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113화 (113/250)

113화 암흑루에 가다 (1)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네 사람이 생사푸줏간 앞에 멈추었다.

그들은 주성진과 검선 그리고 하오문의 문도 두 사람이었다.

하오문 문도의 이름은 금상벽과 금천일로 알고 보니 둘은 먼 친척 관계였고, 성도의 하오문 지부에서 서열 6위, 서열 5위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

주성진은 금상벽을 바라보았다.

'이 친구가 암흑루에는 가지 않고 왜 여기에 멈춘 거지? 음, 잘 됐다. 나도 볼일이 있었는데…….'

볼일이란 지난번 암상의 제3 암흑전주 양세훈에게 천월무녀도의 일로 서신을 보낸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천월무녀도는 주성진이 서신을 보내기 전에 이미 동창에 팔린 후였다.

그간 바쁜 일로 생사푸줏간에 가본다는 것이 여태 미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때마침 시기가 적절했다.

순간 금상벽이 주성진을 바라본다.

"검호 대협, 잠시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할 일이 있어서요."

"고기를 사려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하."

금상벽은 눈을 깜빡였다.

"혹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여기는 단순한 푸줏간이 아닙니다만."

주성진은 싱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알고 있다니까요. 그건 그렇고 검호 대협이란 말 좀 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그냥 주 상단주라고 칭하면 좋을 텐데요."

금상벽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이, 그러면 홍보 효과가 떨어집니다. 제가 검호 대협이라고 크게 소리쳐야 사람들이 주 상단주님의 별호를 듣고 기억하지요."

"그러면 검호상인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헤헤, 검호상인이란 말도 중간중간 섞어서 말하겠습니다. 근데 혹 여기를 방문하신 적이 있나요?"

"네, 일전에 와본 적이 있습니다. 자재들이 쌓여 있는 걸 보니 곧 공사를 진행할 것 같군요."

금상벽은 주성진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안 끼는 데가 거의 없구나, 어찌 여기까지 안단 말이야…….'

"맞습니다. 주인장 말로는 곧 확장 공사를 한 대요. 새 건물에는 고깃집을 짓고, 내부도 확 다 뜯어고친다고 들었습니다."

주성진은 푸줏간의 주인이 자신의 충고를 실천에 옮기자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잘 될 거야, 곧 결혼 소식이 들리겠군…….'

"그렇군요. 한데 여기는 왜 온 겁니까? 설마 고기를 사려는 건 아니죠?"

"아. 그게요, 암상에 의뢰한 게 있는데 그걸 받으러 왔습니다. 잠시면 됩니다."

주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하세요, 사실 나도 의뢰자입니다. 벌써 왔어야 했는데……."

"아, 그러시군요. 몰랐습니다. 자 그럼 들어가실까요."

내부로 들어가니 푸줏간의 주인이 주성진을 보더니 쪼르륵 달려온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말쑥해지고 직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금상벽을 본체만체하고 주성진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주 상단주님이 계신 객잔에 몇 번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안 계시더라고요."

"이거 미안합니다. 제가 왔어야 했는데 그런 수고를 안겨드렸군요. 왜 서신을 객잔에 남기시지 그러셨어요?"

"그건 곤란합니다. 규칙상 반드시 서신을 개봉할 때 제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간혹 암상에서 전문용어를 사용할 때가 있어서 그때는 제가 용어 풀이를 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서신은 제가 보지 않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 그렇군요. 그럼 서신을 좀 볼까요."

"네. 보여드리긴 할 텐데 미리 말씀드리자면 실망하실 겁니다."

주성진은 주인장이 천월무녀도의 도난 사건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뭐 어떻게 알았겠지, 난 그냥 내색하지 말자.'

"하하. 일이 잘 안 된 모양이군요. 괜찮습니다, 세상일이 어찌 제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그럼, 서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지요."

주성진은 궁금한 표정의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를 따라갔다.

푸줏간 주인의 개인 휴식공간에 들어간 주성진은 그가 건네준 서신을 펼쳤다.

[안녕하시오. 주 상단주. 지난번 도움은 정말 고마웠소이다. 본부에서는 그에 상응한 보상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다만 이번 그대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서 지극히 유감이오. 그대의 부탁이라 안타까웠지만 이미 천월무녀도는 우리의 손을 떠났소이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시오. 조만간 천월무녀도 만큼이나 괜찮은 건이 있을 것이오. 때가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연락하겠소이다. 아마도 6개월 내에는 그대에게 연락이 갈 것 같소이다. 고대해도 좋소……. 그럼 몸 건강하시고, 일간 만나길 고대하겠소이다.]

주성진은 서신을 접으며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하니, 그때를 기다리면 되겠군요."

"아, 그러면 다행입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공사 중입니다. 헤헤."

"잘하셨습니다. 한데 천월무녀도의 일은 어찌 아셨습니까?"

주인장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게, 제가 여자친구와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여 있던 자들이 소리치는 걸 얼핏 들었지요."

"아, 그러셨군요."

"한데 하오문 녀석들과는 어찌 동행하신 겁니까?"

주성진은 간단하게 그에게 이야기해줬다. 어차피 하오문을 통해 알려질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와,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놈들! 민간인들을 수없이 괴롭히더니 결국은 지옥으로 갔군요. 하하."

"당분간은 혼자만 알고 계십시오."

"아이, 그럼요.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이제 검호 대협의 이름이 널리 퍼지겠는데요. 하하."

주성진은 잔잔히 미소 지었다. 그러다 문득 암흑루가 생각났다.

"암흑루를 잘 아시죠? 제가 거기로 가는 중인데……."

"천상원에 가신다고요? 잘 되었습니다. 제가 소개장을 써 드릴 테니, 노태태께 전하면 잘해줄 겁니다. 아, 노태태는 천상원 원주의 유모예요. 무공도 상당하고요."

"암흑루가 천상원이군요. 한데 이름이 기원 같은데요."

그러자 주인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니, 모르셨습니까? 거기가 성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원입니다. 하면 어찌 그곳에 가시게 되었습니까? 필시 하오문 녀석들이 꼬드겼을 것 같은데요."

"제가 그들에게 한턱낸다고 했습니다만 기원일 줄 몰랐네요."

"다른 것은요? 그들이 이야기하지 않던가요?"

주성진은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역시 그렇군요. 금상벽 그자가 천상원 특별관에 가보려고 벼르고 있었나 봅니다. 사실 암흑루는 천상원 특별관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저도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모든 게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술도 최고, 음식도 최고, 분위기도 최고… 하하."

"음, 그럼 좀 비싸겠는데요."

"아닙니다, 공짜입니다. 재주를 선보인 것으로 갈음하는 거죠. 그래도 뭐 하나는 남겨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암흑루에서도 이런 사람이 다녀갔다는 걸 널리 알리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주성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높은 재주를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 암상에서 눈여겨보겠다는 말이겠지…….'

"그래요. 그럼 저는 주인장께 배운 소를 도축해서 발골하는 걸 선보이면 되겠군요. 어때요?"

"아이고 상단주님. 그러지 마십시오."

"하하. 농담입니다."

그 순간 주인장이 주성진 가까이에 다가왔다.

"저, 상단주님,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곳 암흑루에 안남에서 온 귀한 자단목이 있습니다. 너무 단단해서 방치되어 있지만요. 암상의 원로 한 사람이 사업차 안남에 갔다가 수명이 다해 죽은 자단목을 발견하고는 벤 것이라 하더군요."

"……."

"문제는 그분이 갑자기 실종되는 바람에 아무도 건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분의 무공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그분이 보검을 소지하고 있었지요. 만년한철로 만든……. 그분이 실종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여태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아마 암상에서도 답답해하고 있을 겁니다."

"……."

"그만큼 그분의 실종이 암상에게도 큰 손실인 거죠. 더구나 그의 검이 검의 으뜸인 만년한철검이니 두말하면 잔소리죠. 저는 이 이야길, 저희 아버님께 들었는데 아버님이 추측하시길 만년한철 검이나 되니까 자단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주성진도 자단목이 매우 귀한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단단해서 가공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보검을 지닌 무인이 겨우 벨 수 있었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음, 그렇게 단단한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반 쇠보다도 몇 배는 단단한 것 같은데요."

"네, 그렇습니다. 아버님 말씀이 천년 자단목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나무의 나이가 천년을 넘었다는 말이죠?"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해서 말인데 상단주님이 그 자단목을 베서 젓가락을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분명 주 상단주님이라면 가능하시리라 봅니다. 초고수시니까요. 거기에 더해 차고 계신 검도 보검이지 않습니까?"

주성진은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알겠습니다, 한데 저의 검이 보검인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그거야 검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잠깐인데도요?"

주성진은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주변에 파리가 모여들자 검을 휘저어 파리를 모두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반 토막으로…….

"네, 상단주님. 칼은 직업상 저에게 상당히 중요한 도구랍니다. 뭐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목이 생긴 것이지요."

"그렇군요. 자, 그럼 나갈까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해할 것 같으니까요."

"아, 네… 참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제 말을 완전히 이해하신 거 맞죠?"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뭔가 걱정이 되십니까?"

"사실 자단목을 자를 수는 있을 겁니다. 검강이나 그 이상의 무공을 쓴다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단목이 파괴되어 쓸모없게 돼버리지요."

"하하. 이미 이해했습니다."

주성진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하오문 문도들이 주인장을 따라갔다.

그사이 기세옥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던데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었나?"

"아, 어르신이 고대하던 일이 빨리 찾아올 것 같습니다. 암흑루가 기원이라고 하네요."

"그래? 그거 잘 되었군. 한데 하오문 녀석들에게 듣지 못한 거야?"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뭐, 좀 느낌이 이상하긴 했는데 자세한 건 물어보질 않았어요. 어딘들 못 가랴!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뭐, 하긴 돈이 많으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았겠지……."

"헤헤, 여기 주인장이 말하길 음식값은 물론이고 화대도 공짜라고 하던데요. 물론 그들이 정한 심사를 통과해야겠지만."

기세옥의 눈이 반짝였다,

"뭐라, 공짜라고! 그러면 다음에 한 번 더 가면 되겠네. 이번엔 너의 재주로 들어가고, 다음엔 나의 재주로……."

"하하, 그런가요. 한데 그렇게 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같으면 제약을 걸어둘 것 같습니다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