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압도적 무위를 선보이다
두 사람의 뒤쪽에 있던 10명의 산적이 득달같이 앞쪽으로 달려 나왔다.
주성진은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번들거리는 눈에서 짙은 살기를 느낀 탓이다.
'사람을 많이 죽여 본 눈빛이야. 죗값을 치르게 해야겠어…….'
10명의 산적은 대오를 정비하더니 돌연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
그들은 계속 함성을 내지르며 주성진에게 달려들었다.
한데 무기들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자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또 어떤 자는 도를 들고 있었다.
심지어 못을 박은 방망이를 휘두르는 자도 있었다.
일반인이 보았다면 오금이 저릴 상황이지만 주성진은 고요한 바다인 양 태연했다.
'산적치고는 제법 강해 보이는 군, 뭐 그래봤자 도토리 키 재기지만.'
주성진은 천천히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란 말이지…….'
주성진은 기세옥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기세를 바꿨다.
순간, 내재한 내력을 고스란히 드러내자 산악 같은 기운이 그의 몸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압도적인 기세에 공격하는 자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들은 주성진이 뿜어내는 기도를 이기지 못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분분히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한데 그 순간, 대기를 가르고 날카로운 소성이 주성진의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쐐애액!
제법 심상치 않았다.
'저놈은 끝까지 비겁하군, 활을 몰래 쏘다니…….'
"야합!"
주성진은 기합을 내지르며 신형을 높이 띄웠다.
그 순간 화살은 그의 발밑을 지나갔고, 주성진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상대 가까이에 다가갔다.
주성진의 빠름을 제대로 본 자가 없었다. 단지 절정의 고수인 염동원만이 흐릿하게 봤을 뿐이었다.
염동원은 기겁하며 몸을 피하려 했다.
"허억……."
하지만 그가 채 움직이기도 전에 날카로운 기운이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버렸다.
"스걱!"
허공을 채우는 붉은 선혈…….
극히 짧은 순간, 염동원의 머리가 허무하게 잘려나가 버렸다.
쉴 틈 없이 주성진의 발길이 쏘아진 화살처럼 산적들에게 향했다.
짧은 순간 주성진의 오른손에 수많은 진기가 몰려들고, 연이어 그의 검이 스르륵 허공을 향한다.
위잉!
막대한 기운이 공간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크아악……!"
지옥의 저편에서나 들려올 처참한 비명.
겹겹이 쌓은 인의 장막이 두부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주성진의 검이 번쩍이는 순간 무기는 물론이고 모든 것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뒤편에 있던 녹림의 총채주는 소름 끼치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절로 나왔다.
"위…위험하다고!"
하나 그의 외침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목에 뭔가가 스쳐 지나간 것이다.
툭!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못 컸다.
오백에 달하던 산적들이 모두 전멸한 거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하오문의 문도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동안 충격에 휩싸인 그들 중 하나가 겨우 동료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세상에 저런 무공이 존재할 줄이야. 혹 저것이 이기어검인가?"
"그래, 전설의 이기어검…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간 곳은 모두 피바다가 되어 버렸어."
"우리는 방금 무림의 새로운 강자를 목도한 거야.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주성진도 잠시 충격에 빠졌다가 정신을 되찾았다.
바닥에 이르렀던 내력이 서서히 돌아오고 몸이 가뿐해지기 시작했다.
'이거야 원… 하수들에게 다시는 쓰면 안 되겠구나. 닭 잡는 칼과 소 잡는 칼은 다른 법인데.'
그 순간, 기세옥이 다가와 주성진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좀 멍할 것이다. 안 그러냐?"
"네, 그렇습니다. 제 손으로 펼친 게 맞는지 믿어지지 않는군요. 뭐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내가 여러 번 강조했지만 한 번쯤은 과시할 필요가 있어. 무림에서 명성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니야. 다 피를 동반하지……."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거렸다,
"강자존이란 말이 실감 나는군요."
"하여간 큰일을 한 거야. 오늘의 일로 녹림도들의 세가 많이 축소되었을 것이니까. 그나저나 죽은 놈들, 생각보다 치사하고 잔혹하던데. 많은 인원수도 모자라 독화살까지 준비해오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무공이 약했다면 당한 건 오히려 저였겠지요. 그나저나 녹림도들을 사주한 인간들을 가만히 나둘 수가 없겠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니까요."
기세옥이 싱긋 웃는다,
"이봐, 천천히 해. 숙명의 적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어. 일부러 피한다고 해도 결국은 부딪친다, 이거야."
"하하, 그런가요. 저도 당장 급하게 결행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이후로 저는 어떻게 알려질까요? 육두 괴물로 불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궁금하면 저기 하오문 녀석들에게 가봐. 잘 부탁한다고 하면 되지 않겠나……."
주성진은 손을 내저었다.
"에이, 뭐. 그러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이기어검을 펼쳤으니까 그에 걸맞은 별호가 하나 생기겠지. 오늘 자네가 느꼈겠지만 설사 절정의 고수라 한들 자네 앞에서는 바람 앞에 등잔불이라고. 이게 뜻하는 바가 뭔지 실감이 좀 나지?"
"네, 그렇습니다. 무공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저도 누군가의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잔불이겠지요……."
기세옥은 하늘을 한번 쳐다봤다가 다시 주성진과 눈을 맞추었다,
"반로환동한 고수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내 생각에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거야. 잘하면 비등비등할지도 몰라. 아, 그리고 그들만 반드시 강하다고 볼 수 없어. 누군가가 웬만한 공격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 가령 강기에도?"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기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요? 혹 금강불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알기론 금강불괴라 하더라고 압축된 강기는 못 버틴다고 들었는데요."
"내가 말하는 건 전설의 금강불괴지신을 말하는 것이지. 이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강시일 수도 있어."
"그럼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말입니까?"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도 존재할 수 있어, 어딘가에서……. 우리가 모를 뿐이지. 허허."
"음, 이거 오싹한대요. 그런 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게 사람이든 강시이든 간에."
"하지만 말이야 창이 있으면 방패가 있고. 방패가 있으면 창이 있는 법이지. 이기어검이 최고라고 볼 수 없듯이 금강불괴지신도 완벽할 순 없어. 결국은 깨지게 되어 있다고."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국, 끝이 없다는 말이군…….'
"어르신, 그러면 금강불괴지신을 깨려면 어떤 무공이 필요할까요."
"자네도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왜냐면 보검을 지니고 있으니까. 음, 그 외의 방법으로는 붕검이라는 게 있지. 말 그대로 산을 붕괴시킨다는 검법이야. 그 외도 찾아보면 좀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떠오르지 않네……."
"그럼 심검은 어떻습니까?"
그가 빙그레 웃는다.
"심검은 궁극의 검이지, 그거 아나? 자네가 하늘의 신선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네."
"그럼, 심검은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난 그렇게 생각해. 뭐 그렇다고 내 말이 정답이라고 믿진 말게. 하하."
잠시 후, 지진으로 생긴 계곡에 거대한 무덤이 만들어졌다.
'다 끝났군. 이제 돌아갈까.'
그 순간 자발적으로 일을 돕던 하오문의 문도 하나가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가까이 오기를 꺼렸지만, 같이 땀 흘려 일하면서 그런 위화감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주성진을 대하는 자세는 깍듯하다 못해 경건했다.
"주 상단주님, 죽은 자들 중에 녹림의 총채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쓸 만한 무기를 수습하던 차에 이걸 발견했습니다."
그가 손에 든 것은 검집과 검자루가 모두 녹색 일변도인 날카로운 검이었다.
주성진은 그 검을 보면서 명검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검이라 생각했다.
"녹색 검이라 할 수 있겠군요."
"그들은 이것을 녹옥신검이라 부르지요. 총채주를 상징하는 검입니다."
"녹옥신검이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검집에 푸른 옥이 박혀 있군요. 어쨌거나 횡재하셨습니다. 돈이 좀 될 테니……."
순간 그가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헤헤, 덕분입니다. 당분간 원 없이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총채주가 죽었으니 누가 후계가 될까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 곧 녹림 대전이 열릴 것 같습니다."
주성진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녹림 대전이 뭔가요? 혹, 총채주를 뽑는 대회인가요?"
"헤헤, 그렇습니다. 보통 한 달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력한 후보는 그래도 녹림 18채의 채주들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의 무공이 제일 세니까요."
"그렇군요. 그러면 그 기간이라도 산적들이 자취를 감추겠네요?"
그가 즉각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날뛸걸요. 왜냐면 18채에 속하지 않는 산채들이 슬금슬금 그들 영역 밖으로 기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 그러면 안 되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제가 벌인 일로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곤란하지요."
"헤헤. 검호님의 별호를 팔면 될 것 같습니다만."
주성진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직감적으로 자신을 지칭한 것 같아서였다.
"저 말입니까?"
"네, 제 동료와 검신과 검호를 두고 고민했습니다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에 검신이라는 칭호를 받은 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검호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주 상단주님의 별호는 검호상인 줄여서 검호이지요, 헤헤."
주성진은 얼떨떨하다. 하지만 왠지 싫지는 않았다.
"하하, 육두괴물로 불릴 줄 알았는데 검호라니, 제게 과분한 칭호 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과분하다뇨. 오히려 전 죄송한 마음입니다. 더 좋은 별호가 있을지 모르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서요."
주성진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잘 지어주셨습니다. 어디 좋은 음식점이 있으면 가시죠. 제가 한턱 대접할 테니까."
그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정말입니까? 이거 너무 흥분되는데요. 검호님과 같이 술을 마시다니 말입니다."
"대신 술주정을 부리면 안 됩니다. 제가 주사가 있는 사람을 싫어해요."
"아이고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술주정을 부리겠습니까. 한데 말입니다. 제가 술집에 관해서 제안할 게 있는데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여다.
"말해 보십시오."
"암흑루에 가시면 어떨까요. 암상이 운영하는 술집인데 중원에 몇 개 존재하지 않아요. 다행스럽게 이곳 성도에 있습지요. 헤헤."
주성진은 암흑루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데 전 들어보지 못했을까요? 그렇게 유명한 곳이라면."
"대외적으로 이름은 따로 있고요. 실은 그곳에 입장하려면 자격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재주를 남겨서 합격해야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합격하면 본인 외 일행 네 명을 더 데리고 갈 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