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화 당가홍의 제안 (2)
주성진은 그가 칭찬해 주니 기분은 좋았지만, 액면 그대로 그의 말을 믿진 않았다.
"하하, 저를 너무 띄워주시는 것 같습니다. 화경이라뇨, 어림도 없습니다."
"허허, 내기 이래 봬도 한때는 당가의 기재였소. 그 정도를 분간 못 할까 봐 그러시오?"
그가 언성을 높이자 주성진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아. 제 뜻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제 자신의 수준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자자,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시자고요. 그러면 왜 제가 적격자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거야 토룡지왕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지, 왜 그렇겠소! 설마 토룡지왕이 지렁이만 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몇 배 더 큰가요?"
그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몇 배 정도가 아니고 큰 구렁이만 하다오. 거기에다가 독니를 가지고 있소이다. 그러니 물리면 바로 즉사요, 어떤 해독제도 소용이 없소이다."
주성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위험한데 저더러……."
"그렇지만 그대는 그들을 물리칠 무공이 있지 않소이까, 비검슬 말이오. 뭐 그대는 비검술이라 표현했지만 내 생각은 이기어검의 초입이 아닐까 생각되오만……. 사실 그 정도의 거리를 끈도 없이 기로써 조정한다는 건 비검술이라 보기 어렵소. 차라리 이기어검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소이다."
주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하하 그렇단 말이죠? 알겠습니다. 하여간 토룡지왕을 만나면 무조건 먼 거리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오. 또한 그놈의 살가죽이 두꺼워서 웬만한 도검으로는 상처하나 입힐 수가 없으니 이점은 꼭 명심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가야 할지를 말씀해 주시지요."
당가홍은 주성진이 자신의 의도에 거의 7할은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으음, 무림 문파치고 대피로가 없는 곳은 없소이다. 당가타라고 예외는 아니었소. 한데 말이오, 비록 지진에 의해 훼손되었다고는 하지만 당가타의 비밀 피난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소이다. 이건 내가 당문에 있을 때 직접 가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오."
"……."
"대피로의 끝은 가주님이 근무하는 전각까지인데 중간에 땅이 갈라져 끊긴 지점이 보일 것이오. 그곳이 바로 독약당이 있는 곳이라오. 그러니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오."
주성진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사천상단이 질이 나쁜 곳인지, 아닌지 내가 직접 조사한 다음에 결정하자.'
"알겠습니다. 제가 사천상단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하하, 조사하고 말고도 없지만 그리하고 싶다면 그리하시오. 아 추가로 전해줄 이야기가 있소이다. 이번에 가주 형님의 회갑연에 손님으로 온 청성과 아미의 대표단들이 하나같이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소이다. 자칫 헐벗고 굶어 죽게 생겼다면서……."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무림 문파가 굶어 죽게 되었다고? 더구나 청성은 도문이고 아미는 불문의 성지인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식자재와 각종 부자재를 공급하는 자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오. 인근에 있던 자그마한 시장도 파리만 날리고 있고……."
주성진은 순간 자신이 있었던 형산파를 떠올렸다.
'우리는 최소 굶지는 않았는데, 논과 밭을 직접 일구었으니까.'
"음, 제가 잘 몰라서 드리는 말씀인데 자체로 경작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무림은 별개의 세계라 하지만 예외가 있소이다. 사실 청성산과 아미산은 청성과 아미가 무림문파로 거듭나기 전부터 도문과 불문의 성지였소. 그러니 허락받지 않고서는 주변을 함부로 개간할 수가 없소이다. 숲을 없애고 논과 밭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오……. 뭐 솔직히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요즘 어느 문파가 직접 농사를 짓겠소이까? 안 그렇소?"
주성진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사부님과 사형들은 형산에서 열심히 논과 밭을 일구고 있을 텐데.'
"뭐 딴에는 그렇네요. 하면 도대체 그런 일이 왜 발생한 걸까요?"
"그야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누군가 농간을 부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소. 이런 걸 두고 전형적인 문파 괴롭히기라고 하는 건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사천상단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당가홍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다만 그들이 도대체 왜 그리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소. 물론 아직은 정확한 건 아니지만……."
"하하, 좀 전에 사천상단이 사파스럽다면서요? 혹 그들 자체가 사파인지 알 수 없잖아요. 어……."
말을 뱉은 주성진은 깜짝 놀았다.
'이거 뭐야,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한데, 요즘 무림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고…….'
당가홍은 주성진의 말에 머리를 세게 둔기로 맞은 것 같았다.
'저걸 왜 생각 못 했던 거지. 그들 자체가 사파 소속이라면 모든 게 일목요연하게 설명이 되잖아. 당가타의 문제까지도. 음 이는 사파놈들이 사천성을 집어삼키려고 술책을 부리는 것이 틀림없어.'
비록 그가 객잔을 운영하고 있지만, 무림 동향은 빠짐없이 챙기고 있었다.
'음, 요즘 총무련이 흔들린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만일 사파의 핵인 사도련이 부활한다면…….'
당가홍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그의 뇌리에 수많은 시신이 산을 이루고 그들이 흘린 피가 강이 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안 돼, 무림 전쟁은……. 조만간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객잔을 새롭게 꾸미려고 했건만……. 휴, 다시 이 손에 피를 묻혀야만 하는 것인가…….'
그 순간 주성진의 귀가 쫑긋거렸다.
'숲속에 누군가 있다. 아, 이리 오고 있어.'
주성진은 당가홍과 그의 딸을 바라보았다.
"이거 불청객이 올 모양인데 두 분은 그만 산을 내려가심이 어떨는지……."
주성진의 말에 당가홍이 얼굴을 찡그렸다. 공력을 최고조로 올렸음에도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제길, 이게 그와 나의 수준 차인가…….'
얼마 후 간신히 기척이 잡힌다.
'들린다. 가만 주성진이 왜 우리더러 하산하라고 했을까?'
"주 상단주, 한데 왜 우리 부녀더러 산을 내려가라고 한 거요?"
"그게, 오는 자가 좀 강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느낌이요?"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강한 기파가 느껴집니다."
"정말이오? 그럼 얼마나 강한 자요?"
"글쎄요, 절정의 고수 같습니다만."
주성진은 그의 말에도 끔쩍 않는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휴, 할 수 없지, 구경하고 싶다는 데야.'
잠시 후, 예상대로 숲속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주성진을 포함한 세 사람을 보면서도 태연했다.
"하하. 이거 날 환영하는 건가?"
주성진이 대표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그가 주성진의 이모조모를 뜯어본다.
"하하, 이것 참, 난 운이 좋군.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는데 여기서 당사자를 만나다니……."
"저를 아십니까?"
그가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후후, 강자와 겨루고 반드시 강자를 죽인다, 그것이 바로 나의 즐거움이자 무를 수련하는 이유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그러니까 뭡니까? 저를 쓰러뜨리려고 왔는데 운 좋게 나를 만났다는 말씀인가요?"
"소원이라면 네가 죽기 전에 말해주겠다, 흐흐."
"하하, 그러셔요. 한데 왜 겁이 나지 않는 것일까요? 제 눈엔 곧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당신의 모습이 그려집니다만……."
상대가 두꺼비상의 얼굴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너, 점쟁이냐?"
"점쟁이는 아닙니다."
"그럼 됐다. 난 점쟁이를 제일 무서워하거든. 자 그럼 덤벼라!"
주성진은 어이가 없었다. 동시에 상대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저자 하는 짓이 영 그런데……. 뭐 어쨌든 그건 저자의 사정이고 나로서는 그가 날 죽이려는 이유를 알아내야겠어.'
"잠깐! 내가 그대를 죽인다면 어떻게 할 거요?"
"날, 죽인다고! 꿈 깨!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점쟁이셨거든, 그분이 나더라 80살을 거뜬히 산다고 하셨단 말이야. 그래서 난 일찍 우리 어머니 곁으로 가질 않아."
"아이코 그러셔요, 한데 안타깝군요. 당신 같은 사람이 누구의 하수인이라는 게."
그러자 그가 콧방귀를 꼈다.
"흥! 그딴 유도신문에 넘어가지 않는다. 다만 이것만 알아두어라, 난 강자가 있다는 정보를 받고 자발적으로 나선 것뿐이라고."
주성진은 그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어느 한 조직에 속해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날 죽이려고 하는 거지? 아 그렇구나! 그가 펼치는 무공을 보면 대략 그가 어디 출신인지는 알 수 있을 거야. 뭐 내가 잘 모른다면 경험 풍부한 당가홍은 알 수 있겠지…….'
주성진은 당가홍을 바라보며 전음을 펼쳤다,
―저자와의 대결은 불가피할 듯하니, 저자의 무공을 잘 지켜봐 주십시오.
―알겠으니, 몸조심하시오.
주성진은 다시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대결합시다. 그 전에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겠소."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그냥 넘어가!"
"그럼 할 수 없지, 난 그대를 두꺼비라고 불러야겠소."
그의 얼굴이 갑자기 시뻘게졌다.
"이 새끼! 감히 내가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다니, 넌 고이 죽기 틀렸다."
"하하. 아이고 무서워라… 한데 말이오, 우리 편은 3명인데 불리하지 않겠소?"
"비겁하게 협공하겠다는 것이냐? 그러면 나도 방법이 있다. 너와의 대결을 미루고 곧바로 신호탄을 쏘아 올리겠다."
주성진은 그가 신호탄을 갔고 왔는지는 몰랐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저놈이 혼자가 아니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날 죽이려고 온 자들이 하나가 아니란 말인가! 음… 저놈의 태도를 봐서는 저자의 패거리들이 각자 따로 행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것 참 알쏭달쏭 하구나.'
게다가 상대가 어딘가 어리숙하게 보이긴 하지만 실상은 만만치 않았다.
'조금 정신상태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미친 건 아니야. 게다가 아무리 천부적인 소질이 중요하다고 해도 상승무공일수록 머리가 나쁘면 익히기 어렵지…….'
잠시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대치했다.
주성진의 태연한 모습을 보며 상대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리다고 쉽게 보면 안 되겠어. 음 할 수 없군, 여차여차하면 내 진면목을 보여줄 수밖에.'
그 순간,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먼저 선공하시오, 두꺼비씨!"
삽시간에 상대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주성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은 마치 세상의 모든 걸 태워버릴 듯하다.
아울러 순식간에 그의 기도도 바뀌었다.
그의 수염이 바람도 없는데 흩날리며 꿈틀거리고 머리카락은 곤두섰다.
그의 옷이 부풀어 오르고 기이한 바람이 그의 전신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손은 약간 구부러진 채 기이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피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 순간 그가 손을 뻗었다.
쫙 편 손바닥에 담긴 거대한 힘이 허공을 가르며 주성진을 갈가리 찢어놓기 위해 날아왔다,
쐐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