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화 불청객 (2)
돌연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봐 보자 보자 하니 너무 하잖아. 알량한 무공을 믿고 까부는 거냐?"
주성진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 사전에 파악하고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무공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다수를 믿고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흥, 저게 당가에서 내 이야길 좀 들었을 텐데도 고압적으로 나오네. 내가 동년배로 보이니까 무공도 비슷한 줄 아나 봐… 내가 저런 불나방이 많을 것 같아 당가에서 머물지 않은 거라고, 쯧쯧.'
"하……."
'너 같은 놈은 열이 덤벼도 날 못 당해. 그건 그렇고, 저들이 날 알고 있다는 건 누군가가 나의 용모파기를 그렸다는 것인데 이제 날 못 알아보는 이가 없겠는데…….'
주성진은 그를 사납게 쳐다보았다.
"이봐 너! 말이 짧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가만, 휘주상단 뒤에서 설쳐대는 문파가 있다더니, 바로 너희들이구나."
"이 자식이! 방금 설쳐대는 문파라고 했나. 감히 비루먹을 상인 놈이 우리 모용세가를 모욕해?"
"모욕은 무슨, 그렇게 억지로 갖다 붙이지 마라."
그가 인상을 그리며 코를 벌렁거린다. 안 그래도 살짝 들린 코라 그의 콧구멍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럼 모욕이 아니란 말이냐?"
주성진은 그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어휴, 피곤하다, 저놈들을 도발시켜서 빨리 끝내자.'
"이봐 상계와 무림은 서로 영역을 탐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 들었는데 모용세가는 왜 그 모양이지? 탐욕은 크나큰 화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야.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기웃거리지 말고 무림 문파로의 역할이나 충실히 하란 말이야."
그의 얼굴아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뭐야, 감히 하룻강아지가 훈계 질을 해, 이 자식이 아주 매를 버는구나."
"매를 번다고? 웃기는 소리 집어치우고 그 면상이나 치워."
그 순간 그가 화를 폭파하려 하자 휘주상단의 대행수가 급히 나섰다.
"모용진, 그만! 이 일은 일단 나에게 맡겨!"
사실 그들은 미리 계획을 짜놓은 게 있었다.
주성진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무로 승부를 보는 것으로…….
이는 대놓고 깡패처럼 주성진을 위협하고 협박할 수는 없기에 그리 한 것이었다.
모용진이 씩씩대며 물러난다.
'제길, 외삼촌만 아니라면…….'
모용진이 물러나자 곽길부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하하. 주 상단주는 형산파 출신이라고 들었소. 한데 그대 말처럼, 무림 문파 출신이 상계를 기웃거리면 그건 좀 아니지 않소?"
"언제 형산파를 무림 문파의 한 축으로 인정했나요? 형산파가 폐허가 되었을 때 모두가 형산파를 버린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형산파를 무림 문파 운운하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는 휘주 상단처럼 무림 문파와 손을 잡고 사업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저의 힘으로 상단을 키우려고 합니다. 주변에 알 만한 사람들에게 선언했지요, 저는 상인지도를 가는 사람이라고요."
"……."
"만약에 모용세가가 무림을 버리고 상계에 투신한다면 제가 인정하겠습니다. 그리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저의 언사를 깊게 사과하고 이번 계약 건을 군말 없이 넘기도록 하지요.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시렵니까?"
대행수 곽길부는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자, 보통내기가 아니야, 말로서는 그를 이길 수 없을 것 같군. 모용세가가 무림을 떠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설사 그렇다 쳐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 널리 공표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러니 저자는 그럴듯하게 명분을 내세우지만, 우리가 들어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그렇다면…….'
그는 염두를 굴렸다.
'음, 저자의 무공이 소문대로 높다면 조카로는 역부족일터, 비장의 한 수인 검진을…….'
그는 어떡하던 비무를 일대일 대결이 아닌 그들이 유리한 걸로 몰고 가고 싶었다. 주성진의 호승심을 자극해서.
"주 상단주, 우리가 빈손으로 물러간다면 위의 질책을 면할 길이 없소이다. 해서 비무로써 승부를 보는 건 어떻소이까. 만일 비무에서 진다면 우리는 깨끗이 물러가겠소."
주성진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허허, 미리 잔머리를 굴리고 왔구나. 그렇다면 굳이 모용진을 도발할 필요가 없겠네.'
"좋습니다, 입회인이 보는 앞에서 승부를 가려보자고요."
"그런데 말이요, 그냥 일대일로 붙으면 우리가 너무 불공평할 것 같소. 그대는 이미 사방에 명성이 자자한데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신출내기 후기지수라서."
주성진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뭐라, 일대 다로 대결을 하자는 것인가, 저자가 보기보다 간교한 자로구나. 그래, 어차피 모용세가의 녀석들이 떼로 몰려왔을 때부터 한 놈만 상대할 수 없다는 건 각오했던 거고, 좋아 이 기회에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좋습니다. 하나 제가 불리한 것 같으니 반대급부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사천산 비단에 목을 매는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면 대결에 임하도록 하지요."
곽길부는 고개를 끄떡였다.
'저자가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곧 널리 소문이 퍼질 테니까 알려줘도 무방할 거야.'
"그건 병충해 때문이요. 뽕나무가 제대로 번성할 수 없어서 비단 생산에 차질이 발생했소, 사천지역만 제외하고."
주성진은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자 내심 미소 지었다.
'이거 공급이 달린다면 나로서는 크나큰 기회구나. 아니지 이럴수록 신망을 얻는 게 중요해. 높은 이윤보다는, 길게 보자.'
주성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물러난 모용진은 외삼촌의 처사에 불만이 많았다. 당당히 붙어 보고 싶었는데 검진으로 상대하라니 자존심이 상했다.
'제길, 이겨도 이긴 게 아니구나, 나 원 체면 구기게 생겼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해, 저 상인 나부랭이 놈이 대결을 응낙한 걸 보면 뭔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그는 이번 비무 대결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잠시 후 비무의 입회인을 구한 그들은 객잔에서 좀 떨어진 공터에서 상대를 마주 보았다.
슬금슬금 구경꾼들이 몰려온다.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이 흐르자 관중들은 곧 대결이 펼쳐지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주성진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뭐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저들이 합벽진을 펼치는 모양이구나. 하긴 나에게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올 거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거지.'
그리고 턱을 내렸을 때 그의 눈동자에서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순간 모용진이 천천히 검을 들며 소리쳤다. 그가 검진의 조장이었다.
"모두 용호진을 펼쳐!"
휘리릭.
모용진을 중심으로 다른 여섯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사방에서 날아오르고 어느새 주성진은 그들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언뜻 비슷한 또래의 무인들이 성진을 핍박하는 형상이라 구경꾼 중 성진의 패배를 점치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성진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본인을 포위하며 각자의 위치에 내려서는 그들을 성진은 빠르게 훑었다. 그리곤 그들의 대장격인 모용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모용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후후, 뭐, 이제라도 항복한다면……."
주성진이 맞받아친다.
"너희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생명의 위해까진 가하지는 않겠다."
"흥, 그 자신감! 곧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내 호의를 거절한 대가는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모용진이 검 끝으로 주성진의 미간을 겨냥했다. 그의 검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뻗어 나온다.
결코 그가 말한 대가가 가볍지 않음을 암시하듯…….
이에 주성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후후, 후기지수치곤 제법이군, 뭐 그래 봤자 또래보다 조금 앞설 뿐.'
주성진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원래는 그들이 공격하면 빠르게 검을 뽑아 들어 반격하려 했지만, 상대가 시위하듯 자신에게 검을 겨누자 생각을 바꿔먹었다.
'뭐 적당히 하면 안 되겠어, 본때를 보여주어야지.'
성진이 서서히 진기를 끌어올려 검에 집중하자 별안간 검이 울기 시작했다.
웅웅웅…….
순간 검명이 울리자 모용진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주성진을 포위하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검명이 울린다는 건 일차적으로 검이 보검이라는 뜻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검을 쥔 자가 신검일체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거였다.
검과 한마음인 단계, 검이 성진의 마음에 공명하는 것이었다.
"후후, 할 수 있으면!"
부우웅…….
거대한 기세가 성진에게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명에도 까무러칠 판인데 성진이 기운을 개방하자 포위한 자들의 손바닥에서 땀이 촉촉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 구경꾼도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자, 그들의 눈이 커질 대로 커진다,
'저럴 수가…….'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성진의 옷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가고, 검이 시퍼렇게 빛나며 그들의 눈을 시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 순간 성진의 말이 이어졌다,
"해보시지!"
모용진은 처음과 대비되는 성진의 놀라운 변화에 이를 악물었다.
'정말 고수구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미 뱃속에서부터 무공을 익혀도 저 정도는 아닐 것이야.'
모용진은 은연중 성진을 깔보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슬슬 불안한 마음이 가슴에 자리를 잡는다.
모용진의 놀란 마음은 파동이 되어, 진을 구성하는 각자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모용진은 불안감을 떨쳐버리기도 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개진!"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용호검진이 펼쳐졌으나, 지금은 한 조각 여유조차 가질 수가 없다.
그만큼 상대 주성진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이이잉…….
날카로운 기세가 모용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자 다른 자들의 검에서도 새하얀 기류가 일렁이더니 급기야는 검 끝에서 가느다란 검기가 피어올랐다.
순간 주성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저들의 검에서 검기가… 분명 저들은 그런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았는데, 아 그렇구나, 저게 말로만 듣던 진의 작용이구나.'
그들의 기세가 그들이 펼친 진 사이를 회전하며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주성진은 새삼 합벽진의 위력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각자의 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어. 그래서 개개인의 공력이 높아진 거야. 음, 이래서 역사상 단 한 번도 소림의 백팔나한진이 깨어진 적이 없다고 하는구나.'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오늘 이 대결이 나에겐 좋은 공부로구나, 만일 저들이 모두 절정의 고수라면 난 생사를 걱정해야 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약점은 있을 터인데.'
주성진은 더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일곱의 무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거였다.
'이크, 진식이 출렁인다. 곧 공격하겠구나.'
용호검진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기세는 마치 도도한 물결과 같아서, 이에 대항하는 그 어떤 힘도 무위로 만들 것 같았다.
'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