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화 감전동과의 대화
감전동이 곁눈으로 주성진의 표정을 살폈다.
"편안하실 겁니다. 비록 내부 장식도 외관 못지않게 단출하지만요……. 음 그래도요,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더럽지 않습니다. 청소와 빨래를 자주 하거든요. 아 참, 음식도 괜찮은 편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곳이 당가와 관련 있는 객잔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도 당문객잔이지요."
주성진은 감전동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그렇군요. 몰랐네요. 여기 와본 적이 있습니까?"
"네. 전에 두어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행들을 이쪽으로 안내한 것이고요. 한데 당문객잔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당문의 제자들은 이곳에 일절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당문객잔의 주인이 현 당문 가주의 사촌 동생인데 당문의 제자들을 보기만 하면 무공을 지도해준다는 핑계로 괴롭힌다고 하더군요."
"……."
"혹자는 그가 당문에서 독립해서 나와 객잔을 지을 때, 당문에서 금전적인 도움을 주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그런 기행을 벌인다고 하더군요. 그도 사람일진데 객잔을 왜 다른 객잔처럼 으리으리하게 짓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결국엔 돈이 부족해서 건물을 멋대가리 없이 지은 것이지요."
주성진은 픽 웃다가 돌연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실은 말입니다. 동창 놈들에게 선물로 받은 도자기를 빼앗겼습니다."
주성진의 이 한마디에 감전동은 주성진의 기분과 상황을 파악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무도한 놈들이군요."
"그렇지요. 당분간은 동창 이야기를 꺼내지 말자고요. 주변에 그들이 심어놓은 끄나풀이 있는지 모르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장사하려니 권력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고 참 그렇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뭐, 어쩔 수 없지요. 나라에서 행하는 규제와 제약이 많으니까, 나라를 무시하곤 큰 장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도자기의 그림에 대해선 지금껏 별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봐야겠습니다."
감전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그때 결론이 난 것 아닙니까,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가지고는 위치를 찾을 수 없다고."
"그랬는데, 그거와 유사한 것이 황궁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황제 가까이에, 그러니 막연했던 게 좀 많이 좁혀진 것이지요."
"그러면 명 황실과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까?"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그건 확실하지 않아요. 전대 왕조에서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이제부터 차차 알아봐야겠지요."
"그건 어떻게 알아보시려고요?"
"두 가지를 생각했는데, 하나는 황궁 무공대회가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잘하면 제가 황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수소문해 보려 합니다,"
주성진은 그에게 자신이 육선문에서 들었던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하."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감 대행수께서 의뢰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뭐냐면, 하오문과 접촉해서 나라에서 운영하는 금광 중에 폐광이 된 곳이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대략 당나라 시절부터가 좋겠군요. 제 생각에 그런 정보는 하오문에서 빠삭하게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감전동은 주성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고 싱긋 웃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사금을 주우러 가시는 건가요? 저도 한밑천 잡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뭐, 그랬으면 좋겠네요. 도자기가 황궁 전용 가마터에서 만들어졌다는 가정하에 떠올린 생각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아이. 그럼요, 그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답니다. 아 참 중요한 정보를 빠뜨릴 뻔했네요. 오다가 사천상단의 상인들과 잠깐 조우했는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좀 엿들었습니다."
주성진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이야기 말미에 조선으로 가는 사신단이 올해 말에 있는데 대규모 상단을 대동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조선에서 해상무역을 금지했기에 그리한다고 합니다."
주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음, 조선에서 해상무역을 금지했다는 말이군요……. 무역을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둘 다 좋은 결과인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주성진은 조선의 정세변화에 실망했지만, 그와 동시에 부족한 정보력에 대해 절감했다.
'아, 빨리 지부를 세워야 할 텐데, 감전동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를 뻔했잖아.'
주성진은 최우선으로 북경에 지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있는 수도 북경엔 대다수 상단의 지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장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것보다는 황궁에서 흘러나오는 중요한 정보를 가장 빨리 습득할 수 있는 곳이 북경이었다.
그 순간 감전동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면 정녕 방법이 없는 건가요?"
"뭐 밀무역업자와 거래하면 되긴 해요. 대신 이윤이 줄겠지요. 그리고 이번에 거래한 비단은 중원 각지에 팔면 되니까 문제 될 것은 없어요. 다만 조선에서 가서 대규모 인삼을 저렴하게 구매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네요, 허허."
"그러면 사신단에 참가하시면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 조선에 가서 물건만 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간 김에 조선의 특산품을 매입하지 않을까요, 안 그런가요?"
"그건 감 대행수 말이 십중팔구 맞을 거예요. 게다가 어떤 거래는 물물교환 형식으로 이루어지기에 일방적으로 팔 수만은 없답니다. 팔려면 반드시 사야 하죠. 한데 문제는 나라에서 사신단에 합류할 상단을 정할 때 어떤 기준을 제시할 거라는 데 있어요."
"……."
"그러니까 나라에서 아무나 사신단 합류를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해서 우리 같은 신생 상단은 그냥은 힘들다는 이야기죠."
"하하, 그냥은 힘들면 그래도 방법은 있다는 말인 것 같은데요? 이제 저도 상단주님이 말씀하시는 행간의 뜻을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답니다."
주성진이 웃으며 감전동을 바라보았다.
"하하. 이제 상인, 다 되셨습니다. 이제 장사를 맡겨도 되겠는데요."
"아이고 제발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장사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아 어디 있습니까? 그리 미리부터 겁먹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고 권력층에 줄을 댈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는군요. 한 가지 걱정은 제가 없어도 상단을 잘 꾸려나갈 인물을 못 구했다는 겁니다. 빨리 좋은 사람을 구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호남성 장사에서 주성진이 여러 사람을 구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특정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지 상단 전체를 믿고 맡길 만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주성진이 생각하는 적임자는 적어도 대형 상단에서 대행수를 해본 사람이었다. 나이는 상관없었다.
은퇴해서 기력이 없다면 신체의 활력을 북돋아 줄 용의도 있었다.
순간 감전동이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는 것이 주성진의 눈에 보였다.
"감 대행수, 무슨 말이든 좋으니 할 말 있으면 해보세요."
"음, 그게요. 실은 제가 천거할 사람이 있긴 한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씀해보세요, 괜찮아요."
감전동이 결심한 듯 굳세게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천화각의 삼선녀 에게 맡기면 어떨까 싶습니다. 구주상단의 지분 일부를 천화각에 넘긴다면 천화각이 나서서 삼선녀를 도와주지 않을까요."
지금의 주성진과 천화각의 관계는 지분을 나눈 관계가 아니라 천화각이 일부 자금을 투자한 형태였다.
자금이라 해봐야 돈이 아니고 비급이었지만.
주성진도 한 번쯤은 생각해본 일이었다.
'음, 내가 감전동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보는 안목이 상당히 예리한데, 문제는 천화각을 끌어들인다면 점차 그들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텐데.'
그 순간 감전동의 말이 이어졌다.
"천화각 각주님과 담판을 지으면 어떨까요? 저는 이 기회에 결혼이나 약혼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혹시 압니까? 천화각도 상단주님의 수중에 들어올지. 하하."
"결혼이나 약혼이라뇨?"
"아이참, 왜 시치미 떼고 그러십니까. 강설현 소저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요."
주성진은 씩 웃었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다들 눈치채고 있었어, 허허…….'
그러면서 감전동을 다시 한번 재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천화각이 내 것이 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모르겠어, 나 스스로 속마음을 숨기고 있었는지. 뭐 어쨌든 부정한 방법으로 천화각을 장악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하하, 앞을 내다보는 수가 저보다 한 수 위인데요. 많이 참고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녀들에게 맡긴다고 해도 그녀들이 수용할지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저를 따라 다니며 상술을 배운다고 했거든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천화각 단주님을 하루속히 만나십시오. 그게 정답입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분을 만나려고 계획은 잡고 있는데 시기를 앞당겨야 하겠군요. 그리고 제가 감 대행수의 제안에 동의하는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감 대행수께서도 중요한 사업 하나를 직접 맡아주셔야 하겠습니다. 안 그러면 이 일은 없던 거로 하겠습니다."
"저는 소질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판단하고 책임지겠습니다."
"음. 대신 사금이 있는 곳이 발견되면 저를 꼭 끼워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수락하지요."
주성진은 그의 손을 잡았다,
"잘 알겠습니다. 하하."
잠시 후, 당문객잔에 들어선 두 사람은 객잔 내의 음식점이 향했다.
아침과 점심 중간쯤의 어중간한 시간대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한산하군요. 일행들은 객잔에서 쉬고 있겠지요?"
"네, 상단주님, 다들 피곤해 보였거든요. 일행들은 나중에 만나 회포를 풀기로 하고 우선 요기부터 하시지요, 저도 많이 시장하답니다."
"그러지요."
두 사람이 창문가 옆 탁자에 앉아 있으니 아리따운 아가씨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손님, 뭘 주문해 드릴까요."
감전동은 그녀를 바라본 순간 눈가에 잔 경련을 일으켰다.
'이런 대단한 미인이… 우리에게 주문을 받으러 왔단 말인가…….'
"으음, 마라탕과 마파두부 각 2인분 하고 물도 좀 갖다 주시구려."
감전동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애썼다.
그 순간 주성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어머, 혹시 구주상단의 주 상단주님 아니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혹시 절 아시는 가요?"
"호호, 얼마 전 납치사건 때 저도 현장에 있었답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았지요."
주성진은 멋쩍게 웃었다.
"아, 그러셨군요. 별거 아니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뇨, 주 상단주님은 저희들의 우상인 걸요. 실로 대단한 일을 하신 겁니다."
말을 섞다 보니 조금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이쁜 아가씨의 정체가 뭐지? 점소이는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