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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10화 (110/250)

110화 녹림의 등장 (1)

"만약 그대가 동의한다면 상단의 전체 사업권을 군말 없이 넘기겠소. 그리고 내가 모은 전 재산도 내놓겠소이다."

주성진의 얼굴에 보일락 말락 한 미소가 피어났다.

'휴, 다행이다. 자발적으로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하니……. 물론 액면 그대로 믿는 건 바보지. 숨겨진 재산이 반드시 있을 거니까. 예를 들어 타인 명의라든가…….'

순간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음, 거기에 더해 내가 중원의 각 지점에 친필로 협조하라는 공문을 써주겠소이다. 아마 그대는 이 일의 중요성을 익히 잘 알 것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상단주가 바뀐다면 지점장들이 반발하겠지요."

"그렇소, 지점장은 보통 상단주의 최측근이라 그런 변고에 대해서 꽤 완강한 편이라오. 강하게 나갔다가는 오히려 독립하겠다며 반기를 들지도 모를 일이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 그리고 몇 가지 추가로 질문할 것이 있는데 대답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방일우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뭐든 주저 없이 물어보시오. 아는 대로 다 말할 테니……."

"첫째는 사도련 잔당의 동향입니다. 그걸 좀 상세히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음,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소이다. 하지만 그래도 틈틈이 기록해둔 게 있으니 그걸 넘기겠소이다."

주성진은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고맙습니다. 한데, 사도련 잔당의 보복이 두렵지 않습니까?"

"만일의 수를 준비한 것이 있소. 당분간 중원을 떠날 것이오."

주성진은 역시 노회한 상인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겠지,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이야.'

"당가타 지역에 수상한 무리가 출몰했다고 하는데 알고 계십니까?"

"그들은 녹림의 무리일 것이오."

방일우는 말을 하면서도 찔리는 것이 있었다. 그 또한 공범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세상이 다 그런 것이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그러니까 녹림도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이게 다 주 상단주와 관련이 있소이다."

"뭡니까? 그러니까 절 죽이려고 몰려들었단 말입니까?"

방일우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그대가 당가의 반역도를 죽인 것에 대한 보복이지……."

주성진은 그럴 것 같았다

'역시 내 짐작대로군.'

"저, 이거 하나만 먼저 대답해주시지요, 사도련의 잔당들이 가까운 시일에 당가나 청성 아니면 아미를 공격할 건가요?"

"음, 그대들이 걱정하는 대규모 전쟁은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소. 내 생각에 계획이 더 늦춰질 것 같소이다. 이번 일 때문에……."

"이번 일이라면 사천상단을 말하는 것입니까."

방일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그대를 죽이려다 되려 산통을 깬 격이요. 정체가 발각되었으니 말이오."

주성진은 사도련의 잔당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자 다소 안심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시기가 문제일 뿐이구나.'

그 순간 방일우의 말이 그의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사천상단을 잘 부탁하오. 내가 비록 손을 떼지만, 그래도 나중에 소식을 들었을 때 더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소이다."

"최선을 다하지요, 우선은 관과의 관계가 급선무겠지요?"

"그렇소. 우리 상단이 가진 소금과 차 전매권, 그리고 곡물 운송권을 잘 관리하길 바라오. 호시탐탐 노리는 상단들이 많을 테니."

"잘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빨리 만성 독약에 벗어나고 싶소이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음, 재가를 서둘러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해관계자가 많아 다소 지연될 수도 있으니 그 점은 양해해 주시지요."

주성진은 혹시나 몰라 토룡지왕의 내단을 먹을 생각이었다, 내공독이 생각보다 강하면 본인에게 치명적이기에…….

"하하, 만성 독약에 중독된 게 이렇게 전화위복이 될 줄은 몰랐소. 그대가 고분고분 내 말을 다 들어주니… 안 그랬으면 내 모양새가 처량했을 거요. 물론 내가 도망치다 잡힌다는 전제하에."

"음, 효과적인 위협수단이었습니다. 그게……."

* ? ? * ? ? *

당가타의 계곡에서 두 인물이 대화하고 있었다.

"형님, 너무 많은 인원을 데리고 녹림 총채를 내려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며칠째입니다만……."

"이봐, 곽산 군사,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총채주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너! 군사 자리를 잃고 싶은 거야,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기껏 군사라는 직책을 주었더니 쯧쯧."

"아니 절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이… 춘… 삼… 총채주님! 제가 여태껏 실패한 작전이 있었나요?"

그러자 총채주가 비웃는다.

"야, 기껏 산채 하나 주름잡은 것 가지고 큰소리는… 녹림 총채는 일개 산채가 아니란 말이다. 18개 산채를 쥐락펴락하는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아니, 그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작은 물에서 놀았다고 우습게 보는 것입니까?"

"동생아, 잘 생각해봐라, 내가 왜 나의 직속을 단 50명만 데리고 왔겠어. 나머지는 총부채주 산하의 놈들이고."

"그야 파벌 배분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녹림의 총채는 크게 두 파로 분리되어 있었다. 총채주파와 총부채주파로…….

그들은 사사건건 대립하며 호시탐탐 녹림을 장악하려고 일을 꾸미고 있었다.

"쯧쯧, 난 이번 원정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아무리 사도련에서 엄호한다고 해도 가까이에 당가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단 말이다. 더구나 당가 가주의 회갑 잔치로 인해 정파의 벌레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게 사도련에서 꾸민 음모일지도 모른다."

"……."

"이이제이의 계책이지. 눈엣가시 같은 나도 제거면서……."

곽산은 큰 눈을 껌뻑이며 총채주 이춘삼을 바라보았다,

"제거한다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그… 뭡니까? 상인 놈 하나만 죽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핑계로 겸사겸사 가볍게 바람 쐬러 나온 것이고요."

이춘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러니 네놈에게 군사를 맡긴 걸 후회하는 것이라고. 뭐 맡길 인물이 마땅치도 않았지만……. 잘 생각해봐라, 아무리 상인 놈이 초고수라고 해도 우리의 인원은 물경 오백이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더구나 나까지 산에서 나오라고 요구했단 말이다. 사도련의 대외총책 놈이……."

"그야 녹림에서 고수라고 해봤자 몇 안 되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더구나 절정의 고수는 열 명도 채 안 되지 않습니까? 저와 총채주님을 포함해서요."

"물론 네 말이 맞지. 한데 왜 당가타로 오라고 했을까. 아무리 사도련 쪽에서 그놈을 유인한다고 해도 너무 위험해. 당가와 너무 가까운 거리란 말이다. 그 말은 우리와 당가를 양패구상케 하는 술책인지도 모른다고."

곽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춘삼을 바라보았다.

"저, 유인이라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 참. 내가 너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구나. 다름 아니고 사도련에서 주성진을 유인하기 위해 가짜 납치극을 꾸민 모양이더라고, 우리가 장사성에 있는 주성진의 부하들을 납치한 거로 말이야."

"……."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몸값 십만 냥까지 요구할 모양인데 성공하면 우리더러 가지라고 하더라고."

"부총채주도 아는 일이겠네요?"

총채주 이춘삼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놈도 알고 있다. 너도 알다시피 주요한 사항은 둘이 같이 협의하니까."

"한데 정말 올까요? 저 같으면 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부하야 죽든 말든……."

"그놈은 정파 출신 아니냐. 그러니 올 것이다. 본인 무공을 과신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순간 곽산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앞으로 가야죠. 전방에 있는 총부채주가 십만 냥을 꿀꺽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놈이 나와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그런 짓은 못할 것이다."

"허 참, 너무 한가하시네. 제가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우리 같은 도적이 누굴 믿습니까. 아무도 믿지 못하죠. 믿는 도끼에도 발등을 찍히는데 하물며 믿지 못하는 도끼라면 더더욱!"

그러자 이춘삼이 쌍심지를 켰다.

"그러면 네놈은 나를 믿지 못한다는 거냐? 오라, 언제든 나를 저버릴 생각이군……."

곽산이 양손을 마구 휘저었다.

"아이고, 그건 아니죠, 형님! 형님은 당연히 예외죠. 제가 의형제를 맺을 때 맹세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피의 맹세는 반드시 지킵니다."

그들은 의형제를 맺을 때 혈서로 맹약했었다. 절대 서로 배신하지 않기로…….

이춘삼이 다소 누그러진 투로 말한다.

"내 생각에 부총채주는 주성진에게 절대 십만 냥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인질이 없잖아. 주성진이 멍청이가 아니라면 인질금을 주기 전에 인질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먼저 확인하려 들 거다.

그리고 그게 보통 인질극의 관례야. 돈과 인질을 맞교환하는 거지."

"아니 진즉에 말씀하시지, 괜히 혹 했잖아요."

"그러니 좀 머리를 쓰란 말이다."

곽산이 머리를 긁적인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말이야, 주성진이 조촐하게 수행원 몇만 데리고 올 것 같아? 절대 그렇지 않아, 분명 정파 놈들을 데리고 올 거야."

곽산이 눈을 치켜떴다.

"형님, 그가 정파 놈들을 떼거리로 데리고 온다고요? 그건 말이 안 되죠. 사도련에서 가짜로 꾸민 거지만, 어쨌든 납치된 인질을 데리러 오는데 그런 위험한 수를 두겠습니까?"

"여기가 옛 당가가 있던 곳이란는 걸 잊지 마라."

"혹, 그럼 비밀 통로로 온다는 말인가요?"

이춘삼이 고개를 끄떡였다.

"십중팔구……. 설사 비밀 통로가 없더라도 여기 지형을 잘 알고 있으니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사도련에선 그 점을 알고 우리를 여기로 집결시켰던 것이야. 둘이 열심히 치고받다가 전멸하라는 거지……."

곽산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린다.

"총채주님. 그런 걸 알면서도 밤낮을 달려 여기에 온 이유가 뭡니까. 사도련 대외총책의 말을 무시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사도련이 무섭습니까?"

"무섭지. 너는 당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사도련의 무서운 고수들을……. 더구나 내 자리를 노리는 총부채주 측에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만일 사도련에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자칫 내 자리가 위태로워진다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을 들었다는 말이네요. 아, 잠깐!"

곽산은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게 형님의 계책이라면, 꿩 먹고 알 먹는 것이 아닌가.'

"저, 총채주님. 방금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염동원 측의 인원을 많이 데리고 온 게, 혹 그들을 불쏘시개로 쓰려고 한 것입니까."

염동원은 총부채주의 이름이었다.

이춘삼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다. 이제야 군사답구나. 주성진을 제거하는 사이에, 당가 놈들이 쳐들어온다면 염동원과 그의 부하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거지. 우리는 싸우는 척하다 불리하다 싶으면 철수하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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