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화 왕천유와 비무를 벌이다 (1)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한편으로 자신도 자신의 내공심법을 개량할 필요를 느꼈다.
언제까지 과거의 심법에 고착하는 건 발전이 없어 보여서였다.
그의 생각은 소림의 고승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다.
'뭐 내가 익힌 내공심법이 못하다는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난 도전하고 싶다고! 소림이 달마대사를 능가하기를 꺼리는 건 이해해, 그는 천마처럼 신화적인 인물이니까. 하나 그렇다 해도 벽을 깨려면 도전적인 생각을 가져야 해. 난 그게 나쁘다고 보지 않아.'
주성진은 역산도를 바라보았다.
"하하, 그렇구려."
"뭐, 서론이 길었소이다. 우선 탄지신통을 펼치고 나서 그다음으로 대나이신법을 펼쳐 보이겠소."
역산도는 공터의 바위를 겨냥하더니 중지를 튕겨 낼 듯 엄지로 누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자, 보시구려."
피융!
그가 바위를 향해 중지를 튕겨 냈다.
퍼벅.
바위에 지름 반 치가량의 구멍이 뻥 뚫리며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지금 저 바위는 한 자가량 뚫려 있을 것이오."
역산도는 다시 자세를 잡고서는 공중을 향해 중지를 오므렸다 튕겨 냈다.
쐐액!
그의 손끝을 떠난 지력은 빠르게 날아가는 새를 향했다.
꽥!
유유히 날던 새 한 마리가 별안간 횡액을 당했다. 지풍에 얻어맞고는 급전직하로 땅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새가 추락하는 걸 확인한 그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나 움직이는 물체나 상관이 없소, 자유자재로 속도 조절과 힘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소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 또다시 신형을 움직였다.
"야합!"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신력을 발끝에 실었다. 땅이 움푹 꺼지는가 싶더니 그의 신형이 쾌속하게 솟아올랐다.
쉬이익!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지 그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났다. 멋지게 공중에서 회전한 그가 외쳤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도 따라간다, 나는 새이어라!"
그는 정말로 창공을 나는 새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주성진에게도 익숙한 말이지만 오늘따라 그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은 따라가는 것이지. 마음이 산꼭대기를 바라보면 너무 높아, 어떻게 가냐 한다면 거기까지가 한계인 것이고, 뭐 그래 봤자 하늘 아래 있을 뿐이라고 한다면 산꼭대기도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이야. 내 생각에 그가 말한 새이어라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은데…….'
주성진은 오히려 자신이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그간 무거운 무게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즐겁게 앞날의 여정을 즐기면 될 것 같았다.
'열정은 즐기는 사람에게만 꽃피는 것이라지.'
주성진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그가 지상으로 착지했다.
"하하, 어떻소? 평을 좀 내려주시오."
"가장 중요한 정답은 이미 그대가 알고 있소이다. 그대가 새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하하."
그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음, 내 말은 자신의 틀을 고정관념에 가두지 말라는 뜻이오. 미리 포기할 생각부터 하지 말라는 것과 일맥상통하지……. 그대가 좀 전에 반야심공이 8성이 한계라고 했는데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소? 난 아니라고 생각하오. 그러면 지고 들어가는 것이니까. 난 그대가 반야심공으로도 충분히 8성 벽을 깰 수 있다고 생각을 고쳐먹으면 좋겠소이다."
"……."
"사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어렵지만 그대의 경우는 이미 길이 있지 않소, 대승반야심공이라는……. 가르쳐주지 않아서 못 배운다는 게 아니라 가르쳐주지 않으면 내가 개량해보겠다고 생각하시오. 내 생각에 그대가 나에게 주겠다고 한 역근세수경에 어쩌면 단초가 있을지도 모르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
"그대가 범어로 된 부분을 그냥 넘겨 버렸다고 했는데, 그러지 말고 범어를 익혀서 그 내용을 찬찬히 해독해보시오."
역산도의 머릿속이 훤해졌다.
'하하, 역시 고수에겐 배울 점이 많단 말이야.'
"고맙소, 나의 무공을 상승으로 이끄는 건 범어를 익히느냐, 마냐에 달려 있었구려. 열심히 익혀보겠소이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허허, 그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오."
"하하, 어찌 그걸 내가 모르겠소, 그대 말처럼 그렇게 시작해 보는 것이지."
잠시 후, 주성진은 환한 미소를 띠며 잔뜩 들뜬 표정인 왕천유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우리 비무합시다."
"하하, 잘 부탁하오, 부디 나에게도 좋은 선물 부탁하오이다."
"허허, 뭐……."
주성진은 말을 얼버무렸다.
주성진은 잠시 생각했다. 뭐가 그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쉽지 않군, 시간이 많으면야 차근차근 그의 무공을 되짚어 볼 수 있겠지만 그건 곤란하고. 단기적으로 압축해서 보자면… 음 충격요법이 제일 좋을 것 같군, 부모가 자식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하자고.'
스르릉!
검을 뽑은 채 상대를 바라고 있는 왕천유,
그는 주성진을 바라보며 내심 놀라고 있었다.
대결이 시작되었음에도, 성진의 기도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성진의 얼굴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의 눈빛에서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까지 웃고 떠든 사람인데 갑자기 기세가 변했어, 어찌 저런 평정심이 나오는 걸까? 나는 아직도 설레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하지만 왕천유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고요함 속의 굽이침을…….
여하튼 직접 상대해 보니 주성진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전에 주성진이 뛰어난 고수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더니…….'
왕천유가 조용히 뇌까렸다. 그래도 좀 전의 비무를 보면서도 계속 몸을 푼 덕에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진 않았다.
한데 그때였다. 주성진의 눈이 잠시 빛났다고 생각되었을 찰나였다,
휘리릭.
'어…….'
왕천유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주성진의 신형이 움직였다고 생각한 순간, 그땐 이미 주성진의 신형이 자신의 바로 앞에 도달해 있었다.
슉…….
성진의 검이 왕천유의 왼쪽 어깨를 빠르게 찔러 들어왔다.
기겁한 왕천유가 재빨리 몸을 왼쪽으로 빼내며 주성진의 검을 바깥으로 쳐낸다.
챙…….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싶더니 이번에는 왕천유의 검이 성진의 상체를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슉…….
주성진은 발을 떼지 않은 상태에서 상체를 살짝 비틀어 그의 검을 회피하고 재빨리 검을 떨치자 그가 신속히 맞대응해왔다.
챙…….
한데 검끼리 부딪혔을 때 주성진의 발이 왕천유의 옆구리에 다다라 있었다.
'헉…….'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에 당황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주성진의 검에 그렇게 많은 진기가 실려 있지 않은 건 자각했으나 그가 설마하니 발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음, 변칙을 쓰다니…….'
왕천유는 그 즉시 오른손으로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왼손에 진기를 주입하며 신속히 주성진의 각법을 막아갔다.
퍽…….
각법에 실린 진기와 손에 실린 진기가 충돌하며 둔탁한 소리를 일으켰다,
"크윽……."
왕천유는 애써 신음을 삼키려 했다. 하나 뼛속까지 얼얼하니 참기도 쉽지 않다.
쉬익…….
채 호흡을 가다듬을 겨를이 없었다.
짧은 파공성과 함께 성진의 검이 상체를 베어 온다.
'뭐야, 검이 빨라졌어!'
그 사실을 직감한 왕천유가 서둘러 몸을 뒤쪽으로 빼냈다.
휙…….
하지만 주성진의 공세는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뒤로 빠지는 왕천유보다 더 빠르게 그의 상체를 쫓고 있었다.
왕천유는 이을 악물었다.
'막아야 해!'
"야합!"
왕천유는 자신의 절기 중 방어에 탁월한 초식을 꺼내 들었다,
챙, 챙, 챙…….
검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왕천유는 약세를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고통으로 인해 인상이 구겨지는 것도 참으며, 억지로 평온하게 보이려 애쓴다.
하지만 연속되는 주성진의 공격은, 그를 찡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성진이 펼쳐 내는 무공은 날렵하고도 빨라 보였지만, 검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마치 중검과 쾌검을 조합한 것과 같았다.
실은 주성진은 계속 마음이 가는 대로 검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정해진 초식과 순서는 그의 의식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거 좋은데… 이런 걸 두고 무초식이라 하는 거겠지, 하하.'
주성진은 역산도와 대화를 마치고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상태였다, 무초식을 펼쳐보자고…….
'됐어, 이 정도로 1차전을 마무리하자.'
채앵…….
주성진은 한차례 검을 휘둘러 그들 밀어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잠시 소강상태에서 그들은 얼마간의 거리를 벌린 채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주성진은 그가 데리고 온 부하들을 의식해 전음을 펼쳤다. 그를 깎아내린다면 나중에 그의 지도력이 타격을 입을까 염려해서였다.
―어떻소? 할 만하오?
왕천유는 순간 머뭇거렸다. 갑자기 전음이 들려오니 당황스러운 거였다.
그저 뚫어지게 주성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난 이제 전초전이 끝났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조금만 더 공력을 올릴까 생각하오.
그 말에 왕천유는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 조금만 더 올린다고!'
―으음, 이젠 검과 검이 맞부딪쳐 쇳소리가 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대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니오. 각오하라고 말하는 것이오.
왕천유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주성진은 강했고 최선을 다해서 그를 상대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검에다 기를 덧씌워야겠구나, 그게 나로선 최선이니까.'
아직은 자유자재로 검기를 다루지 못하는 그였다. 그럼에도 왕천유는 자신의 최고 절기를 사용하고 싶었다.
'그걸 펼쳐볼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주성진을 상대로 선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창천무한검은 위험한 무공이야.'
창천무한검은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나 사용되어야 할 무공이었다.
한번 무공이 시작되면 생사를 가늠하고야 만다는 지극히 실전적인 무공.
주성진이라면 막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식으로까지 살초를 펼치고 싶진 않았다.
그 순간 주성진의 전음이 들려왔다.
―거리낌 없이 펼치시오, 후회하지 말고…….
왕천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제길, 후회하지 말라고……. 좋아 그렇다면!'
왕천유가 성난 황소처럼 투혼을 끌어 올리는 순간 주성진이 쇄도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빠른 그가 좀 전보다 훨씬 빨리 보이는 느낌이다.
팅팅팅팅…….
둘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언뜻 검과 검이 맞붙은 것 같은데 쇠 특유의 소리 대신 다른 소리가 났다.
주성진의 검식이 자유스러운 느낌이라면 왕천유의 검은 절도 있고 정교해 보였다.
또한 매 초식마다 초식 속의 초식이 면면부절 이어졌기에 짧은 순간 그들은 백합 이상을 부딪친 거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