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화 입회인의 정체
막대한 기운이 실린 검이 성진을 향해 짓쳐 들었다. 그러나 성진은 그 기운을 흘려 내며 가볍게 위로 솟구쳐 올랐다.
쉬쉬식…….
세 자루의 검이 공중에 뜬 성진을 향해 쏘아져 왔다. 하나하나가 살벌한 검기가 솟구쳐서 가볍게 대처할 수준이 아니었다,
'후후 그래도 내가 우위야……. 기왕에 공격할 거면 모두 날 쫓아 와야지, 왜 셋이야…….'
주성진의 몸이 움츠러들었다가 곧게 펴졌다.
허공에서 한 번 더 도약한 성진은 자신을 노리는 검수들을 노려보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는 진의 흐름을 유심히 살피며 약점을 파악 중이었다.
'좋았어, 보자, 개중에 저놈 눈빛이 무척 마음에 안 드는군. 그래 네놈부터 혼꾸멍을 내주지.'
주성진이 공격대상을 정한 사이 지상에서 호응하고 있던 모용진은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성진이 경험이 없어 진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검진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아친다고, 저 세 자루 검은 각각의 검처럼 보이지만 검진으로 한 몸이라고.'
위우웅…….
아니나 다를까, 세 자루의 기세가 성진의 공격에 대항해 일어났다.
그 거대한 기세에 휩쓸리는 성진의 공격은 그 방향을 잃고 무력화될 것처럼 보였다.
꽝…….
"큭……."
결과는 놀라웠다. 성진의 검이, 단단히 노린 상대를 시원스럽게 갈라버렸다.
마치 유성이 밤하늘을 가르듯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하다.
하나 그걸로 끝이 아니다. 성진의 검 끝은 또 다른 먹잇감을 쫓아가고 있었다.
꽈아앙, 꽝…….
"컥, 카아악……."
두 번의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성진을 공격했던 나머지 무사들도 신음을 흘리며 튕겨 나오더니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그들 또한 성진의 검에 짓눌리고 만 거였다.
용호진 속의 또 다른 삼각 진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내리자 모용진이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럴 수가, 단 몇 수에……. 어어억.'
아래에서 그들 셋을 탑 모양처럼 떠받치고 있던 모용진과 나머지 3인의 신형이 연달아 충격에 휘청거렸다.
간신히 그가 신형을 가누는 순간.
사라락.
가볍게 성진이 안착하자 안색이 하얗게 변한 모용진이 급히 외쳤다,
"모두 뒤로 물러나!"
그들이 물러나자 성진은 공격할 생각을 잊고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미소 짓고 있었다.
'후후후, 결대로 휘두르니 되는구나.'
성진은 생사푸줏간의 주인에게 배운 '결대로 자르라'의 득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성진은 상대 기의 흐름을 간파하고 그 결로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뭐, 그냥 무식하게 내리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야. 압도적인 힘에는 아무리 합벽진이라 한들 무용지물이라고.'
성진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모용진을 바라보았다. 이미 모용진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그만하지. 내겐 안 통하니까."
어깨를 으쓱하는 성진을 보며 모용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속으로 자신의 실책을 자책했다.
'제길… 그가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같아 따라 올라가는 게 아니었어. 모두가 올라가도 될까 말까 한데 겨우 셋을 띄우는 것으로 그쳤으니까. 결국은 경험과 실력 부족을 노출하고 만 거야'
모용진은 지상에서 주성진의 힘을 빼며 장기전을 노리지 못한 걸 후회했다.
'제길, 개개인의 기세는 진을 이루는 자들의 총합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중첩되고 강화된다는 걸 알고도, 알고도……. 어휴 지금이라도 진을 정비해서 다시 해볼까.'
그러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하지만 세 명이 내상을 입어서 안 되겠어.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응한다는 보장도 없잖아.'
모용진은 잠시 내리깐 눈을 들어 올렸다.
"좋다, 이번엔 우리가 졌다. 하지만 기억해라, 우리는 절대 굴하지 않을 것이다.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갈고 또 닦을 것이다."
주성진은 모용진이 딱하게 보인다.
'쯧쯧, 철없는 것들, 딱하네…….'
"이봐, 각오를 다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하나뿐인 인생을 몽땅 투자하지 말아라. 주변을 둘러보면 얼마나 할 게 많은지 아느냐? 백번 양보해서 장래에 날 무력으로 이긴다면야 그 순간엔 달콤하겠지, 하지만 나를 이긴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나?"
"……."
"명성을 올리려면 차라리 무림에 암약하는 악인들이나 처단해라. 그게 너희들의 이름값을 올리는 지름길이야. 내 말은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을 크게 보란 말이다. 어차피 한 번 죽을 인생,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않겠어!"
"……."
"그깟 복수도 아닌 복수에 연연해서 아까운 생을 낭비하지 말란 말이다. 내가 왜 너의 복수대상이냐, 억지를 부린 건 너희들이야. 난 유가장과 정당하게 계약을 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만 더하지. 너희는 무인이야, 나에게 한 방 먹인다면 휘주상단이 그렇게 해야지, 너희는 아니라고, 알겠냐!"
주성진은 아저씨의 심정으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언젠가 휘주상단을 되찾기 위해서 모용세가와의 일전불사가 불가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의 일이고, 모용진과 그의 동료들이 복수에 눈이 어두워 인생을 허비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떠나고 성진은 입회인으로 나선 인물에게 사례와 고마움을 표시하려 했다. 그 순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사실 주성진은 중년의 입회인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식당의 손님 중에 입회인이 되어 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가 손을 번쩍 든 거였다.
"하하, 잘 구경했소이다. 난 애초에 모용가의 아이들이 상대되지 않을 줄 알았지……."
"그런가요, 그렇게 따지면 저도 아이인데요."
"하하, 그대는 아이처럼 안 보이오. 얼굴만 약관일 뿐이요. 그 외는 노회한 인물 같소이다."
성진은 미소 지었다.
"뭐 그런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답니다. 뭐 저도 제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려는데 그게 잘 안 되는군요."
"그렇다고 억지로 그러지 마시오. 아 그렇군, 그대가 상인이니 젊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조차 하나의 상술이라 생각하시오. 다른 말로 연극을 하는 거지."
주성진은 그의 말에 감탄했다.
'그렇군, 젊게 보이는 것에 목적성을 부여한다면 그리 안달할 게 없겠어. 개방 장로의 말이 일리가 있어서 여태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리하면 되겠구나.'
"하하, 심금을 울리는 명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언은 무슨,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요. 있는 듯, 없는 듯, 거짓인 듯, 사실인 듯……."
주성진은 그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네, 뭐라고요?"
"하하,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이외다."
"세상은 요지경이라고요? 뭔가 깊은 뜻이 함축된 것 같은데요."
그가 손을 내저었다.
"뭐 이 정도로 합시다, 그럼 나는 가보려오."
"제가 사례를 드려야 하는데요."
"됐소. 그대를 본 것 자체로 그대는 충분히 사례한 셈이오, 하하."
주성진은 점점 그의 알쏭달쏭한 말에 빠져들었다.
'이상하군, 점점 그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 혹 내가 파악 못 한 놀라운 고수가 아닐까. 아무리 봐도 초일류고수 이상으론 보이지 않는데 말이야.'
딱 그 정도가 주성진이 파악한 그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주성진의 이목을 속일 고수라면 엄청난 고수가 틀림이 없었다.
"저, 그렇게 바쁘신가요? 아니면 제가 술을 대접하고 싶은데."
"하하. 미안하지만 사절하오. 자, 각자 볼일 봅시다. 먼저 들어가시오,"
"음, 그렇다면 성함이라도 알면 안 될까요?"
그가 피식 웃는다.
"입회인 선서하면서 말하지 않았소이까?"
"에이. 왠지 가명인 것 같아서요."
"후후, 가명이라… 뭐 가명이면 어떻고 실명이면 어떻소, 나는 나요."
주성진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의도대로 잘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거 우연히 만난 사람인데 그의 무게가 크게 다가오는구나. 환생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지금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가 주성진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가려 한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 만나면 제가 꼭 대접하겠습니다."
"대접은 필요 없고 부디 나의 기대대로 성장하시오. 반드시 꼭 그리하여야 하오, 알겠소?"
"아. 네……."
주성진은 그에게서 멀어지는 입회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기대대로 성장하라고, 여전히 날 아이 취급하는구나. 가만 무림에 반로환동한 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혹 그가 그런 건 아닐까?'
반로환동한 고수가 있다는 이야기는 전에 화산옥봉이 농담 삼아 한 이야기였다.
나이로 따진다면 이미 백오십 살이 훌쩍 넘은 자들인데, 적어도 현 무림에 셋은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는 그녀가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웃으며 한 말이라 주성진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잘 모르겠다. 인연이 된다면 또 만날 수 있겠지.'
주성진이 사라진 직후 정체 모를 입회인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본 건, 주성진이 서 있던 곳이었다.
'후후, 녀석! 나에 대해 상당히 궁금한 모양이야. 이거 무료하고 심심해서 흑룡가로 다시 돌아가는 길인데 앞으론 무료하지 않겠어. 저 녀석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니까…….'
"후후."
'오래 살면서 환생한 자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군. 반로환동하면 영적인 능력이 생긴다던데 그게 사실이었어, 저 녀석을 처음 보는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놀랍게도 그는 주성진이 환생한 걸 알고 있었다.
'내 손주 녀석이 다시 무림에 파란을 일으킬 모양이던데 저 녀석의 길이 어딜지, 상계일까? 무림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상계 쪽이 아니라면 언젠가 부딪힐 텐데, 녀석아! 무림엔 기웃거리지 말아라.'
그러면서 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안 되지, 나랑 붙어봐야지. 운명이 누굴 선택하는지 한번 봐야 하지 않겠어.'
한편 그 시각 주성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귓구멍을 후벼 팠다.
'아이, 뭐야, 누가 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환청인가…….'
아무래도 찜찜한 것 같아 숨을 크게 내쉰다.
"후……."
'음,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는 건 좀 전 그 입회인이야. 왜 자꾸 그가 생각나는 걸까. 그렇다면 환청도 그 사람 때문에?'
혹시나 몰라 다시 음식점 밖으로 나간 성진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까만 점 하나가 눈동자에 어른거리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뭐야, 독수리인가?'
그는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날개를 펄럭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람? 그러면 그 입회인……?'
짐작이 점점 확신으로 다가온다. 창공을 새들처럼 훨훨 날아다닌다는 건 잠깐이라면 자신도 흉내는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설의 능공허도일까?'
능공허도는 하늘을 유유자적 누빈다는 경공술이었다. 달리 말하면 비행술인 거였다.
'맞아, 능공허도. 그렇다면 그는 반로환동한 기인이다, 아! 그가 날 완벽히 속였구나.'
주성진은 그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그리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음, 나의 기대대로 성장해라. 반드시 꼭 그리하라고 했겠다, 이는 날 하수로 취급한다는 말이고, 내가 열심히 무공을 갈고 닦아서 그와 견주기를 바란다는 뜻일 게야. 뒤집어보면 적수가 없어서 심심하니 본인의 무료함을 달래 달라! 그런 말이겠군…….'
주성진은 싱긋이 웃었다.
'이거 뭐야, 내가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이 된 기분인데. 가만, 혹 그런 능력자라면 내가 환생한 것도 알고 있지 않을까? 뭐 일종의 정신감응 뭐 그런 거로.'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자신도 이상한 환청 같은 것을 들었지 아니한가.
'분명 그가 나에 관해 뭐라, 뭐라 말한 것일 게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전달된 것이고.'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돌연 멈추었다.
'그래, 지금은 그저, 그를 꿈속에서 만났다고 생각하자. 난 나의 길을 가면 그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