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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91화 (91/250)

091화 동창 첩형을 만나다 (2)

아래층에 있던 자들도 고수들이었지만, 이들은 그들과 또 격이 다른 자들이었다.

"듣자 하니 상인이라 하던데, 검을 차고 있었군. 후후후."

갑자기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목소리가 저음에 묵직한 거로 보아 환관은 아니었다.

그자를 슬쩍 살핀 주성진은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음, 저자는 사람을 잡아다가 심문을 많이 해본 자 같은데…….'

얼굴도 전체적으로 강퍅한 인상이었다. 나이는 대략 40대 중반으로 보였고.

그 순간, 등을 지고 창을 보고 있던 자가 고개를 돌리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입은 웃고 있을지라도 그 눈에는 일말의 웃음기조차 깃들어 있지 않았다.

'음. 냉혹하게 번뜩이는 눈빛, 저자가 제일 위험한 자다. 백번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야. 동창의 행사는 은밀한 가운데 늘 과격하고 잔인하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의자에 앉으시오."

주성진은 그도 환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방이었던 곳에 의자가 두 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네 개였다.

잠시 후 주성진이 그들을 마주 보며 의자에 앉았다.

'기분 더럽네…….'

마치 본인이 심문받는 느낌이다.

그들은 창을 등지고 앉았고 주성진은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는데 마지막에 말을 건 자가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아마도 그가 세 명 중에는 제일 상위의 인물 같아 보였다.

그 순간 가운데 앉아 있는 자가 재차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동창 첩형들이오. 원래는 우리 셋이 한꺼번에 있기가 힘든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소. 그대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우리 셋을 한꺼번에 본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오. 하하."

주성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라, 지껄이는 거야. 하여간 머릿속에 똥밖에 없는 자들이구나.'

그 순간 그의 말이 이어졌다.

"우린 각자 사천에 볼일이 있었던 것이지……. 자 그럼 내 소개부터 하겠소. 난 동창 첩형 주장홍이오. 그리고 내 왼쪽은 장국현이고, 내 오른쪽은 강현수라고 하오. 원래는 소개할 필요도 없는데 그대에게 얻을 것이 있어서……."

주성진은 점점 불안해졌다.

'뭐라. 얻을 것이 있다고! 설마 도자기인가…….'

"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주성진이라 합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제가 구주상단을 맡고 있습니다. 본거지는 호남성 장사이고요. 이곳엔 온 것은 큰 거래가 있어서입니다."

주성진이 상단의 상단주라고 하자 그가 다소 놀란 눈치다.

"하, 그렇소이까. 잘 해보시오, 허허. 음 그건 그렇고 실은 우리가 바쁜 와중에도 그대와 말을 섞는 건 그대의 도자기 때문이오. 처음엔 우리의 눈을 의심했소. 황제 페하의 집무실에 있는 도자기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그는 도자기를 언급하면서 가장 중요한 말은 말하지 않았다.

지금의 황제가 그 도자기를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소문에는 도자기의 그림 속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도 언뜻 들은 바 있었다.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몹시 놀랐다.

'뭐라, 비슷한 도자기가 황궁에도 있다고.'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도자기를 얻게 되었소?"

주성진은 뺄 건 빼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음, 느낌에 거짓말하는 건 아닌 것 같소만 세상은 모르는 일이지……."

"사실입니다."

그가 픽 웃는다.

"알겠소, 그런데 말이요. 우리 세 명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딘가 황제 폐하의 집무실에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했소. 하지만 감히 황제 페하의 도자기를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에 들고 가서 확인해봐야겠소이다."

주성진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저놈들이 내 도자기를 강탈하려는 거구나…….'

그래도 상대의 반응을 떠보았다.

"헤헤. 그러니까 제 도자기를 빌려달라는 말이지요?"

주장홍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그냥 나라에 기부하시오. 대신 내 권한으로 그대에게 하나의 혜택을 부여하겠소, 군역이나 부역의 의무를 면하게 해주겠소이다."

원래는 주성진에겐 군역이나 부역의 의무가 없었다. 형산파 출신의 무림인이기에.

하나 유명무실한 형산파라 그의 주장이 먹힐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전생에 주성진은 군역이나 부역을 진 적이 없었다. 나라에서 작성한 군호(軍戶)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전생이 일이고 지금은 아니다.

'음, 저놈들은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는 놈들이니까.'

동창뿐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라면 그 권력을 이용해 군호에 속한 자를 빼거나 군호에 속하지 않는 자를 더할 수가 있었다.

원래는 안 되는 것이지만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 혼란기에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주성진은 자존심 때문에 잠시 고민했다.

그의 말은 협박성 종용이었다.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본인을 군호의 대상에 올리겠다는…….

'일단 안 된다고 뻐길 것인가, 아니면 순순히 응낙할 것인가…….'

주성진은 선물을 준 도공을 떠올렸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군요.'

"음, 제게 선물을 준 사람에겐 죄송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황제 폐하의 일이니 기꺼이 내어드려야지요. 헤헤, 대신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나중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알았소. 일이 우리 뜻대로 원만하게 풀려 좋소이다. 그럼 가보시오, 멀리 나가지 않을 테니."

갑자기 어이가 없는 축객령이었다.

주성진은 주섬주섬 본인의 옷가지 등을 챙겨 방을 나갔다.

'도둑놈 새끼들, 한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혹 저놈들이 도자기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인가?'

한편 주성진이 완전히 객잔을 떠나자 첩형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하."

"형님! 잔뜩 겁을 주니 순순히 떠나는군요. 혹여나 일전을 벌이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었는데요. 뭐 그렇다고 우리에게 상대가 되진 않겠지만……."

그들은 주성진을 만나기 전에 성도에 부하들을 풀어 급히 주성진에 대한 정보를 모았었다.

그래서 주성진이 꽤 높은 무공의 소유자라는 것을 대략 알고 있었다.

"장 첩형,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게 주효했소. 그가 완전히 주눅이 든 모습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소이다."

그러면서 그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더니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어찌 되었든 이번에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았소. 심양수 그 죽지도 않는 노괴를 믿었다가 청월무녀도를 놓치고 말았는데, 전화위복이 되었소이다. 이번 도자기 일로 태독님이 황제 폐하의 칭찬을 받게 될 테니 말이오."

그러자 장 첩형이 고개를 끄떡인다. 하나 속마음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우리는 무슨, 본인이 책임자니 본인이 제일 똥줄이 딴 거지. 나야 반역자를 추적하는 임무를 맡고 이곳에 내려온 것뿐이니까. 뭐 어쨌든 다행인 거야, 자칫 동창의 분위가 얼음장처럼 싸늘해질 뻔했으니까. 태독님이 한번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운데.'

"하하,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화가 복이 된 셈이지요. 청월무녀도가 좀 아깝긴 하지만, 그거야 암상에 정보 노출의 책임을 물어 구매원금을 회수하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그 일은 황제 폐하가 지시한 일도 아니니, 태독님께서 그냥 넘어가시겠지요."

주 첩형은 얼굴에 미소를 띠다 심양수를 떠올리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제길, 하여튼 심양수 그 노괴 때문에 심장이 쫄깃쫄깃했어. 그림을 가진 자를 얼마나 구석으로 몰아붙였으면 그자가 강물에 뛰어들었겠냐고! 그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림이 아까워서라도 웬만하면 강에 뛰어들지 않았을 텐데……."

"……."

"하여튼 심양수 그자 문제가 많아. 상대를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사로잡았어야지, 안 그렇소이까?"

장 첩형이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형님! 은거를 꽤 오래 했는데도 옛날 성질을 못 버렸나 봐요."

"후후, 그게 어디 가겠소. 원판이 그렇게 생겨 먹은 자인데……. 그건 그렇고 아까 그 상인 말이오, 나중에 기회 되면 적당한 선에서 잘 좀 봐 주어야겠소. 어쨌거나 그자가 큰 역할을 한 거니까."

장첩형이 고개를 끄떡였다.

"하하. 그러네요."

그 순간 환관 출신 강현수가 끼어들었다. 나이로 따지면 그가 셋 중에 제일 막내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그자가 도자기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우리와 일전을 불사했을지도 모릅니다. 무림의 초고수들 치고 동창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잖아요. 대신 벌레처럼 싫어하지……."

그러자 장국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보시오, 난 그가 도자기의 비밀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소이다. 비밀이 있다면 도공이란 자가 그에게 선물로 줄 리가 없지 않겠소. 그리고 우리가 황궁에서 들은 것도 그저 소문에 지나지 않소이다. 확실한 건 아니란 말이오."

"장 첩형님, 뭐 그리 열을 내시는 겁니까. 제가 그럴 리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요."

"뭐 좋소. 한데 그가 왜 초고수 무림인이라는 거요? 내 생각엔 그저 무공을 제법 익힌 상인 같아 보였는데……."

강현수가 다시 말을 받았다.

"제가 황제 폐하의 지방 시찰을 앞두고 사전 답사를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요, 얼마 전 충칭의 한 객잔에서 무공이 뛰어난 상인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가 그때의 상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국현이 고개를 흔든다.

"에이, 그럴 리가, 상상이 지나친 것 아니오?"

"장 첩형님, 저의 감이 뛰어난 건 아시지요? 조사해보면 그가 충칭에 들렀다는 게 금방 드러날 겁니다."

장국현은 주성진의 이동 경로와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다.

'뭐, 이동 경로상 그럴 수도. 거기에 더해 주성진 그자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충칭은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니까, 도자기를 충칭에서 선물 받았을 수도… 하지만 그가 나를 뛰어넘는 초고수라는 건 도저히 믿지 못하겠는데…….'

그 순간 강첩형의 말이 이어졌다.

"저와 돈 내기 할까요?"

"아, 아니요. 그건 싫소이다, 하하."

주성진이 객잔에서 나오자 기다리던 감전동이 다가왔다.

"별일 없으셨습니까?"

주성진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걸어오자 주성진은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자, 일단은 일행들이 머무는 객잔으로 갑시다."

"아, 네……."

둘은 한동안 걸어가며 말이 없었다.

그러던 감전동이 어느 순간 입을 열었다,

"다 왔습니다, 이곳입니다."

전체적인 미관은 전에 묵었던 객잔보다는 떨어져 보였지만 규모는 훨씬 커 보였다.

'뭐 좋게 보자면 실용적으로 지었군. 건물 외양은 단순하지만 튼튼하게는 지은 것 같아. 뭐 어쨌든 객실료나 음식값이 타 객잔보다 저렴하다면 그 자체가 충분히 강점이 될 수 있지.'

주성진이 객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감전동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헤헤, 건물의 외관이 그렇고 그렇죠?"

"뭐, 편안하기만 되는 거죠. 저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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