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화 당가홍의 제안 (1)
그 순간 당혜미가 끼어들었다.
"주 상단주님, 제 소원이 뭔지 아세요? 만천화우를 대성하는 거예요."
만천화우야 워낙에 유명한 무공이라 주성진도 이를 모르진 않았다.
"아, 그렇소이까. 꼭 성취하시길 바라외다."
당혜미는 주성진이 그저 하는 말 같아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만천화우가 어떤 무공인지 아나요?"
"그거야 본 적은 없지만 수천 갈래의 강기로 이루어진 죽음의 빗방울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무공인 줄은 아시겠군요."
주성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왜 이래? 그러면 그런 줄 알지…….'
"음, 책에서 보니까 우선은 임맥을 타통하고 나아가 조화지경을 체험하면 만천화우를 대성할 수 있다고 그럽디다……."
"그래요? 그런데도 제가 대성할 수 있을까요?"
당가홍은 자신의 딸을 말릴까 하다가 관두었다. 이후 주성진의 대답이 더 듣고 싶었던 거였다.
'설마 화를 내지는 않겠지. 내 딸이지만 암팡진 데가 있단 말이야. 그렇군, 저 녀석은 무던하고 어딘가 좀 모자란 듯한 녀석을 만나야지, 안 그러면 일 나겠어. 녀석아! 너의 배필은 정해졌다. 너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그게 다 너의 팔자라고 생각해라, 하하.'
그 순간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일단 소저가 기를 뿌릴 줄 알기에 임맥은 타통했을 것 같소이다. 그렇다면 조화지경이 문제인데, 내 생각으로는 그건 초절정 이상의 경지가 아닐까 싶소이다. 남은 건 어떻게 초절정의 고수가 되느냐인데, 음 방법은 여러 갈래가 있을 것 같지만……."
"……."
"음 나는 솔직히 깨달음보다는 공력을 신봉하는 사람이라, 그대에게 부단히 공력을 늘리라고 말하고 싶소이다."
"그럼, 주 상단주님처럼 공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주성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참, 맹랑하네, 그걸 왜 물어,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생각하외다."
"그 말인즉, 기연도 뜻이 있다면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간절히 바란다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싶소이다. 내 생각에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복이 온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소이다. 해서 항시 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복을 기다리면 좋을 것 같소."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밝게 웃었다.
"호호. 복을 받을 준비를 하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전, 상단주님을 잘 사귀어야겠는데요. 복을 받으려면 복덩이 옆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미안하지만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소만……."
"잘못 오해하셨네요. 제 말은 운 좋은 사람 옆에 있어야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 그 말이에요."
"그 말이 그 말 아니오?"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죠, 저는 단지 운 좋은 사람 옆에 있겠다는 뜻입니다. 그게 꼭 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주성진은 그녀 모르게 살짝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실룩거렸다.
"뭐, 아무튼 잘 알아들었소이다."
그 순간 당가홍의 뇌리에 일석이조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하. 바로 그거야.'
당가홍이 미소 띤 얼굴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음, 주 상단주, 내가 제안할 것이 있소이다. 서로 좋은 것이니 미리부터 내 말을 경계하진 마시오."
"아. 네 그러겠습니다."
"내가 좀 알아봤는데 요즘 사천상단이 좀 이상하오. 하는 짓거리가 꼭 사파 같단 말이요. 사실 그 정도 규모면 명성을 쌓고 더 멀리 도약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건 도대체 하는 짓이 동네 양아치만 못하니 쯧쯧."
주성진은 갑자기 그의 입에서 사천상단이 튀어나오자 이건 또 뭔 일인가 싶었다.
'사천상단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유비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여기서 또 듣게 되는군.'
"그 말씀은 그들이 뒤로 폭력이나 갑질을 행세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소이다, 아주 교묘하게 말이요. 해서 말인데 그대는 상인이니 우리보다는 사천상단의 습성을 잘 알아낼 수 있다고 보는데 안 그렇소?"
주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에이, 증거도 없이 함부로 조사할 순 없지요. 더군다나 전 포쾌가 아닙니다."
"내가 좀 알아본 것도 있고, 객잔의 손님들한테도 그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소이다. 그러니 이번 건은 내가 허투루 말하는 게 아니오. 신빙성이 아주 높은 이야기요."
"좋습니다, 그렇다 치고요. 하면 그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순간 그가 자신의 딸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당혜미의 얼굴에 어렴풋이 미소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이를 놓치지 않은 주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뭐지? 부녀가 작당하는 느낌인데…….'
"주 상단주, 혹 당가타라는 말을 들어봤소이까?"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잘 모르겠습니다. 느낌에 당가타라는 곳이 당문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역시 눈치는 대단하오, 맞소이다. 당가타는 당가의 집성촌을 일컫는 말이오. 대략 3천 호 정도의 큰 마을이었지……. 한데 20년 전 큰 불행이 찾아왔소. 느닷없는 대지진이 덮쳐 당가타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소."
"……."
"무공을 익힌 자들은 대부분 무사했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았던 식솔들은 많이 죽고 다쳤소이다. 가주는 당가타를 다시 복구하지 않고 그길로 이곳 성도로 이주를 결정했소이다. 그게 지금의 당가 그러니까 당문이 된 것이오."
"……."
"그런데 말이오, 5년이 지나 폐허가 된 당가타를 나라로부터 사들인 자들이 있었소, 그게 바로 사천상단이오. 우리 당문에서는 뒤늦게 당가타를 되찾기 위해 관청에 손을 써봤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았소이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유권이 당문에 있는 것 아니었나요?"
"무림의 문파들은 나라에서 간섭하지 않지만, 한 가지 불문율이 있소. 만약 이주한다면 그 지역은 자동으로 나라의 땅으로 편입된다는 것이오. 그 당시 지진이 난 후에는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니 많은 이들이 옛 추억이 담긴 당가타를 그리워했소이다."
"……."
"그랬는데… 좀 전 말한 것처럼 되고 만 것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기에는 그가 몰랐던 사실도 있었다.
'음, 무림의 문파가 터전을 옮기면 자동으로 땅이 나라에 귀속되는 거였군. 아, 그래서 무림의 문파들이 본거지를 잘 옮기지 않는구나, 그런 여러 이유로.'
"그럼 당가타는 어디에 있습니까? 혹 지금의 사천상단의 위치에?"
"그렇지는 않소이다. 다만 그놈들이 무슨 목적으로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소이다. 해서 사실상 여태 버려진 채 방치된 셈이오."
"허허, 들어보니 이상하군요. 왜 그 땅을 샀을까요?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나중에 무슨 용도로 사용하려나……?"
당가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그걸 잘 모르겠소이다. 샀다면 무슨 목적이 있을 텐데……."
"혹 지금의 당문이 당가타로 돌아가는 걸 막기 위해서 그리한 건 아닐까요?"
"음,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가만……."
당가홍의 뇌리에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만일 강적이 쳐들어온다면 방어하기엔 당가타만큼 좋은 곳이 없지. 높은 구릉 지대에 있기 때문에…….'
"그게 말이요, 당가타는 천연의 요새라고 할 수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말이오. 하지만 그 당시 수뇌부에선 총무련이 태동하고 무림의 평화가 도래하던 시기라 굳이 살기 불편한 당가타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소. 물론 지진이 나지 않았다면 계속 그곳에 뿌리내리고 있었겠지만……."
그는 이야기를 끊더니 주성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하하, 자 지금부터가 본론이오. 당가타의 정가운데 위치에 독약당이 있었소이다. 말 그대로 독과 약을 연구하던 곳이오. 한데 그곳이 유독 지진에 의해 큰 피해를 봤소이다. 땅이 쩍 갈라지는 바람에."
"……."
"내가 그대에게 제안하고 싶은 건 땅속으로 꺼진 독약당을 찾아서 한 가지 영물을 찾는 것이오, 그건 바로 토룡지왕이오."
주성진은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에이 뭡니까, 저더러 지렁이를 찾으라는 말입니까?"
"하하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보통의 지렁이가 아니라니까. 이놈은 말 그대로 지렁이의 제왕이요. 수명도 천년 이상이고, 그리고 이놈은 땅속에서 좋은 기운만 쫓아다니는데 특히 이놈에게는 극독도 좋은 기운이라오."
"……."
"아마 지금쯤 땅속으로 함몰된 독약당의 귀한 영초와 극독을 조금씩 주워 먹고 있을 거외다. 두꺼운 금고에 보관된 영초와 극독이라 금고를 뚫는데 시간이 좀 걸렸을 것이고."
주성진은 여러 가지 의구심에 휩싸였다.
땅속에 함몰된 독약당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설사 찾는다고 해도 과연 토룡지왕이 거기에 있을 건지 등등.
주성진은 반사적으로 당가홍을 쳐다보았다.
'이상한데, 저 자신 있는 모습이라니, 뭐가 있는 걸까?'
주성진은 일단은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그놈들은 보통 암수 한 쌍이 같이 다니니까 못해도 최소 두 마리는 그곳에 있을 거요. 내가 제안하는 건 그중에 절반은 그대에게 주겠다는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암컷의 내단을 복용하고 최소 10년의 내공을 늘릴 수가 있을 것이오. 내가 최소라고 한 건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뜻이요. 만일 두 마리밖에 없다면 적어도 한 마리당 50년은 너끈하지 않을까 싶소이다."
"……."
"음음, 내가 이토록 확신하는 건 토룡지왕이 좋아하는 3대 극독인 단장초와 견혈봉후 그리고 견기약이 독약당에 있었다는 거요. 그것도 1,000배 농축한 독액의 형태로……. 그러니 토룡지룡이 안 나타나고는 배길 수가 없지 않겠소? 하하."
주성진이 그를 보며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당가홍이 말을 멈추고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저 방금 말씀하신 건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혹 책에서 본 것입니까?"
"그렇소, 당문에는 독초와 약초의 효능을 상세히 적어놓은 책이 있소이다. 만독보전과 만독약전이라는 책인데 독약당의 당주가 되려면 반드시 외워야 하는 책이오. 그 속엔 2만 가지의 독초와 약초가 언급되어 있소이다……."
"그러니까 총 2만 가지의 독초와 약초를 깡그리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당가홍이 돌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소. 나처럼 기억력이 좋아야 독약당의 당주가 될 수 있지, 하하하."
주성진은 깜짝 놀랐다.
'그럼 이 사람이 독약당의 전 당주?'
"혹 그럼 독약당의 당주였습니까?"
"그렇소, 뭐 얼마 있지는 않았소, 한 1년 했나……. 더럽고, 치사해서 당주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 그리곤 객잔을 세웠고……."
주성진은 그의 개인사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가 독약당의 당주였다고 하니 없던 신뢰감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은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하하. 한데 그 사실을 아시면 직접 하시면 될 텐데 굳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지금껏 알고도 포기하고 있었소이다.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에."
그의 말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그럼 저는 왜 가능한가요?"
"그대는 내가 보는 관점에선 절정을 까마득히 넘어선 고수요. 내 생각에는 초절정도 양에 차지 않을 것 같고, 아마도 화경 초입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