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화 토룡지왕을 찾아서 (2)
주성진은 칠성둔보와 천리흡취술을 펼치며 지진으로 생긴 작은 협곡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얼굴에 미소가 점점 커졌다. 칠성둔보의 숨은 진가를 발견한 거였다.
'하하, 칠성둔보! 이거 의외로 괜찮은데… 가끔은 느린 것이 빠른 것보다 나을 수가 있지……."
칠성둔보의 강점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에 단숨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묘용에 있었다. 극히 미약한 움직임만으로도…….
이는 정중동의 극치인 금강부동신법과 궤를 같아하는 수법이었다.
'후후, 경지에 오른다면 느린 게, 결코 느린 게 아니지……."
의외의 수확에 기분이 좋아진 주성진은 코를 킁킁거렸다.
'앗! 비린내다, 그렇다면 정말로 토룡지왕이 있었구나. 하하.'
반 각 후 주성진은 기척을 숨기며 천천히 토룡지왕에게 다가갔다.
한 쌍의 토룡지왕은 햇볕이 싫은지 그늘진 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금고가 뜯어진 채 널브러져 있었고.
쉭쉭……!
한 쌍의 토룡지왕은 영물답게 기척을 느꼈는지 긴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주성진은 토룡지왕을 보며 뱀을 연상했다.
'어이, 징그러워, 지렁이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다니…….'
생각은 생각이고 주성진의 동작은 너무나도 빨랐다.
자칫 토룡지왕이 땅속으로 숨기라도 한다면 지둔술을 펼치지 않는 한 잡기가 요원했기 때문이었다.
'지렁이라고 우습게 생각하면 안 돼, 저놈은 영물이라고!'
주성진은 검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기어검이 대수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주성진은 눈빛을 빛내며 최후의 각오를 다졌다.
'검아, 섬전같이 날아가야 한다, 알겠지!'
순간 빛이 번쩍였다,
쉭……!
스걱……!
토룡지왕의 동체에서 녹색의 피가 솟구치며 고개를 쳐든 머리 두 개가 동시에 잘려나가 땅에 나뒹굴었다.
쿵……!
'야호, 성공이다!
한데 기쁨도 잠시 주성진은 몸을 휘청거렸다. 몸속의 진기가 모두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어지러워, 이렇게나 진기의 소모가 극심한 거였어, 하긴 위력의 격이 다르니 그럴 수도.'
전에 자신이 펼쳤던 비검술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거리는 다섯 배, 속도는 비교 불가였다.
사실 이기어검술의 위력은 몸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를 이용하는 만큼 인간의 몸으로 휘두를 수 있는 속도를 초월해 날릴 수가 있었다.
오로지 시전자의 상상 그대로 검이 날아가는 것이기에 그에 상응한 공력과 심력의 소모는 어쩔 수 없었다.
'휴, 이거 함부로 썼다간 몸이 거덜 나겠네, 공력을 잡아먹는 괴물이야. 게다가 아직 미완성이라고, 기가 끊기는 바람에 검을 회수하지도 못했어.'
그럴수록 공력에 대한 갈증도 더 커졌다.
'아직도 배고프다고.'
* ? ? * ? ? *
배가 볼록 솟은 주성진이 가부좌를 취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포식했구나, 하지만 난 이 아까운 것을 모두 똥으로 만들 순 없어! 양분을 최대한 흡수하자!'
주성진은 굳게 다짐하며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사지 백배로 공력이 힘차게 돌면서 신체의 활력이 알알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주성진의 위와 내장은 평소보다 수십 배의 일을 하고 있었다.
튀겨서 먹은 토룡지왕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주성진이 이번에 써먹은 것 또한 화천각에 집어 온 잡서였다.
제목은 음식조섭대법, 부제목은 식약동원(음식이 곧 약이고 약은 곧 음식이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음식조섭대법은 소가 풀뿌리를 먹고도 인간보다 강한 힘을 내는 것을 보고 착안한 보조 운기조식법이었다.
하지만 글자 그대로 익힐 수만 있었다면 강설현이 주성진에게 선뜻 투자금 대신 주었을 거였다.
'후후 문제가 있었지. 미완성의 심법이었으니까.'
하여 주성진은 원리만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공심법으로 이를 대체했다.
'보기 좋게 성공했지 뭐, 하지만 시도대비 효과는 미미해. 왜 초식동물들이 틈만 나면 풀을 뜯어 먹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 저효율을 극복하려면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하거든!'
하나 일반 잡초를 영물이나 영초와 비교할 순 없었다. 그건 차원이 다른 것이라 한자리에서 비교할 성질이 아니었다.
'사실 귀원심법으로는 불가능했을 거야. 저절로 터득한 내공심법 덕에 가능한 거지. 물론 본류는 귀원심법이지만……. 음, 한 문파 내에서도 여러 내공심법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 마음만 먹는다면 내공심법도 얼마든지 개량할 수 있다고. 그게 인위적이든, 우연히 변화하던…….'
주성진이 처음 익힌 내공심법은 귀원심법이었지만, 지금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원래의 그것과는 아주 달랐다.
음식조섭대법의 원리도 이미 본인의 내공심법에 녹아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열린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거야, 닫힌 마음이라면 행운도 왔다가도 피해가니까…….'
주성진이 귀원심법에 손을 댄 건 귀원비록을 익힌 이후에도 수많은 무공을 받아들였기에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내공심법의 변형은 순수한 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기연으로 내공이 늘어나면서 무의식중에 기들이 최적의 운행경로를 찾으면서 일어난 측면이 컸다.
최적의 운행경로는 뭐니 뭐니 해도 빠르게 내부의 혈도를 막힘없이 모두 도는 것이고…….
한참 후, 주성진이 눈을 떴다.
'후후, 잘 흡수된 것 같은데, 그나저나 실례 좀 해야겠는데 어디가 좋을까. 어 저기가 좋겠군.'
주성진이 볼일을 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주성진의 눈이 위를 향했다.
"꽈아악!"
하늘에서 괴조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주성진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뭐야, 저놈은……!'
깜짝 놀란 주성진이 검을 휘둘러 괴조를 막아섰다.
"저리 안 가!"
쉬이익!
푸드드덕……!
괴조가 주성진의 검을 피하고 다시 날아올랐다.
'뭐야 저것은? 부리가 삐죽이 튀어나온 게 학을 닮은 것 같은데……. 아니지, 학보다는 작고 깃털의 색깔도 흰색이 아니야……. 음 그렇다고 까마귀로 보기도 그렇고, 매나 독수리는 더더욱 아니고. 한데 저놈 눈빛이 영 심상치 않네,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게 섬뜩하단 말이야.'
주성진은 자신의 손짓에도 도망가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 괴조를 잔뜩 경계했다,
"어이, 꺼지라고! 내가 볼일 좀 봐야 한단 말이야!"
"꽥, 꽥!"
또다시 괴조가 주성진에게 돌진했다. 처음 공격하려 했던 데와 똑같은 곳이다.
'저놈이 또 왜 사타구니 쪽을 공격하려는 것이지……?'
주성진이 괴조가 자신의 아래쪽을 노리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보통은 머리 쪽을 쪼지 않나……. 가만 아래쪽이라면 혹 내 호주머니를, 좋아 알아보면 되지.'
뭔가 낌새를 느낀 주성진이 호주머니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비취색이요, 또 하나는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꽤애액, 괘애액!"
괴조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진다 싶더니 쏜살같이 그에게 날아왔다. 목표 지점이 그의 아랫도리가 아닌 번쩍 치켜든 왼손이었다.
'역시 저놈이 내단을 노리고 있었어. 그렇다면 저놈도 영물?'
주성진은 검을 휘둘렀다.
내단에 정신이 팔렸는지 괴조가 주성진의 휘두른 검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날갯죽지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케에액……."
살짝 잘려나간 깃털 몇 개가 바람에 날린다.
주성진은 다시 구슬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얼굴을 찡그렸다.
'저놈 영물이 틀림없어, 저렇게 빠른 것을 보면.'
좀 전 자신의 검이 괴조의 몸통을 강타하려 할 때 주성진은 거의 확신했다. 두 동강이 난 괴조를…….
하지만 그 순간 놀라운 순발력으로 자신의 검을 피해 버렸다.
날갯죽지 일부가 잘려나가긴 했지만, 지극히 경미했다.
한데 그때였다.
휘리릭!
은빛의 도포 자락을 입은 자가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한데 머리카락도 은빛이고 수염도 은빛이다.
주상진이 더욱 놀란 건 낙하하는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딱 봐도 연륜이 있어 보이는데 그의 눈동자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세상에 눈동자가 은빛이라니, 뭐 저런 경우가…….'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며 그간 다가올 순간을 대비했다.
'음 음, 대단한 경공술이다. 앗 저건 허공답보!'
빠르게 낙하하던 자가 지면에 다가서자, 마치 허공에서 계단을 내려오듯 그렇게 하강하고 있었다.
탁!
착지한 그가 주성진을 바라본다. 어느새 괴조가 그의 어깨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구구구구!"
그가 괴조의 깃털을 쓰다듬으며 달랜다.
"괜찮다 낭낭아, 내가 혼내줄게……."
"구구구구!"
말을 알아듣는 듯 괴조가 부리를 세차게 흔든다.
"알았다, 요놈아. 잠깐만 기다려봐라……."
주성진이 온통 은색 일변도인 그를 주시했다.
한데 그의 기도가 점점 강해진다. 눈앞에 거대한 설산이 갑자기 나타난 느낌이었다.
'대단한 기도군,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 순간 그가 주성진을 쳐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이봐, 너! 동물 사랑이라는 것도 모르나?"
"뉘신지 모르겠지만, 저 친구가 먼저 절 공격했습니다."
"후후, 그러게 왜 귀한 것을 흘리고 다녀. 꽁꽁 싸매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야지……."
주성진은 미간을 잔뜩 좁힌다.
'뭔가 있구나!'
"말에 어폐가 있군요. 제가 꽁꽁 싸매지 않아서 잘못이라는 겁니까?"
"허허 버르장머리 없는 친구군, 말 안 듣는 아이는 회초리가 약이지."
"잠깐만요, 어르신, 저 새가 먼저 잘못했다고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요?"
그가 주성진에게 강한 눈빛을 보낸다.
"이놈!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안 되겠다, 우선 좀 맞고 보자!"
"절 때란다고요?"
"그래 이놈!"
그가 근처의 나무로 손을 뻗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동작 같았다. 한데 그 순간,
지지직!
나무가 통째로 흔들리더니 뿌리째 뽑혀나간다.
휙……!
이번엔 나무가 눈이 달렸는지 쏜살같이 그에게로 향했다.
'헉!'
주성진은 더할 나위 없이 눈을 크게 떴다.
'허공섭물로 나무를 통째로 뽑아! 아무리 크지 않은 나무라지만, 이건 말도 안 돼…….'
잠시 후 딸려온 나무를 잡은 그가 이번엔 손날로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쓱, 쓱쓱!
처음엔 나뭇가지를 자르더니 아예 나무기둥까지 쳐내기 시작했다.
'뭐야. 목검을 만드는 것인가?'
주성진은 그의 솜씨에 감탄했다. 특히나 아무런 도구 없이 손날로만 목검을 만들고 있었다.
'수강이겠지, 저 정도로 강기를 잘 다룬다면 어느 수준의 고수로 봐야 할까…….'
여하튼 그와 겨룬다면 힘든 싸움이 될 게 분명 했다.
더구나 자신은 생리작용도 해결해야 한다.
'미치겠군, 하필 이 시각에 괴조가 나타나다니, 저놈을 잡아 통구이를 해 먹을까 보다.'
주성진이 여러 생각을 하는 사이 그가 완성한 목검을 몇 차례 가볍게 휘둘러보더니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그러던 그가 목검에서 눈을 떼고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녀석아, 어디 너의 알량한 재주를 보자꾸나!"
한바탕 일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후회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뼈마디도 싱싱하고 근력도 좋으니까요, 어르신보다는!"
"이놈, 내가 늙었다고 흉보는 거냐? 빨리 덤벼!"
"어르신 몸 생각해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