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검선과의 대결
말을 끝낸 주성진이 검을 빼 들었다.
쉭!
한데 그가 주성진의 검을 보자마자 얼굴을 사납게 찡그렸다.
'이런 저 녀석이 보검을 가지고 있었구나! 음, 내력을 좀 더 올리지 않으면 목검이 반 토막 나게 생겼어. 쯧쯧, 이상한 녀석을 만나 땀 빼게 생겼잖아.'
그는 단숨에 주성진이 가진 검의 진가를 알아봤다.
'겹쇠 공법으로 만든 것 중에서도 최상품이야, 저 굴곡진 물결 모양이 이를 증명한다고.'
그는 검의 파도 문양을 제대로 본 것이다. 영롱히 반짝이는…….
주성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성함을 알아도 되겠습니까?"
"후후. 나! 이름을 안 쓴 지가 오래되었는데… 그냥 검선이라고 불러. 그래야 덜 맞을 거야."
주성진은 코웃음을 쳤다,
'검선 좋아하시네, 검선이 다 얼어 죽었나…….'
"검선 말고는 뭐라……."
"검괴라고 부르는 놈들이 있더라고, 그런 놈은 내가 모조리 황천길로 보냈지, 너도 조심해!"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불러주는 게 뭐 힘든가! 까짓것 불러주지.'
"알겠습니다. 검선 어르신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큰 것을 좀 봐야 하는데요, 여태 참고 있었습니다."
"맛있더냐? 아 뭘 먹었지?"
주성진은 절대 사실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악인이지 선인인지 분간이 안 가고, 또한 그가 자신이 귀한 걸 지녔다 정도로 알고 있지만, 만일 토룡지왕의 내단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맛없었습니다, 그냥 배가 고파서 구렁이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는 이미 주성진의 주변에 있던 솥과 요리도구를 본 후였다.
'자식이 미리 먹으려고 준비해놓고선 맛이 없다고.'
"후후, 거짓말하면 볼일 못 보게 한다. 더구나 내가 많이 참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감히 그 날카로운 검으로 낭낭이를 죽이려 했으니까 말이야. 낭낭이가 도검불침인데 어쩐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르신! 먼저 저 새가 공격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새의 생명은 중요하고 저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은가 봅니다."
그가 화를 벌컥 낸다.
"이놈이 감히 내게 토를 달아, 싹씩 빌어도 모자랄 판에……."
"저는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왕 이리된 것 배설도 제가 알아서 하죠, 뭐……."
"그냥 싸겠다는 것이냐?"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새들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안 되겠다. 매를 벌었으니 먼저 맞고 시작하자. 싸든 말든 그건 네 마음대로 해라."
주성진은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뭐야, 성격이 좁쌀 같은 영감이네. 그건 그렇고 내가 무림의 강자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어. 상대를 알아야 미리 대처할 텐데 쯧쯧. 다음엔 반드시 알아봐야겠어.'
그 순간 그가 소리쳤다.
"먼저 들어와, 딱 한 번만 봐주는 거다."
주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라 하는 거야! 날 봐주겠다고, 치사하게 대변도 못 보게 하면서……. 그래도 뼛속까지 악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정파답지도 않고, 이거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겠네.'
"자, 그럼 갑니다."
주성진은 그를 노려보며 힘찬 기합을 내질렀다.
"차 앗!"
동시의 그의 보검이 요동치며 울음을 터트린다.
위이잉!
주변의 공기가 주성진을 중심으로 일렁이는 순간 주성진이 우수를 앞으로 휘둘렀다.
그에 따라 검이 길쭉이 늘어나더니 거침없이 공간을 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주성진의 위맹한 공격에도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목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쉬익!
한데 그의 성의 없어 보이는 몸짓에 무슨 힘이 서려 있는 걸까…….
그가 주성진의 검을 가볍게 흘려내고 있었다.
퍼버펑펑!
그의 목검에 비켜나간 주성진의 검세가 길쭉한 고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는 주성진의 검세가 땅을 훑고 지나간 것이었다.
'아이 멈추기 힘드네.'
바닥을 파헤치며 뻗어가던 검세가 무려 2장이나 지나서야 멈추었다.
주성진과 검선 사이에 못 보던 경계가 만들어졌다. 한데 그 순간!
두두둑!
튀어 오른 흙덩이가 다시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사실 이것만 봐도 주상진의 검에 실린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녀석아 제법인데, 노부가 까딱했으면 골로 갈 뻔했다, 하하하."
그가 이죽거린다. 주성진으로서는 약이 바짝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내 검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닌데 그걸 가볍게 막는단 말이지, 그래 얼마나 그 얼굴에 웃음이 맺히는지 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아.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밑이 신경 쓰여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여간 창피스러운 게 아니었다. 서서 볼일을 보는 형국이다. 그것도 바지에 고스란히…….
그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봐, 빨리 들어와!"
주성진은 묵묵부답 기회를 노렸다. 상대가 강자인 걸 몸소 체득한 마당에 무모하게 들어가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자칫 역공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어이! 겁먹었나? 안 오면 내가 먼저 간다."
주성진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하자 그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이잉!
그가 몸을 한껏 세우자 그의 전신으로부터 아지랑이가 뭉글뭉글 뻗쳐 나왔다.
쿵쿵쿵!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이 요동을 친다.
잠시 후 그는 간격을 조율하고선 목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 악몽이 펼쳐질 것이다, 각오 단단히 하도록……!"
주성진은 그에게 검을 겨누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큰소리를 빵빵 쳐대는데, 음 이거 정말 내가 수세에 몰리는 건 아닌지 몰라…….'
주성진을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야. 그가 강하다 해도 나도 약하진 않아.'
주성진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수하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건 미리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포기는 패배요 곧 죽음이다.'
지금껏,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주성진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주성진은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이 자리까지 왔다는 걸 상기했다.
'그래, 담담해지자.'
그 순간이었다.
'온다!'
휘이익!
그의 목검이 빛살이 되어 날아왔다.
주성진은 그 즉시 검을 휘둘렀다. 한데 그 순간 그의 목검이 교묘하게 휘어지며 자신의 검을 피해 밀려들고 있었다.
'뭐야. 목검이 휘어지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분명 깎아서 만든 목검은 대나무가 아녔다.
바로 그 순간 그게 자신의 착시임을 깨달았다.
'이런, 그의 손속이 빠른 거였어, 역시 그의 별호답군. 검선이라고 해야 할지, 검괴라고 불러야 할지, 아무튼…….'
주성진이 급히 검을 회수하는 순간 그의 목검 주위로 하얀 안개가 어렸다.
도대체 그가 자신의 어디를 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성진은 마음의 창을 열었다.
'이럴 땐 마음이 가는 대로 무초식으로 대응하는 거야, 순발력 있게 유연하게…….'
꽝!
목검이 자신의 가슴을 노렸고 주성진은 아슬아슬하게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할 수가 없었다. 그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목검이 뱀처럼 요동을 치더니 주성진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본능적으로…….'
상대의 초식이 불규칙하니 미리 움직였다간 큰코다칠 수가 있었다.
사실 지금 그들이 펼치는 대결은 일반 무사들이 대결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자들이기에 검을 휘두른다는 것은, 상대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만일 일류급의 무인이 주성진이나 그와 상대한다면 공격은커녕 검을 제대로 들 수도 없을 거였다.
이미 상대의 기파가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터라 무형사슬에 갇힌 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주성진을 얕보는 투로 말하기는 했으나, 그는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노회한 고수였다.
그는 절대 주성진의 실력을 낮추어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주성진은 세차게 검을 휘둘러 막을 쳤다.
꽝, 꽝!
지난번 검막을 쳤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어 이번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상대의 거듭된 일격에 검막이 금세 깨어질 것만 같았다.
'에이 이번에도 잘 안되는군…….'
"야합!"
주성진은 검막을 걷어버리고 오른 다리로 땅을 박찼다.
몸이 쭉 늘어나 왼쪽으로 뻗어 나간다. 누가 봐도 완벽한 이형환위였다.
하지만 상대의 목검은 눈이 달렸는지 계속 주성진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치이익
주성진의 장삼이 찢어졌다.
주성진은 놀라기보다는 입을 굳게 다물며 검을 뻗어 나갔다. 점점 검기가 굵어지더니 검강으로 변해간다.
쉐애액!
주성지의 검에서 검강이 줄기줄기 뿜어나오자 그가 눈을 번뜩였다.
'저놈,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기의 운용이 정말 능수능란하구나. 단박에 검강을 뽑을 줄이야…….'
생각은 생각이고 그는 능숙하게 몸을 빼 안전한 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녀석이 제법 하는구나, 그렇다면 제대로 몸 좀 풀어볼까…….'
그가 버릇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한 바퀴 돌렸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섬뜩한 빛이 발했고,
휘리리릭!
주성진이 힘차게 검을 뻗었다.
'흥, 내가 그리 만만한가 보지. 목이나 돌리고 있게.'
그가 급히 뒤로 미끄러지며 검을 피하는 순간 주도권이 주성진에게 넘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전개에 그는 정색하며 목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세가 이전과 달리 상당히 묵직하다.
'이 정도면…….'
하지만 그건 그의 오판이었다.
강력한 검강이 휘몰아쳐 회오리가 되었고 곧바로 태풍이 되었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검강이 회오리친다고!'
순간 그는 강호 제일권 심양수의 회전 권강을 떠올렸다.
'그놈의 자식과 비슷한 수법이구나, 혹 무슨 관계가?'
맞았다. 주성진이 펼친 수는 자신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심양수의 회전 권강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그는 몰려드는 회오리바람을 보며 목검을 단단히 잡았다.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제대로 해야겠구나.'
칼바람에 그의 상의가 너덜너덜해졌다.
그 순간 그 틈으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우렁찬 근육이 보였고 그가 힘을 주자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아합!"
거대한 기합성을 내지르며 그가 손에 들린 목검을 회오리 속에 찔러 넣었다.
짜아악!
언뜻 거친 회오리바람을 헤쳐 나가는 듯했다.
한데 그 순간 그는 더는 뻗지 못하고 뒤로 후퇴하고 말았다.
'제길, 저놈의 검이 보검인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자칫 목검이 두 동강 날 뻔했어.'
주성진의 보검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보검의 날카로움은 그 자체로 검강과 견줄 만하다는 게 만인의 중론이었다.
그런 이유로 무인들이 기를 쓰고 신병이기를 찾으려는 거였다.
물론 이에 못지않게 비급이나 영약에도 환장하지만…….
치이이익!
두 발이 땅을 패자 땅이 비명을 내지른다.
그가 급히 물러서자 주성진이 거칠게 따라붙었다.
물러서는 그가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제길, 이처럼 몰리긴 처음이군, 안 되겠다 저 녀석의 죽음을 걱정하다간 내가 오히려 당하겠어. 할 수 없지, 막으면 저 녀석의 복이고 못 막으면 저 녀석의 운이 다한 거다. 뭐 그래도 급소는 공격하진 않겠어. 왼팔 정도로 하자고…….'
그의 목표 대상은 주성진의 왼팔이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성진은 계속 그를 압박해 간다.
휘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