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검선과의 대화 (1)
순간 그의 눈빛에서 신묘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의 팔목에 구렁이 같은 굵은 핏줄이 얽히고설키며 튀어 올랐다.
근육이 거의 터질 정도로 부풀었을 즈음 그가 크게 소리쳤다.
"야합!"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그가 땅을 박차며 위로 솟구쳤다.
주성진의 시선이 빠르게 그를 쫓았다. 한데 그의 얼굴엔 감탄의 빛이 역력하다.
'으음, 기막힌 어기충소구나. 역시 명불허전, 대단한 자야.'
주성진은 언젠가 그처럼 멋들어지게 도약을 시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뭐 과시 같은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멋있는 게 좋잖아.'
한데 생각의 나래가 강제 종료 당하게 생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성진은 자신의 회전 검강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상대가 공중으로 솟구쳐 공격한다 해도 큰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경공 실력에 부러움의 눈빛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헉!"
상대가 공중에서 검을 겨누자 주성진은 돌연 긴장하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심한 압박감이 가슴을 옥죄어왔다.
'익숙하다, 저 기수식은…….'
주성진이 떠올린 건 오직 한 수였다.
'아아 안 되겠다! 초식을 바꾸자, 나도 이기어검을 펼쳐야겠다!'
바로 그 순간, 상대의 목검이 그의 손을 떠났다.
쐐애액……!
목검은 한 줄기 유성처럼 거침없이 떨어져 내렸고, 그 어떤 방어도 무의미할 것 같았다,
풍전등화, 위기일발의 순간…….
주성진의 손에서도 보검이 하늘로 치솟았다.
쐐애액……!
'제발 막아야 한다!'
간절한 염원은 본인과 검을 일체로 만들고 있었다. 검이 자신이요, 자신이 검이 된 것처럼…….
그리고 하늘에 엄청난 빛이 터졌다.
꽈아앙……!
정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터진 느낌이었다.
우우웅!
연이어 계곡까지 심하게 요동을 친다. 그것도 모자라 산사태가 난 듯 집채만 한 흙과 바위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쿠구궁……!
주성진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숨을 헐떡였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휴 큰일 날 뻔했다. 검선이라 하더니 정말 이기어검을 펼칠 줄은……. 만약에 내 검초를 고수했더라면… 난 회오리를 뚫고 들어오는 빛을 보았겠지. 그리고 그게 이승에서의 나의 마지막이었을 거야.'
놀람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땅에 착지했고 얼굴은 파리했다. 그래도 그는 경험 많은 고수답게 급히 자세를 갖추더니 회수한 목검을 살핀다.
'쯧쯧 금이 가버렸네, 그나저나 저 녀석이 이기어검을 펼칠 줄이야, 도대체 저 나이에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순간 땅에 떨어진 보검이 눈에 띄었다.
'뭐야, 비긴 게 아니고 내가 이긴 건가. 저 녀석이 검을 회수하지 못했어……."
그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내가 한 끗 차이로 이겼군, 뭐 그렇다고 나이 차를 생각하면 크게 자랑할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겨서 다행이야, 비겼거나 졌으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을 거라고.'
주성진이 땅에 떨어진 보검을 주우려 해도 그는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입을 움직인다.
"이봐, 볼일 보고 와! 이야기나 좀 하자."
그의 말에 주성진도 급하게 경계를 풀고 태세전환 한다. 돌연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이코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어르신!"
"흐흐, 난 원래 대단했어, 어쨌건 너도 대단했다……."
주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저는 검도 회수하지 못했고요. 솔직히 제가 보검 덕을 본 것도 있답니다. 보시다시피 제 검이 상당히 날카롭잖아요."
그러자 그가 의외의 답을 한다.
"아니야, 신병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실력의 범주에 드는 거다. 난 예전에 검을 버렸지만 네 녀석을 보며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일간 좋은 검을 하나 장만해야겠어, 허허."
주성진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 그의 주변에 괴조가 보이지 않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저, 한데 새가 보이지 않는데요?"
그가 싱긋 웃는다. 표정에서 그는 뭘 아는 듯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네 녀석에게 좋은 걸 얻지 못했으니 다른 걸 찾으러 간 게지. 지금쯤 포식하고 있을 거다. 뭐 그래도 그 녀석이 의리가 있어 반은 내게 갖다 줄 것이야. 그게 낭낭이와 나의 오랜 우정이라고……."
"아, 그렇군요, 그럼 어르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얼마 후 주성진이 돌아왔을 때 그가 불을 피우고 꼬치구이를 먹고 있었다. 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냠냠!"
"어르신, 뭘 잡수고 계시는가요?"
"아 요거! 네 녀석이 꿀꺽한 놈의 새끼다. 당분간 영양 보충할 일은 없겠어, 하하."
주성진은 토룡지왕의 새끼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딘가에 숨어 있었구나, 혹 계곡이 무너졌을 때 발견된 건가…….'
주성진은 그가 꼬치구이의 정체를 이미 파악했다고 단정지었다.
"토룡지왕을 잘 아십니까?"
"무인치고 영물을 모르면 말이 안 되지. 항시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발견되면 잽싸게 낚아채야 하지 않겠나……. 그건 그렇고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
주성진은 곧바로 끄덕였다. 또한 그의 얼굴에 완전히 적대감이 사라진 것 같아 기분이 놓였다.
"아 네, 저는 주성진이라 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사실 제가 자그마한 상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주 상단이라고… 성도에 온 것도 사업차 때문이고요. 헤헤."
그가 눈을 깜빡인다.
'뭐라! 요절하지 않으면 장차 중원 제일 고수 감인데, 그냥 장사치라고. 허허 이것 참,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는군.'
"이봐! 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냐? 일개 장사꾼이 이기어검을 구사한다는 게 말이 돼!"
주성진이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장사꾼도 몸은 보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이구 너 잘 났다. 그깟 몸 하나 보호하려고 이기어검씩이나 익혔어? 참 대단도 하구나……."
그가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투덜거리자 주성진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헤헤, 칭찬이시죠?"
"허허,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일이야……. 한데 말이야, 무공은 어미 뱃속부터 익히진 않았을 것이고 도대체 어디 출신이지?"
"아, 형산파 출신입니다."
이번엔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야 원, 인연의 꼬리가 길게도 이어졌군. 설마하니 형산파 출신일 줄은 몰랐네. 아 참, 난 기세옥이라 한다."
주성진은 그의 말투에서 그가 형산파의 과거를 좀 안다고 생각했다.
'잘되었다. 이 기회에 형산파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나저나 그의 나이를 추측할 순 없으니, 도대체 몇 살일까? 환갑은 안돼 보이지만, 내 짐작에 적은 나이는 아닐 것이야.'
"혹 과거 형산파에 아는 분이라도……."
"내가 소싯적에 형산파의 장문인과 친분이 좀 있었다. 아 그 친구가 장문인이 되기 전이겠군, 그건 그렇고 내가 알기로는 형산파는 완전히 멸문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
주성진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형산파의 장문인과 친분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그도 정파 출신인가……?'
"네, 자초지종을 말해드리지요. 그 전에 장문인이라는 분이 언제 적 장문인이신가요?"
"내 기억에 제20대 장문인일 거다. 그렇게 따지면 실종 당한 장문인은 21대 장문인 셈이지……."
"아, 그렇군요. 저의 사부가 당대 장문인이니까 말씀하신 분은 전전대 장문이겠네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순간 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 말하는 김에 오늘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 좀 듣자. 내가 궁금함을 못 참는 성질이거든……. 아 난 네가 가진 것에는 전혀 욕심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뺄 것은 빼고…….
"……. 이상입니다."
"잘 들었다. 개천에서 용이 탄생한 건가, 하하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가 손을 세차게 흔든다.
"이봐, 세상이 그리 만만해? 운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
"그럼 뭐?"
"그건 네 녀석이 더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 설령 기연이 있었다 하더라도 원래부터 무의 재능이 없었다면 이를 성취하기 어렵지. 그리고 보니 너에게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단 말이야."
주성진은 내심 깜짝 놀랐다,
'설마 내가 환생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것이야…….'
주성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알 수 없는 기운이라는 게……."
"콕 집어서 말하긴 그렇고 그냥 내 느낌이야, 무슨 뜻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그 순간 그가 눈을 번뜩였다.
"사람 중에 최면을 걸면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주성진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 사람 중에 전생을 기억하는 자가 있다고, 하지만 난 죽은 자의 몸에 빙의한 거라 그것과는 좀 다르지. 하여튼 좀 긴장했네.'
"아, 저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알겠나?"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자네의 놀라운 재능 때문이야. 내 생각에 자네는 전생에 상인이었을 거야,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되지. 내가 상인 몇을 좀 아는데 그자들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그 자리에 올라간 자들이었어. 물론 그 밑바탕에는 장사에 대한 엄청난 소질이 있었고……."
"헤헤, 전 아직 햇병아리일 뿐입니다. 상인으로서의 재능도 검증되지 않았고요."
"그 나이에 상단을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내 나이쯤 되면 그 정도는 훤히 보이지."
주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칭찬 감사합니다."
"뭘 그걸 가지고……. 한데 자네가 가진 내단은 어디에 쓸 건가?"
"하나는 줄 곳이 있고요, 또 하나는 제가 먹을 것입니다. 사실 얼마 전에 놀라운 고수를 봤습니다, 육지비행을 하더라고요. 정말! 세상은 넓다고 생각했었지요. 처음엔 그의 외모를 보고 그렇게 나이가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기세옥이 주성진의 말에 격하게 관심을 보인다.
사실 주성진이 언급한 자는 지난번 입회인으로 대결을 주관한 자였다.
"허, 그래? 내 생각엔 그가 반로환동한 고수가 아닐까 싶은데, 만일 그렇다면 나보다 선배가 되겠지, 적어도 수십 년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일 반로환동의 고수가 한꺼번에 무림에 나타난다면 무림 판도가 변하겠지요?"
그가 잠시 숙고하더니 고개를 내젓는다.
"뭐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들은 세력에는 관심이 없어. 다만 자신의 출신 문파에 약간의 도움은 베풀 수 있을 거야, 뿌리는 어쩔 수 없으니까……. 오히려 그들은 신흥 강자에 관해 관심이 많을 것이야. 너같이 쑥쑥 자라나는 인재라면 더욱더 그렇겠지……."
주성진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에 대해서 말입니까?"
"그렇지, 어딘가에서 너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