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목금양과 대결을 펼치다
극쾌의 묘리를 담은 한 수인지라 검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화산옥봉 감여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아,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더니 왜 이리 고수들이 많은 거야. 나도 쉬지 않고 정진했건만… 고작 나의 위치는 강호에서 별 볼 일 없었구나, 뭐 어쩔 수 없지. 현재 나의 위치를 알았으니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주성진 그 친구와 좀 더 가까이 지내야겠어. 뭔가 감추는 것이 많은 것 같단 말이야, 잘하면 내공을 좀 더 늘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녀가 한탄할 정도이니 나머지 일행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개방 장로 이곽춘이 느끼는 자괴감도 감여군에 못지않았다.
'제길… 웬만하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건 여반장일 줄 알았는데, 이게 도대체 뭐야. 눈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공격이라니…….'
이러니 나머지 일행들은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삼선녀는 주성진의 안위가 걱정되어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강설현이 몸을 휘청거리자 맏언니 강설주가 허리를 붙잡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
"언니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다니까, 주성진은 쉽게 죽을상이 아니었어……."
그녀는 동생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정작 본인의 가슴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둘째 강설진이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설현아, 새로 합류한 설산검객의 얼굴을 봐. 아주 평온하다 못해 흐릿하게 마소까지 짓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녀뿐 아니라 나머지 일행들은 설산검객으로 분한 검선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초고수의 풍모가 은연중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떨어져 있었다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여태 그와 가까이에서 웃고 떠들며 지내 왔다.
아무리 검선이 기세를 감춘다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때때로 긴장이 풀리기 마련이라…….
'좋아!'
상대의 공격이 엄청나게 빠른 것을 느낀 주성진은 긴장 속에서도 한줄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법에는 지법이지……. 천산지로 대응하자고!'
사실 천산지의 장점은 은밀함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파괴력이나 쾌속함이 모자란다는 뜻은 아니었다. 특히나 공력이 높은 주성진에게는…….
'잘 어울릴 것 같아.'
적이 강해야, 본인 무공의 진가를 속속들이 아는 법이었다. 천산지의 진정한 위력을 알아보기에는 상대의 빠르고 강한 공격이 안성맞춤이었다.
주성진 손이 스르륵 움직였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에 부드러움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펑……!
둔탁하기 이를 데 없는 음향이 터지며 주성진과 목금양의 손이 부딪쳤다.
목금양이 얼굴을 살짝 일그러졌다.
보통의 고수라면 자신의 일지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손가락이 부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듯했다.
'음, 한 수를 지니고 있었구나. 건방진 애송이가 아니었어. 그렇다면…….'
목금양은 심기일전하여 재차 공격을 펼쳤다. 두 번째로 뻗어 내는 그의 지법은 처음과는 차이가 있었다.
손가락을 그저 내밀어 뻗어 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검극처럼 손끝을 세워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중지 끝에 맺힌 수강은 끝이 뾰족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세는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였다.
주성진은 이를 보고 느껴지는 게 있었다.
'손가락을 엄청나게 단련했구나. 비슷한 수법이라도 단련한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훨씬 위력적이지. 하지만 공력 차가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야…….'
주성진은 자신 있게 재차 손가락을 뻗었다.
휙!
상대가 먼저 선공하였다곤 하나 이미 선착의 묘는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만일 주성진이 독하게 마음먹었다면 되레 방어하는 것은 목금양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퍽……!
좀 전보다 짧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음…….'
목금양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검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품었음에도 상대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손가락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진 거였다.
다만 뼛속까지 파고들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한순간 그를 주춤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주성진은 든든한 자신의 내공에 흐뭇해했다.
'역시 강한 내공이 최고야. 만일 동등한 내공이었다면 내가 손해를 보았을지도 몰라. 상대의 날카로움 때문에…….'
상대가 주춤할 땐 곧바로 반격하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주성진은 공격을 자제했다.
상대가 불구대천 원수도 아니고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정파에 속한 인물이었다.
'상대의 다음 수를 보자고,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군.'
목금양은 내력을 더욱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강기까지 뚫어 버린다!'
목금양의 손에 맺힌 우윳빛 광채가 마치 주변을 오시하듯 일렁이기 시작했다.
주성진은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뭐야, 이건…….'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상대의 내공은 냉기를 띠고 있었다.
'그의 내공심법은 음한 계통이었어.'
쐑……!
오싹한 한기를 머금은 그의 손이 대기를 갈랐다.
'뭐야, 한 자루 창을 보는 느낌이네.'
주성진은 순간 호기가 치밀었다.
'누가 강한지 해보자고…….'
눈 깜작할 사이에 두 줄기 수강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맞부딪쳤다.
콰아앙!
무슨 화약이 터지는 듯하다. 파괴력이 센 만큼 충돌음도 비례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으음……."
목금양의 얼굴빛이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회심의 수를 펼쳤음에도, 상대는 너무나 수월하게 본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순간 그의 뇌리에 의문이 맴돌았다.
'설마 날 봐주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상대는 자신의 공격에 적당히 대응하는 것 같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서…….
'음 이거 짜 맞춘 듯한 느낌인데, 좋아 그렇다면 연환 공격이다.'
"야합!"
그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금 쏟아지는 연속된 공격.
쐑……!
그의 수강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가공할 속도로 주성진의 몸통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데 막 그와 부딪칠 찰나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헛!"
'뭐야, 저건…….'
주성진의 방어에 변화가 생긴 거였다.
창이 무색할 정도로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자신의 공격에, 맞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격을 옆으로 흘리고 있었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는 주성진이 주변을 배려한 것이었다.
폭발음이 들린 순간 곁눈질로 삼선녀를 보았을 때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설현은 아예 귀까지 틀어막고 있었다.
목금양은 강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공격은 그냥 흘려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도대체가 말이 안 돼.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을 부딪치지 않고 옆으로 비켜낸다고!'
상대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력을 흘려보낸다는 건 상대의 손이 섬전과 같이 빠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세를 무시할 만큼 강한 내공이 깃들어 있음을 의미했다.
'뭐, 이런 거지 같은…….'
목금양은 자신의 절기를 무용하게 만드는 주성진의 무위에 질려가고 있었다.
그저 내공만 뛰어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기교까지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주성진은 점점 대결을 즐기는 중이었다.
'하하, 초식이 점점 완숙해지고 있어. 게다가 이제는 상대의 수가 훤히 보인다.'
처음에는 상대의 동작을 보며 그에 따라 빠르게 대처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한 순간부터, 상대의 움직임이 명확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공이 늘긴 늘었나 봐…….'
아무리 가공할 속도로 날아온다 해도, 경로가 파악되니 두려울 게 전혀 없었다. 흐름을 알게 된 이상…….
한데 그것이 단순히 상대의 동작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후후, 세상에나…….'
자신의 육감이 알알이 깨어나 그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상대의 단전에서 손끝으로 향하는 내력의 움직임, 그 흐름을 좇아 공기를 가르며 날아드는 수강까지…….
상대의 공격이 시작하기 전부터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자, 주성진은 매우 흡족해했다.
'음, 공격과 방어를 눈과 귀 그리고 손과 발로 하는 건 하수의 방법이었어. 일체의 감각이 모두 깨어났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거였어.'
이번의 깨달음으로 무공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 같았다.
동작 이전에 상대 내공의 흐름을 먼저 간파한다면 이는 상대의 공격을 여유롭게 대비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아예 상대가 공격하기 전, 먼저 선수를 칠 수도 있었다.
'하하하, 좋구나…….'
잠시 후, 주성진과 목금양이 겨루는 양상이 변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목금양의 수강을 흘려보내던 주성진이 반격을 개시한 것이다.
쐑……!
특이한 것은 상대를 움찔하게 만들어 놓고는 중도에 멈춘다는 거였다.
그리곤 다시 공격을 잠깐 멈추고 또다시 공격…….
상대가 움찔할 때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어서 항복하시오…….'
하나 그의 끄떡거림은 오히려 상대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상대가 스스로 졌다고 시인하길 원했지만, 상대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거였다.
'저놈이 감히 날 갖고 놀아…….'
목금양에게 있어서는 다시없는 수치였다.
'비록 내가 사정이 있어 이러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치잇!"
꽉 다문 어금니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목금양의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북풍 참!"
극한으로 끌어올린 내력의 발출은 비장한 외침을 만들어냈고, 초식은 최강의 위력을 예고했다.
그리고 폭풍처럼 쏟아지는 수강…….
수많은 수강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대기를 갈랐다. 가히 공간을 메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다.
'와, 대단하군. 마치 수백의 창이 한꺼번에 날 찌르는 것 같다…….'
주성진은 상대의 절기에 감탄했다.
'고수에겐 꼭꼭 숨겨놓은 한 수가 있다던데, 역시 그도 비장의 수를 가지고 있었어.'
상대의 공격은 가히 태산 같은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주성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무슨 수를 쓸까. 그래 이번엔 제대로 가야겠다. 상대에게 패배를 안겨 줄지언정, 수치심을 주지는 말자고.'
주성진은 자신이 이미 그에게 수치심을 준 것을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주성진의 손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당황해서 마구잡이로 손을 뻗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성진의 동작은 상대의 흐름을 파고들어 가고 있었다. 마치 연어가 물살을 헤집고 오르듯 자연스럽게…….
"파!"
주성진의 외침에 상대의 공격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수십의 창처럼 보이던 상대의 수강이 전진하지 못하고 맥없이 튕겨나가고 있었다.
목금양은 기력이란 기력을 모두 쥐어짰다.
"야합!"
하지만 전진은커녕 점점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거리는 점점 단축되고 마침내 주성진의 손길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
탁!
목금양은 눈을 감고 팔을 쭉 늘어뜨렸다. 뒤로 몸을 뺄 수 있음에도 전신의 힘을 풀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