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납치당한 남궁은하 (2)
사실 주성진은 오독문이 사파라는 것과 당가에 비교되는 가문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지 그 안의 자세한 사항은 잘 몰랐다.
감시하는 것 외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그들은 대화를 시작했다.
이곽춘이 당천기를 바라보았다.
"자네, 오독광자 그놈이 무엇 때문에 남궁은하를 납치하려 했는지 짐작되는 게 없냐?"
"글쎄, 단순히 몸값을 얻어내려고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우리 세가나 남궁세가의 보복이 두려운 줄 알면서도 납치를 결행한 것을 보면 오독문 차원의 일도 아닌 것 같고……."
이곽춘이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그리 생각해, 문제는 그놈이 왜 납치를 시도했냐는 것이지."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주성진도 나름대로 생각에 잠겨있었다.
'음, 돈 문제도 아니라면 개인적인 원한 관계나 그 외 다른 것일 수도 있는데…….'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순간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저, 돈 문제가 아니라면 원한 관계가 아닐까요?"
그러자 이곽춘이 손을 내젓는다.
"일견 그리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닐 것이오. 오독광자가 남궁세가와 원한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소이다. 그나저나 이거야 원, 희귀 절맥을 앓던 아이가 구음진경 덕에 좀 살만해졌나 생각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는군."
주성진은 그가 남궁은하에 대하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 잘 아시나 봅니다."
"뭐, 자주 본 사이는 아니지만, 그녀가 성장하는 걸 쭉 지켜봤소이다. 예전에 남궁세가에서 그녀의 희소병을 고칠 방도를 다방면으로 알아보려고 개방에도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때부터 인연이 된 게지……. 한데 주 상단주는 어찌 그녀를 아시오?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인데."
주성진은 그녀를 만나게 되었던 경위를 설명했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허, 그렇게 되었던 거군, 음 이성끼리 친구 사이라… 뭐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주성진의 눈이 번쩍거렸다.
"혹 구음진경을 노린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것이오. 구음진경은 알다시피 불완전한 무공이요, 아 참고로 구음진경은 남궁세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오. 예전에 사파와, 마교에서도 입수했다는 첩보가 있었소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야기는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그 순간 아까부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당천기가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내 생각에 오합양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주성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저. 제가 견문이 짧아서……."
"오합양독이란 지네, 뱀, 전갈, 도마뱀, 두꺼비 이 다섯의 독을 배합해서 만든 극독 중의 극독이요. 다만 각기 성질이 다른 다섯 독을 배합하려면 극음의 물질이 촉매제로 들어가야 하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저들의 독은 양의 성질을 띠고 있소이다."
"……."
"다시 돌아가서 내가 오합양독을 지목한 것은 그녀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그녀가 구음진경을 익히고 있기에 그녀의 음한 진기를 촉매제로 쓴다면 오합양독을 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소이다."
"……."
"원래는 촉매제로 비싸기도 하고 구하기 어려운 설연실(雪蓮實)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오……."
그 순간 이곽춘이 당천기를 바라보았다.
"그럼 큰일 아닌가, 그놈이 저 안에 오합양독을 만들고 있다면……."
오합양독은 독에 능통한 당가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극독이었다.
주성진은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왜냐면 그녀의 호위를 자처한 두 여인이 그녀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임을 알고 있었다.
만일 오독광자가 그녀들을 죽인다고 위협한다면 남궁은하로서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주성진은 당천기를 바라보았다.
"저, 혹시 오합양독을 이겨낼 방도는 없겠습니까?"
"극양의 성질이라 양강지력을 익힌 자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고 듣긴 했었는데, 가만……."
말을 하다 보니 주성진이 양강지력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무공을 익히고 있음을 깨달았다.
"맞아, 그대라면 어찌 가능할 것 같소만……."
주성진은 일시지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했는데 그가 나설 일이 생긴 것이다.
당천기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적임자라면 그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나는 당가 소속이 아니니 그가 경계의 눈초리를 덜 보낼 수도 있고… 그놈이 오합양독을 만들려고 한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렇다면 마실 물이나 음식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주성진은 결심을 굳혔다.
"저, 제가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신 하인으로 변장할 옷과 단검을 구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곧바로 주성진의 말을 이해했다.
"음, 내가 가주님께 가보고 오겠소."
잠시 후 당천기가 다시 돌아왔다.
"가주님도 나와 똑같은 우려를 하고 있었소이다. 그리고 그놈이 좀 전에 술과 음식을 요구한 모양이오. 내가 가주님께 갔을 무렵, 가주님이 누구를 안으로 들여보낼지 고민 중이었소이다.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제가 나서지요."
"고맙소, 옷과 단검은 곧 구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리고 이거……."
그가 내민 건 단약이었다.
"이거 혹 해독단입니까?"
"그렇소, 이게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움은 좀 될 것이요. 이것 참, 어려운 일을 맡겨 미안하기 그지없소이다."
"아닙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주성진이 패기 있게 대답하자 이곽춘이 주성진을 우려 반, 기대 반 모습으로 쳐다보았다.
"조심하시오. 만일 여의치 않으면 그대로 철수하고. 설사 그대가 임무에 실패한다 해도 누구 하나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이다. 만일 탓한다면 사람이 아니지……."
"알겠습니다. 요령껏 잘 해보겠습니다."
잠시 후 하인으로 분장한 주성진이 술과 음식을 들고 두보초당 앞에 섰다.
"흠 흠,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중저음에 쉰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주성진은 두 단계 작전을 준비했다.
1단계 음식과 술을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한다면 어떡하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건 인질들이 무사한지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2단계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면 겁이 나서 못 들어가겠다고 엄살을 피우는 거였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저, 저, 술과 음식을 놓고 가면 안 될까요?"
주성진이 떠듬거리자 그가 대뜸 웃으며 말한다.
"하하. 이놈아 안으로 들어와라, 안 죽일 테니……."
그는 주성진이 혼자 온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잔말 말고 빨리 들어와라, 안 그러면 인질들을 죽일 것이다."
"아, 네네……."
주성진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보통사람보다 머리가 두 배가 큰 인물이 남궁은하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새끼, 날 조롱하는 눈빛이네.'
그리고 그의 바로 옆에는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 못 하는 여인들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그녀의 호위였다.
특이한 건 그자의 왼쪽 손에 가죽장갑을 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음, 일단은 다행이다, 그녀들은 무사한 것 같군, 표정을 봐서는 점혈 당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주성진은 기습공격을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봤다.
'음, 쉽지 않겠어, 아직은 멀어서 기회가 엿보이지 않아.'
주성진은 천천히 주춤주춤 그에게 다가갔다.
"저, 어디다 놓고 갈까요?"
"이놈아! 내 앞에 놓고 가야지, 한데 넌 당가 놈은 아닌 것 같군."
주성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전 당가에서 일하고 입습니다."
"이 자식아, 누가 그걸 몰라. 네 성이 고약한 당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비겁한 새끼들! 자기들은 겁이 나니까 대신 너를 안으로 들여보냈구나."
"……."
"주성진이 말이 없자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왜, 내 말이 틀렸어?"
"그게, 저……."
그가 재차 손짓한다.
"빨리 와서 놓고 가라니까……."
"아. 네……."
주성진은 허겁지겁 당황한 척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주성진은 일부러 그와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자신의 연극이 상대에게 읽힐까봐서였다.
가까이 다가간 주성진이 음식과 술이든 쟁반을 놓고 가려고 하자 돌연 그가 오른손을 쭉 뻗어 성진의 손목을 잡아 왔다.
'이런…….'
주성진은 그의 손을 피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좀 더 확실한 기회를 잡기 위해선 그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었다.
"아아, 왜 그러십니까?"
"이놈아 술과 음식에 독을 탔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네가 조금씩 먹어봐라."
"제가 먹으라고요!"
그 순간 주성진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
사실 아프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그 순간 주성진은 그의 왼쪽 팔이 음식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음, 저놈이 수작을 부리는구나, 분명 액체 한 방울이 음식에 떨어졌다고! 필시 저놈이 소매 안쪽에 작은 병을 감추어둔 게 분명해.'
주성진은 그가 하독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거 좀 겁이 나는데, 나의 내공이 오합양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렇다고 예서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놈이 하라면 할 것이지 웬 말이 그렇게 많은 거야."
"알겠습니다. 저 제발 손 좀 놔 주십시오.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그가 손목을 풀자 곧바로 주성진은 술과 음식을 조금씩 입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오독광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주성진을 바라본다.
'흐흐흐, 다섯을 세어볼까, 하나, 둘…….'
주성진은 음식을 먹자마자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걸 느꼈다. 상대가 하독한 걸 알기에 곧바로 내공을 일으켜 양의 기운으로 전환했다.
몸속이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주성진은 일부러 몸을 휘청거리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어억, 내 목이, 내 목이……."
"하하 이놈아! 목이 타지? 그러게 왜 죽을 자리를 찾아와, 죽더라도 날 원망 말고 어리석은 너 자신을 탓해라."
그러면서 그는 서서히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하하. 내 계책이 완전히 들어맞았어. 당가 놈들이 내가 장기전을 준비하려고 술과 음식을 요구한 거로 알고 있을 것이야.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걸, 곧 보여주마. 난 이미 만족할만한 오합양독을 만들었거든.'
그는 오합양독을 불에 태울 작정이었다. 작은 양의 오햡양독이라도 불에 닿으면 치명적인 연기가 발생한다는 걸 그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흐흐흐, 아무도 몰랐지, 실험실에서 실수로 미량의 독을 불에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 쓰임새를 모르고 있을 거야.'
그의 얼굴에 야망이 물들어 간다.
'흐흐. 이제 곧 문주 자리는 내 차지가 될 것이다, 하하하.'
주성진은 그의 손가락이 하나하나 접힐 때마다 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악, 아아아악……."
오독광자가 누런 이를 드러냈다.
'하하하…….'
"이놈아 그리 억울해하지 마라, 잠시 후 불에다 독을 태우면 너와 같이 저승 갈 인간들이 수두룩, 빽빽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