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녹림의 등장 (2)
"저 한데요, 형님. 우리가 주성진을 죽일 수는 있는 거죠?"
"그럼, 독화살을 준비했잖냐? 그걸로 주성진은 끝이다."
"아. 그걸 깜빡했네요, 헤헤."
그러다 또다시 뭔가가 생각난다.
"만일 형님의 생각과 반대로 사도련의 고수가 우리를 돕는다면요? 그러면 양상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이춘삼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럴 것이면 애초에 일을 복잡하게 꾸미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그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을 거야. 그래서 계책을 세운 것이지. 나같이 그들에게 덜 협조적인 자들도 제거하면서 동시에 원하는 걸 달성하고자……."
곽산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총채주님, 이번 일이 형님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해도 다음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사도련에서 형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조심하면 돼. 그리고 시간을 벌고 대비하면 된다. 사도련에도 나와 우호적인 세력이 있으니 그들과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말이다. 또한, 만일 그들이 총무련이 이루어 놓은 질서를 깨러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온다면 날 제거할 겨를이 없을 것이야. 그야말로 전면전이 발발하는 것 아니냐고……."
"형님, 우리는 언제 사도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춘삼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무공이 강해지면 된다. 자고로 힘센 놈이 제일이니까,"
"그걸 누가 모른답니까. 더 올라갈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까 문제지요."
"느긋하게 기다려봐. 사도련 ,마교, 정파의 잔당들이 총무련에 반기를 들면 그때 기회가 생길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곽산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놈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울 때 어부지리를 노리자는 말 아닙니까. 그러면 혹 빈집털이?"
"하하. 그래, 잘하면 힘 안 들이고 쓱싹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넌 지금부터라도 눈독 들인 무공이 있으면 정리해 놓으라고……."
그 순간 곽산의 뇌리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한데요, 저희더러 전쟁에 참여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요?"
"그러면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산속 깊숙이 들어가야지, 개죽음은 피해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
"……."
한편, 그 시각 주성진은 당가의 회의실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상당히 상기되어 있다.
'휴, 이것으로 사천상단의 일이 마무리되었구나. 한데 좀 시원섭섭한데…….'
주성진의 처지에서 보면 조금은 억울할 수 있었다.
사천 상단주가 건넨 자금 중 운영자금을 제외한 거의 9할에 이르는 돈이 그의 수중을 벗어났으니까…….
하지만 주성진은 이번 거래에 충분히 만족해했다.
사천 상단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큰 성과는 없었다. 덤으로 내공까지 늘어 버렸고.
또한, 거래처와의 혼동을 염려해 당분간 사천상단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주요 의사 결정은 임시지만 사천상단의 원로들이 본인을 대리하는 것으로 했다. 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역시 무공을 익히길 잘했어… 쉽사리 부정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야.'
주성진은 원로들이 딴마음 갖지 못하게 엄청난 무위를 보여주었다. 간담이 서늘하도록…….
순간 당가의 가주 당운악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제 당가타로 갈 것이오? 나는 말리고 싶소만."
"아닙니다. 매듭은 제가 풀어야겠지요. 산적 놈들이 나를 노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력이 필요하지 않소? 그들 숫자가 너무 많은데……."
당가 가주의 말은 진심이었다.
"저를 도와줄 분이 계십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지요."
"알겠소, 그들이 녹림도라고 하나 칠 명분이 없으니……."
"이해합니다. 저도 그들이 순순히 물러난다면 살계를 열지 않을 작정입니다. 단순히 산에서 내려왔다고 그들을 해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잠시 후, 당가를 나선 주성진은 객잔으로 돌아와 기세옥을 만났다.
"가시죠?"
"잠깐 저잣거리에 들렀다고 가자고, 내가 널리 소문을 퍼뜨릴 하오문의 문도들을 섭외했으니까……."
주성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오문의 문도를요? 왜요?"
"그야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것이지, 내 말을 잘 들어보게."
"알겠습니다."
기세옥이 뜸을 들이더니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라고. 그래야 너를 우습게보지 않을 테니까. 어중이떠중이가 수시로 시비를 걸면 피곤하잖아. 사업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고."
"음,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면 자칫 그들이 많이 죽을 텐데요……."
탁!
기세옥이 주성진의 어깨를 쳤다.
"이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들이 녹림도가 분명하다면 모조리 주살하게. 괜한 자비심을 가지지 말고."
"그들이 공격하지 않아도요?"
"공격할 거야, 분명……. 그리고 그런 자들이 없어져야 세상이 좀 편해진다고."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뭐,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때론 독심이 필요하다고. 아, 그리고 하오문 녀석들은 소문을 퍼트리라고 데리고 가는 거야. 너의 압도적인 무위를 널리 알리게끔…….
"……."
* ? ? * ? ? *
당가타에 다섯 명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두 사람 뒤에는 세 사람이 널찍이 떨어져 있었다.
하오문 문도들은 혹시나 피해를 볼까 봐, 떨어져 있는 거였다.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주성진은 기세옥을 얼굴을 쳐다보곤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곤 곧바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던 녹림 부총채주 염동원은 자신의 직속 부하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길쭉하여 말상 같이 생긴 자였다.
"어이 기동우, 저기 오는 자가 주성진이 맞지?"
"네. 맞습니다. 사도련에서 제대로 유인한 것 같습니다. 겁도 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영접해주어야지. 슬슬 약을 올리다가 단박에, 하하……."
그러자 그의 부하가 말린다.
"부총채주님, 제가 먼저 말을 걸겠습니다. 형님은 성격이 급해서 말이죠, 헤헤."
"이봐, 요즘 내가 정신 수양을 많이 쌓았다고. 폭급한 성격은 다 지난 일이야. 조만간 총채주가 될 몸인데 그 정도 노력은 안 했을 것 같나……."
"그럼, 자신 있으면 해보세요. 대신 제가 옆에 가까이 붙어 있겠습니다."
"……."
기동우와 그의 부하는 5장을 사이에 두고 주성진과 마주했다.
"크크크,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걸 보니 똥줄이 딴 모양이구나……."
주성진은 눈빛을 반짝였다.
'저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고.'
주성진은 본인이 모르는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상황을 좀 파악해 봐야겠구나.'
"내가 어떡하면 되겠나?"
"어떡하긴 어떡해, 은자 십만 냥을 내놓으란 말이다. 그래야 너의 부하들을 풀어줄 테니까."
주성진은 미간을 잔뜩 좁혔다.
'저놈들이 장사성에 있는 내 상단을 급습했단 말인가……. 음 거긴 연화랑 선배도 계시고, 천화각 지부도 뒤를 받쳐주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그래도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은자 십만 냥은 준비해왔다. 그 전에 내 부하들이 무사한지 보자꾸나."
"어이, 주성진, 칼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는데 무슨 조건을 달아. 당장 십만 냥을 내놓지 않으면 너희 부하들의 목숨은 없다."
"잠깐! 만일 그리한다면 너부터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순간 염동원이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활을 겨누기 시작했다.
"후후, 독화살이다. 조금만 스쳐도 죽는……."
염동원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주성진을 바라본다. 용용 죽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주성진은 미미한 미소로 화답하며 오히려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이봐, 많이도 준비했군. 그리도 네가 두렵더냐?"
"어린놈이 제법 실력이 있다고 하더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누가 네놈을 두려워한다고 하더냐. 이게 다, 전술이다. 부하들의 희생을 줄이려는 숭고한 정신이란 말이다……."
주성진이 그 말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흥, 뭐라, 숭고한 정신! 그러면 나와 일대일로 붙어보자. 그게 더 정정당당하지 않을까. 네 부하의 희생을 줄이려면……."
"이봐, 지금의 자리는 인질 협상 자리야. 네놈과 싸우려면 벌써 싸웠을 것이다."
"아주 입만 살았군. 좋다, 다시 말하마. 내 부하들을 여기에 데리고 오라고! 그러면 돈을 내줄 테니까……."
염동원은 지저분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주성진을 노려보았다.
'제법 강단은 있군, 언제 화살 세례를 받을지 모르는데 큰소리를 치다니. 아니지, 정말로 저놈이 초고수일까…?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되지 않나?'
아무리 높게 쳐주어도 자신과 동급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 착각일까? 세상은 보이는 만큼은 보인다고 하던데……. 음, 그렇다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한편, 주성진은 열심히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죽이려고 일을 꾸민 것 같은데, 독화살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점점 인질극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주성진의 뇌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만일 나를 유인하려고 했다면 사전에 나에게 연락했겠지. 이리 오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통보는 전혀 없었어. 좋아, 한번 시험해보자고!'
주성진은 품속에서 진짜 전표를 꺼내 상대를 보며 흔들었다.
"이건 대륙전장이 발행한 은자 10만 냥짜리 전표다. 만일 인질을 내게 보여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모두 찢어버릴 것이다."
염동원은 주성진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제길, 내 생각대로 안 되는구나. 만일 정말 전표를 찢어버린다면…….'
염동원은 눈알을 빙빙 돌리다가 자신 옆 의동생의 발을 살짝 눌렀다.
모종의 신호 같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능글맞은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주성진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면서.
"하하, 알았다. 인질을 데리고 오지. 그럼 잠깐만 기다려라. 내가 부하에게 명을 내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피융!
갑자기 수많은 화살이 주성진에게 들이닥쳤다.
하나 주성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주성진은 염동원의 수작을 처음부터 읽고 있었다.
어느새 검집을 벗어난 주성진의 검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잉!
무슨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걸까?
하늘에서 일진광풍이 휘몰아치더니 날아오는 화살들이 방향을 잃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염동원은 경악하자 그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아악, 저럴 수가… 화살들이 튕겨 나가잖아…….'
주성진은 피식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흥, 날 잡기 위해 술수를 부렸다, 이거지. 떼거리로 몰려와서……."
염동원은 급했다. 급히 그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뭐해. 저놈을 그대로 볼 참이냐?"
"그럼 어떡해?"
"탸격대를 내보내라. 활은 내게 주고"
기동우는 얼른 활과 화살을 건넸다. 염동원이 명궁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곤 뒤로 돌아 소리쳤다,
"타격 1조 앞으로 나가!"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