
주성진은 전생에서 배를 여러 번 탔지만, 항상 예약을 걸어두었기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사람이 적은 경우야 예약을 하지 않고도 배를 탈 수 있겠지만, 1년 중 그런 일은 손꼽을 정도였고 항상 사람이 붐볐다.
"네, 그렇습니다. 아마 다섯 배 이상을 챙겨 먹을 겁니다. 선원들이 손해 볼 일은 없죠. 항상 표를 못 구한 사람이 넘쳐나니까요."
"설마 선원들이 직접 팔지는 않겠지?"
"그럼요. 앞잡이가 있고요. 배의 선주도 알면서 묵인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떡인 주성진이 용문파의 문도들에게 다가갔다.
"배에 탈거면 같아 가시지요. 제가 표를 구해드리지요."
육숭이 고개를 벌떡 들었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는데 고맙소이다."
"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다름이 아니고 당사자 두 사람에게 술을 먹여보자고요. 술에 잔뜩 취하게 한 후에 다음 날 누가 기억이 없는지 확인해 보자는 말입니다. 물론 그런다고 고물상에 팔려간 불진이 당장은 돌아오진 않겠지만 최소한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판별할 수는 있겠지요."
육숭은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고 싶었다.
"음, 그렇게 합시다. 다만 개방의 제자도 고물상에 같이 가주어야겠소이다. 그가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야 당연한 말입니다. 저도 동행하죠. 하루 정도는 시간이 있을 것 같으니까."
육숭이 주성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막상 주성진이 동행한다고 하니 불현듯 불안한 것이다.
'설마 불진을 탈취하지는 않겠지, 내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불진에 뭔가가 있다는 건 눈치채고도 남았을 거야……."
"난 상관없소이다만 바쁘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소이다."
"딱히 무한에서는 볼일이 없으니까 상관없습니다. 혹시 압니까? 고물상에서 좋은 것을 건질는지. 아, 걱정하지 마세요. 불진에는 관심 없으니까, 하하하."
육숭은 한시름을 놓았지만 그래도 조마조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일 불진이 팔렸다면 어쩌지……?'
"음, 만일 불진이 팔렸다면 어떡하오?"
"그야, 찾아야겠지요.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찾는데 일조를 하겠습니다."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맙소이다. 그래 준다면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요."
"아직은 속단하긴 이르니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지요."
주성진은 말을 하면서 이번 출타도 많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거 참, 제발 조용히 넘어갔으면… 한데 시작부터 삐끗한 데 과연 내 바람대로 될까.'
시간이 흘러 하루가 지났다.
주성진은 배의 앞쪽 갑판에 나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석양에 강물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자 주성진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거 뭐야! 제법 운치가 있는데.'
해 질 무렵이 되어서 그런지 무더웠던 날씨가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그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다.
주성진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한가로운 경치로 눈길을 주었다.
붉은 노을과 누런 갈대밭. 그의 시선에 담기는 모든 정경은 잔잔한 강물과 어우러져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주성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런 수상한 배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 3척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성진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긴다.
'혹 수적들인가?'
주성진은 자신과 같이 배의 앞쪽에 있던 세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개중에 가장 연장자인 용문파의 육숭이 많이 알 것 같았다.
"육 선배, 아까 배의 선장이 이 지역은 안전지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성진은 그를 편의상 선배라 칭하고 있었다.
"그렇소이다. 선장이 말하지 않아도 난 이곳을 좀 알고 있소이다. 여기는 수적들이 얼씬하지 않는 지역이오."
사실 일반인이 본다면 여전히 꽤 먼 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공을 익혔기에 저 정도의 거리라면 능히 수상한 배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하면 저 배들은… 보기에도 날렵한 게 특수한 용도의 배 같은데요."
"음, 보통 수적의 배들과는 좀 다른 것 같소. 수적의 배들은 민첩하긴 하지만 모양새는 투박한 모양인데 저 배들은 검은색 일색에 뭔가 위험스러워 보이오. 내 말뜻은 크기는 작지만, 대명의 전투선과 같은 생김새라는 거요."
그는 확실히 강호를 두루 돌아다녔는지 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미간을 좁힌다.
'혹 그자들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소피를 보기 위해 측간을 가다가 수상한 광경을 목도했소. 배에 지체가 높은 관인이 탔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호위하는 무관들이 있었소. 그들은 변복 차림이었는데 하나같이 무공이 대단한 것 같았소. 눈빛이 칼날 같고 태양혈이 불끈 솟아올라 있었소이다."
"무관이라고요?"
"아, 그 말을 하지 않았구려. 그들은 무관도 보통 무관이 아니고 금의위 위사들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외람되지만 그들을 금의위 위사로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 그건 말이요. 내가 과거 금의위 위사를 본적이 있는데 그들과 유사한 모습이었소. 물론 그것만으로는 확신한 건 아니오. 난 분명 그들이 찬 검자루 뒤의 동그란 고리 부분에 매단 황금색 수실을 보았소. 금위위를 상징하는……."
"아, 그래요. 하면 그들이 왜 일반 범선을 탄 것일까요? 관선이나 군선을 타면 될 텐데."
육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들 그걸 알겠소이까. 무슨 사정이 있겠지."
"허허, 참… 잘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무슨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배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배의 선원들도 수상한 배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 대다수는 잔뜩 경계하는 모습으로 무기를 챙기고 있었다.
이십 장, 십 장.
배는 점점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주성진의 눈이 가늘어진다.
갑판 위에 서 있는 자들의 험상궂은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음, 평범한 자들이 아니구나.'
주성진이 그들의 모습을 곱씹고 있을 때 육숭이 소리쳤다.
"저자들을 알 것 같소. 저자들은 수적들이 아니오. 정확히는 해적이지."
"네? 해적이라고요? 한데 왜 난데없이 강에 나타났다는 말인가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아까부터 머릿속에 뱅뱅 도는 게 있었는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소. 이제야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소."
주성진은 궁금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저들은 바로 해왕교의 잡것들이오. 마교의 일파지만 축출된 지는 오래되었소. 여러 무리가 섞여 있는데 나라에 죄를 짓고 달아난 자들과 왜구들까지 섞여 있소이다."
그러면서 그는 궁금해하는 일행들에게 해왕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주성진은 육숭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놈들은 돈이 되는 건 뭐든 닥치고 한다는 것이군요. 그 상황에 자비라는 건 눈곱만큼도 없고요."
"그렇소.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자들이요. 해적질이든 청부살인이든 뭐든… 내 생각에 노략질보다는 청부살인이 아닐까 싶소. 노략질은 바다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기에 굳이 먼 길을 거슬러 양자강까지 올 이유가 없지 않겠소?"
"그렇다면 저들이 금위위가 호위하는 누군가를 노린다는 건가요?"
주성진은 말을 하면서 금의위가 호위하는 자가 누굴까 생각해보았다.
'음, 직감에 벼슬이 높은 자는 아닌 것 같고 혹 황족이 아닐까…….'
그 순간 육숭이 고개를 끄떡였다.
"내 생각은 그렇소이다."
주성진는 걱정이 앞선다.
'음, 장소가 안 좋아. 강 한가운데이니… 수심도 깊을 것이고 강둑과의 거리도 너무 멀어. 그나저나 수많은 승객은 어찌한다… 그들이 청부살인의 대상이 아니더라도 횡액을 피하긴 쉽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면 물살이 급류는 아니었다.
점점 더 주성진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느덧 해왕교의 배 3척이 십여 장의 거리로 다가왔다.
각 각의 배 위에는 십여 명의 인물들이 서 있었고, 아마 갑판 밑에서 노를 젓고 있는 자들까지 포함한다면 한 배에 삼십 명가량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바로 이때, 가운데 배에서 이남일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위아래 몸에 착 달라붙는 자줏빛 경장을 입은 여인과 키가 크고 바짝 마른 자와 반대로 키가 작고 뚱뚱한 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육숭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주성진은 지척에 있는지라 그의 독백을 들을 수 있었다.
"신강쌍마가 왜 저기에……."
"신강쌍마가 누구입니까?"
육숭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강 청해호 인근에서 날뛰는 마두들이오. 저기 키 큰 자는 곽여문, 키 작은 자는 문용강이오. 한데 그들이 왜 여기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소이다."
"청해호라고요? 그러면 저들도 물과는 익숙한 자들이겠군요."
"그렇소이다. 어디 그것뿐이겠소. 무공이 상당이 강한 자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