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70화 (70/250)

070화 개방장로의 제안

'음, 역설적으로 그의 뛰어난 소매치기 실력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군, 그가 별 볼 일 없는 소매치기였다면 그의 사부가 데려가서 제자로 삼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나는 뭘까. 취옥환인가…….'

"흠……."

'내가 만일 우연히 취옥환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배신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난 전생에서 휘주상단의 상단주가 되어 있었을 것이야.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고, 그렇게 돌고 돌고…….'

주성진은 짧은 상념을 끝내고 개방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를 쳐다보면서 성진은 자신의 운명이 개방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취옥환, 개방 분타주, 개방 장로, 그리고…….'

"장로님에게 그런 과거가 있으셨군요. 뭐 저도 때때로 저의 운명을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상인지도의 길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어떤 계기로 운명이 변할지도 모르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유연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하하, 난 왠지 무림의 어느 중요한 길목에서 그대를 꼭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드오. 만일 그날이 오면 오늘 우리가 이야기했던 부분을 술안주 삼아 다시 한번 거나하게 취해봅시다."

"네, 그러시지요, 그리고 혹 다른 무림 소식은 없을까요?"

이곽춘의 뇌리에 최근에 들은 소식이 스쳐 지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과거 무림을 제집처럼 헤집고 다니던 골치 아픈 인간들이 더는 안 보인다고 하오. 그들은 과거 신강, 감숙에서 활동했었는데 제자들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그들이 호남성 악양 인근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거요."

주성진은 그의 이야기에 눈빛을 반짝거렸다.

'혹 그들 이야기인가? 회회마, 은발마녀.'

"그들은 회회마와 은발마녀인데 최근에 장가계에 있는 완월당에서 제왕 행세를 하고 있었소이다. 하여튼 그 인간들 때문에 장가계 쪽이 골치 아팠는데 만일 그들이 죽었다면 정말 다행인 게지."

주성진은 내심 뿌듯했다.

'하하, 내가 좋은 쪽으로 무림 평화에 이바지했네, 그려.'

"제 생각도 그들이 저승으로 갔을 것 같습니다. 개방의 이목에 걸리지 않은 걸 보면……."

이곽춘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하, 그 말, 개방에 대한 칭찬으로 알겠소.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이쯤에서 좀 비싼 술 좀 먹어 봅시다. 혹시 아오, 내가 떡이라도 하나 더 줄지……."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시지요. 뭐든 시키십시오."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내가 어쩌다 돈 몇 푼에 쩔쩔매는 구두쇠 영감을 친구로 사귀었을까……."

순간 당천기가 발끈한다.

"뭐야, 이 자식아!"

"허허, 농담이야, 농담. 이봐 주 상단주가 보고 있다고, 육두문자는 삼가자고!"

"끙, 어휴……."

주성진은 그들의 토닥거림에 미소 짓다가 입을 열었다.

"장로님, 혹시 좀 전 그 말씀은 제가 언제든 개방도와 접촉하면 정보를 내어줄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요?"

"하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데 역시 그대는 그런 부류 같소이다. 그렇소, 다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소? 설마 고급술 시켜줬다고 그걸로 입 닦으면 안 되지……."

주성진은 손을 흔들며 생각했다.

'뭐야. 이거 내가 그의 작전에 말려든 느낌인데, 뭐 그런들, 나도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

"아이,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의 그릇이 그렇게 작진 않습니다."

"하하, 이거 또 누구와 비교되는군……."

당천기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려 하자 주성진이 그를 보며 급히 입을 열었다.

"당주님, 제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해는 무슨, 다만 저 거지의 말이 괘씸할 뿐이오. 사람 속을 후벼 파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니까……."

그 순간 이곽춘이 끼어들었다.

"이봐, 네가 맨날 돈, 돈 하니까 그렇지. 그놈의 돈! 죽을 때도 싸 들고 갈 건가……."

"넌 결혼하지 않아서 몰라. 마누라에다 줄줄이 자식새끼 키워봐라."

"웃기셔. 누가 부인을 둘이나 두래!"

"……."

주성진은 이쯤에서 중재에 나섰다.

"자자, 그만하시고요. 우리 하던 말 계속할까요?"

이곽춘이 고개를 끄떡인다.

"하하. 알겠소. 잠깐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요즘 무림 시국이 어지러워서 우리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오. 그런 우리를 이용하려면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겠지……. 물건에 비유하자면 수요가 많은 만큼 가격도 그에 비례해서 올라간다, 이거요."

주성진은 그가 몸값을 올리려는 것을 알고 빙그레 웃었다.

'음, 뭘 대가로 지급하면 좋을까, 그가 만족할만한 게…….'

돌연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가 다시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공증진단? 아냐, 소문이 나면 난 사업을 제대로 못 할 것이야. 내공증진단을 구하려는 무인들에 시달려서… 게다가 탈취하려는 무리도 생겨나겠지. 그런 놈은 비법을 알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야. 이거 네 일행을 믿지만, 다시 한번 입단속을 시켜야 하겠구나.'

주성진은 제안보다는 그의 의견을 먼저 듣기로 했다.

"말씀하십시오, 뭘 필요로 하시는지?"

"뭐긴 뭐겠소. 돈이지……. 다만 나의 요구를 하나 더 수락하면 반의반 값에 해 주리다."

주성진은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무리한 요구는 곤란합니다. 어디까지나 합당한 요구여야 제가 웅낙할겁니다."

"그야 이를 말이오, 사실 내가 돈이 좀 필요한 건, 요즘 여러 가지로 바빠서 구걸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오. 그 시간에 정보를 캐러 돌아다니던가 아니면 나쁜 놈들을 혼내 주고 있어야 하거든, 당연히 무공도 연마해야 하고."

"……."

"자, 그러면 내 청을 말하겠소. 단도직입적으로 제자 하나를 그대 곁에 두고 싶소이다. 이게 내 조건이요."

주성진은 눈을 깜빡였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제자는 왜?"

"그대 가까이서 상술 좀 익히게 하려고 말이오, 물론 시킬 일이 있으면 하인처럼 부려도 되오."

주성진은 살짝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혹, 저를 감시하려고 그런 건 아니신지? 게다가 개방도들이 다 바쁘다는데 뺄 인력이 있으신가요?"

"하하, 걱정되시오? 내 생각에 적당한 긴장감은 약이 되는 법이오. 그대가 통 큰 상인이 되려면 그 정도는 적절히 관리하면서 감수해야지, 뭐 그래도 걱정된다면 뭘 훔치거나 엿듣지는 않을 것이오. 또한 정보가 공개되었을 경우 그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 판단되는 사항은 절대 공개하지 않을 것이오."

"……."

"자, 그러면 내가 왜 이 바쁜 시기에 제자를 보내냐는 건데 한마디로 내 제자 녀석은 늘 임무에서 예외요, 왕따라는 것이지. 이 녀석이 개방의 전통을 무시하고 구걸도 싫어하고 깨끗한 걸 좋아해서 늘 조직 내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소이다. 하나 무공도 적당히 잘하고 머리도 빠릿빠릿 잘 돌아가니 나로서는 그 재능이 아까울 뿐이라오."

주성진은 딱 봐도 이 거래는 자신의 손해였다.

'후후, 골치 아픈 제자를 나에게 보내겠다는 심산인데, 뭐 취구환으로 개방에 신세 진 게 많으니까 들어주자고. 그의 말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는 기분이라면 내가 늘 긴장을 놓지 않겠지. 그래, 아픈 손가락 하나 가지는 셈 치자.'

"알겠습니다. 대신 제가 그를 막 부릴 것이니 나중에 섭섭하다는 둥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그가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앓던 이가 쏙 빠진 느낌인데, 불만은 무슨 불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요, 하하. 난 그저 그대가 제자 녀석을 굶기지 말고 데리고 있다면 만족하오."

"하하, 그래요. 그럼 언제 합류할 수 있나요?"

그가 기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대가 동의만 한다면 한 달 내에는 그대를 찾아갈 것이오. 내가 시킨 일이 여럿 있어서, 지금 개방 비고에서 뭘 조사하고 있거든, 꽤 성과가 있는 모양이오. 하하."

주성진은 곧바로 물었다.

"뭘 조사하고 있는데요?"

주성진은 속으로 아차 했지만 쏟아진 물을 다시 다시 주워 담기는 어려운 일이라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아. 그게요, 제 말은 그저 저도 알아도 되는 내용인가 싶어서요. 내부 기밀 사항이라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그대도 버벅거릴 때가 있구려. 내 생각에 그게 더 보기 좋소이다. 젊은 사람이 너무 노회하면 그건 좀 밥맛이지, 애늙은이 같으니까. 젊을 때는 저돌적이기도 하고 때론 실수도 하고 좀 그래야 하는 법이오."

"……."

"난 그대가 상인이라 해서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소. 내 생각에 그대가 거래할 때도 이런 점이 상대에게 신선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소. 물론 그렇다고 장사에서 손해 보란 이야기는 절대 아니외다."

주성진은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씁쓸한 표정을 지은 건 그도 이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전생의 기억과 그의 전생에서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말로는 쉽지만 쉽게 행동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뭐, 계속 노력해야지, 별수 있겠어. 다시는 이성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았었는데 내가 변했다고! 그런 면에서 다른 것들도 조금씩 바뀌어 가겠지.'

그는 강설현에 대한 좋아하는 감정을 떠올리며 자신을 스스로 위안했다.

퍼뜩 생각을 마친 주성진이 이곽춘을 바라보았다.

"잘 알겠습니다. 장로님. 오늘 장로님께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우는 군요."

"하하. 아니요, 별 것 아닌데 그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나야 기쁘기 그지없소, 하하. 그건 그렇고 남자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여자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 않겠소, 안 그렇소?"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이자 그가 때마침 주변을 둘러보며 빙그레 웃는다.

"야, 이거 우리를 주시하는 눈이 많은데, 뭐 어쩌겠어. 개방도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죽느니만도 못하니까……."

그러고 보니 옆쪽 탁자에 있던 일행들이 주성진과 이곽춘 그리고 당천기가 있는 탁자를 언제부터인가 힐끔힐끔 쳐다보며 대화 내용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하려는 내용은 내 골치 아픈 제자와도 관련이 있소. 실은 얼마 전 여기 오는 길에 우연히 하오문의 지인 녀석을 만났는데 그자가 청월무녀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아니겠소. 그게 곧 시중에 나올 것 같다고."

"……!"

"물론 우리도 사라진 청월무녀도의 행방을 짬짬이 알아보고는 있었소이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주성진은 내심 깜짝 놀랐다. 그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관여하는 일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요, 제가 아는 청월무녀도는 송나라 황실에 있다가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주성진은 짐짓 모른 척하고 말했다. 암흑상인과 얽힌 이야긴 아직은 남에게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웠다.

"후후. 누구나 다 그렇게 알고 있소. 나라가 위난에 빠지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데 말이요, 청월무녀도는 사실 잘못 알려진 이름이요. 원래는 청월미녀도라 하오. 그게 그녀가 입은 옷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한 거지."

0