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90화 (90/250)

090화 동창 첩형을 만나다 (1)

방일우가 어울리지 않게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채음보양대법을 베풀어주시지요. 제 친위 부하들도 같이요. 그들도 사파 부흥을 위해 지금껏 헌신하지 않았습니까!"

"음, 좋아. 대신 은자 10만 냥을 내어놓게, 최소한 그 정도는 내어놓아야 동녀 열 명을 보내줄 수 있을 것이네."

방일우는 속으로 그를 욕했다.

'제길 매년 보내는 돈만 해도 물경 10만 냥이 넘는데 너무 하는군.'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앞으로도 계속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후후, 그렇지 않아도 자네는 견마지로를 다할 것 아닌가. 정기적으로 먹는 해약이 없으면 자네는 한 줌의 핏물로 변해! 만성 독약에 중독되었으니까."

"말이 나와서 그런데 제 충성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만성 독약을 풀어줄 수는 없는 겁니까!"

윤상혁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가 자발적으로 먹은 독약이야.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우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네가 중원 5대 상가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 같은가. 지금이야 우리의 도움이 덜 필요하겠지만 자네가 자리 잡을 때 우리가 뒤에서 봐준 걸 생각해야지."

"알겠습니다. 그저 한 말이었습니다."

방일우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명심하게, 자네가 잘못하면 자네 말고도 자네 아들들에게고 만성 독약을 먹일 것이야. 내가 마음먹고 평판 조사를 해보면 다 나오게 돼 있어. 보나 마나 자네의 자식들, 평판이 안 좋게 나오겠지만……."

윤상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음, 내가 자식들을 너무 오냐, 오냐 하며 키웠어.'

"네, 앞으로 자식 교육 잘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주성진이라는 녀석은 어떻게 벌을 주실 건가요?"

방일우가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음. 그놈이 당가의 배신자 당천균을 죽였다면 보통 놈이 아닐 것이야. 당천균 그자가 몰래 하독 한다면 나로서도 쉽게 해독하긴 힘들다고. 그렇다는 건 독에 대해 조예가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내공이 굉장히 높다는 뜻이겠지, 독을 이겨낼 정도로…….'

방일우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후후, 차도살인지계를 펼쳐야겠어. 이 기회에 사도련 부흥에 필요 없는 자들을 좀 솎아내면 좋겠어, 녹림의 세력과 내부에 말 잘 듣지 않는 놈들 말이야……."

"그러고 보니 요즘 녹림이 기고만장하고 있더라고요. 산에서 산적질이나 할 것이지 공공연하게 산에서 내려와서는 급기야는 저희가 가진 이권도 탐을 내고 있더라고요."

"그게 다 빌어먹을 총무련이 들어서서 그런 것 아닌가. 제깟 놈들도 사파 출신이면서 사도련이 해체되니까 날뛰고 있는 거지, 그래서 사도련의 부흥은 꼭 필요한 거야. 뭐 내가 성인군자 아니지만 결국에는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도 강력한 통제가 필요한 것이라고."

방일우는 윤상혁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대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후후. 어제의 적들이 오늘의 동지가 되었다고 보면 돼. 지금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지,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후후……. 사천성을 우리 사도련에서 차지하려는 게 그 단적인 예라고, 그러고 보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네라면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을 텐데, 안 그런가?"

"아, 다는 아니고 짐작 정도만, 헤헤……. 그럼 이제 곧 삼두마차 시대가 다시 열리겠군요."

삼두마차 시대란 과거 정파의 무림맹, 사파의 사도련, 마교 제일 가문이었던 흑룡가가 무림을 삼분하여 지배하던 시대를 말하는 거였다.

"반드시 그리될 거야, 지금의 총무련을 결성한 놈들이나, 이를 두 손 들고 반긴 놈들이나, 모두에게 피눈물을 안겨줘야겠지. 하하."

한편, 주성진은 자신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본인의 일행들이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기에 무척 서둘렀다.

'다 왔다!'

번화한 건물들 사이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고풍스러운 객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성진은 빠르게 객잔에 다가갔다.

자신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감 대행수!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감전동도 주성진을 보며 반기는 표정이다. 한데 곧이어 시무룩해졌다.

"상단주님, 오셨군요. 저희는 폭우에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해 새벽녘에야 여길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한데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시는 겁니까?"

"아. 그게 좀 볼일이 있었습니다. 일행들은 객잔에서 쉬고 있겠지요?"

"아닙니다. 예약이 모두 취소되어 제가 추천한 타 객잔으로 갔습니다, 저만 상단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거랍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객잔에 뭔 일이 있는 것입니까?"

"그게 동창의 인물들이 대거 투숙하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객잔 주인장 말이 상단주님도 짐을 빼서 나와야 한다고 하더군요."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동창의 처사에 분개했다.

'아무리 동창이라고 하지만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황제의 총애를 믿고 미친 듯이 날뛰는구나.'

"알겠습니다. 내가 짐을 가져올 동안 좀만 기다려주시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들어가시거든 괜한 시비에 말려들지 말고 조용히 나오십시오. 혹여나 그들이 모욕을 주거나, 거만하게 굴더라도 참으시고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 양껏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주성진으로서는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하나 그들이 나타난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놈들! 청월무녀도를 되찾으러 왔다가 허탕을 쳤으니 기분이 더럽겠군. 혹시 내게 괜한 시비를 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순간 주성진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휴, 내가 당사자니 찜찜하네, 다른 짐들이야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 도자기만은 가지고 나와야 할 텐데…….'

주성진은 귀중한 것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것도 물이 스며들지 않게 가죽 부대에 단단히 봉인했다.

해서 어제처럼 물에 빠져도 전표나 그 외, 기타 귀중품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물로 받은 도자기는 부피가 커서 가지고 다닐 수 없기에 객잔에 놓아두었다.

촤르르륵!

주렴을 걷어내고 들어선 객잔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아니, 한산한 정도가 아니었다.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적어도 일반인들은.

객잔 한쪽, 흑색 제복을 차려입은 무인들 여럿이 보였다.

삼엄한 예기,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발길을 돌릴만한 기파가 전해지고 있었다.

어지간히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들어서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검은색 제복… 동창!'

주성진은 대번에 무인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흑의를 입고 다니는 무인들이야 중원 천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빳빳한 제복에 나라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옷을 걸친 자라면 동창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라도 땅을 박찰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 피부로 느껴지는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 거기에 있었다.

'음 말로만 들었던 동창이 이렇게 강했었던가… 게다가 이만한 자들이 경계를 펼치고 있다면, 그 윗선은…….'

주성진은 다시 한번 경각심을 더했다.

눈에 보인 동창의 전력도 상상 이상이지만 그런 자들이 지키고 있는 자가 있다면 보통 인물이 아닐 거였다.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큰 곤욕을 치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동창을 함부로 건드린다는 건 장사를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어쩐 일이신지……?"

한 발짝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창백한 낯빛의 점소이가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처음 보는 점소이인데, 곤란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점소이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 객잔이 손님을 받기가 곤란한지라……."

그때였다. 안면이 있는 객잔의 주인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위층의 방을 빼 주셔야겠습니다. 대신 그간 묵었던 객실료는 절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짐을 챙겨서 빨리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한데 그 순간, 위에서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달리 들으면 굵은 목소리를 내는 여인 목소리 같기도 했다.

"이리 올라오시오."

주성진은 그가 환관임을 직감했다.

'음, 저자가 환관이라면 혹, 첩형인가…….'

주성진은 자신이 아는 동창의 조직을 떠올렸다.

동창의 우두머리인 제독 태감은 당연히 환관이지만 그 아래의 인물들은 대부분 환관이 아니었다.

다만 제독 태감 아래 다섯 명의 첩형이 있는데, 그중 두 명은 반드시 환관이어야 했다.

이는 그들 중에서 제독 태감의 뒤를 잇는 후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2층 복도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동창의 인물을 쳐다보았다.

'음. 무위가 만만치 않은 자구나.'

주성진은 지금 기세를 최대한 감추고 있었지만,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층으로 올라온 주성진은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제 물건을 챙기러 왔습니다."

그는 주성진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주성진을 제외한 모든 투숙객은 이미 떠나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알고 있소이다. 미안하지만 지금 내가 그대의 방에 묵고 있소. 중요한 공무 때문이니 그대가 이해하리라 믿소."

"……."

"사실 원래는 다른 방에 묵으려 했는데 그대를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그 방을 내 숙소로 정했소. 물론 그대의 방이 일반실 중엔 전망이 제일 좋은 방이기도 했고 말이요, 하하."

주성진은 속으로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나. 세상이 다 자기 것으로 아는 모양이군.'

"아. 저는 상관없습니다. 곧 나갈 것이니까요. 한데 저를 만나자고 한 연유를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도자기 때문이오. 그것 어디에서 났소?"

"제 거래처에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자 그가 주성진을 빤히 쳐다본다. 주성진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듯했다.

"하하. 그렇소? 자 그러면 여기 서서 이야기하지 말고 전에 당신의 방이었던 곳에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주성진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여간 뻔뻔한 놈이네. 성질 같아선 주먹을 날리고 싶구나.'

"아, 알겠습니다."

주성진은 그를 따라가며 곳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복도 끝 자신이 묵었던 객실에 다가간 순간 주성진은 크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안에 인기척이 있잖아.'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싹함을 느꼈다.

'만일 이것이 함정이라면?'

주성진은 기분이 영 별로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호랑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잖아.'

마음을 추스른 주성진이 그를 따라 성큼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의 눈에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와 한쪽 창가에 등을 지고 있는 남자 두 사람이 비쳐들었다.

그들의 외모나 인상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그들의 막강한 기세였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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