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화 토룡지왕을 찾아서 (1)
주성진은 일행들과 짧은 해후를 마치고 홀로 당가타로 떠났다.
객잔의 두 부녀가 열렬히 응원했음은 물론이다.
한데 그는 곧장 당가타로 가지 않고 저잣거리로 향했다.
'사람들이 날 숙수로 생각하겠군. 하지만 난 요리를 못하는데, 이참에 요리를 좀 배워볼까…….'
그가 사려는 건 큰 솥을 위시한 요리도구와 소금을 포함한 각종 향신료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기름과 숯이었다.
그가 그렇게 결심한 건 당가홍이 주성진에게 토룡지왕의 내단과 독이 분비되는 침샘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솔깃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 ? ? * ? ? *
"내단은 구슬처럼 단단하니까 보관할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냥 진주라고 생각하시오."
"알겠습니다, 부서질까 걱정했는데 한시름 놓았습니다. 하하."
순간 당가홍이 입맛을 다셨다.
"토룡지왕을 푹 고아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는데, 아이고 아까워라……."
"잠깐만요, 에이, 그걸 먹는다고요?"
"아주 비리겠지만 그 순간만 눈 딱 감고 참으면 평생이 거뜬할 거외다. 내가 장담하건대 최고의 보양식이오. 생각에 보구려, 온갖 좋은 것만 처먹은 놈 아니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독도 먹는다면서요?"
"그놈에겐 독도 좋은 음식이오. 자꾸 토룡지왕을 우리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세상에는 별의별 게 다 있고, 저마다의 존재가치가 있소이다. 태초에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오."
"아, 네……. 한데 왜 저한테 부탁을 안 하시죠? 제가 가져올 수도 있는데."
당가홍이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휴, 그럴 거였으면 진즉에 그대에게 부탁하였을 거요, 그렇지 못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오……."
주성진은 거듭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꾸 감질나게 그러지 마시고 속 시원하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놈이 죽으면 반 각 안에 흐물흐물 녹아서 물로 변하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빨리 부패한다는 뜻이지……. 해서 그놈을 먹을 거면 바로 쓱싹해야 한다, 이 말이외다."
"아, 그렇군요, 음… 한데 고아 먹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당가홍은 주성진의 마음을 짐작했다.
'몸에 좋은 거라니까 관심을 가지는군, 원래 가진 자가 더 가지고 싶은 거지……. 뭐 그를 비난하려는 건 아냐, 그게 바로 세상의 섭리이니까.'
"왜 방법이 없겠소? 약발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튀겨서 먹으면 된다오. 튀겨 먹을 거면 굳이 놈의 내장을 씻을 필요가 없소이다. 좋은 것만 먹은 놈이라 배설물도 그다지 역겹지가 않을 것이오."
"저 튀겨 먹으면 약발이 많이 떨어지는가요?"
당가홍이 씩 웃는다.
"아니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오, 예전에는 튀겨 먹는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고……."
"아, 그래요, 잘되었군요."
"아 참, 우리처럼 무공을 익힌 자들은 먹고 나서 운기조식을 하면 훨씬 도움이 될 거요. 이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고 순전히 나의 추측이오."
주성진은 당문의 전직 독약당 당주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래,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그리고 내겐 방법이 있지, 하하…….'
* ? ? * ? ? *
저잣거리를 한 바퀴 돈 주성진은 사려 했던 것을 다 구매한 뒤 그만 싱겁게 웃고 말았다.
'참 누가 보면 걸신 든 줄 알겠네, 한데 내가 이리 좋아해도 되는 걸까, 토룡지왕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냐, 그래도 그놈은 영물인데…….'
주성진은 지난밤 분석했던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토룡지왕이 없다면 모를까 만일 있다면 내가 그놈을 못 이길 이유가 전혀 없어. 첫째 나의 높은 내공은 독에 내성이 있고, 두 번째 나의 검은 만인이 부러워하는 보검이라고. 셋째 내공의 성질을 바꿀 수 있기에 여차하면 열양공이나 빙공도 가능해! 넷째 호신강기도 구사할 줄 알아. 다섯째 당가홍에 따르면 난 이기어검의 초입 경지라 이거야! 그리고 뭐 최악의 경우 삼십육계 줄행랑의 방법도 있지 하하…….'
분석과 별도로 주성진은 토룡지왕을 대처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비책을 연마했다.
시간이 흐르고 주성진은 당가타가 있었던 구릉 앞에 도착했다.
한데 누가 봐도 지진이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높은 지대의 가운데가 쩍 갈라져 있었기에…….
'음, 당가타가 두 동강이 난 셈이군, 그냥 돌아가지 말고 저 틈새로 바로 들어갈까…….'
주성진은 간신히 그 유혹을 뿌리쳤다.
'애초 계획했던 대로 하자고, 누군가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성진은 구릉 지대를 빙 둘러 반대편으로 향했다. 당가에서 만들어 놓은 대피로로 가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주성진은 눈을 반짝거린다.
'도착했군, 저곳이 출입구라 이거지.'
대피로의 출입구는 낮은 지대에 있었다.
'결국은 대피로 안에 들어가도 위로 올라가야 하는구나.'
주성진은 교묘하게 감춰진 출입구 앞에 우두커니 섰다. 그냥 보기에는 여인의 볼록한 가슴 같은 바위였다,
'이거 정말 감쪽같네. 자 그럼 출입구를 열어야지.'
주성진은 당가홍이 가르쳐준 대로 바위 앞 일장 거리에서 정확히 바위 폭 만큼 일직선으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꺾어 세 치 깊이로 촘촘히 꽂았다.
그렇게 하자, 잠시 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르륵…….
신기하게도 주성진의 전면 바위가 미닫이문처럼 갈라졌다. 그리곤 정확히는 어른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야, 대단한 기관진이네. 자 그럼 나뭇가지를 제거하고 들어갈까, 서두르자.'
문은 단 열을 셀 동안만 열리게끔 되어 있었다.
쿵……!
주성진이 바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혔다. 내부는 습기가 가득 차서 곰팡내가 자욱했다.
'음, 좀 눅눅하군, 공기도 텁텁하고…….'
주성진은 안쪽 통로를 걸어 들어갔다. 대피로의 통로에는 촘촘히 나무기둥이 박혀 있었다.
일부 지진 때 무너진 곳도 있었으나 걷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래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은 있었기에 주성진은 걸으면서 계속 위를 살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전에 이 길을 걸어간 당가홍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가홍은 그 당시 횃불을 들고 있었고, 주성진은 음식 도구 등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흐흐, 내공이 높으니 이런 데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군, 역시 내공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지금 주성진은 어두컴컴한 통로를 대낮처럼 훤히 보고 있었다.
전적으로 그의 높은 내공 덕분이지만, 뭐 그렇다고 세세하게 사물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통로를 이동하는 내내 별 이상이 없었다.
중간중간에 징그러운 벌레들이 성가시게 굴었지만, 주성진은 원래부터 벌레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각 후 주성진은 통로의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아찔한 낭떠러지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지진 때문에 갈라진 곳이었다.
'와 많이도 벌어졌구나, 지진이 굉장했었나 보네. 어디 보자… 갈라진 폭이 대략 15장은 되어 보이는데…….'
주성진은 갈라진 틈 끝자리에서 위아래를 차례로 쳐다보았다. 위로는 청명한 하늘이 어렴풋이 보이다 곧 구름 때문에 가려졌다.
'음, 위에 있던 독약당이 지진으로 아래로 함몰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거 생각보다 밑이 깊은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아.'
주성진은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 참, 나와 추락은 참 인연이 깊은 것 같아. 전생에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도 그랬고, 얼마 전 도망치다가 강물에 뛰어든 것도 그렇고, 그리고 이번에도… 또.'
그러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지, 아니야……. 전생 때와는 사뭇 다르지. 지금은 추락해도 날개가 있으니까 말이야, 무공이 있잖아!'
잠시 후 주성진은 크게 심호흡하며 틈 아래로 뛰어내었다.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한 관계로 급속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짊어진 솥도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그렇게 백을 셀 동안 내려간 주성진은 급히 검을 빼 들었다. 바닥이 어렴풋이 보인 것이다.
'아래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대비는 해야겠지…….'
바로 그 순간 햇살이 아래를 비추었다.
'야, 이거 작은 협곡 같구나……. 풀과 나무도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네…….'
아래의 풍경은 주성진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땅에 착지한 주성진은 어젯밤에 부랴부랴 익힌 천리흡취술을 펼치기로 했다.
'휴, 자주 쓰지는 말자, 세상에 지독한 냄새가 그리 많을 줄 몰랐다. 땀 냄새가 그리 지독할 줄 몰랐고 용변을 보고 난 뒤의 구린 냄새가 그리 진동할 줄 몰랐다. 그것뿐인가 사람의 체취는 어떻고…….'
주성진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면서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던 천리흡취술의 진가를 유일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전에 강설현은 주성진에게 비급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었다.
"성진아, 네가 달라고 해서 내주긴 하지만 이 비급은 천화각에서 사기당한 몇 가지 비급 중의 하나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알았어, 일단 달라고……. 그리고 칠성둔보도 같이 줘라."
"야, 그것도 쓸데없는 건데 왜?"
"제목이 마음이 들어서, 하하."
"……."
주성진이 건네받은 천리흡취술은 화경감응력이라는 비급에 나오는 일부분이었다.
화경감응력은 오감인 촉각, 청각, 후각, 시각, 미각의 감각을 증폭시켜 극대화하는 무공이었다.
주성진이 굳이 쓸모없다는 화경감응력을 달라고 한 건 혹시나 사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가령 냄새만으로 사려는 품목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감별할 수 있기에…….
하지만 그 후 강설현의 말처럼 구결대로 익혀봤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다. 엉터리였던 거였다.
그러다 당가홍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화경감응력이 또다시 생각났다. 왜냐면 토룡지왕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면 놈을 잡기가 용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지금껏 익히지 못한 무공이었는데 단시일에 익힐 수 있느냐였다. 그때 뇌리에 떠오른 단어가 화경이었다.
당가홍이 자신이 화경에 오른 것 같다고 말한 것을 일소에 부치고 있었는데 화경감응력에도 화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한번 시도해보자고 했고 보기 좋게 성공한 거였다.
화경감응력은 과연 화경에 들어야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신체의 미세 혈도가 모두 타통되어야 익힐 수 있는 무공이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는 거였다. 분심술처럼 마음을 쪼개지 않는 이상…….
해서 가령 천리흡취술을 펼치면 천리안을 동시에 펼칠 수는 없었다.
주성진은 내친김에 칠성둔보도 같이 익혔다.
칠성둔보는 보법의 일종으로 전후좌우 사방팔방으로 걸음을 움직여 공수를 꾀하는 수법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위와 같은 용도로 따로 익힌 보법이 이미 여럿 있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밀고 나갔다.
한 갈래의 무공에 구애받지 않은 건 주성진 특유의 성격과 환경 덕분이었다.
그가 구대문파에서 올곧이 성장한 무림인이라면 그런 생각을 쉽게 가질 수는 없었다.
아무튼, 칠성둔보는 밤하늘에 떠 있는 북두칠성의 변화와 그 궤도를 보고 착안한 보법이다.
움직임이 제목 그대로 둔중하고 느려 보기는 했지만, 자세가 안정되어 있었고 전후좌우의 변환이 수월해 초보자가 익히기 안성맞춤인 보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