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화 암기술을 논하다 (2)
주성진이 검을 뽑아 들자, 당혜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야. 검을 집어 던질 모양인데. 창이라면 모를까 다루기 쉽지 않을 텐데.'
당혜미가 의문 반, 기대 반 하고 있을 무렵, 주성진의 몸이 활처럼 뒤로 휘었다.
그리고 곧장 그 반동을 이용해 검을 집어던졌다.
쉐애액!
당혜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방향이 틀리잖아.'
그랬다. 주성진이 던진 검은 목표 지점을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야합!"
주성진이 일부러 기합을 넣으며 관전자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그리곤 곧바로 손을 흔들어댔다.
당혜미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뭐 하는 거지, 허공에 빈손을 왜 흔들어? 이건 좀 아니잖나…….'
하지만 투덜거림은 이내 경악으로 바꿨다.
"홋, 저럴 수가!"
돌연 주성진의 검이 방향을 선회해 곧장 노송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천천히…….
처음엔 주성진도 목표를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것만 생각했다.
한데 상상외로 진기의 조절이 잘 되자 속도 조절을 시도해본 거였다.
'된다, 속도 조절까지 내 마음대로. 음 이런 세밀한 내기의 조절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내 몸에 내가 생각한 이상의 변화가 있는 게 분명해. 나중에 운기조식을 해봐야겠어. 그건 그렇고 자 이번엔 다시 빠르게…….'
천천히 나아가던 주성진의 검이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하더니 갑자기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쉐애액!
엄청난 가속에 당혜미의 고운 입술이 절로 벌어졌다.
'어어, 믿을 수가 없어! 동체 시력이 따라가질 못하는구나.'
그제야 그녀는 주성진이 자신과 비교해 차원이 다른 고수라는 걸 깨달았다.
'음, 공력이 늘면서부터 매사에 자신만만했었는데, 이건 뭐……. 말이 안 나온다, 휴…….'
한데 그 순간이었다.
막 노송에 부닥칠 것 같은 주성진의 검이 다시 속도를 줄이고 노송의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노송의 잔가지를 쳐내기 시작했다.
사가각, 사가각…….
'하하. 잔가지가 너무 많으면 높이 자라질 못하지…….'
잠시 후
착!
주성진의 검에 다시 검집에 들어갔다.
주성진은 자신의 비검술에 대해 만족해하며 천천히 몸을 틀었다.
"소저! 나름 재주를 부려봤소, 성에 차는지 모르겠소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
"아니, 아니, 음… 너무 놀라워 말이 나오지 않아요. 좋은 구경을 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오."
그 순간 가까이에 있던 그녀의 아버지인 당가홍이 입을 열었다.
"이거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나의 안계를 높여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하."
"당 선배님, 여긴 객잔이 아니니 저를 후배로 대해 주십시오."
"하하 알겠소이다. 그나저나 나와 내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신기를 보여주었는데 답례라도 해야 할 텐데……."
주성진은 이때다 싶어 얼른 말을 이었다.
"암기술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시범을 보여주면 더 좋고요."
"이거, 나보다 고수에게 무슨 가르침을……."
"솔직히 암기술은 따님이 저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그러니……."
당가홍이 주성진을 바라본다. 그는 주성진의 얼굴에서 진심을 읽었다.
"음, 허허 알겠소이다. 그럼 미욱하지만, 시범을 보여드리겠소……."
당가홍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은자를 꺼냈다.
"하하, 이거 내 비상금인데……."
"은자를 암기 대용으로 쓰는 거네요."
"뭐 딴에는 그렇소이다. 하하. 자, 잘 보시구려!"
당가홍은 말이 끝나자마자 은자를 꺼내 던졌다.
주머니에서 은자를 꺼내 앞으로 던지는 동작이 너무나 매끄러웠다.
휙……!
퍽……!
빠르진 않았지만, 직선으로 날아간 은자는 그의 딸이 던진 노송의 바로 위에 박혀 들어갔다.
"이건 흔히 말하는 가장 초보적인 형태의 암기술이요. 곧고 정확하게 던지는 기술이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은밀한 동작의 흐름이요. 내가 시범을 보인다고 예고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소이까?"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 그가 암기를 던질 줄 전혀 예상 못 했겠지. 그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다고 생각했을 거야. 역시 암기술의 기본은 예측불허에 있어. 위력이 좀 약하더라도 상대가 낌새를 느끼지 못한다면 무방비 상태로 상대를 가격할 수 있지.'
주성진은 벌레가 주변을 맴돌자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그래, 뭐 힘이 부족하면 어때! 그걸로도 충분히 성공한 거야. 더욱이 암기에 독을 바른다면!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겠지…….'
주성진은 당가홍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대비하지 못했을 것 같군요. 새삼 암기의 기본에 대해 다시금 느낍니다."
"그렇소이다, 암기를 펼칠 때는 어떤 자세에서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오. 위력의 강화나 변화는 나중의 문제이고."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하."
잠시 후 그는 노송 근처로 다가가 허공섭물로 은자를 회수해왔다.
그가 나무에 박힌 은자를 손대지 않고 빼 온 건, 사실 누가 봐도 놀랄 만한 일었다.
이로써 그는 스스로 고수임을 증명해 냈다.
그가 주성진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하하 부끄럽소이다."
"아아 아닙니다, 정말 잘 하셨어요. 솔직히 허공섭물을 펼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소. 순간적으로 충동이 일어나서 그냥……. 으음 자 그럼 두 번째를 시전하겠소이다. 이번에 특히 내 손목을 주목하시구려."
"……."
쉭……!
그는 은자를 튕기듯 집어 던졌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도 보일 만큼 은자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갔다.
'음, 확실히 손목을 회전해서 틀어 던지는구나. 그러고 보니 파지법도 중요하네, 검지와 중지에 끼워서 튕기듯 날려 보내는구나.'
퍽……!
잠시 후 은자는 똑같은 자리에 날아가 박혔다.
"하하, 여기까지는 그대가 이미 본 것들이요. 다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시범이 별개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오. 암기를 던지는 자세가 완성되면 그다음은 반드시 암기에 회전을 거는 연습을 해야 한다오, 그것도 부단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소."
주성진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뭘 또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암기술은 지금부터 시작이오. 잘 보길 바라오."
그가 돌연 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작은 가죽 주머니 하나가 딸려 나왔다.
'뭐 하는 거지? 암기인가?'
당가홍은 가죽 주머니를 열어 빠르게 뭔가를 꺼냈다.
"자, 잘 보길 바라오."
휙……!
암기가 바람에 날리듯 나풀나풀 날아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배회하는 게 꼭 나비 같았다.
순간 주성진의 동공이 한없이 커지고 있었다.
'어! 뭐야, 설마 나처럼 기로 조정하는 건 아니겠지. 만일 그렇다면 나와 필적하는 고수인데.'
주성진이 놀란 건 갑자기 허공을 이리저리 떠돌던 암기가 곧장 일직선으로 나아가 정확히 표적을 맞혔기 때문이었다.
퍽……!
"하하, 당가의 대표 암기 중 하나인 호접표요. 그러니까 비표(飛?)의 한 종류로 보면 되오. 비표는 던지는 위치와 암기가 생긴 형태에 따라 회전하는 방향도 각기 달라지오. 가령 적들이 엄폐물 뒤에 숨어 있거나, 앞줄이 아닌 뒷줄의 자리를 표적으로 할 때도 사용하면 좋소이다."
"……."
"뭐, 그대에겐 우습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약간의 진기를 암기에 실을 수만 있다면 비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소이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절대 우습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게 훨씬 실용적입니다. 비검술은 공력의 소모가 극심하거든요, 해서 만약 적이 다수일 경우 빨리 진기를 회복하지 않으면 자칫 낭패를 볼 수가 있답니다."
"자칫 낭패를 본다……. 음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대는 빨리 진기를 회복하는 편이구려."
"하하 그게요, 이거 참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스운데 아마 열흘 전만 하더라고 제가 대답을 망설였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빨리 회복하는 편이라고."
당연히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음 그사이 뭔 일이 있었소?"
"하하. 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암기를 잘 만든다면 그 자체로 대단한 이점이 되겠네요, 호접표처럼요……."
"뭐, 거기에다 독까지 가미한다면… 하하."
그의 얼굴에서 강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당문 출신이라는.
"자 마지막으로 재밌는 걸 보여주겠소이다."
뚝. 뚝…….
그가 긴 나뭇가지를 꺾어 손가락 중지 정도의 길이로 부러뜨리기 시작했다.
대략 열 개가 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주성진은 직감적으로 감이 왔다.
'이번엔 다수의 암기를 활용하는 수 같구나. 나뭇조각을 암기 대용으로 쓴다는 건 그가 이미 절정의 고수라는 뜻인데…….'
주성진이 잠시 생각하는 사이 그가 몸을 움직였다.
휘리릭!
나뭇가지 조각들이 차례로 허공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각기 뿔뿔이 흩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모두가 표적을 정확히 맞혔다.
퍽 퍽……!
'와우, 대단하다.'
열 개가 넘는 나뭇가지 조각이 정확히 한자리를 꿰뚫었다. 그것도 각기 다른 방향에서.
"이건 다수의 적을 처리할 때도 유용하고, 강한 적을 상대할 때도 유용하외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군요. 많이 배웠습니다. 열 개의 나뭇조각을 일시에 날리는 것도 모자라, 방향까지 제각각이더군요. 상대가 예측 못 하게……."
"하하, 물론 암기를 한꺼번에 날리는 건 아니오. 미세한 차이를 두고 하나하나 날리는 것이지……. 만일 동시에 날린다면 그건 진기로 암기를 조정하는 건데 그건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요, 그대라면 가능할지도."
"음, 뭐… 잘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상승의 암기술 익히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그거야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그대는 빨리 습득할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보인 시범은 암기의 다양성과 유용성을 강조하는 면도 있지만, 그대가 직접 눈으로 보고 체감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펼친 것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가 어찌 선배님의 뜻을 모르겠습니까. 음 제가 어릴 때 주판알을 가지고 놀았었는데 저는 앞으로 주판알을 암기로 삼아봐야겠어요. 워낙에 익숙한 것이라……."
"뭐요 주판?"
주성진은 눈알을 굴렸다.
'아차차, 전생의 일인데…….'
"깨진 주판이 있어서 그걸 가지고 놀았습니다."
"난 또… 실은 지금은 종적을 감추었지만 실제로 주판을 무기로 삼은 무림인이 있었소이다. 한데 말이요, 그자가 종종 사용하는 게 주판알이었소. 주판에다 무슨 장치를 한 거지……."
"……."
"생각해보시오, 상대가 주판을 무기처럼 휘두르다가 갑자기 주판알을 날려버린다면……?"
주성진은 곧바로 답했다.
"하하, 그러면 무척 까다롭겠습니다."
"그렇소이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소이다. 그러니 상대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주성진은 그자를 꼭 만나고 싶었다.
'왜 하필 주판을 무기로 삼는지 물어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