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화 주성진, 시범을 보이다
주성진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알겠소, 대신! 잘 지도해주시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까!"
"아, 네 물론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요, 별것은 아니지만, 이참에 제가 간이 침술법을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제 성의이니 물리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주성진은 눈을 크게 떴다.
"아, 정말이오? 가르쳐준다면 나야 고맙지, 왜 거절하겠소이까, 하하……."
"대신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데요. 능력에 따라서 한 시진에서 일주일……."
"뭐 내가 잘났다는 말은 아니지만, 한 시진으로 합시다. 내가 못 깨우치면 내 탓이지 누굴 탓하겠소이까. 그러면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빨리합시다. 우선 산토끼부터 잡아 봅시다. 한데 여기가 산이 아니라서 잡힐지 몰라."
그 순간 다른 대원 하나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하하, 제가 토끼굴을 찾는 데는 귀신이지요. 반 각 안에 토끼 한 마리를 대령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이번 실험에 참여하는 것이오?"
"참여하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무조건 하는 것이지요. 아마 저 말고도 다른 대원들도 저와 똑같은 심정일 겁니다."
그가 말을 끊고는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공력을 늘리기 싫은 사람 손들어?"
주성진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왕천유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자들이 나의 재가를 받지 않고 멋대로 결정하는데 울분을 참을 수 없구나! 그래서 나도 동참하기로 한다, 하하하."
"하하, 친구가 한다는데 나도 당연히 따라야지. 추우강남(追友江南)이라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자 역산도의 말에 주성진이 맞장구쳤다.
"그러면 나도 해야겠는데, 하하."
역산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요? 나 같으면 안 할 것 같소만, 자가 시술은 매우 위험한 것이오."
"내 생각에 맨 마지막에 하면 경험이 쌓여서 그다지 문제 될 것 같진 않소이다. 그리고 난 여전히 배가 고프오, 높이 올라가야 할 산이 보였거든……."
"그게 무슨……?"
주성진은 얼마 전 만난 입회인을 떠올렸다.
"하하, 내 말은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말이오."
주성진은 대충 얼버무리며 좌중을 바라보았다.
"자, 시작해 봅시다."
* ? ? * ? ? *
시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침술법까지 더불어 배운 주성진은 만족한 눈빛으로 좌중을 돌아보았다.
모두 정광이 깃든 모습이다. 2년의 공력 상승이 그들을 변모케 하기에 충분했다.
주성진은 그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 우리 대단원의 막을 내려 봅시다. 이번 일 대 다의 비무는 내가 반 각 동안 공격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기량을 펼쳐 보시길."
그러자 왕천유가 손을 흔들었다.
"좀 전에 우리 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보다는 그대의 신위를 보고 싶소이다. 이번 단체전에 초고수들이 출현한다면 아무리 우리가 수가 많더라도 쉽지는 않을 것 같소이다. 그래서 미리 초고수의 신위를 보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연구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소."
주성진은 살짝 미소 지었다.
'뭐, 내가 생각한 방향과 비슷하네, 그래도 저들이 섭섭할까 봐 먼저 비무를 하자고 한 거였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야, 나야 좋지 뭐. 시간도 절약되고.'
주성진은 애초에 비무를 하면서 압도적인 신위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본인의 무공을 과시하고픈 게 아니라, 흔히들 말하는 초고수가 왜 무서운지 그들에게 몸소 실감케 하고 싶었다.
초고수 1인이라면 상대의 수가 중요하지 않았다. 완벽한 합벽진을 갖추지 않는 한…….
"좋소, 음 그러면 그대들이 나를 겨냥해 한꺼번에 쇠뇌를 쏴보는 것이 어떻겠소? 결과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덧붙이자면 평소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길 바라오, 거리낌 없이 말이오."
"하하, 정말 다쳐도 우리는 모르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이요. 아, 미리 말하자면, 난 몸을 움직여 피하진 않을 것이오."
"……."
잠시 후 대형이 갖추어지고 주성진은 원진 속에 갇혀 있었다. 그 순간 왕천유가 소리쳤다.
"발사!"
피융, 피융…….
쐐애액…….
공력이 깃든 많은 수의 화살들이 주성진의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데 주성진은 미동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언뜻 보면 상당히 위험천만한 모습이었다.
왕천유는 움직임이 없는 주성진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고슴도치가 된 주성진의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아무리 무공에 자신이 있다 해도 저건 아니지 않나……. 허허, 되돌릴 수도 없는데.'
대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이건 공격하는 자들이 오히려 주성진의 안위를 걱정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태연하다.
'호신 강기가 있으니 든든하군, 다칠 걱정이 없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이제 눈 깜짝할 사이면 화살들이 주성진에게 당도할 터였다. 그 순간 주성진의 검이 빛을 발했다.
번쩍!
동시에 그의 신형이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했다.
팅팅팅팅…….
화살들이 모조리 튕겨 나간다. 일부는 아예 부러져 버렸다.
왕천유는 놀라움을 뒤로하고 재차 부하들에게 명했다.
"계속 쏴라."
피융, 피융…….
쐐애액…….
이번에 자신도 쇠뇌를 꺼내 활을 당겼다.
무수한 화살들이 대기를 가르며 주성진을 향했다. 하지만 검이 파란빛을 발하는 순간 화살들은 모조리 추풍낙엽이 되어버렸다.
주성진은 필요한 만큼만 몸을 움직였고 그때마다 화살들은 부러지거나 튕겨 나갔다. 왕천유의 화살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경하던 역산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분명 검막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저런 일이…….'
검막은 검을 엄청나게 빠르게 휘둘러 방어막을 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에다 검막을 칠 수는 없었다. 정면이라면 모를까.
그의 동공이 한없이 대결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온 신경을 다 썼더니 눈이 빠질 것만 같다.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
'저게 다 검에서 뻗쳐 나온 기운 때문이란 말인가.'
역산도는 책에서 읽은 검기의 단계를 떠올렸다.
'음, 흔히들 검기의 단계를 논할 때, 검기, 검사, 검강, 검환을 말하지. 혹자는 검사, 검환을 생략하기도 한다만… 한데 주성진의 검은 도대체 설명할 수가 없구나.'
그가 생각하는 사이에도 화살은 수도 없이 발사되었고 그때마다 화살집은 점점 비어만 갔다.
잠시 후 왕유천은 화살집의 화살을 집으려다 그만 허공을 붙잡고 말았다.
'이런 그 많던 화살이 다 떨어졌군.'
그가 그럴진대 대원들의 화살들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정적이 내리자 주성진은 검을 다시 착검하고 미소 지었다. 그의 사방에는 수많은 화살 잔해들이 제구실을 못 하고 쌓여 있었다.
'후후후, 검을 깃발처럼 활용한 것이지. 뭐 나 정도의 공력이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거지만.'
그의 말은 검에다 기운을 불어넣긴 했지만, 앞으로 내뻗은 게 아니라, 길쭉한 검날의 위아래로 검기를 펼쳤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거대한 깃발을 사방에 흔든 것처럼 화살들이 검기의 세력권에 부딪혀 맥을 못 추고 추락한 것이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할까.'
돌연 주성진이 검을 내뻗으며 한 바퀴 돌았다. 그저 단순히 돈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슈우욱…….
검 끝에서 서슬 퍼런 검기가 끝도 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어…….'
순간 왕천유는 위험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공기의 파동이 다르다는 걸 간파한 거였다.
한데 그의 부하들은 발바닥에 아교를 발랐는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이런 제길!'
그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모두 피해!"
하나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렸고, 괜히 입을 벌리다 먼지만 잔뜩 먹었다.
가가가각…….
"어이구, 아이코……."
그들의 발끝 밑으로 검기가 빠르게 훑고 지나간 것이다,
땅이 파여 갈라지자 대원들은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다 일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훌러덩 자빠졌다.
쿵, 쿵…….
한편 관전하던 역산도는 자신이 저들과 함께 있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휴, 만약 주성진이 살기를 품었다면 저 자리는 피바다가 되었을 거야.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몸통이 잘려나갔겠지. 도대체 저 공격을 어떻게 막는다는 말이야, 몸이 반응할 때는 이미 늦었다고! 음 방법이야 미리 공격을 예견하고 한 박자 빨리 움직이는 것뿐인데, 그게 참… 허허.'
역산도는 그와 비무를 해봤지만, 다시 한번 주성진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초고수의 위엄이 저렇단 말이군…….'
순간 주성진이 뱉은 말이 생각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했던가. 올라갈 산이 있어서… 도대체 그보다 강한 고수는 어떤 작자 이길래…… 휴.'
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주성진은 먼지가 가라앉자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분명 두려움이라는 게 깃들어 있었다.
'이거 참, 내가 좀 심했나.'
주성진은 코를 씰룩이며 입을 열었다.
"음음, 모두 내 앞으로 모이시오, 할 말이 있으니……."
잠시 후 그들이 모이자 주성진은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이 방금 겪어봤듯이 초고수라고 일컫는 자들은 범인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보면 되오. 그러니 수가 많다고 그게 결코 유리한 고지가 될 수 없소이다. 그들과 맞부딪쳤을 때는 방법은 오직 하나! 부닥치지 말고 회피하는 것. 설령 그 상황에서 상대가 살심을 품었을 때도 최선은 피하는 것밖에 없소."
당사자도 아닌 역산도가 툴툴거렸다.
"그건 아니지. 그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피하다 죽는 것보다는 장렬히 싸우다 죽는 게 무인으로서 떳떳한 것 아니오?"
"장렬히 싸워 죽는 것과 불난 집에 뛰어드는 건 큰 차이요. 장렬히 싸워 죽는다는 건 비록 몸은 산화되어 없어져도 후일 많은 사람이 그 상황을 칭송하는 그런 것이오. 하지만 불난 집에 뛰어드는 건 그냥 개죽임이요."
그러자 그가 언성을 높였다,
"그럼 도대체 어떡하라는 말이오.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는 손오공보다 못한 신세인데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말이오."
"자, 일단 황궁 무림대회부터 이야기하겠소. 황제께서 지켜보는 무림대회 아니오, 그러니 피하는 방향은 무조건 황제와 가까운 곳이오. 아무리 고수라 한들 황제 앞에서 함부로 초절기를 펼치지 못할 것 아니겠소?"
"……."
"내가 여러분이라면 그전에 무조건 황제와 등을 지는 곳에 자리를 잡겠소. 그리고 그 자리를 좀체 벗어나지 않는 거지… 그러면 초고수라도 답답해할 것이오. 가령 그가 검수라고 하면 검기를 함부로 쓰지 못하니 기껏해야 검에다 기를 덧씌운 정도가 다일 것이오."
"……."
"그때 시간을 질질 끌면서 적당히 공격하는 척해서 황제의 눈에 들도록 하면 되오. 그러면 지더라도 열심히 싸우다 분패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