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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84화 (84/250)

084화 역산도의 보법과 경신법

그러자 역산도가 허탈하게 웃는다.

"허허, 적당히 지는 법이라… 참 우리에게 좋은 걸 가르쳐주는구려."

주성진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개중에 왕천유는 역산도와 달리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다.

'확실히 역산도보다는 왕천유가 조직에는 더 어울리는 자야. 아마 내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을 테지…….'

"자. 이번은 무공대회가 아닌 실전에서 초고수를 마주쳤을 경우요. 내가 피하라고 했는데 그 속에는 거리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소이다. 거리가 멀면 기를 운용하기가 그만큼 힘든 법이라오, 아무리 초고수라 할지라도."

"아무리 그래도 초고수가 쫓아오면 그땐 당할 수밖에 없지 않소이까. 초고수가 굼벵이가 아닌 이상인 바에야……."

"자,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오, 경공이 뭐요? 그건 바로 깃털처럼 몸을 가볍게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오. 그러니 공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해도 어느 정도 초고수와 격차를 줄일 수 있소이다. 대체로 여자가 남자보다 경공에 우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바로 그런 연유 아니겠소, 몸이 가벼우니까."

역산도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뭐야, 싸우지 말고 평생 도망자가 되란 말인가…….'

그 순간 왕천유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내공은 내공대로 늘려가되, 무공 중에 경신법을 먼저 갈고 닦으라는 말로 들리는데, 맞소이까?"

주성진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역사 꽉 막힌 역산도 보다는 낮군, 역산도 이자도 경신법과 보법에는 일가견이 있던데, 그의 성향이 문제야.'

"하하, 그렇소, 거기에 더해 보법도 갈고 닦으면 더 좋겠지. 아, 내가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었는데 그때가 언제인지 아시오? 그게 경공을 펼치다 무한 자유라는 걸 느꼈을 때요. 물론 무공을 펼치다 무아지경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확률적으로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더 상식적이지 않소이까?"

왕천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소, 무슨 말인지. 그래도 경공부터 익히라고 하는 건 책에서 본 적이 없소이다. 사부님도 병행하라고 했지, 그것부터 익히라고 하지는 않았소이다만."

"뭐 그렇다면 이건 내 방식이라 생각하시구려. 내 경험에 의하면 경신법에 자신이 붙자 자신감이 상승했소, 그게 점차 다른 무공으로 확대되었고."

"잘 알겠소이다. 아까 마지막에 펼친 수를 좀 복기하고 싶소이다. 난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소이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소이까?"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사부의 무공이 생각났다,

'그렇지 사부는 막싸움의 대가셨지. 그렇다는 건 공수에 감각이 뛰어 다는 걸 의미하지… 내공이 뒤처져도 감각으로 부족한 부분을 상쇄하신 거였어. 쯧쯧, 알고 경험했던 사실인데 내공과 무공이 늘자 나도 잠시 잊고 잊었네, 그런 초감각의 위용을! 달리 말하면 생존본능이나 전투본능이라도 봐도 되겠지.'

주성진이 말한 초감각은 내공이 늘면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감각의 상승과는 궤가 다른 것이었다. 내공이 없을 때도 익힐 수 있는 제3의 힘이 초감각이었다.

"하하, 좋은 지적이오. 내 생각에는 그대가 초감각을 익힌다면 훨씬 빨리 반응하지 않을까 싶소이다. 내가 말한 초감각이란 인지 이전의 단계요. 본능적인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뭐 나도 한마디로 정의하긴 쉽지 않소이다."

그러자 의외로 그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맞소이다. 초감각을 키워야 하는데 내가 여태 등한시했소이다. 사부님이 늘 강조했던 부분이었는데."

"음, 그대 사부가 어떻게 초감각을 키우라고 했는지 알 수 있소이까? 내 사부는 많은 싸움을 통해 전투의 신이 되라고 하셨는데."

왕천유는 손을 흔들었다.

"하하, 그 반대였소. 명상을 꾸준히 하라고 하셨소이다. 어느 순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거라 하시면서……."

"그러니까 영상을 꾸준히 하면 예지력이나 초감각이 생긴다는 것이구려."

"그렇소이다. 내 생각에는 사부님의 말씀이나 그대의 말,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여겨지오. 단지 방법이 다를 뿐."

"……."

주성진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눈을 껌뻑이는 역산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본인과 왕천유의 대화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저자의 불편한 심기를 좀 달래주어야겠구나.'

"음음, 내가 봤을 때 그대의 경신법은 뛰어나 보이더구려, 내 눈엔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보이던데……."

"그러면 뭐하오? 그대가 발을 살짝 뗀 순간 따라잡힐 텐데……."

"거참, 너무 삐딱하게 굴지 말고 진지하게 대화 좀 해봅시다. 내가 한 말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데, 솔직히 난 처음 그대의 보법을 보면서 감탄하였소. 그건 내가 지닌 보법에 없는 걸 그대가 지니고 있어서요. 그대의 보법은 보법이면서 그 자체로 상대를 위축시키는 그 무언가가 있었소. 말하자면 공수 양면이라고 할까……."

왕천우는 주성진의 눈썰미에 적이 감탄했다. 그 짧은 순간 주성진이 자신의 보법의 특징을 간파한 것이 존경스러웠다.

'역시 초고수란 말이네, 내 필살기를 알아채다니.'

그도 사람인지라 칭찬하는 말을 듣고는 꽁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뭐 완전한 이형환위의 경지는 아니오. 여전히 갈 길이 구만리요, 하하. 그런데 말이요,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소림 경신법의 최고봉으로 친다면 뭐니 뭐니 해도 금강부동신법 아니겠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들었소이다. 한 번도 견식한 적은 없지만."

"예전에 말이오, 소림 본산의 당대 무승 그 누구보다도 자질 면에선 훨씬 뛰어난 속가제자가 있었소이다. 그는 그 어떤 무공이든 한번 보면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었기에 많은 이들의 경탄을 받았소이다."

"……."

"하지만 동시에 요주의 대상이었소. 어느 날 그분은 자신이 속가제자라는 한계를 절감하고 다짜고짜 장문인을 찾아갔소이다. 그리곤 소림의 본산 절기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소이다. 아니면 말고 하는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소이다."

"……."

"당시 소림 장문인께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요청을 일부 수락했소이다. 왜냐면 소림사를 후원하는 그의 가문이 무시 못 할 가문이라 단칼에 거절하기 힘들었던 거요. 그분의 가문은 석가장이었는데, 지금은 중원 5대 상가에서 밀려났지만, 그때만 하더라고 수위를 다투던 상가였소이다."

주성진은 석가장에 대해 훤히 잘 알고 있었다. 내부 알력 다툼으로 위세가 예전 성세만큼은 못해도 여전히 중원 10대 상가에 속해 있었다.

'음, 석가장이 소림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구나, 지금도 그런 관계가 유지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문인께서 즉석에서 생각해낸 게 금강부동신법이었소. 거기에 그거 하나면 섭섭하게 생각할까 봐 연대구품을 추가하였소. 장문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속가제자의 흉내 내는 자질이 뛰어나더라도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신법과 무공이라면 결코 흉내 내지 못하리라 판단하셨소이다."

주성진은 잠시 책에서 읽은 연대구품을 떠올렸다.

'음, 연대구품이라, 그게 실제 가능한 건가…….'

연대구품은 사람의 형상을 9가지로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해 마치 일인이 9명으로 둔갑하는 무공이었다.

순간 그가 씩 웃었다.

"한데 말이오. 속가제자님은 결국은 흉내를 낸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두 무공를 합하는 시도를 하셨소이다."

주성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게 정말이오? 대단하신 분이셨구려."

"물론이요, 그분은 지금까지도 속가제일고수로 인정받고 있소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분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내가 그분을 뛰어넘어보려 한다오, 하하."

"하하. 그대도 대단한 목표를 세워놓았구려?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은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역산도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뭐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장기적인 목표는 그렇게 세워놓았소. 내가 배운 경신법이 바로 그분이 후대의 속가제자들을 위해 남겨놓은 그 경신법이오. 그분은 아주 쉽게 익히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했는데, 한데 실상은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경신법이 된 지 오래요. 아무도 익히지 못했거든……."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건 왜 그렇소?"

"두 가지 문제가 있소이다. 하나는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난해했소이다. 아마도 그분은 글을 보는 사람의 자질이 그분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외다. 두 번째는 사실 이게 더 큰 문제인데, 그건 바로 어떻게 내공을 운용할지가 빠졌다는 것이요. 속가제자 익히는 반야심공의 운용법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소이다."

"……."

"자, 그러면 내가 어떻게 익혔는지 궁금하지 않소이까, 하하?"

그가 눈빛을 반짝이며 자랑스럽게 말하자 주성진은 미소 지었다.

'하하, 저 친구가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궁금하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떠오르지 않소이다."

"그건 말이요, 아주 간단하오. 내공 없이 일단 무작정 익히면 되는 것이라오."

순간 주성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혀 의외의 대답이 들려 온 것이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이오?"

"어차피 그분이 남긴 내용은 봐도 이해하기 힘드니까 무시했소. 대신 그분처럼 나도 흉내 내기로 했소이다. 본산 고승들이 펼치는 금강부동신법과 연대구품을 눈으로 보고 그걸 합쳐 익힌 것이오, 그분처럼, 하하."

"음, 그러니까 따로따로 익히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익혔다는 말인데 난 당최 이해가 잘되지 않소이다."

그는 주성진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헤벌쭉 웃었다.

'헤헤, 절대 모르지, 따지고 보면 간단한 건데.'

"하하. 그게 말이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하오. 실은 내가 소림 속가 제자가 된 게 7살이었소. 원래는 형이 소림 속가 제자가 될 예정이었는데 그만 다리가 부러져서 내가 대신 가게 되었소. 안 그러면 기회를 버리는 것이라, 집안에선 말썽꾸러기인 나를 옳다구나 하고 형 대신 보낸 것이라오."

"아니, 형이 다리가 나으면 보내는 되는 것인데, 7살이면 너무 어린 나이인데."

그가 손을 흔들었다.

"그게 그렇지 않소, 딱 정해진 해에만 보내게 되어 있어서 그때가 아니라면 우리 집안에 주어질 기회는 없었소이다."

주성진은 그제야 대충 이해가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군, 그래도 속가제자가 되면 내공을 익히지 않나?'

"으음, 그래도 내공 없이 익혔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오만?"

"소림에선 무조건 나이가 7살이 지나야 제자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치오. 이는 본산의 제자나, 속가제자가 다르지 않소. 그 전까진 기초만 다지는 것이지. 혹여 너무 늦게 가르쳐서 타 문파에 뒤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초가 다져져 있기에 금방 따라잡을 수 있소이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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