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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79화 (79/250)

079화 역산도와 비무를 벌이다

주성진이 취한 기본적인 기수식만으로도 그를 긴장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역산도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침착하게, 떨지 말고, 기세에 밀리면 끝이야.'

"야합!"

고요한 정적은 역산도의 우렁찬 기합으로 깨지고 그들의 비무가 시작되었다.

역산도의 폭풍 같은 기운이 그의 전신을 휘감는 순간 그가 앞으로 쌍장을 쭉 내뻗는다.

쉬이익…….

금빛의 기운이 일직선으로 주성진을 향해 뻗어오자 주성진은 서둘러 검을 휘둘러 원호를 그렸다.

그러자 검을 중심으로 강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마치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것 같았다.

꽝…….

움찔 몸을 휘청거린 역산도는 주성진에게 강한 눈길을 보냈다.

애써 놀라움을 감춘 얼굴이지만 역산도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비록 전력은 아니더라도 그의 이번 한 수는 나한장의 정수를 품은 것이었다.

'음, 단지 가볍게 검을 휘두른 것 같은데, 저런 위력이…….'

불안 반, 놀람 반의 생각을 떨쳐버린 역산도는 곧바로 두 번째 장을 출수했다.

한번 기세에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었다.

펑, 펑…….

숨 돌리 틈 없이 내뻗은 연환장을 주성진은 정면으로 받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빗겨 때라면서 슬쩍, 슬쩍 발을 굴러 옆으로 미끄러져 갔다.

펑…….

바로 그 순간 주성진이 서 있던 자리에 작은 웅덩이가 생기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공격을 피한 주성진은 대지에서 전해지는 울림에 고개를 끄떡였다.

'대단한 위세군, 소림의 장이 강맹하기 그지없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어.'

슈애애액…….

숨 돌릴 틈 없이 역산도가 맹렬하게 다가들며 양손을 질풍처럼 휘둘러 왔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위력적인 장력이 주성진의 몸통을 노리며 날아오자, 주성진은 사뭇 긴장했다.

여타 장력과 같이 강하고 억셀뿐더러 마치 칼을 휘두른 듯 빠르고 예리했기 때문이었다,

'저건 뭐지, 초식이 변했어…….'

주성진은 몸을 반쯤 돌려 장력을 피하며 재빨리 검을 내뻗었다.

쉭…….

한데 언뜻 보기엔 그저 평범한 칼질 같이 보인다.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빠르고 강력하지도 않은 평범한 공세 같았으나 역산도는 질겁하여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웅웅웅…….

그는 순간 대기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들은 거였다,

'이크, 이제 실력을 보이는 것인가, 무거운 압력이 느껴진다, 마치 중검 같은.'

흔히들 검법의 특징을 말할 때, 중검, 쾌검, 환검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세부적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분류법이었다.

역산도가 말한 중검이란 말 그대로 무거운 검술로, 강한 내공을 바탕으로 주변의 대기를 장악해 상대를 짓누르는 검법이었다.

유사한 검법으로는 강검과 패검이 있으나 넓게는 중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역산도가 다시 공세로 전환하려 할 때 시야에서 널찍이 떨어져 있던 주성진의 검이 돌연 일직선으로 뻗어왔다.

'어…….'

역산도는 미간을 좁히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다시 중검이겠지…….'

중검에 대한 대응방법을 생각한 그였기에 그리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다.

한데 막 장력을 펼치려던 그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분명 느릿느릿했던 검인데 어느새 긴 꼬리를 달고 그의 얼굴 앞으로 갑자기 쏘아져 오는 것이 아닌가…….

슈앙!

역산도는 움찔하며 빠르게 좌측으로 벗어났다. 지면을 스치듯 옆으로 이동하는 그의 신형이 여러 개의 잔상을 만들어냈다.

'이런, 아껴둔 것인데, 뭐 할 수 없지. 자 그럼 나도 의표를 자르자. 그가 그리했던 것처럼,'

한편 주성진은 그의 발 빠른 움직임에 고개를 여러 번 끄떡였다.

'음, 굉장히 빠른 보법이군. 이형환위의 수법 같은데 소림에선 저 보법을 뭐라고 하는 것일까.'

순간 주성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그게 다가 아닌데.'

주성진의 눈에 비친 역산도의 신형은 무수한 잔상들이 해일처럼 번져나가는 듯 증식하며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한 점에서 시작된 물결의 파장이 점점 넓게 퍼져 가는 것처럼.

'파문이 일어난다 이거네, 만일 저 수법으로 공세를 펼친다면.'

그제야 주성진은 그가 시전한 보법이 단순히 몸을 이동하는 데 국한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주성진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역산도는 총공세를 펼쳤다.

"나한 십팔장!"

우렁찬 기합과 함께 역산도는 번개같이 양손을 휘둘러 내리 십팔장을 갈겨대었다.

그의 손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첫 번째 장력이 채 뿜어져 나오기도 전에 두 번째 장력이 뿜어져 나오고, 그것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 번째, 네 번째 장이 구슬 엮듯 연달아 터졌다.

어찌 보면 열여덟 개의 장력이 거의 동시에 퍼부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공세를 지켜보며 주성진은 어렴풋이나마 소림 무공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었다.

'펼치면 펼칠수록 강해지는구나, 소림 무공의 특징을 안다면 지구전을 피해야 할 것 같아. 초동에 제압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겠어.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인 빠름과 중첩의 묘용이 어우러져 있구나. 하나 그렇지만…….'

주성진은 공력을 배가하여 검을 강하게 떨쳤다. 검 끝이 요동을 치자 곧바로 대기가 미친 듯이 진탕한다.

'상대의 공력이 월등하다면 그저 잔재주로 보일 뿐!'

곧장 짓쳐들어오던 나한 십팔장과 성진의 검세가 정면으로 격돌하고 말았다.

꽈꽈꽝!

경천동지할 폭음이 사방을 뒤덮었다.

그들이 격돌한 순간 발생한 여파가 어찌나 엄청났던지 지켜보던 이들이 분분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역산도는 자신의 중첩 나한십팔장이 거대한 압력에 짓눌려 급속히 힘을 잃어가는 것을 느끼고 아연실색했다.

'이럴 수가! 그토록 엄밀한 수가 한꺼번에 무너지다니. 도대체?'

역산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기혈이 용솟음치고 전신의 기운이 모조리 빠져 버린 느낌이다.

뒤로 주르르 밀려난 그는 한순간에 기백이 꺾여버렸다. 기세 싸움에서 밀려난 그는 불신의 빛을 뿌리며 멍하니 주성진을 쳐다보았다.

주성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검을 거두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고개를 여러 번 흔들며 마음을 추스른 역산도가 입을 열었다.

"졌소, 잘 배웠소."

패배를 인정하는 말에 주성진은 그저 고개를 끄떡였다.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상대에게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 순간 역산도의 말이 이어졌다. 다소 침중한 어투다.

"싱겁게 끝나 기분이 별로지만 그래도 복기는 해야 할 것 같소이다. 어떻게 그대가 휘두른 검에 나의 나한십팔장이 단박에 깨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소. 혹시 해줄 말이 있겠소?"

주성진은 담담히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십팔 나한장은 확실히 위력 면에서 강호 일절이라 할 만큼 대단한 무공이었소, 다만……."

주성진이 말을 끊자 그가 뚫어지게 주성진을 바라본다. 그뿐만 아니다, 관전하던 이들까지 주성진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몰려들었다,

"음, 내 생각에 그대는 너무 서둘렀던 것 같소이다. 연거푸 십팔나한장을 펼치기 위해 속도전을 펼친 건 좋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힘이 증폭되지는 않은 느낌이었소. 그 말인즉 공력이 미처 뒤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 부분을 제대로 짚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역산도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빛냈다. 머리 한구석이 확 뚫리는 느낌이다.

'그렇구나, 내공을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진기의 자유로운 수발이 힘들어진다는데, 그 부분에 파탄이 생긴 거구나, 진기를 마음먹는 대로 내뻗고 거둬야만 무공의 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법인데, 언제 내가 내공을 최대한 뽑은 적이 있어서야, 말이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하하, 고맙소이다. 내가 전에도 말했듯 제대로 된 고수를 상대해 보지 않아서 그땐 깨닫지 못했소이다. 만일 오늘 그대가 지적해주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그 사실을 몰랐을 거요. 한데 말이요. 내가 보여줄게, 좀 더 있는데 그걸 못 펼쳐서 아쉽소이다."

주성진은 그의 의도를 훤히 알 것 같았다,

'뭐 나도 너무 싱겁게 끝나서 아쉬운데 한번 볼까.'

"그러면 펼쳐보시오, 대신 비무는 곤란하고."

"하하, 비무는 아니오. 내가 무공을 펼쳐 보일 테니 조언 좀 부탁하오. 음 먼저 선보일 것은 탄지신통이요. 물론 내가 소림의 진산 제자가 아니라서 8성이 한계요. 그렇지만 구명지초로는 으뜸이라 생각하오. 물론 공격을 할 때도 요모조모 쓸모가 많지만, 그래도 위급 시에 쓴다면 상대의 예봉을 피하고 단숨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오……."

성진도 탄지신통이 소림의 유명한 절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풍의 최고 반열에 오른 무공이라지, 한데 8성이 한계라고 한 건 무슨 연유에 그런 것일까? 강제로 제약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고 익히는 내공심법이 다른 것인가?'

주성진의 생각은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저, 한데 12성에서 8성이 한계라는 건 어디서 그런 차이가 나오는 것이오?"

그의 얼굴이 조금은 우울해졌다.

"아마 그대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오. 그건 내공심법의 차이에 연유한 것이오. 속가제자가 익힐 수 있는 최대치의 내공은 반야신공과 덤으로 역근세수경이오. 하지만 대부분 반야신공을 익히지 역근세수경은 익히지 않소이다. 하지만 나는 역근세수경 중에서 역근경을 중점적으로 익혔는데 그건 뭔가 확신 같은 것이었소. 내외공이 겸비되어야, 고수로 도약할 수 있을 거라는."

주성진은 그의 말에서 역근세수경을 분리해서 익혀도 된다는 것과 동시에 두 내공심법을 익혀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구려, 두 내공심법을 익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구려."

"그렇소이다. 알다시피 소림 무공의 시작은 달마 조사가 천축에서 건너온 이후부터요. 그분이 오랜 면벽 끝에 천축의 유가심법과 중원 내가심법의 장점을 융합해 창안한 게 달마역근세수경이오. 하지만 익히기 난해하다는 것과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 때문에, 후대의 고승들이 고민하기 시작했소."

"……."

"뭐, 소림이 중원에 나 홀로 있다면 문제 될 건 없소이다. 하지만 외세의 간섭과 침략 그리고 정파 무공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달마역근세수경을 개량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오. 익히기 쉽고 좀 더 속성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말이오. 그래야만 대응할 수 있으니까."

"……."

"그리고 무공 자질이란 게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나 달마 조사처럼 될 순 없다는 걸 그분들은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소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머리를 맞대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소. 내가 듣기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고 하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

"그래서 탄생한 내공심법이 대승반야심공, 대승범천신공, 대승보리심공, 반야대능력. 무상대능력, 역근세수경 등이오, 모두 달마역근세수경애 뿌리를 든 무공이고, 눈치챘겠지만 내가 익힌 반야신공의 완성판이 대승반야심공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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